"청년생활" 제6회 계림문화상 우수상

     남옥란 약력:  재한 동포 문인 협회 회원   시조, 수기, 수필, 소설    등 다수 발표  2020년 수필집 [까치둥지]출판
     남옥란 약력:  재한 동포 문인 협회 회원   시조, 수기, 수필, 소설    등 다수 발표  2020년 수필집 [까치둥지]출판

반세기도 넘어되는 썩 전의 일이다. 그 때에 우리집은 외할머니까지 여덟 식구에 동생들이 세살 터울로 올망 졸망 잔밥이 한구들이나 되였다. 남동생들은 개구쟁이여서 밖에서 애들과 밀치고 나무에 걸리고 넘어 지면서 항상 째져서 너덜 너덜한 옷을 걸치고 다녔다. 그 때의 옷감들은 순 목화로 짠 면인데 현재 화학 성분으로 된 옷 질감보다는 수헐이 판나고 구멍이났다. 하기야 일년 사시장철 단벌 옷으로 지나니 그 옷이 소가죽이 아닌이상 질길 리유도 없었다. 모친은 손으로 그 구멍들을 메우고 땜질하기 힘들어서 우리도 재봉침 한대만 갖추어 놓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입버릇처럼 푸념하셨다. 

그 시절의 부자표준은 역시 네가지 중기였는데 자전거, 재봉침, 시계, 라지오였다. 이 네가지만 갖추어져 있으면 옛날 지주도 저리가라 할때다. 재봉침 한틀에 백오십원 좌우였다. 공무원 교원의 월신이 삼십원 정도인데 거의 반년공자에 해당한 돈이니깐 재봉침이 그림의 떡이지 수헐이 살수있는 물건이 아니였다. 어느해인가 생산대의 년간 수입이 괜찮았다. 우리 집에서도 딱 재봉침 하나 살수있는 정도의 현금을 분여 받았다. 모친은 드팀없는 신념으로 재봉침 구입에 나섰다. 어렵사리 아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공소사 본사에서 표준표 재봉침을 샀다. 그날 우리집 식구들은 하루동안 기쁨의 도가니에 빠졌고 이웃 집들에서도 축하하려고 문턱이 닳게 찾아왔다. 

보배 모시듯 재봉침을 방구석에 놓기는 놓았는데 그게 말대로 수헐이 척척 바느질이 되는게 아니였다. 먼저 언니가 재봉침 다루기에 나섰다. 마을에는 기계를 안다고 자칭하는 공사 농기구 짬에 출근하는 "근성"이 아버지가 있었다. 일요일날에 엄마가 "근성"이 아버지를 스프로 청해오고 언니더러 배우게 하였다. 먼저 밑 실날과 웃 실날을 고정하는것부터 배웠다. 그리고 발로 재봉침 디딤판을 돌리면서 실을 코에건 바늘이 밑실과 결합하여  련습용 천을 골고루 박으면서 나갔다.  잘잘잘 천을 맞대고 박음질하는 소리가 노래소리처럼 귀전을 간지럽혔다. 손과 발이 적당하게 맞아야 하고 크게 기술이 수요되는 일은 아니지만 세심하고 처음부터 옳게 잘 배워야 했다.

언니가 한창나이 20대라 성격이 급하고 리론적으로 배운적도 없고 처음 접촉하는 재봉침이라 엄마가 시키는대로 박음질을 할수가 없었다. 바지가랭이 안단을 엎어서 박음질 하자면 오른손으로 적당히 당기면서 박아 나가면 실과 실뜸 사이가 고르롭다. 절대적인 것은 먼저 손 바늘로 시침질을 하고 즉 슬쳐놓고 다음에 재봉침에 박음질하면 실수 없다. 헌데 언니는 단을 엎으면서 직방 박음질을 하니깐 단의 너비가 고르롭지 못하고 비뚤비뚤 실뱀이 건너간 자리처럼 되고 할아버지들 대통 주머니 아구리처럼 쫄려 있어서 꼴 불견이였다. 모친은 어이없고 화가나서 다시 뜯어서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뜯는것도 살살 세심하게 송곳으로 실밥을 몇코 떠놓고 한손으로는 원체를 쥐고 한손으로는 단의 모서리를 틀어쥐고 두손에 적당히 힘을주고 당겨야 하는데 이건 아다모끼로 힘껏 당겨버리니깐 바지원체에 쥐이발 자리가 송송 나서 새천이 낡은 천으로 돼버렸다. 

모친의 입에서는 우둔한 인간이 바지를 버렸다는둥 니처럼 재간없는 처녀를 어느집에서 며느리로 받아 드리겠는가 둥 하루종일 욕이 끝나지 않았다. 재봉침을 사들이고 생활에 도움이 되자고 한 노릇이 재봉일에 익숙하지 못한 언니가 되려 욕을 보는 일이되고 말았다. 재봉일은 물, 다리미, 손바느실, 약간의 옷에 먹이는 풀을 갖추고 하면 제격이다. 구김살이 간 자리에 물을 뿌리고 다림질하면 할머니들 얼굴의 주름살이 펴지듯 확 펴진다. 그리고 단을 엎을때에는 손바늘로 시침질 즉 슬쳐놓아야 한다. 다음에 박음질을하고 후에 시침했던 실을 잡아당겨 빼여 버리면된다. 그다음 다림질이끝나면 훌륭한옷이 완성된다. 

사실 바느질에는 심오한 삶의 도리와 인간의 지혜가 들어있다. 바늘에 실을 꿰여서 다 헝겁과 헝겁 사이를 이어주고 맺어주고 꿰여주면서 새옷들을 만들수도있고 옷의 구멍난 상처를 치료해주는 오묘한 역할을 할수도 있는 것이다. 옷에 난 상처는 바느질로하고 마음에 난 상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한다. 

출가하고 조양천에서 세간 살이를 할때였다. 딸둘에 네식구가 살아가는데 그때에도 재봉침에 대한 간절함이 늘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하였다. 쌍직공이라 하지만 돈은 푼푼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본가집 재봉침을 가져오기도 미안하였다. 그저 어느때에 재봉침을 사겠는지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내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듯이 어느날 연길 둘째 시형네 집에서 살고 계시던 시아버지가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없이 나비표 재봉침을 연길 백화에서 사서 가져왔다. 나는 날듯이 기뻣다.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님들의 그덕대같은 사랑을 자식들은 응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부모가 열번 생각할때 자식은 단 한번만이라도 부모를 생각할수 있을까 시부모님들이 사주었던 보물같던 그 재봉침으로 나는 구차한 생활을 깁고 구멍을 메우고 고르르면서 몇십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지나왔다. 남편의 판난 바지를 버리기 아까와서 가위로 판난 부분을 잘라 던지고 새롭게 재단하여서 애들에게 바지를 지어서 입혔다. 팬티 두벌감을 사서는 꼭 세개를 만들었다. 쪼박난 가위밥을 묶고 이어주고는 혼솔기가 드러나지 않게 싸백이 하면서 알뜰하게 공그르고 허물을 덮어주면서 깜쪽같이 새것처럼 만들었다. 낡은옷과 판난 내의도 버리기 아까와서 시침질로 이어주고 무은다음 재봉침에다가 내리박고 올리박고 가로박고 모로 박고 다듬어서 낮잠을 잘때에 가마목에서 덮는 막덮개를 만들었다. 옆집 할머니가 그 투레기 걸작을 보시더니 나에게 이러한 덕담을 건너왔다. "선화 에미는 30세미만인 새 각시인데 어쩜 그렇게 침선에 능하오" 할머니의 칭찬은 도리가 있었다. 

그 시절에 내가 제일 능하게 할수있는 바느질 일은 남정들의 담배쌈지와 베개 머리였다. 온가족의 형제간과 남편의 친구들까지 부탁이 들어와서 담배 쌈지를 만들었다. 곤색사지로 원체를 만들고 면은 칠색 무지개처럼 여러 색상의 천을  빼끼 손가락 간격보다도 더 좁게스리 박음질해서 운치있게 만들었다. 초 담배를 피우던 그시절에 그렇듯 고급스러운 담배 쌈지를 들고 다니는 남자들은 신사가 따로 없었다.

지금 거의 지천명의 나이에 가까운 우리집 두딸내미들은 곧은 혼솔기 박음질도 할줄을 모른다. 그걸 몰라도 살수있는데 세월이 그렇게 발전 하였는데  기어코 가난을 기워살고 가난 골짜기를 메우던 그 시절처럼 우리네 세대처럼 그렇게 살 필요가 없는것이다.구차하고 가난하면 지혜와 방법이 생겨난다. 그럭저럭 시대의 변혁에 맞추어서 살수있는게 인간이다. 재봉침이 가가호의 생활에 침투되여 천과 천사이를 이어주듯이 이웃과 이웃 사이를 조화롭게 박음질하고 서로 배워주고 방조 하면서 가난을 다림질하던 때가 력사로 사책에 기록될 일이다. 

시부모님의 사랑과 정이 듬쁨 담겨졌던 나비표 재봉침은 40년간이나 내 신변에서 바느질로 가난골을 메우고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었다. 그래도 드무시 잘잘잘 귀맛좋은 박음질 소리가 귀전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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