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 한정호 제사
                                                      묵인 한정호 제사

 

남의 엄마이면서 우리 엄마상

-<국자가 전설>론

 

리광재

 

1.머리말

   지금까지 접한 많은 인물전기 중 절대부분이 위인전기가 아니면 영웅전기일 것이다. 그만큼 인물전기라고 하면 항상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영웅인물이나 위대한 인물에 관한 평전 혹은 자서전이고, 그리고 이미 출판된 인물평전 관련 도서들 중 또한 이러한 유형의 인물전기 저서들을 손쉽게 접할할 수 있다. <국자가의 전설>은 이와 달리 한 평범한 조선족 어머니의 일생을 전형적 사실들과 상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는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고 있는데, 독자들은 주인공 황정자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 엄마, 우리 엄마’를 연상하게 된다. 이렇게 ‘내 엄마,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내 현재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일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렸을 때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엄마, 잠에서 깬 자식을 웃음으로 맞으며 잔소리로 반겨주는 엄마, 엄동설한 아침에 일어나 솜바지를 아랫목에 덥혀 내주며 입히던 우리 엄마,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항상 집 사립문에서 기다리시던 엄마, 사회인이 되어 출근을 할 때면 항상 집 앞까지 배웅하시는 어머니. 세월이 지나고 우리 개인의 인생도 성공을 한 지금, 더욱 그리워지는 그 이름-어머니!!!

   이러한 어머니를 그 누가 잊을소냐마는 정녕 남룡해 저자처럼 그렇게 책 한권으로 만들어 어머니를 기리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엄마이지만 서로 다른 일생을 살아간 엄마 나름대로의 인생과, 그러한 엄마의 평생에 대한 남룡해의 이해와 고마움, 그리고 추호의 가식 없는 효성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2.역사적 진실과 현실성 

 

   리톤 스트라치(Lytton Strachey)는 전기를 “모든 분야의 저작술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고아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한 인간의 평생을 후대가 기록할 때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들, 어쩌면 이미 생기를 잃은 자료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검토하고, 자신이 창작하려는 기록물에 이용하게 될 자료들에 다시 새로운 생명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재생의 심미적 기능을 노린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즉 남룡해 저자는 자기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삶 전 과정을 되돌아보고, 어머니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저자 자신이 다시 그 삶을 재생함으로써 어머니가 남긴 모든 것을 포옹하고 그러한 진실의 재생을 통해 새로운 현시대의 효성의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잘 알다시피 전기작가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새롭게 조립하는 과정에 정연한 논리성과 함께 작가 자신의 심미가치관, 그리고 자료의 간결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자료는 물론 신빙성을 갖추어야 하고 작가는 현재 시점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배열하게 된다. 또한 전기를 기술함에 있어서 작가는 반드시 고인을 존경하고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룡해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 일생을 기록할 때 어떤 자료들을 이용하여 어머니 형상을 창조하였을까?

   우리 같이 책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많은 자료들 속에서 필자는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하여 황정자 어머니를 알아보고 그 일생을 이해하고 이러한 과정에 우리들의 엄마들을 현시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황정자 어머니는 세 살 적에 조부모, 부모님을 따라 중국 연변 왕청현의 팔과수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렇게 이주한 이래로 소녀가장으로 되어 흑룡강성 동경성을 거쳐 어린 나이에 다시 송눈평원이란 허허 만주 벌판을 배회하고, 다시 1945년 해방을 맞아 장춘을 거쳐 연변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토지개혁 선전원으로 일하면서 남편 남영철을 만나고 결혼하여 도문에서 살다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결연코 연길로 이사를 강행하게 된다. 

   그렇게 연길에 정착해 생활하면서 황정자 어머니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대갈’ 아저씨 일화, 한승학 일화, 그리고 신흥복장점의 리더로 문자 그대로 새롭게 옷시장을 개척하였고, 문화혁명 때는 이른바 ‘코신부대’의 리더로 생명 위험을 무릅쓰고 북경으로 강행한 일, 그리고 개혁개방이라는 경제건설의 쾌차에 올라 한국행과 함께 제2의 한복 창업신화를 이루어 낸다. 

   이렇듯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이주해 황정자 어머니가 경험한 모든 일들은 중국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오늘날 다시 황정자 어머니의 일생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파란만장한 어머니의 일생을 보고 우리의 오늘날 모습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황정자 어머니의 일생을 관통하는 사업이란 바로 바느질이다. 제2의 창업신화 역시 바느질과 떼어놓을 수 없다. 황정자 어머니는 <나비>표 재봉침 하나로 복장점 운영을 시작하고, 옷을 지으면서 항상 신용을 지키는 경영철학으로 뭇손님들의 신의를 받고 연길 옷시장에서 당당하게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저자가 책에서도 지적하다시피 “어머니의 바른손 중지는 수십 번 재봉침에 빨려 들어가 바늘에 찔리다보니 아예 손톱조차 무드러져 없어졌다. 제일 길어야 할 중지가 새끼손가락 길이와 맞먹는다. 손톱이 없는 중지 끝은 까까머리모양으로 보기가 흉하다.”

   이렇듯 악착같이 자신과 가족의 삶을 영위한 덕분에 당시로서는 남이 쌓기 어려운 부를 창조하게 된다. 그러나 부를 창조하고도 항상 주변 사람들을 돕는데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황정자 어머니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고, 어머니는 항상 김치며 반찬이며 이것저것 아낌없이 이웃들에게 내어 준다. 이처럼 “어머니는 항상 받는 것보다 베푸는 일에 선심을 쓰는 넉넉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저자의 눈 속에 들어온 어머니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 이야기는 ‘천방야담’이라해도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외국서 온 어려운 사람들을 집에 무료로 숙박시키면서 도와 준 이야기는 한부의 대하드라마”를 창조한 주인공으로 안겨 온다.

   황정자 어머니의 일생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이치를 알려 준다. 즉 어떠한 현실 속에서든지 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다면 누구나 벅차고 생동적인 삶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황정자 어머니가 자식 양육과 교육을 비롯하여 모든 일들을 골치 아픈 일, 갈빗대가 부러지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황정자 어머니가 자신의 일상적 현실속에서 자기 자신 쪽으로 눈을 돌리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황정자 어머니가 몸으로 체득한 그 대단한 ‘철학’이란 바로 우리 모두가 더불어 같이 사는 공동체란 점이다.

 

3.민족공동체와 시대적 사명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황정자 어머니의 “우리 엄마”와 다른 개성적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예민한 통찰력, 정확한 판단력과 과감한 실천정신일 것이다.  “우리 엄마”들은 말 그대로 전통적 현모양처의 역할을 하면 한 여인으로서의 인생을 잘 산 것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황정자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기 인생을 충실히 살아오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하는 바느질 일이 가족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이 일에 올인했을 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즉 가족을 위한 것이자 결국 자신의 인생도 훌륭하게 잘 산 것이다. 황정자가 다른 어머니가 아닌 황정자로서의 자율성을 지닌 것이다. 이것 역시 우리 신시대 어머니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과거 우리 엄마들이 항상 고수하는 것은 바로 자식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책의 한 대목을 보도록 하자.

   “어머니는 어디 가나 항상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자식들이 지갑을 여는 걸 절대 용허하지 않는다. 어머니 얘기를 곧이곧대로 옮겨 놓는다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너희들에게 폐를 끼치는 어미가 되지 않을 거다. 그리구 집안에 어른이라면 어련히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게 어머니만의 생존철학이었다…….평생 돈을 악착스레 벌고 또 폼 나게 쓴 분이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일에는 땡전 한 푼 아끼는 분이다. ……돈도 써야 할 곳에는 확실하게 쓰지만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일에는 아예 지갑을 열지 않는다. ”

   지갑을 연다는 이 행위는 아주 간단히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어머니의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한은 절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여기에는 가족과 자식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희생적인 사랑이 안받침되어 있다.

   고작 200만 명을 헤아리는 우리 민족이 13억을 웃도는 이 대국의 틈에 끼워 100여 년을 살아오면서 그나마 나름대로 자기 말을 하고 자기 글을 쓰고 자기의 노래를 부르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밑바닥에 항상 우리 민족 어머니들의 끈기와 집념, 애환과 열정, 분투와 로고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시점을 바꾸어 볼 때 황정자 어머니의 일생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 분투사와 발전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바로 헌신적인 이러한 어머니들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낯선 중국땅에 뿌리를 내리고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오늘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어엿한 국민이 되어 민족적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민족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어쩌면 우리 “엄마”를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숙명처럼 안겨오는 문제는 바로 민족공동체를 어떻게 지키고 지속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동체적 삶을 지키는 것일까?

   남룡해 저자가 어머니를 존경하고,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알고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문화를 지키는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가식없는 존경과 어머니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국자가의 전설>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효를 다하는 것일 터이다. 책 곳곳에 저자를 비롯하여 형제들이 엄마에게 효성을 다하는 대목들이 자주 나온다.

   “나는 매일 아침 어머니를 침대에서 일으켜 앉히고는 옷 갈아입히고 얼굴을 씻겨 드리고 치아를 닦아 드리고 삼시 새끼 색다른 음식을 준비해 대접시키느라 지극정성을 보였다. 또 저녁 취침 전에는 족욕까지 시켜서 잠자리에 들게 하였다. 해살이 따스한 한낮에는 밖에 모시고 나가 볕 쪼임도 시키면서 난생 처음으로 자식이 된 도리를 다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부디 몸 조심해야 한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벌써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닫힌다. 그 순간 어머님이 휠체어에 앉은 채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애써 웃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력역한데 웃는지 우는지 아무튼 반은 일그러진 모습니다. 

   순간 가슴이 쿵-무너져 내려 앉는 느낌이다. 난생 처음 어머니와 생리별을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꼭 마치도 두 쪽으로 된 철문이 우리 모자의 연을 영 갈라놓는 느낌이 들면서 난생 느껴보지 못한 설음에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이렇게 어머니를 존경하고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결국 우리 민족공동체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남룡해 저자는 촬영작가로서 자신의 예민한 예술적 관찰력을 통해 황정자 어머니의 일생에서 가장 이채를 돋구는 장면장면들에 샷터를 눌러 우리에게 잊지 못할 서사를 제공하고 있다.

 

4.결론

 

   <국자가의 전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결코 한 평범한 어머니의 일생을 적은 일대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이 책은 우리들에게 현재 우리들의 삶을 반성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현재 우리들은 자기 인생살이에 쫓겨 천방지축 삶을 영위함에 주변 사람을 돌아다볼 겨를이 없다. 내 가족에 얽매어 제 자신의 인생까지도 희생했다면서 큰 일을 한 것처럼 인정하기가 일쑤이다. 

   그리하여 제 인생을 살겠다며 부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작정 제 자식을 부모에게 맡기는 젊은 부모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돈만 주면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생각이나 자식의 심리적 요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다보면 인생살이에 돈이 전부가 아님을 쉽게 터득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젊은이들은 부모에 대한 관심이라며 부모의 삶 곳곳을 간섭한다.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며 사사건건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것을 부모에게 요구한다. 이런 지나친 간섭을 오히려 부모에게 하는 효도라고 잘못 생각하면서도 전혀 반성을 할 줄 모른다. 부모가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제 주관적 생각을 주입하기에 급급하다. 어쩌면 자기중심 가치관에 젖어든 지금의 삶이랄까. 공자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려 할 때 부모는 이미 없다”. 현시점에서 바라볼 때도 깊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이렇게 이러저러한 이유와 핑계로 삶이 점철되어 있어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그렇다고 정말 황정자 어머니처럼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민족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의 노력을 떠날 수 없다. 거기에는 민족전통에 대한 수용과 지속적인 영위가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국자가의 전설>은 우리에게 우리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시대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기 되어 현대적 의미를 지닌 인물전이라 하겠다.

                                                               리광재교수
                                                               리광재교수

리광재

중국해양대학 외국어학원교수 학과장

문학박사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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