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하나로 서민갑부가 된 유별난 엄마의 골 때리는 이야기/남룡해 지음

제9장 엄마의 DNA를 물려받은 네 마리 '룡' (3)

자금성에 둥지를 튼 '룡'

                                                      남룡 (남씨네 셋째)
                                                      남룡 (남씨네 셋째)

    우리 형제 중에서 어머님의 그 DNA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이가 셋째 남룡이다. 겁대가리 없는 그는 형제 중에서 가장 먼저 ‘하해’하여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우리 형제들이 훗날 비즈니스에 입문한 게 어찌 보면 셋째가 바닥을 치고 일어나면서 다들 충격을 받아 정신을 차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룡은 1984년도에 중산대학 일본어학부를 졸업하고 북경공업대학의 일본어선생으로 배치 받았으나 교직을 내려놓고 중국오금광산그룹에 입사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출입 무역업무를 취급해오게 된다. 거기에서 대국의 거대한 수출입시장을 노크해 본 그는 과감히 ‘하해’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아세아권을 무대로 한 비즈니스 업계에 입문했다.

    1991년 그는 자신의 경영리념을 실천에 옮길 생각으로 일본 요코하마에 첫 자회사 동승교역을 오픈했다. 일본, 한국과 중국 간의 광물무역을 진행해오면서 인생의 첫 ‘노다지’를 캐게 된다.

    일본에서 3국 무역을 해오다가 급변하는 중국의 큰 시장을 보고 천진에 들어와 다시 동화무역회사를 오픈한다.

    무역은 상대적으로 첫발을 내 딛기는 쉬운 사업이다. 더욱이 자금이 결핍할 때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사업아이템인데 비해 외부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흠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그 숙제를 풀지 못해 많이는 시작했다가 중도이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페단을 극복하기 위해 남룡은 직접 자제품을 만들어 보리라 작심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 일환으로 1994년과 1995년에 하북성 장가구와 산서성 양천에 잇달아 광산물가공공장을 설립하고 이 두 공장에서 생산하는 광물을 직접 외국에 수출함으로써 순수 무역업으로부터 무역제조업에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출이 내수에 비해 각광받았다. 수출을 하면 회사계좌에 돈이 꼬박꼬박 입금되었지만 내수는 물건을 팔았다 해도 자금 회수가 많이 힘들었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의 구매력이 일본이나 한국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내수시장의 규모가 엄청난 속도로 커졌다. 이는 회사의 발전 방향을 13억 인구를 가진 내수시장에로 전환하게 된 계기였다.

    그 와중에 한국으로부터 중약 달이는 탕약기를 인입해서 국내시장을 상대로 판매마케팅을 펼쳐 볼 의향을 갖게 된다. 곧장 한국에 건너가 한국 약탕기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콘테이너로 물품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 약탕기판매를 시작할 때 경쟁업체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각 성의 중의원과 큰 약방을 주요 고객으로 유치하는 판매전략을 펼쳤다. 한 단계 노력 끝에 20개 정도의 성급 중의원을 고객으로 유치했으며 후에는 그 범위를 넓혀 30개, 40개로 서서히 늘여나갔다. 그 당시 각 시, 현의 중의원, 인민병원, 개인진료소를 망라하여 성급 중의원에서 어떤 제품을 사용하면 기층에서도 안심하고 그 제품을 구매하게 돼있었다. 약방의 경우 큰 약방의 선전효과가 특히 뚜렸했다. 동화원은 북경동인당, 남방의 장중경 등 큰 중약업체들을 잇달아 거래처로 확보했다. 

    이어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 성에 판매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 판매되는 탕약기는 대리상을 통해 판매되고 있었다. 대리상의 경우 일반적으로 단기적인 경제리익을 추구하고 판매 후 봉사를 제공하기 어려운 등 폐단이 뚜렷했다. 이런 상황에 근거하여 동화원은 처음부터 직판경영모식을 도입하고 전국 각지에 판사처를 설립했다. 

   시초에는 판사처를 경영할 적임자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고향이 하북성인 기사더러 하북성 판사처를 맡아보라고 내려 보내기도 하고 지어 인테리어 중인 목공을 권유하여 고향인 복건에 내려가 판사처를 책임지게 하였다. 직판모식으로 경영하면 대리상을 찾아 판매하는데 비해 관리 등 방면에서 정력이 많이 소모되지만 남룡은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그 어려운 길을 가기로 작심했다. 회사는 이런 경영모식을 통해 점차 시장경쟁에서 입지를 굳히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불과 3년 사이에 국내 탕약기시장 점유률 1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창출했다. 

                                       북경동화원의료설비유한회사 동사장 남룡
                                       북경동화원의료설비유한회사 동사장 남룡

    지난 2000년에 동화원의료설비유한회사가 설립되고 ‘동화원’ 브랜드가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면서 같은 해에 동화원은 북경시 중관촌 하이테크산업개발구 창평원에 2만 평방메터의 새 부지를 매입하고 2년 후에 그곳으로 이전해갔다.

    그때 국내 탕약기시장의 경우 국산제에 수입제 설비들이 엇섞여 류통되는 난장판이었고 병원, 약방들에서 중약을 달이는 표준도 나름 달랐다. 이런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규범화에 대해 고민하게 되였다. 동화원은 국가중의약관리국의 위탁을 받고 관련 기능을 겸비한 약탕기 연구개발에 나섰으며 반년간의 노력 끝에 ‘10대기능탕약기(十功能自动煎药机)’독자연구 개발에 성공했다. 국가 관련부문에 전매특허를 신청한 이 제품의 연구개발은 국내 탕약기산업의 획기적인 이변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는 이어 동화원과 손잡고 국내 모든 중의원 산하 탕약관리규범화에 발 벗고 나섰다. 규범화 시행 중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바로 국내 모든 중의원 산하 탕약관에서 ‘10대기능약탕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로 하여 동화원은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신제품을 전국에 파격적으로 보급하는 판매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이어서 동화원은 연구개발에 많은 정력을 몰부었다. 지난 1998년에 회사는 연구개발부서를 설립하고 탕약기 국산화 연구개발에 나섰으며 2년 후에 독자적인 지적재산권을 소유한 중약탕약기연구개발에 성공했다. 이어 여러 가지 유형의 중약탕약기를 잇달아 개발해냈으며 기술력 면에서 경쟁회사들을 멀찌감치 떨구어 놓고 앞서 가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 내놓은 혁신기술인 ‘탕약제조센터(煎药中心)’는 현재 동화원의 효자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탕약제조센터’가 설립되기 전에는 병원이나 약방에서 자체로 탕약기를 구입하고 약을 달여 가지고 환자들에게 공급해주었다. 병원에서 상기 봉사를 제공해주려면 우선 의료일군 수십 명을 채용해야 했고 탕약관도 별도로 갖추어야 했다. 대형병원이나 약방의 경우 흔히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음으로 토지자원이 원래부터 긴장한데 탕약방까지 갖추자니 사무공간이 긴장하고 또 인원관리까지 해야 했으므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화원은 제3자봉사 즉 제약공장에서 ‘탕약제조센터’를 설립하고 관련 봉사를 제공해주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떼면 인터넷으로 ‘탕약제조센터’에 전달되고 ‘탕약제조센터’에서는 처방에 따라 약을 달여서 물류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에게 직접 배송해주었다. 이에 사용되는 관련 소프트웨어는 동화원에서 10년 남짓이 개발해 온 독자기술로 그동안 기능이 륙속 보강되어 현재 병원, ‘탕약제조센터’, 환자 모두의 환영을 받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또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탕약지능화조제시스템(中药饮片智能调剂系统)’을 연구개발하여 탕약조제과정의 무인화를 실현했다. 지금은 중약재들이 벨트에 실려 자동으로 지정 위치에 운송되고 달여지는데 이 기술의 연구개발로 하여 중약재조제과정의 인공지능화를 실현하였다. 이는 중의학의 일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원은 근 30년간의 꾸준한 노력으로 현재 전국에 30개 지사 및 판사처를 갖고 있으며 국내 약탕기령역의 룡두기업 및 서의의료설비영역의 유명기업으로 성장했다.

    동화원에서 서의의료기기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건강 중국 2020년계획’의 출범하면서 건강산업에 대한 국가차원의 투자가 많이 보강되었으며 관련 의료기기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도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화원은 중의체질식별기, 동맥경화측정기, 전자동혈압기, 인체성분분석기, 골밀도측정기, 정신압력측정기 등 건강관리제품을 잇달아 시장에 내놓았으며 이런 건강관리제품들을 집대성한 ‘건강의집(健康小屋)’프로젝트도 출시했다.

   ‘건강의집’에서 사용자들은 관련 의료기기에서 검측한 수치들을 핸드폰에 련결하여 수시로 건강을 체크할 수 있다. ‘건강의집’은 사회구역, 양로원, 기관, 기업 등에서 환영을 받고 있으며 개개인의 건강을 관리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감당해 오고 있다.

   ‘동화원’ 브랜드는 탄생되어서부터 현재까지 줄곧 성장 일로를 거듭해왔으며 브랜드 인지도도 업계 1위를 확보하고 있다. 

                                                          남룡 가족 (셋째)
                                                          남룡 가족 (셋째)

    동화원은 지난 2005년에 ISO9001 및 ISO13485 품질체계 인증을 통과했으며 제품 품질, 안전과 봉사가 유럽표준에 도달했다. 2006년에는 ‘수도민영기업자주혁신 40대기업’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중관촌국가혁신기술시범구혁신형시점기업’으로 평의됐다. 2012년에는 중국을 대표하여 ‘중약탕약기’국제표준 시안을 제기했고 그 시안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표결 통과되었다. 2013년에는 중관촌국가자주혁신시범구 신기술(봉사) 증서를 획득하고 2015년에는 북경시 공상행정관리국으로부터 북경시 유명상표로 평의됐다. 2016년에는 국가공업과 정보화부에서 발급한 ‘인터넷혁신해결방안상’ 및 ‘북경시과학기술상’을 수상했으며 길림동화원프로젝트가 가동됐다. 2017년 ‘중국우수기술’ 2등상과 ‘생산력촉진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동화원에서 최초로 연구개발한 ‘전자동탕약조제생산라인’이 ‘2018년도 정부구입 중관촌 신기술 신제품 첫 중점기술장비 시범대상’으로 선정됐다. 이와 동시에 지능약탕기가 ‘2019년 중관촌 2대혁신신기술신제품’으로 평의됐으며 동화원 창주분공장이 생산에 투입되였다.

    동화원은 2021년에 회사 설립 30주년을 맞이했다. 동화원은 이 기회에 향후 백년기업을 지향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꿈을 무르익히고 있다. 

    한편 동화원은 선후로 국가고신기술기업, 국가불꽃계획 중점고신기술기업으로 선정되었고 중국 탕약기설비와 건강체험설비 주류공급상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으며 연구개발, 생산, 판매가 일체화 된 종합성 의료설비기업으로 널리 알려졌다.

    현재 남용은 중앙민족대학 객좌교수, 중국조선족사학회 운영위원회 리사장, 세계중약학회 중약탕약기국제연맹 회장, 북경조선족기업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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