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문학 13호 우수상 수상작

현동화 약력: 흑룡강성 수화시 출생, 북경 상해 광주에서 10여 년 간 여행업 종사. 2009년 한국으로 이주. 현재 화장품 유통업에 종사. 연변일보, 중국조선어방송넷, 해외문학, 대전중구문학 등에 수필 다수 발표
현동화 약력: 흑룡강성 수화시 출생, 북경 상해 광주에서 10여 년 간 여행업 종사. 2009년 한국으로 이주. 현재 화장품 유통업에 종사. 연변일보, 중국조선어방송넷, 해외문학, 대전중구문학 등에 수필 다수 발표

“언니, 코로나 기간이라 많이 힘들지? 장사도 안되고 애들 키우느라 돈도 많이 들고….”
“응, 이게 언제 끝이 나려나….”
이틀 전에 동생 경아가 이렇게 물어본 거 같은데 오늘도 경아는 또 똑같은 말을 한다. 친정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수아는 바다 건너 멀리에 있는 동생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수심의 늪이 이미 자신의 무릎 위까지 슬몃슬몃 차올라 차츰 조급해지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 먼 일 생겼어?”
“아니, 혹시 요즘 언니가 엄마가 엄마 돈 가져가는가 해서….”
수아는 침묵했고 동생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한참을 있다가 다시 문자를 입력하고 있다.
“언니가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언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럼 혹시 언니한테도 엄마가 돈을 빌렸어? 나한테도 가져갔는데, 우리 집에 뭔가 큰일이 일어나는 거 같아.”

경아는 수아의 예쁘고 착한 동생이다. 어렸을 적 경아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늘 책장 앞에 앉아서 《삼국지》, 《수호전》,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 같은 책들을 보고 또 보았다. 수아는 경아와 아버지가 그들만의 심오하고 즐거운 학문의 세계로 이동하여 기품 있게 난해한 것들을 분석할 때면 왜 저리도 재미없는 얘기들을 할까 생각하다가도 아버지의 눈총이 무서워 한마디라도 끼어들어야 했기에 경아만 보면 머리부터 아파졌다.
수아는 그런 책들보다는 ‘대림과 소림’이란 책을 더 좋아했다. 악어 아가씨가 구두 신은 신사를 좋아해서 하루에 몇백 번 거울을 보며 분을 370몇 번 발랐던 걸 생각하면 너무나 웃겨서 사촌동생들한테 얘기해주곤 했다.
사고 치고 욕 먹기를 반복하는 수아와는 정반대로 경아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공부도 잘하여 고등학교도 수석으로 입학하여 부모님의 얼굴을 번쩍번쩍 빛나게 해드렸다.

경아한테 결점이 하나 있다면 마음이 너무 착하다는 것이다. 톡톡 쏘며 바른말을 잘하는 수아와는 달리 경아는 조용한 성격대로 참고 침착하게 일들을 해결해 나갔다. 
그런 동생이기에 오늘도 언니한테 조심스레 말을 꺼냈겠는데 막상 언니 수아의 반응은 예전의 성격과는 다르게 너무나 조용했다.
“내가 돈 안 가져왔어, 그리고 난 비밀을 지킨다고 엄마와 한 약속이 있어서 상세한 건 더 말 못 해. 걱정 마! 엄마는 거짓말 절대 안 해. 급하게 해결할 일이 있다고는 했어.”
자매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수아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에는 아직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코로나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엉망이 된 경제도, 우울한 기분도 바이러스로 힘든 이 세상에선 한없이 이어지는 내리막길들 뿐이었다.
사실 수아가 엄마네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 당시 이미 너무나도 큰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부터 수아는 친구 진주의 소개로 코인을 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들보다는 상장하지 않은 코인이나 주식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들이기 시작했다.

수아는 성공에 대한 야망이나 돈에 대한 탐욕이 별로 없다.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귀찮아서 모든 걸 대충 하고 편하게 사는 건 그녀의 유일한 자랑이자 낙이었다. 이십대 때 사회에 첫 발자국을 내디디던 그때 수아는 좀 쉽게 돈을 많이 벌어서였는지 벌어들이는 돈의 반은 옷과 가방을 사는데 다 써버리고 말았다. 사실 수아가 그렇게 살게 된 데는 물질적인 향락에만 함몰되어버린 것보다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수아가 첫 직장으로 여행업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수아의 아버지는 병이 위중해져 더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수아는 부모님과 막냇동생을 자신이 살고 있던 ㅂ시로 모셔왔다.
대학시험을 앞두고 있던 경아를 혼자 고향에 두고 ㅂ시로 올라온 부모님은 선천적인 병을 앓고 있는 남동생의 병 치료 때문에 진 빚들을 수아가 한 번에 청산해 주어 시름은 덜었지만 동생들의 학비와 식구들의 생활비가 수아의 조그마한 두 어깨를 짓누르는 게 애처로와서 민박을 시작했다.

그 덕으로 생활비와 동생의 약값에 보탤 일정한 수입은 문제없었지만 여기저기에서 꿔가기만 하고 돌려오지 않는 돈들, 또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비용들이 수아한테서 나가야 했기에 안 그래도 씀씀이가 헤픈 수아의 통장은 두둑해질 날이 한번도 없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나갈 일 천지라 전혀 돈을 모을 수가 없었던 그때의 상황 때문이었는지 그 후 수아는 돈 모으는 걸 아예 포기해버렸다.
십여 년간 종사하던 여행업을 그만두고 결혼과 출산을 거쳐 애 둘을 기르는 동안 남편의 사업도 흥했다 망했다를 반복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십여 년 동안 수아의 통장 잔고는 도통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드디어 뭔가 슬슬 풀리려는 느낌이 왔다. 그녀는 친구 진주의 소개로 몇 가지 코인을 사놓고 몇 년 후면 대박 난다는 희망으로 부풀어 게임 코인도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 코인 놀이가 한창 성행할 때 피투피게임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겼다 사라졌다 했다. 온 세상이 그런 뉴스들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수아는 자신이 시작한 게임은 시중에 있던 것과는 다른 코인으로 뒷받침되는 보장성이 있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피투피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몰랐던 진주와 귀가 항아리만큼이나 넓은 수아는 설명회의 설명을 대충 듣고 투자를 시작했다.

그동안 다니던 화장품 매장을 그만두고 수입이 없었던 수아는 수중에 모아놓았던 돈으로 아직 상장하지 않은 코인과 주식을 더 사놓고 남은 90만 원을 털어서 “벗”이라는 게임의 첫번째 “우정”을 샀다.
“벗”에는 삼 일 동안 진행되는 우정, 친구, 감사라는 캐릭터가 있었는데 삼 일 동안 사기만 하고 기다리다가 4일째 되는 날부터 그 수익금을 받으며 다시 사고 팔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하다 보니 90만으로 시작한 돈이 몇 백이 되어 있었다. 회사는 번 돈으로 코인이 채굴되는 채굴기를 사게끔 유도했다.
다음 달 첫날부터 수아는 천만 원을 넣어서 “우정”을 샀다. 돈은 남편이 거래처 공장의 물건값을 주기로 한 기일이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는 걸 알고 먼저 2천만 원을 빌렸다. 
“여보, 일주일 후에 꼭 줄 수 있는 거지? 당신도 알잖아, 난 절대 물건값은 미루지 않는다는 거.”

자그마한 사업을 하는 남편은 주관이 강하고 성격이 깐깐하고 정확했다. 거창한 이념보다는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건실한 생활인이다. 그녀의 남편은 엄청 정의롭다거나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구하는 의협심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경찰서에 신고전화를 하곤 했다.
수아는 그 후 일주일 동안 2천만 원을 굴렸고 돈은 전보다 훨씬 빨리 불어났다. 이건 진짜 기가 막힌 게임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수아는 화장품 매장을 맡아서 관리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4년이란 시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손에 남은 건 한 달에 고작 300여만 원의 수입 뿐이었다. 그 외 위챗으로 이것저것 팔며 분주하게 돌아쳤어도 매달 150만 좌우의 남편 몰래 숨겨둔 수입이 추가로 있었기에 수아는 그런 생활에도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했었다. 돈이 돈을 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론은 알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들어오는 돈을 만져보니 왜 이제야 이런 것들을 접했나 싶게 정보가 늦은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남은 몇백만 원으로 돌리던 게임은 너무나 재미 없어졌다. 그래서 수아는 남편을 졸라서 3천만 원을 더 돌렸다. 또 2천만, 3천만, 수아는 남편한테 손 내미는 날이 점점 많아졌지만 아이들의 새 핸드폰, 컴퓨터등 필요한 물건들은 요구하는 즉시 바로 바꿔줄 수가 있었다.

그녀는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이제 몇 달 만 지나면 월 일억을 벌수 있으니 빨리 모아서 그때가 되면 부모님께 집도 한 채 사드릴 수 있고 동생한테 고급 외제차를 뽑아 주고 딸은 유학 보내고 아들은 국제 학교로 전학시키고… 매일 쌓는 달걀 낟가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수아는 드디어 남편의 돈을 돌리지 않아도 몇천만 원의 돈을 굴리며 캐릭터를 사고팔 수가 있게 되었다. 정보방의 유익한 정보대로 잘 따라 했더니 돈은 매일 눈덩이처럼 잘도 불어나고 있었다.
사실 수아는 최근 한 달 동안 엄마의 연락을 꾸준하게 받았다. 약속을 중히 여기는 수아네 집 사람들은 본인이 오해받는 일이 있을지언정 그 약속은 지키고 싶어했다.
그래서 며칠 전 경아가 물어봤을 때 수아는 지난 한 달 넘게 돈이 급하다는 엄마한테 몇 번을 걸쳐 돈을 입금한 적이 있었지만 꼭 둘만의 비밀로 하자는 엄마와의 그 약속 때문에 경아한테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엄마한테서 또 문자가 왔다.
“갑자기 돈이 필요한데 230만 보내줄 수 있니? 돈이 들어오면 바로 줄게.”
“근데 엄마, 저번도 그렇고 일주일 전에도 230만, 삼일전에도 백만, 오늘도 또 230만? 엄마 어디 아파? 혹시 우리한테 말 못 할 병에 걸렸어요?”
성격이 급한 수아는 총알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 일 때문에 돈을 좀 꿨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적어져서 그걸 무느라고.”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지금 하던 일 끝나면 십 분 후 바로 입금할게요.”
수아와 엄마의 대화는 늘 간단했다. 이십 대 초반 부모님을 ㅂ시로 모시고 오던 때부터 쭉 그랬다. 덤벙대는 수아이지만 사실 예리하고 또 민감했다.
맏이라는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수아는 항상 “우리 수아는 강하고 긍정적이야!”라는 칭찬을 듣고 자랐기에 또 그러길 희망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대범한 척, 강한 척하고 다녔다. 하지만 사실 수아는 자신의 내면에 그와 다른 성격이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번 예민하고 쪼잔하고 부정적인 그런 다른 하나의 자아가 머리를 삐죽이 내밀 때면 도돌이표 찍기처럼 억지로 그 예감을 망치로 두드려 넣느라 그녀는 너무 힘이 들었다.

수아는 엄마가 미안해하는 걸 제일 겁냈다. 딸한테 돈을 달라고 할 때 당당해야 할 텐데 엄마는 늘 미안해했다. 십여 년 전 수아가 돈이 급할 때 엄마가 해결해 준 돈들도 있고 가족끼리는 네것 내것 없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엄마나 수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것도 마음일 뿐이어서 많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십 대 초반 때 돈이 필요하다면 바로 꺼내서 드릴 수 있었던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후 결혼하여 애 낳고 멀리 서울에 떨어져 살면서 사는 게 힘들어서 크게 보탬에 되지 못했는데 이 한 달은 엄마가 급하다고 하면 바로 몇 분 안으로 해결해 드릴 수가 있어서 수아는 다시 행복해졌다.

수아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요. 나 이제 운이 다시 돌아온 거 같아요. 이제 곧 엄마 아빠 잘 살게 해드릴 테니까!”
돈을 보낸 수아도 엄마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에게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아가 말한 것처럼 큰일은 절대 아닐 거라고 수아는 생각했다. 보라, 지금 엄마가 저렇게 기분 좋아하고 있잖아?
진주한테서 요즘 조심하자는 문자가 왔다. 어떤 유저들은 페널티로 계정이 닫혀버려서 그 안의 캐릭터를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정보가 공유되었다는 것이다.
수아는 엄마한테 보낸 돈을 빨리 벌어들이려고 좀만 더 하고 돈을 회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주가 우려하던 일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회사는 어떤 무리가 돈 3천억을 먹튀했다며 곧 계정을 잠궈버렸다.

수아는 당황했다. 안에 캐릭터의 값이 도합 7천만 원이 넘어갔고 전날 남편한데 급하게 빌린 1200만도 함께 잠겨버린 것이다.
진주는 더 당황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목이 다 쉬였다. 안절부절못하는 수아에게 진주는 1200만 원을 보내왔다.
“회사에서 해결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 얼른 먼저 남편한테 빌린 돈이나 갚아.”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단톡방은 시끄럽기만 했고 회사는 일 해결하는 여러 방안을 내놓다가 마지막엔 안에 캐릭터들을 채굴기로 바꾸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새로운 채굴기는 850만 원이란 높은 가격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수아와 진주는 안에 캐릭터를 좀 남겨두고 채굴기 다섯 대씩 바꿔놓았다. 그리고 하루빨리 다시 매칭이 시작되어 회복되길 빌고 또 빌었다.
“언니!”
위챗으로 음성통화가 걸려왔다. 항상 차분한 경아였지만 이날은 떨리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뗐다.
“언니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엄마가 사기당한 거 같아, 나 지금 정아랑 같이 엄마 모시고 파출소로 가려고!”
“왜? 누구한테 사기당했어? 뭘 얼마나? 도대체 뭔 일이야?”

정아는 수아네 사촌 여동생이다. 사촌동생까지 동원한 걸 보면 아마도 뭔가 큰일이 터진 것 같다.
그러잖아도 요즘 돈을 회수하지 못한 수아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늘 가슴이 콩닥콩닥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경아의 전화는 길었다. 경아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어떤 사람에게 며칠에 한번씩 돈을 사기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액수는 이미 그녀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언니, 엄마와의 약속은 엄마만 해치게 돼, 엄마한테 혹시 돈을 보냈다면 그 돈 액수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어?”
경아의 말에 수아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한 달 넘게 대략 열댓 번 보냈는데 엄마는 꾼다고 물어준다고 했지만 난 그냥 드리는 거라고 했어. 급해 보여서.”
“근데 엄마가 나한테도 그렇게 그냥 가져가고 정아한테서는 더 많이 가져간 거야. 아직은 잘 모르지만 이모네랑 다른 곳에도 아마 더 있을 거야! 지금 우리가 알아낸 것만으로도 50만 원은 훨씬 넘어 보여!”
“중국 돈으로 50만?”
수아는 헉하고 숨이 멎는 듯했다. 엄마가 왜 그 많은 돈을?

장사도 잘하고 인정이 많은 수아의 엄마는 ㄱ시로 이사간후 돈도 잘 벌었고 그 돈으로 비싼 동네에 집도 사놓았다. 수아가 생각하는 엄마는 일처리가 정확하고 신용을 중요시하며 기부도 하고 힘든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 항상 존중받는 분이셨다. 수아의 엄마한테는 한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집을 세 채 장만하는 거였다. 수아네 세 남매에게 집을 한 채씩 주는 것이 엄마의 꿈인데 가끔 그 생각이 너무 강하여 돈이 될만한 사업엔 서슴지 않고 무모한 투자를 감행하고 싶어 하는 게 문제였다.
수아는 그날 하루 종일 경아의 전화를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사촌동생 정아한테 문자를 해보니 정아는 저러다 경아가 잘못될 것 같다고 아우성을 쳤다. 알고 보니 엄마는 이제 며칠이 지나면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신고는 죽어도 못한다고 죽치고 앉아있는단다. 경아는 그런 엄마를 설득 시키지 못한 채 역시 대치상태에 있는단다.
정아는 저녁에 집으로 먼저 돌아가고 열 시간을 파출소 앞에 앉아있던 엄마와 경아도 나중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경찰들은 본인이 신고를 안 하면 접수할 방법이 없다면서 그들을 외면하고 있었다고 한다.

수아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멍하니 앉아있을 엄마와 넋을 놓을 경아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갑자기 바늘로 찌르듯이 아파서 손으로 움켜쥐고 말았다.
수아는 다 본인 탓이라 생각되었다. 맏이 구실도 못하고 이렇게 멀리 와서 살다 보니 집에 일이 생겨도 갈 수가 없었고 지금은 코로나 시기어서 한번 중국으로 가려면 티켓 구하기도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겠지만 거의 한 달간의 격리를 거쳐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아는 경아의 말과 전에 엄마가 한 말을 조금 들은 걸 통합해 보면서 대충 이 일의 전체 윤곽을 짐작해낼 수 있었다. 
저녁에 다시 경아와 통화를 하면서 수아는 엄마가 더 걱정되었다. 타인에 대한 심한 배려심으로 온 세상을 감싸 안고 모두를 자신처럼 믿어주는 엄마의 변함없는 성격은 점점 변해버린 부조리한 세상에서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독이 되어버렸다. 수아는 강인한 성격의 엄마가 사기라는 걸 알고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실 가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
수아와 경아는 이젠 엄마가 더는 돈을 주지 않을 거라 굳게 믿기로 하였다. 심장 지병이 있는 아버지는 이 일을 모르고 집에 빚이 3만 원 정도만 있는 줄로 아시고 있는데 이 일을 알면 기함을 할 것이다. 아버지한테는 절대로 이 일을 말할 수가 없었다.
며칠의 소통 끝에 수아와 경아는 그 사건의 발단이 어떻게 교묘하게 시작됐든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 사기당했든, 그 모든 건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으니 엄마가 신고를 안 한다면 그냥 묻고 가자고 결정을 내렸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엄한 교육 밑에서 자란 수아와 경아는 엄마가 한번 아니라면 더 이상 쟁론을 안한다. 더 생각 안 하는 게 건강에 훨씬 더 이로우니 그 돈으로 건강을 샀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잊고 이쯤에서 끝나기를 기도했다.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아수라장이 된 지금 두 자매는 부모님이 몸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서로를 위안했다.
경아는 정 급하면 집을 팔면 된다고 생각했고 수아는 이제 한 달후 매칭이 다시 시작되면 그 55만쯤이야 단숨에 갚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둘은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달이 지나서 드디어 수아가 기다리던 매칭이 다시 시작되었다. 새로운 방식은 유저들에게 더 불리하게 설계되었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찾을 돈으로 바꾼 다섯대의 채굴기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잠겼다.
채굴기 받기 전까지 매칭에 계속 참석해야 받을 수 있다는 규정 아래 수아는 남편이 준 천만 원 외에 딸아이의 대학 학비로 따로 부어놓았던 적금까지 깨서 다 밀어 넣었지만 채굴기 외 안에 6천만 원으로 된 돈까지 모두 다 찾으려던 수아와 진주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수아는 너무도 허탈했다. 딸아이의 학비도 걱정이 되었다. 진주가 먼저 대준 1200만 원은 그전에 같이 사놓고 묻어놓은 코인 가격이 오르면 물어주기로 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안 그래도 사업이 잘 안되어 2년 동안 직원들 월급과 사무실 비용, 물건값 등에 일억 가까이 손해를 본 남편은 도저히 마주할 면목이 없었다. 수아는 속이 쓰려서 밥맛까지 완전히 잃어버렸다.
삶의 리듬이 깨지기 시작한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갔고 남편이 걱정하던 그녀의 우울 강도는 더 높아져만 갔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자경이가 수아를 위로해 주었다. 수아에겐 자경이를 제외하고도 진주 그리고 어릴 적부터 친구인 서로 수천만 원씩 오가며 바쁜 몫을 막아주는 연우, 홍콩 영화배우 짱민을 닮은 예쁜 유정이 이렇게 네 명의 절친이 있다. 이 세 친구가 못하는 술을 유정이는 특히 잘한다. 맥주밖에 못 마시는 수아지만 속이 문드러질 때는 유정이를 찾아간다. 술기운을 빌어 큰소리로 온갖 스트레스를 풀며 몇 시간씩 떠들어 될 때가 많았다. 묵묵히 그 스트레스들을 다 들어주는 유정이는 늘 수아를 토닥였다.
“넌 그래도 너무 잘하고 있는 거야. 이제 그게 다 복으로 돌아온다니까.”
그러면서 유정이는 자신도 누구에게도 못한 속심 얘기를 수아한테만 한다.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며 예쁘게 활짝 웃는다. 
“넌 친구가 많아서 좋겠다. 난 너밖에 없는데도 이렇게 좋은데!”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찍힌 번호를 보니 바로 식당을 하는 유정이의 번호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되는 유정이와 수아는 못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엄마 일과 자신의 일 때문에 우울했던 수아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유정이가 더 속상해할까 봐 한동안을 속심 얘기도 못하고 그녀와 통화를 못한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응, 유정아.”
“여보세요?”
익숙한 유정이 남편의 석쉼한 목소리에 수아는 왠지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유정이 남편이 왜 전화를 할까?
“유정이는? 먼일 생겼어?”
코로나 때문에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인 수아의 남편은 두달 전에 발을 접질렸는데 발 옆쪽 뼈가 골절이 되어 병원에 가서 깁스하고 집에서 조리하고 있었다. 엄마가 사기당한 일,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거의 망한 자신의 일 때문에 수아는 이젠 더 이상 그 어떤 나쁜 소식도 듣고 싶지가 않았다. 안 좋은 일들이 떼를 지어서 찾아오는 것이 수아는 너무 무서웠다.
“저기... 나쁜 소식이 있어.”
한국어를 잘 못하는 유정이의 남편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왜? 유정이가 또 아파? 병원에 입원했어?”
“아니, 유정이가 새벽에 다른 세상으로 갔어… 유정이 타 조으러…”
“…!”
아득한 먼 곳에서 땡- 하고 둔탁한 종이 울린다. 수아는 핸드폰을 떨구고 말았다. 옆에 있던 남편은 무너지는 수아를 부축하면서 한 손으로 떨어진 핸드폰을 들었다. 유정이의 남편은 울먹이면서 수아의 남편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수아는 한참 동안 막혔던 숨을 겨우 몰아쉬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하늘땅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아도 그대로 따라 무너져버렸다.

장례식은 식구들끼리만 조촐하게 치러졌다. 꽃같이 아름다운 친구 하나가 소리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사인은 이른 새벽의 심정지라고만 들었다. 병이라고 할만한 큰 병도 없던 유정이가 갑자기 숨이 멎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지만 수아는 슬픔을 꾹꾹 눌러 담고 영정 앞에서 절을 올렸다. 젊은 사람이 갔을 때엔 크게 울면 안 좋다는 유정이 시댁 식구들의 뜻대로 수아네 일행은 처음에는 참지 못하고 통곡을 터뜨렸지만 그 후에는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느라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있기만 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유정이를 차례로 보내고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유정이의 언니는 코로나 때문에 중국에서 오지도 못하고 수아와의 통화에서 그냥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유정이의 장례식이 끝난지도 며칠이 되었지만 수아는 집에 들어박혀 누워있거나 앉아있기만 했다. 슬픔이 거센 폭풍우처럼 휩쓸고 지나간 수아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 되어버렸다. 잠도 못 자고 밥도 하지 못했고 아들이 배고파해도 미처 챙겨줄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사와서 먹는 아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힘든 유정이를 옆에서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은 수아를 너무나 힘들게 했고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 세상을 버리고 총망히 가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수아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누워있던 수아는 드디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품고 있지만 내가 어쩌지도 못했던 허무함, 무기력과 힘겹게 싸우던 수아는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자신을 이겨나가고 있었다. 영원히 뿌옇게 흐려있을 줄 만 알았던 하늘은 점점 푸른 하늘로 되돌아오고 있었고 몇십 번, 몇백 번의 되새김 속에서 유정이의 슬픈 얼굴은 차츰 웃음 짓는 얼굴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수아는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라도 노력하고 있는 자신이 비참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억지로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어 넣었고 음식이 옆으로 밀려나와도, 헛구역질을 해도 상관하지 않고 먹는 행위를 계속했다.
그 후 그녀는 남편이 이끄는 대로 여행도 다니고 애들이 이끄는 대로 청계천 산책도 다녀왔다. 자경이에게선 매일 전화가 왔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별말 없이 묵묵히 핸드폰만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경이는 수아에게 “난 늘 너 옆에 있어”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억지로 입에 밀어 넣어도 잘 들어가지 않던 밥은 언제부터였는지 서서히 씹히기 시작했다. 써걱써걱 모래 씹는 것보다 힘들었던 반찬의 짜고 신맛이 느껴질 때 수아는 흐흑 흐느끼고 말았다. 혼자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유정이한테 미안했지만 그러는 수아를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친구들이 꼭 잡아주고 있는 힘을 다하여 끌어당기고 있었다.
“언니.”
또 경아다. 이젠 동생이 아니라 그 누가 불러도 수아는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핸드폰 소리도 무서워져서 무음으로 해놓고 있다가 애들이 집에 있을 때는 반나절씩 꺼놓고 있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경아가 부를 때에는 꼭 또 무슨 일이 일어나서일 것이다. 극도로 예민해진 수아와 경아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큰일이 없으면 서로 부르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 같은 것을 해왔으니까.
“또 일 생겼어?”
수아의 심장이 쿵쿵 빨리 뛰기 시작했다.
“빨리 말해! 먼일 생긴 거야?”
“엄마가 아직 사기라고 생각 안 하고 그놈에게 돈을 계속 주고 있어.  이제 우린 빚이 더 늘어났어. 친척들한테 연락해 봤어. 아마 87만 정도가 되는 거 같아.”
경아는 담담히 문자로 말했지만 수아는 동생의 절망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억이 막힌 듯한 갈린 목소리, 만일 경아가 전화로 수아에게 알려줬더라면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그랬을 것이다.
“흐흐 그래.”
수아는 짧게 대답했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고 다시 서로 문자를 입력했다. 경아는 입력하다 지웠고 수아는 그대로 올렸다.
“나 지금 죽고 싶어!”

수아와 경아는 드디어 앓아눕고 말았다.
머리는 깨어질 듯 아프고 하늘땅은 빙빙 돌아가고 한쪽 눈이 시뻘겋게 핏발이 터져버렸다. 수아는 경아도 자신과 똑같이 앓아누웠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젠 집을 팔아야 했다. 자매는 더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한마디 말도 없이 알아서 중단할 거라고 조용히 믿고 기다렸던 것이 또 한번의 더 큰 손해를 불러왔다. 더 이상 희망 같은 건 안 보였다. 마음이 축 처져 땅속으로 잦아들 것만 같은 자매는 아버지한테 사실을 알리고 집을 파는 쪽으로 상의하기로 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수아는 이 일을 동생한테 다 맡겼다.
“아버지께 잘 말씀 드려, 너무 놀라시지 않게….”
수아네 아버지는 경아를 따라서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카페로 들어갔다.
청록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실내에선 진한 커피향이 감돌았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차분한 이 카페는 어제 경아가 한번 와보고 미리 선택해 놓은 곳이다.
“그래, 지금까지 누구 얘기를 한 거야? 설마 우리 집에서 사는 엄마 얘기는 아니겠지?”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말을 꺼내는 경아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다른 사람의 일이었길 바랐을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왼쪽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겨우 물었다.
“우리 엄마 얘기 맞아요.”
아버지는 흐흐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 다리에 맥이 풀렸는지 다시 주저앉았다.
휘청이는 아버지를 신호등까지 바래다준 경아는 그 구부정하고 허약한 뒷모습에 마음이 아려와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한평생 월급 전체를 엄마한테 바치며 살아왔던 아버지가 감당할 수 있는 빚의 액수는 고작 3만 원에서 5만 원이었다. 87만 원… 아버지에겐 그 액수가 상상도 안 가는 천문학적인 숫자였고 당시 아버지는 깊은 심연에 빠진 것처럼 아득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수아는 헛헛한 마음으로 불쌍한 식구들을 생각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그 이튿날 그녀에게는 더 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길 가던 화물차에 뺑소니 사고로 발을 상해 병원에 이송됐다는 것이었다.
경아가 이 소식을 전했을 때 그녀는 응대할 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수화기를 한참 들고 있던 그녀는 아버지의 상황을 묻고 나서 갑자기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쳤다.
“왜? 왜? 왜 하필 우리야?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경아도 수화기 저쪽에서 흐느꼈다. 아버지의 상황은 형편없었다. 두 발이 화물차에 깔려 피가 철철 흐르고 흰 심줄과 뼈가 보일 정도로 구멍이 깊게 난 발을 움직이며 아버지는 집으로 갔다고 한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화물차 기사에게 미안해서라고 했다.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에 가도 시간이 급한 마당에 집에 가고 다시 병원으로 가면서 이미 많은 시간을 소요했기 때문에 수술을 받을 때에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혼수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다섯 시간이나 수술을 받고 그날 깨어나지도 못해 힘들어했다는 아버지는 이튿날 막상 수아와의 통화에서는 목소리가 침착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는 집의 돈은 수아가 가져간 게 아니라 엉뚱한 데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억지로 꾸며낸 듯한 씩씩한 목소리는 아버지의 뜻대로 수아를 좀 마음 놓게 만들었다.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큰 수술이 아니어서 며칠만 있으면 퇴원할 수가 있다고 하셨다.
코로나가 여전히 심했던 ㄱ시는 병원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고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하루 종일 기다린 후 음성 확진서를 가지고 들어가면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며칠이면 퇴원한다던 아버지는 한 달이 거의 돼서야 겨우 퇴원했다.
그때 아버지의 보험은 고향에서 아직 ㄱ시로 옮겨오지 못했기에 아버지는 병원비가 아까워서 작은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병원의 돌팔이 의사는 수술 한 번에 치료될 수가 없었다는 걸 몰랐는지 아니면 일정한 입원비를 뽑아먹기 위해서였는지 한 달이 거의 되어서야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는 수아의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집에 간 아버지는 이미 많은 돈을 쓰고 나왔는지라 집에서 보수적으로 치료하면 나을 거라는 자신만의 판단으로 자식들한테 의사의 소견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퇴원하는 아버지의 발을 본 경아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고 한다. 발은 구멍이 크게 뚫린 채로 있었고 흰 곰팡이와 검은 딱지가 서로 엉켜서 당장 큰 병원에 가서 수술받지 않으면 두 발을 절단하는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상처가 감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아는 집에만 있겠다는 아버지를 억지로 모시고 큰 병원으로 갔다. 상처를 보고 의사는 상을 찌푸리며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했고 간호사는 경아를 따로 불러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두 발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주었다. 이 정도로 심한 감염은 모두 다섯 번의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고 그전에 패혈증이나 2차 감염의 위험도 있을 거라며 수술비를 넉넉히 준비하라고까지 했다.

그날 저녁 경아한테서 아버지의 사진을 받아본 수아는 경악했다. 이제 거의 다 나았다고 해서 나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할 줄은 그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경아가 미처 의사의 말을 전하기도 전에 수아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렇게 될 때까지 왜 그 병원에 있었어? 이런 상처는 발을 지키지 못하거나 심하면 패혈증으로 위험해질 가능성이 커!”
“언니 어떻게 알았어? 의사가 진짜 그렇게 말했는데!”
“아버지는 손에 생명선이 길다고 항상 86세 이상까지 살 거라고 했잖아! 걱정 마라 했잖아!!! 당장 입원해! 당장 수술해 당장!!!”
수아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수아는 즉시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받았다. 이미 분노한 수아는 드디어 폭발해 버렸다. 난생처음 엄마한테 울며불며 소리 질렀다.
“엄마는 아버지가 이렇게 될 때까지 옆에서 왜 가만 있었어요?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겼어야죠! 이러다가 아버지가 잘못될 수도 있단 말이에요! 돈이 뭔데요 돈! 그 잘난 개도 안 먹는 돈! 우린 무엇보다 사는 게 젤 중요해요! 우린 꼭 살아야 한다고요…”
수아는 수화기에 대고 엉엉 울었다. 방에서 공부하던 애들이 뛰쳐나왔고 남편은 옆에서 한숨만 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어대는 수아를 엄마는 조용히 불렀다.
 “곰팡이 같은 건 전엔 없었어, 어제 방금 생긴 거야. 그게 생기기 시작하니 작은 병원에 의사가 겁나서 큰 병원에 가보라는데 아버지가 집으로 간다고 해서 그런 거야. 내일 바로 입원하기로 했으니 걱정 마라.”
이튿날 아버지는 다시 입원을 했다. 의사가 십여만 원을 준비하라 했지만 수아와 경아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처 때문에 이십만 원을 끌어모으느라 수아의 친구 연우까지 불러서 같이 뛰어 다녔다. 수아는 마지막 남은 돈까지 박박 긁어서 경아에게 보냈다. 이제 사기꾼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식구나 주위 사람들의 건강이 제일 중요했다. 수아는 매일밤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수아의 아버지는 그렇게 또 거의 한 달을 더 입원하고 다섯 번의 수술과 이식을 거쳐서야 끝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지루하고 긴 장마가 드디어 끝났다. 맑고 푸른 하늘은 눈물 나게 청량했다. 드디어 코로나도 이제 끝이 좀 보이는 듯했다. 한국에선 몇천 명까지 확진자가 줄었고 해외 입국자의 격리도 없어진지 한참이나 되었다. 경아는 경찰서에 화물차를 신고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물차 기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병원비를 충당할 만큼한 보험 금액이 지불되었고 팔려고 내놓은 집을 사려는 사람도 나졌다. 
부동산에 내놓았던 수아 엄마네 집은 2년 후면 전철이 들어서면 훨씬 집값이 높아질 테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 시기라 급매로 십만 원이나 낮춰 팔았다. 경아는 그 돈으로 빚을 갚고 ㄱ시의 시교 변두리에 좀 싼 집 두 채를 사놓았다고 수아에게 전했다. 막혔던 숨이 그제야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가끔씩 생각나는 유정이와의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울지 않고도 꺼내보게 되었고 일상생활이 회복된 덕에 수아 남편의 회사 적자도 빠르게 수익구조로 상승하고 있었다. 마침 회사 직원 한 분이 결혼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자 수아는 그 자리에 들어가 남편을 돕게 되었다. 그 사이 딸아이는 장학금으로 대학 학비를 해결했고 알바까지 해서 생활비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이날 수아는 “벗”이 아직 그렇다 할만한 소식이 없다 해도 새삼스레 궁금해져서 2년 넘게 묻어두었던 코인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신기하게도 거래소의 많은 코인들이 50%~90% 하락한 지 몇 달 되었는데 오직 지갑 속의 이 코인만은 승승장구해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동안 밑졌던 부분은 충분히 회수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뒤이어 수아는 전에 사놓았던 비상장 주식회사에서 이제 곧 상장하게 되니 주식으로 바꾸는 절차를 밟으라는 안내 문자도 받았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동생 경아도 요즘 장사가 잘 되는지 상쾌한 기분으로 말은 건다.
“언니, 우리 이제 재난이 다 끝난 거야?”
“그럼! 끝났지! 푸시킨의 시가 생각나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고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근데 누가 그러는데, 삶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래. 삶은 고통의 연속이래.”
“글쎄, 그래도 머… 잠깐 쉬어갈 시간은 주겠지 머.”
“그러고 보니 요즘 한 노래가 와닿더라, 가사가 정말 와닿아.”
“하, 니가 어떤 노래 말하는지 알 것 같아.”

긴 고통은 끝이 났지만 이후 어떤 일들이 또 닥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실수 그대로를 용납하고 서로 사랑하는 식구들과 일이 생기면 도와주는 다정한 친구들과, 항상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 지금 이 순간 수아는 행복했다. 산다는 건, 경아가 말한 것처럼 고통의 연속일 수 있지만, 또 그렇다고 잠깐씩 평온과 행복을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녀는 보던 앨범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밥을 짓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가족들과 청계천 산책이나 나가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전에 친정에 전화도 잠깐 해야 한다. 엄마의 생신이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엄마는 요즘 투자 중독에서 벗어나 춤추러 다닌다고 했다. 아버지가 가끔씩 아픈 발을 끌면서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수아의 핸드폰에선 경아가 말했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산다는 건 그런 거래요
힘들고 아픈 날도 많지만
산다는 건 참 좋은 거래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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