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가
김훈 소설가

전자 방역 통행증이 폐지되고 핵산검사, 건강코드를 무시할 수 있는 이른바 "자유"의 세상이 왔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집구석을 파고들었다. 홍수사태와 다름없는 "양"들의 "범람"으로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집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코로나가 처음으로 기승을 부릴 때 자가 격리를 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장기”를 부려보았다. 그 “장기”를 모아놓으면 단연코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다.

 기상천외한 “장기”까지 선을 보였는데 이 글에서 일일이 다루지 않고 한 가지만 례든다. 쌀알 세기다. 쌀 한 포대에 쌀알이 얼마 들었나를 다 세면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된 쌀알 세기는 한 포대 안에 쌀알이 188876알이 들어있다고 확답이 나왔음에도 코로나는 수그러들지 않고 더 만연이 되였다.

그래서 또 시작된 것이 머리카락 세기다. 쌀알 세기는 그래도 여러 날을 두고 쉬엄쉬엄 세도 되지만 머리카락은 단숨에 세야 한다. 이건 완전히 엔간한 끈기와 집착이 없으면 시작도 말아야 할 도전이다. 남자의 머리카락은 세기 힘드니 녀자 머리카락을 센 기록을 보면 7시간 내내 쉬지 않고 센 머리카락 수가 196690가닥이라나.

사태가 막을 내릴 조짐이 보이지 않자 또 도전을 걸었는데 이번엔 쌀알 1억 알을 세기다. 이런 도전을 건 사람은 아마 지금도 집에서 쌀알을 세고 있을 것이다. 그 분의 마음을 읽고도 남음이 있다. 뭔가 기대하면서 그 기대가 현실로 될 것을 기다리는 과정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고역이다.  

 80년대 필자는 “마음의 색깔”이란 제목으로 된 단편소설에서 화장터 납골함 보관원을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그 소설을 쓰기에 앞서 생활체험삼아 취재삼아 화장터에 며칠 드나들었다. 소설의 원형은 퇴역군인이다.

 “고인들 납골함속에 파묻힌 삶”이라고 하는 그에게 종일가도 들려오는 것이란 곡성이고 보이는 것이란 눈물 뿐이였다. 하여 그는 자신은 울음의 세계, 눈물의 세계에서 산다고 했다. 세상이 끝장난 듯한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고역이 아니라 죽을 맛이였지만 그래도 사업터이니 지켜야 했다.

 하루 종일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납골함에 끼워 넣은 고인들의 영정 사진뿐이었다. 고인들의 영정 사진은 보통 고인의 사진들 중 가장 잘 찍혀진 사진을 골랐기에 웃고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한 말이 “간 자는 웃고 산 자는 운다”이다. 하루하루를 보내기 힘들어 고인들의 웃는 영정 사진을 연필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왜서 웃는 사진만 그렸냐고 물으니 “나에게는 웃음이 필요했다”고 대답했다.

고인들의 웃는 사진으로 웃음을 찾는다?! 웃음은 고독한 영혼에 위로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고인의 웃음도 역시 위로가 된다는 얘기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을 수 없는 그 말에 필자는 경의를 표하고자 그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어 필자가 하고 싶었던 말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몸은 그 어디에 있든 맘속엔 언제나 푸른 하늘을 가지라!” 감염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제 또 “쌀알”을 세고 “머리카락”까지 셀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맘속에 푸른 하늘을 간직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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