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광서제(光緖帝) 연간에 세워진 북양수사(北洋水師)는 철갑함, 순양함, 어뢰함 등 엄청난 위력의 다양한 군함을 보유한 해군 함대로서 청나라 중요한 군사재산이었다. 당시 북양수사의 장비는 아시아 최고의 수준이었고 세계 해군전력에서도 6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청정부가 북경과 천진 그리고 북중국 해안에서의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군사역량이었다. 서양열강들도 북양수사의 위력을 만만하게 보지 못했다. 때문에 일본은 북양수사를 중국을 침략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다. 

이렇듯 강대했던 북양수사가 1894년 중일갑오전쟁에서 청나라가 적수로 여기지 않았던 일본에게 무참하게 패배했으니 어찌된 영문일까?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보잘 것 없는 상대에게 패배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그 중에서 지금까지 민간에 잘 알려지지 못한 미인계 비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 당시 영화춘이라는 기녀가 있었다. 그녀의 본명은 남춘(藍春)이며 만주 정홍기(正紅旗)의 출신으로 몰락한 귀족가문의 후손이다. 그녀의 증조부 화곤(和昆)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어전대신(御前大臣),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의 관직을 지낸 고위관료였다. 가경제(嘉慶帝)가 즉위하자 선왕의 사람을 내치는 칼바람이 불었다. 그때 화곤도 화를 피하지 못하고 곧 투옥되었고 재산도 전부 몰수되었다. 잘나가던 화곤이 황제의 핍박에 못 이겨 목숨을 끓자 그의 가문은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었다. 화곤의 4대손인 남춘의 대에 이르러 가문형편이 더욱 가난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화류계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증조부 화곤의 신령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그녀는 자신에게 ‘영화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당시 북경의 섬서골목(陝西胡同)에 운월루(雲月樓)라는 기방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곳에 터를 잡고 세상이 돌아가는 형세를 관망하였다. 한편 그녀는 가문의 복수를 위해 북양수사 관병들로 하여금 함대의 시설을 파괴하도록 꼬드겼으며 수사 관병들의 손에서 군사기밀을 절취해 일본 첩자에게 넘기는 밀정 노릇을 했다.

왜? 

북양수사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이 함대에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이 함대만 무너뜨린다면 일본이 아주 쉽게 청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춘은 기녀들 중에서 뭇 사내들을 홀리는 재주가 가장 뛰어났다. 그녀와 정을 통한 북양수사 몇몇 관병들은 위해에서 천진까지 배 타고 다시 차를 이용하여 북경에 와서 운월루를 드나들었다. 영화춘의 미모와 간을 녹이는 재주에 넋이 나간 그들은 한 번 오면 돌아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고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이 떠날 때면 많은 돈을 그녀에게 뿌리고 갔다. 

북양수사에서 중간급 간부쯤 되는 방백겸(方伯謙)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동료 세 명과 짜고 전함의 중요한 부품을 훔쳐 팔아 각자 3만 7천 냥씩 나눠가졌다. 그들은 그 돈으로 영화춘을 만나러 북경에 갔다. 

초여름의 어느 날 밤 운월루의 불이 유난히 밝아보였다. 방대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기하고 있던 영화춘이 나타났다. 그녀는 손끝이 미끄러질 듯 한 고급 비단 옷으로 몸을 감쌌다. 이팔청춘의 여인답게 풍만하고 봉긋한 가슴이 금세 비단옷을 뚫고 나올듯했다. 분칠한 얼굴이 등불에 비쳐 더욱 매력적이었다. 살짝 파인 보조개는 웃음과 함께 사내를 빨아들이고 촉촉한 눈빛은 정감이 넘쳐나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방대인의 몸은 어느덧 스르르 허물이지기 시작했다. 더 말이 필요 없었다.
계집질에 이골이 난 방대인은 숱한 기녀를 만나보았으나 그녀가 주는 자극의 짜릿함과 천당을 헤매는 쾌감은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폭풍우와 같은 운우지정이 끝났다. 사지가 나른해나고 정신이 혼미해진 난 방대인은 영화춘의 부탁을 전부 들어줄 태세였다. 
영화춘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려면 돈깨나 필요할 텐데 방대인 무슨 신통한 돈벌이라도 있었나요?”
방대인은 북양수사 전함의 중요 부품을 훔쳐 마련한 화대를 갖고 이곳에 왔노라고 이실직고했다. 

그녀는 자신의 바람이 실현되어 가고 있는 사실에 만족감이 들었다. 방대인은 부품을 사준 천진에 있는 보생기계 회사의 영수증까지 꺼내 보이면서 여인과 희열을 나누는 제스처로 손벽을 마주쳤다. 
“지금 수사의 함상에는 군기가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져 함정의 부품 몇 개 훔쳐내다 팔아먹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방대인은 이렇게 토로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돈을 팍팍 갖다 주겠노라고 맹세까지 덧붙였다.
방대인의 말대로 북양수사의 전함들의 부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전력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다. 군기도 바닥에 떨어져 전투력이 말이 아니게 하락했다. 
이것이 영화춘이 오매불망 바라던 일이었다.

영화춘의 단골손님 중에 장사형(張士珩)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북양수사에서 총판(總辦) 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총무를 담당하고 있으니 돈을 물 쓰듯 했다. 사내가 지갑이 두둑해지면 풍류를 즐기는 것이 당시 풍조였다. 장사형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청나라 조정의 실세인 이홍장(李鴻章)의 외조카로서 나라의 중요한 비밀을 손 끔 보듯 했다. 영화춘에게는 장사형이 보물 같은 존재였다.
장사형은 영화춘을 자주 찾는 여인 정도가 아니라 깊이 빠져버린 연인사이로 간주했다. 영화춘도 그런 뜻으로 장사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여인의 생각은 사내가 상상 못한 다른 곳에 있었다. 
“난 이미 생각을 정했어. 때가 되면 너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 예정이야.”
이 말은 들은 이후로 영화춘은 진짜 북경을 떠나 위해로 갈 궁리에 매진하고 있었다. 위해는 당시 북양수사가 주둔해 있는 곳이고 일본 첩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영화춘의 생각은 이랬다. 함대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솜털을 몇 개 건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조정을 뒤덮고 잃어버렸던 천당을 다시 찾으려면 반드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청일전쟁이 곧 일어날 태세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군사기밀을 일본군에 넘겨야지.

장사형은 영화춘을 데리고 천진에 갔다가 다시 위해로 이동했다. 배운 재간이 몸을 파는 것뿐인 영화춘은 위해의 취향원(醉香園)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기생생활을 이어갔다. 

땅거미가 지고 황혼이 무르익을 무렵 영화춘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그날도 손님을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사내가 찾아왔다. 단정한 의관에 맵짠 콧수염이 영화춘의 눈을 붙잡았다. 키는 큰 편이 아니나 얼굴은 미남형이다. 
“난 당신을 만나려고 홍콩을 걸쳐 이곳에 온 대일본제국 사람이오.”
일본이라는 말에 영화춘의 맘은 이미 비린내를 맡은 파리처럼 사내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폭풍우 같은 운우지정이 지나갔다. 영화춘은 그때까지 외국인과의 정사는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맘을 확 뺏긴 그녀는 헤아릴 수 없는 배들이 거쳐 간 비좁은 해협처럼 수많은 사내들이 거쳐 갔지만 이 일본 사내와의 정사는 여태껏 처음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본 사내들이 계집질 잘하는 재주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빈말은 아이었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흐뭇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이름은 우에가와이고 중국명은 진용기라 하오.”
“호호. 중국 이름도 있네요. 그럼 당신을 진 선생이라 부르면 되겠네요.”
“난 당신의 과거를 잘 알고 있고 지금은 무얼 하려고 하는지 다 파악하고 찾아왔소. 나와 손을 잡으면 당신이 바라는 바가 성사될 것이라 확신하오.”
우에가와는 그녀가 북양수사 사내들과 얽혀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가문의 복수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절박함도 잘 알고 있었다. 영화춘에게는 우에가와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급시우(急時雨) 같은 존재였다. 

1894년 봄 어느 날 짭짜름한 바닷바람이 취향원에 불어왔다. 영화춘은 ‘오늘 또 귀한 손님이 오려는 징조’라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장사형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사내는 오랫동안 암컷의 냄새를 맡지 못한 짐승처럼 영화춘에게 달려들었다. 질풍노도와 같이 달리고 또 달려 계집을 흐뭇하게 했지만 여인의 직감으로 사내가 뭔가 불안한 구석이 느껴졌다.
“대인답지 못하게 무슨 깊은 고민이 있으신가요?” 
사내는 머뭇거리다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최근 조선 전라도에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약삭빠른 일본이 이때다 싶어 조선에 병력을 파견했다. 청나라도 조선에서의 주도권을 일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북양수사 2천 명을 조선 서해안 아산으로 파병하는데 장사형이 보호를 하는데 필요한 탄약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탄약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어서 한숨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호. 별일도 아닌 사소한 일에 얼굴을 찌푸리고 참.”
계집은 조롱조로 말했다. 사내에겐 생사가 달린 중요한 일이건만 계집은 사소한 일이라니.
영화춘은 우에가와와 짜고 가짜 탄약을 구해 장사형에게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장사형한테서 들은 조선 파병 시간과 노선 등 전부 비밀을 일본첩자에게 넘겨버렸다. 일본군은 청나라 함대를 무너뜨릴 전략을 치밀하게 세웠다.

1894년 9월 17일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결과는 예상치 못한 승패가 벌어졌다. 십중팔구 일본이 청나라 상대가 아예 아니라고 여겼는데 정반대로 청나라 패배로 끝났다. 
“북양수사 내부가 이미 썩을 대로 썩었으니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바다 위의 장성도 저절로 무너지고 말겠구나.”
4년 전 정여창(丁汝昌)의 탄식이 현실로 되어버렸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실패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었다. 하나는 북양수사 내부가 썩을 대로 썩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춘의 비밀 누설이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영화춘이라는 한 여인이 품은 한에 의해 청나라 패배를 불러왔다.

온 나라가 어수선하게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취향원의 분위기만은 달랐다. 자신의 계획이 착착 실현되어가고 있는데 만족한 영화춘은 청색 스웨터를 입고 머리는 만주 귀족들처럼 봉화모양으로 틀어 올렸다. 얼굴은 개선장군의 미소처럼 환하게 물들었다. 

가장 속이 타들어간 사내는 바로 장사형이었다. 혹시 자신이 말한 비밀들이 영화춘을 통해 일본군에게 발설된 것은 아닌지? 이런 의심을 품고 있었으나 정작 계집을 만난 사내는 곧바로 경계가 허물이지고 또 다시 계집의 치마폭에 휩싸여 헤어 나올 줄 몰랐다.

사내는 자희태후가 이홍장에게 내린 지시, 북양함대가 절대 전투를 멈출 것. 출전할 경우 죄를 물을 것. 사자를 일본에 보내 화해를 요청할 것. 이홍장은 절대 출병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것. 등등의 비밀까지 계집에게 전부 말하고 말았다. 당연히 일본군은 이러한 비밀을 근거로 전략을 세웠고 이듬해인 1895년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요충지인 위해가 일본군의 점령지가 되었고 이윽고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시모노세끼 조약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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