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순 연작시/ 겨울 한묶음

 


겨울·1

 

커튼 열린 추락사 진실이
향기로 부서지는 정원에서
소리는 
눈꽃 돌아눕는 쇼크를 터치하지 못 한다 

빙판 갈라터진 틈사이로 
하늘 흘러가는 감각, 송사리 꼬리 젓는 
시간을 탈출하게 한다

고목 등 굽은 가지에
사념 꽃피워두는 손가락의 체념…
별 총총 박아두고
사랑은 아무나 하나, 깃 펴두고 있다

무아경 조립하는 떨림이 
스모그에 주사위 던질 때
대설주의보, 탁자에 가로 눕는다

태동하는 메신저에 지구가 끌려가고 있다
 

2022. 11. 9

 

겨울·2

 

의자 등받이에 찍힌 지문의 단서에는 
낡은 먼지의 이력서가 각색되어있다 
벼락 맞은 소나무, 가지에 내돋히는 망각이
작열하는 우주의 관성에 일기를 쓴다

억겁 노하우, 등 굽힌 그림자도
기다림에 뿌리박는 작업 연마했을 것이다
쾌청한 하늘빛 미소가 좀먹는 성숙 꽃피워갈 때
유랑아 같은 좀비의 날개에 비가 내리고

도덕경 페이지에서 노자의 헛기침소리가 
삭신 쑤셔나는 모서리 온도를 냉각시킨다
더듬어가는 어둠이 해상도를 높인다
솔씨의 진언, 인동초 푸른 비기(秘技)를 살찌워간다 


2022. 11. 9

 

겨울·3

 

수년전 일이었건만 
그날도 
보라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눈 덮인 하늘을 보았다
글씨 같은 기억들이 걸어가고 있었을 꺼다
개미 같다는 생각은
생각의 둔덕에 우두커니 서있던  
그젯날 떠올려보며 
아픔아~ 하고 되뇌어보았었지

가녀린 길옆 상가의 이마에서 푸실푸실 
눈 흩날려, 
거리는 입 다물어버리고,
3번 출구에 목소리는 쇼크 부축해가며 
이별의 청춘역, 
그 노랫말 가사를 애써 짓씹고 있었을 꺼다

다음 역은 머드라? 
오목렌즈 초점에 태양 연소시키는 
어둠의 진실…
그때는 나불대는 회한의 덧그림자가
날숨의 길이 탁본 찍는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다

아무레나, 싸락눈 내리는 어스름을
그는 걸어가고 있었고
세월 흐른 지금에도 손아귀엔
매화향기 볼 붉힌 엽서가
동충하초 들숨으로 빈 들녘 어루만진다


2022. 11. 10

 

겨울·4

 

삼동에도 
비는 추락을 꿈꾼다
사색 잃은 단절음처럼 
골목길 어귀에도 향기는 얼어버리고 
소망의 순간들이
콜타르 깔린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섬섬옥수 같은 
피라미 입 벌린 모습이 
팸플릿 하단에 딱지 붙이는 순간 낚아 올리며,
<사계절>어구점 새벽을 
그는 깁스하고 있다
가슴 하얀 오타의 날짜들 
부레의 힘으로 
우주를 떠밀어 올리는 착상의 쇼~
흔적 지우는 서툰 동작으로
삼동에도 기다림에
대각선 긋는다, 형이상학 하늘이 눈꽃이 된다 


2022. 11. 10

 

겨울·5

 

e 좋은 날,
시인의 하늘에 눈이 내린다
욕망 덮어 감추는 지구의 행적이
사락사락 들리어온다
갯벌 쭈꾸미 흔적이 횟집 간판에 늘어붙었다
탈피의 순간 데쳐 먹는 망각 하우스,
거기에도 아픔은 각질 되어 부서져 내린다
게걸음치는 밤빛 줄행랑…
바위틈에 꽂힌 업보의 집게발이 
기억 한 올 집어 올린다, 꼬불딱~ 집념 태동하는 소리,
환각의 텟스트가 
피라미 꼬리짓으로 어둠 때리면
e 편한 날,
모니터의 링크 속으로 
이별 으깨진 숫자들 주어 맞추며 
빈자(貧者)가 하자의 발등에 입을 맞춘다
가야만 하는 머뭇거림이 간이역 쥐었다 놓는다
사랑은 안갯빛 카니발이다


2022. 11. 10

 

겨울·6

 

넉넉한 자존에
향기 지펴 올리던 아지트의 카리스마
그 여유로움 좀먹어가던 둔덕을 잊지는 못하지
라고 하며, 그는 옷 벗어 
카운터에 맡겨두었다, 그는 버릇처럼 
또 그냥…
산모롱이 녹슨 모습 떠올려보며
칵테일 허리를 움켜잡는다
찌익~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허상에 미소 지으며
몸속 역주행 하는 딜레마 
그 보랏빛 용기(容器)에 하늘 담아두기도 하었다
때로는 각설의 묘미가 
각하, 각하…
중얼거리며, 난타의 슬픔에 입 맞추기도 한다 
때 지난 섭리에 외양간 고치는 
천수관음 자비의 손이
눈꽃으로 부서져 내린다 
삶의 고뇌가 <천 하루 날 밤 이야기> 벗겨들고
목각의 무지개에 불 지펴올린다
허겁의 신기루 날개에 씨앗, 눈뜨고 있다 아프다
 

2022. 11. 10

 

겨울·7

 

구멍 뚫린 허공에서 추위가 슴새 나온 비밀이 바람에게 들켜버린다. 바람이 추위를 거머쥐고 여기저기 달아 다닌다. 가닿는 곳마다 세월을 응고시켜버린다. 지구가 굴러간다. 그림자가 우주를 깨어나게 한다.

레스토랑 문전에 길은 침묵을 삼키고, 가로등 불빛아래 벤치의 한적함이 눈꽃향기에 취해버린다. 메아리의 얼룩반점이 별 되어 시공터널 질주하고 있다. 생각의 속력, 억겁 광년 뛰어넘어 어둠의 평행이동에 부서져버린다. 

환각으로 영혼의 질서를 조명하는 아침이었다. 무아의 경지에서 자아를 조립하는 힐링의 코드에는 아픔 수놓는 저승사자 손떨림도, 피아노건반 녹슬어가는 색상으로 스트레칭 덧칠해준다. 싱거운 허상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이 다 진실만은 아닌 것이, 갈새의 뿌리 움켜잡는 역학으로 지각의 함성 틀어잡는다. 비밀이 다시 들켜버리면. 부서지는 속보가 기억향기로 눈물 움켜쥐고 있다. 신기루는 그래도 사막에 뿌리 내린다.


2022. 11. 10

 

겨울·8

 

아가씨를 
중국 말로 쑈제라고 부른다
아저씨를 또 쌘썽이라고 한다
둘이는 타임머신 타고 온 외계인처럼 
시간에 구멍 뚫고 
뜸쑥 타오르는 고독, 맛나게 씹고 있다 

초고속 전뇌학습법 
깔고 앉은
미니 하우스의 기저에 
바위, 숨 톺는 사연, 거품세상 스크랩 해두면서
비어있는 윤회 속으로 
옛 전설 흩날림을 싸늘하게 스캔해둔다

잠깐 앉았다 가시지,
치아가 가쯘한 추위를 끄당겨본다
질려버린 밤색 미소가
어둠을 전율케 한다, 하얀 맛이었다, 아픔은…

어떡카노… 
마주 잡은 손 놓아버려야 하나
<러브 스토리>다방에서 만난 안식(安息)비법이
녹슨 우주를 사포(砂布)로 문질러 
갈색 소망 윤색해간다, 바람의 숯에 눈꽃 들리어있다


2022. 11. 11

 

겨울·9

 

기다림 떠나간 둔덕에 허수아비 허름한 기침소리가 바람에 나붓거린다. 적설 덞어진 사색에 껌 씹는 회오리 신음으로 브레이크타임에 바래져있다. 목수건 두른 낱말의 뉘앙스, 목침 하나 베워주며 고뿔의 각서에 날인 찍는다.

사랑이 웬 말이며 이별이 어인 이유란 말인가. 하며 다가서는 안경 너머로 어둠은 치마 들어올리고, 존재의 고독에 빗장은 그림자 열어두고 있다. 마태복음 장절에 꼬리치는 속죄의 시간들이 점선의 집합으로 하루를 압살해간다. 십자가 걸린 성당의 노랫소리에 지옥의 문 녹슬어있다

슬퍼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듯이, 아픔 눈뜨는 자에겐 행복이 나래 펴리라, 라고 하며 휘파람 불어보시라. 조석으로 밀려오는 파돗소리가 사막의 배꼽에 소망으로 길들여진다. 승천의 운무가 구름으로 둔갑한다. 백설공주 살색 하얀건 일곱 난쟁이만 아는 비밀이 아니다. 

기다림 떠나간 둔덕에 허수아비 허름한 기침소리가 다시 바람에 나붓거리면, 적설 덞어진 회한의 저널 슴새드는 갈새의 울음소리를 들을수 있다. 거기 건너 켠 먼 바다 해오라기의 멀미가 있다. 실낙원 온도 비껴 담은 스모그의 입덧이 있다. 


2022. 11. 11

 

겨울·10

 

낭자한 기억의 두근거림이 있다. 율동에 가슴 얹어두는 동작은 물밑 송사리의 꼬리치는 하루를 유인해간다. 바위 밑굽 젖은 역사가 해탈의 연륜에 연기(緣起) 한 올 새겨 넣으면, 도요새 부리에 이슬 물리어 있다는 것은 강 녘 물풀의 옛이야기 일수도 있다.

슴슴한 하루가 눈꽃향기에 매화그늘 얹어두고 눈감아버릴 때, 하늘이 왜 푸른지를 바람에 물어가는 구름이 언덕너머 광야에 넋 잃은 사랑편지 날려 보낸다. 낙엽의 노래가 공원 벤치 잠들게 하던 순간도 망향의 놀빛에 비끼어 있다. 

파노라마의 영(嶺)마루에서 별빛 흘러나오는 연민이 굽이 도는 해안선에 사금파리로 반작이기 때문인 것일까. 해오라기 울음이 설렘 안고 해저 가오리 날개에 사막의 산란기로 부서지기 때문일까. 낮달의 미소가 창백한 건 속눈썹 감쳐 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군이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 일본영화 <추격>의 필름에서 수림 속 질주하는 주인공 뒷잔등이 바람에 나부끼는 입을 맞춘다. 드라마 같은 추위 강타하는 계절의 안색이 허겁에 일기 쓴다는 것은… 

함무라비법전에 다시 글자 새겨 넣는 설렘으로 이별에 끈질긴 사랑 못박아둘 일인 것이다.


2022. 11. 12

 

겨울·11 
—11월에 내리는 비

 

차가운 울음 속 내처 달리는 숙녀의 하얀 종아리같이
슬픔은 토막 난 연장선 빗겨 담는다
그릇마다 넘쳐나는 데모의 기다림이 향기로 부서지는 순간을 업그레이드 하고
하수구 기침소리가, 뿔난 어둠에 보석단추로 못박혀있다
해수면 가르며 섬나라로 떠나는 뽀트의 함성
주인 떠난 객실 벽면에 걸리어있듯이
객쩍은 메아리는 해오라기 울음 접어 바위섬 이끼로 기억 덮는다
오가는 예상사가 내리꼰지는 빗줄기로 드리워있다
섬 밖 또 다른 하늘이 섬 되어 돌아눕는다
잘 가세요 또 오세요 인사말도 낯선 태고의 하늘에 발톱 하나 끼어있다
누룽지 우려낸 물이 냉각된 생각 꽃피워두려고 
누런 구름에서 뛰어내린다. 점, 점, 점… 밤이 멀어져가고
인간극장 문어귀에 낙엽이 덮인다
가을 딛고 걸어간 사나이 발자국이 눈물의 청춘역에 향기로 녹아들고 있다


2022. 11. 12

 

겨울·12

 

섭리 잔주르는 순간을
착각에 얹어두는 사람
그 아픔 그리워하며 눈감고 있네
잔설도 소망 되어 녹아 흐른다 하겠지

사랑은 왜 했노, 
라고 하면 
향기가 부서지는 창백한 사연
얼지 않는 훈향으로 
갈라터진 함자위에 봇물 솟구치게 하겠지

자가당착~!
오아시스 유해가 속빈 바다 출렁이게 하듯이
스모그 침전으로 사막 그러담는 
열망의 눈동자

번연히 알면서
비뚤어진 틈서리로 멀리 마주보이는 
고드름 유머가 
시간 살진 표피에 후회로 꽃펴나 있다

빨간 매화꽃 잎새마다 삼동 잠들어있다 


2022. 11. 12

 

겨울·13

 

아, 이 끊겨진 아픔을…
창 열어두고 있어도 
공전 멈추지 않는 이 슬픔을…
깃털 타들어가는 타락한 
이 냄새를, 이정표 지워진 아아~ 이 거리를…

오존층 구멍 뚫린 곳에서 
끝없이 부서져 내리는 
기억의 분말들…
그러나 다시 아아~~ 주름진 뒷골목 
시궁창에 미소 짓는 
오페라극장 같은 그림자의 망발을…

어둠은 밤이 덮어주지만
눈발 되어 내리는 
이 한 밤, 고비사막 불타는 목마름은 
뉘의 혼백으로 태평양 큰 섬
잠재워둘 것인가, 막창의 빛이여

사랑 밀려난 자리에 봄은 언제쯤이나
패러독스의 향연으로 인동초 길들여갈 것인가
나들목 승천의 이슬이 
입 쓱 닦고 나앉은 계단에 
숫자는 아홉 아니어도 시간을 갈고 닦는다 


2022. 11. 12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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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순 프로필:
중국 조선족 시몽동인회 회장.
<시몽문학>잡지 사장, 발행인.
시집, 동시집, 동화집, 설화집 등 출간 십여권.
시론집: <복합상징시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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