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诗 분과 [제30호]

 

침묵


낱낱의 毫가 입을 열면
수천 년 역사는
그대로
발가벗기울 것이다

-신현산-

 


 

<시작노트>

신현산 시인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 길림시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작품집으로 시조집 《성에꽃》, 《신현산서예작품집》 등이 있다.
신현산 시인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 길림시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작품집으로 시조집 《성에꽃》, 《신현산서예작품집》 등이 있다.

현대적인 서사도구가 나오기 전까지의 모든 기록은 붓이라는 특수 도구를 사용하여 문헌을 남겼었다.

여기서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나타낼 뿐이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권에서 역사기록이 붓이란 매개물로 남겨지고 전해져서 오늘에 이른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통치자의 뜻에 따라 씌여진 것이 역사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어느 날 그 진면모를 밝히려는 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흘러간 지난 세월의 모든 실상이 낱낱이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저 毫들이 입을 여는 날이 그날일 것이다. 

 


 

<평설>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일전에 <작은 누각에 동풍이 불다(小楼又东风)>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또 전에는 <묻노니 그대의 근심은 얼마더냐(问君能有几多愁)>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었고, 오래전인 1947년에는 <봄물은 동으로 흐른다(一江春水向东流)>란 제목의 영화가 제작 상영되였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모두 이욱(李煜)이 지은 사(词) <우미인(虞美人)>에서 따온 것이다.

 

<우미인>은 도대체 어떤 작품인가? 원문 전문을 보기로 하자.

 

春花秋月何时了,往事知多少?小楼昨夜又东风,故国不堪回首月明中。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뜨는 달은 어느 날이 끝일까, 지난 일들 어찌 잊을 있으랴? 어젯밤 작은 누각에는 동풍이 불었나니, 밝은 달빛 속에서도 차마 고국을 바라볼 수조차 없구나.)

雕阑玉砌应犹在,只是朱颜改。问君能有几多愁?恰似一江春水向东流。

(금릉성의 정교하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난간과 옥돌 계단은 여전하련만, 그곳에 살던 미인의 홍안은 찾을 없어라. 묻노니 그대의 근심은 얼마더냐, 마치 봄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라.)

 

이욱(937-978)은 중국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로서 이후주(李后主)라고 불리운다. 급박한 정치형세에 대책을 못 세우고 주연(酒宴)에 빠져 국가 멸망을 초래했지만 음률에 정통하고 사의 작자로 유명하다. <우미인>은 이욱의 나라가 망하기 전의 유미적(唯美的)이고 향락적인 경향의 작품[대표작 <옥루춘(玉楼春)>]들과는 확연히 대조를 이뤄 망국 이후의 침울함을 토로한 주정적(主情的) 경향의 작품으로 구별된다. 여기에는 <파진자(破阵子)>도 포함된다. 자료에 근거하면 송태종이 이욱이 지은 고국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은 <우미인>을 보고 사약을 내려 이욱은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역사보다 진실하다”고 말하였다. 만약 이욱이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과 발달된 언어적 감각으로 사를 창작하여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통치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여 국가의 멸망을 초래하고 송나라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한 무능한 군주로밖에 평가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욱은 행운아인 셈이다. 이욱이 중국 문학사에서 남긴 성과를 저명한 학자 왕국유(王国维) “술집이나 기방, 궁정에서 가기(歌妓)나 무녀, 궁녀들 속에서만 유행하던 가사를 사대부들이 범상치 않은 경력과 감회를 토로하고 우국의 정서를 표현하는 높이에로 끌어올렸다(始变伶工之词而为士大夫之词)”고 높이 평가했다. 이는 고대 시와 사가 여년의 발전을 거쳐 오늘의 현대시가에 이르기까지 이욱이 누구도 대체할 없는 거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조선족 문단에서 디카시의 현주소는 총체적으로 생활문학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고급예술의 높이에로 끌어 올릴 중책이 우리 앞에 놓인 현황은 이욱이 사를 짓기 전에 사가 처해 있던 처지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 “이욱”의 사례를 중국의 시나 사의 작법에 배울 점이 있어 것을 디카시 창작에 활용하여 디카시의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시의 생명력은 남다른 것이다.

 

영상 언술 시작노트를 보면 디카시 <침묵>은 역사, 문학, 철학, 서예 다각도로 근접하여 해석할 있는 스케일이 방대한 작품이다. 필자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필통에도 붓이 꽂혀 있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눈길도 가고 혹시 눈이 가더라도 무덤덤하였다. 근데 디카시 <침묵>의 영상 붓은 “저/ 낱낱의 毫 입을 열면/ 수천 역사는/ 그대로/ 발가벗기울 것이다”란 언술과 결합되어 시대를 속속들이 목격한 수천수만의 견증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경외심이 들기까지 한다.

 

오늘의 평설은 “침묵”을 디카시라는 문학장르로 바라보며 문학적인 각도에 살짝 비켜서 접근해 봤다. 현대적인 서사도구가 나오기 전까지의 모든 기록은 붓이었다는 것, 문학작품도 붓으로 서사되어 후세에 남겨졌다는 것, 붓이라는 “입”을 통해 내심의 독백을 사로 토로한 이욱이라는 인물에 대해 보다 전면적으로 진실하게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먼저 시를 보고 시의 작자를 실제로 만나보면 “그럼 그렇지바로 사람이지”라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만큼 시라는 장르는 지극히 작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장르로서 객관의 시선에서 사람을 직시할 있는 장르라고 말할 있다. 디카시는 현장성이 강한 장르로서 기록의 의미가 다분하다. 우리도 매 편의 디카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붓은 중국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서예, 시조, 문자시, 디카시 다방면으로 조예가 깊은 시인만이 써낼 있을 한, 붓을 피사체로 디카시 <침묵>을 통해 “이욱”이란 코드를 가지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중국 문학사에 접근하면서 풍운의 시대와 시대를 살았던 선인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데 대하여 무한한 행운을 느낀다.

 

_ 이준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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