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벚꽃 축제가 이제 잠잠해지는 듯하다. 인터넷에도 벚꽃 사진들로 넘쳤고 서로의 인사가 벚꽃 구경 갔댔냐가 먼저다. 어디 가나 벚꽃을 벗어 날 수 없다. 벚꽃나무가 온 울산을 점령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벚꽃의 절정은 길지가 않다. 물고기 비늘이 말라붙은 것 마냥 동네의 길바닥에 온통 벚꽃 잎들이다. 작은 바람에도 후르르 쏟아져 내리는 벚꽃 잎들이 돌돌 구르다가 아무 데나 벌러덩 드러누워 쌓이기도 한다. 벚꽃은 피는 것도 빠르고 지는 것도 순간이다. 그렇다고 우울할 필요는 없다. 4월이 봄꽃들의 계절이지 않은가? 

내가 사는 동네는 유독 빨간 벽돌 집들이 많다. 집집마다 자그마한 꽃밭을 가지고 있어 지나다가 보면 빨강, 노랑, 보라, 흰색의 튤립이나 수선화, 히아신스, 할미꽃, 제라늄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띄운다. 몇몇 집에는 천리향이나 라일락도 피어 있었다. 맑은 날 훅 들어오는 꽃향기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짝사랑과 마주치는 기분이랄까, 암튼 심쿵했다. 노인들이 일감을 들고 대문 밖에 걸터앉은 풍경을 이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서로 문만 열면 이웃 간의 대화도 가능하다. 아날로그에 습관 된 그이들만의 소통 방식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흠칫 놀라거나 월세로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시끄럽다 할 수도 있지만은 여기에 교양이니 문화이니 그런 상투적인 언어들이 참견할 건 아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그들만의 것으로 지켜져 온 관습같은 것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이 마을에서 거의 15년을 지내온 터라 이제는 그들의 모습에서 향수를 불러오기도 한다. 불편한 진실이 즐거운 현실로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증명하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간에 지키는 진실한 감정이었다. 또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였다. 요즘은 쑥 철이라 며칠 전에 주인 할머니가 쑥떡을 맛 보라며 예쁜 그릇에 담아 오셨다. 김장철에는 김치를 주기도 하고 명절에 자식들이 보내온 과일을 다 먹을 수 없다며 들고 오기도 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내가 일을 많이 쉬는 게 걱정스러웠는지 월세를 줄이고 보증금도 절반이나 돌려주셨다. “우리 늙은 것들이 시끄럽제?” “아이고, 노친들이 목청은 와 그리 앙칼지노?” 하며 수줍게 웃는 쪼글쪼글한 얼굴에는 미안함이 다분히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앙칼진” 목소리를 사랑해야만 했다. 창문을 열어 놓고 함께 어울리며 웃고 떠들어야 했다. 그리고 함께 즐거웠다. 아직 떡 그릇을 돌려주지 못했다. 나도 미나리전이나 붙여 드릴 생각이다. 

이전 같으면 여럿이 모여 앉아 과일이나 떡을 나누어 드시며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씩 쥐여 주기도 했는데 코로나에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부터 요 근래에는 각자 문밖에 앉아 큰 소리로 생중계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바뀌는 것 없이 항상 전쟁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전쟁 때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돌아가며 줄줄이 엮는다. 이야기는 절대로 우호적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서로가 자기가 겪은 일이 더 강도가 세다는 쪽으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루 새에 인민군이 되었다 한국군이 되었다 하는 아버지나 오빠들의 울지도 웃지도 못했던 그때의 사정들을 평생을 숨겨 두다가 이제는 마음대로 털어놓기도 한다. 하긴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건 없고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속에서 우의를 어떻게 논한단 말인가?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더 진실하게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전쟁에 대한 공포는 누구보다 더 깊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식들이나 손주들이 그런 비참한 일은 당하지 말아야 한다며 걱정을 쏟는다. 하지만 세상은 편을 가렸다. 위기를 조성하고 사회의 불안을 높였다. 보이지 않는 정당한 명분을 위하여 싸우기에 설득을 당하는 운명들을 누가 걱정하는가? 모든 폭력의 희생은 오로지 희생자들만의 것이라는 걸 노인들은 알고 있었다. 대화 중에 서로 엇갈린 의견이 있었지만 종국에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한결같은 결론으로 일단락 마무리되었다. 다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그 표정들을 읽을 수는 없지만 마르고 왜소한 몸에 숨은 강인함이 보였다. 아랫집 화석 같은 무화과나무에 비취 같은 열매가 햇빛에 눈이 부셨다. 골목 어구에 홀로 서있는 늙은 모과나무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분홍 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4월의 감동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이런 날 집안에 가만히 있는다는 건 4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배낭을 메고 마을 뒤 배수장의 쉼터로 갔다. 서너 점 되는 운동기구 주위로 이쁘게 잘 다듬어진 철쭉들이 탱탱하게 여문 몽우리들을 뻥튀기듯이 터트리고 있었다. 그 주위를 빙 둘러 가며 소나무, 전나무, 이팝나무,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운데 자그마한 정자가 아담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쾌적하고 조용한 데다 고층 빌딩이 없어 운치도 좋은 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았다. 벽돌 바닥도 납작한 풀들에 거의 덮였고 곳곳에 노란 요정 같은 민들레 꽃들이 다닥다닥 박혀 있었다. 그것들은 그늘에 있거나 햇빛에 있거나 항상 밝은 등불처럼 바람에 온기를 준다. 민들레 꽃만의 고유한 특성인 것 같다. 길바닥에 있어도 우아한 느낌을 주니 말이다. 철쭉들 사이에서 제법 큰 민들레를 발견했다. 나는 배낭에서 작은 손칼과 비닐봉지를 꺼내고 니트릴장갑을 꼈다. 손으로 살며시 길을 내어 칼끝을 땅속에 박고 살짝 돌렸다. 칼끝에서 전율이 왔다. 민들레의 강한 향이 거침없이 폐로 들어왔다. 언제나 첫 수확은 흥분된다. 나는 먹이 찾는 짐승처럼 또 하나의 희생물을 찾으려고 쉼터 안을 스캔해 갔다. 고들빼기가 보였다. 쑥도 보였고 씀바귀, 질경이, 꽃다지, 망초도 보였다. 나의 손은 빨라졌고 소루쟁이도 한 움큼 캤다. 올망졸망 봉지들이 불룩해졌다. 그것들은 데치거나 절이거나 생으로 무쳐서 나의 식탁에 오를 것들이었다. 내 안의 피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이곳의 풀들은 일 년에 두 번씩 벌초꾼들에 의해 벌초되어 왔다. 그래도 그것들은 끈질긴 뿌리와 왕성한 번식력으로 매년 같은 시간에 이곳을 차지한다. 민들레는 키 높은 풀 속에서는 겁없이 자라지만 벌초 된 땅에서는 납작하게 배꼽까지 드러내며 살아낸다. 몽우리를 가득 담고서 말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하여 비루하게 진화하여 왔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풀들, 그들도 이름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냥 싸잡아 잡초라 하는 그것들을 우리는 절대로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지구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식물과 인간은 타협하고 공존하는 관계이며 인간의 문명에는 식물의 공로가 컸다. 사람들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벌초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어왔다. 벚꽃 잎들이 눈송이처럼 날렸다. 이제는 일어서서 그 움직이는 풍경을 마음 놓고 보기로 했다. 물감을 진하게 풀어 놓은 듯한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올 푸름으로 벚꽃 나무의 배경이 되여 주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직박구리 한 마리가 벚꽃의 꿀을 채집하고 있었다. 부리를 쉴 새 없이 꽃 속으로 넣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잠깐씩 멈추고 길게 울었다. 울음소리는 절절했고 극성스러웠다. 아마 짝을 찾는 것 같았다. 꿀 같은 시간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한 것이리라. 눈치 있게 살그머니 나오려는 데 뭔가 뭉클 밟히는 것 같았다. 죽은 까치였다. “엄마야!”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가버리고 직박구리는 놀라 푸드득 날아가고 말았다. 온몸이 후줄끈해 졌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뭔가 앞에 버티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커다란 쥐를 물고 있었다. 고양이는 달아나지도 않고 심오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마치 무단 침입자에게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두 번의 연타를 맞은 나는 땀에 흠뻑 젖었다. 고양이는 사람들과 친한 관계로 나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요즘 고양이는 쥐도 못 잡는다는 그런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쥐는 고양이에게 잡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쉼터를 나오자 쉼터 안은 다시 조용했다. 마치 햇빛 아래 드러난 나무들, 꽃들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모두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는 듯이.

배수장의 층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터널 형태의 약사천이 길게 뻗어 있었다. 약사천은 동천강으로 흘러드는 도시 안의 생태하천이다. 벚꽃 잎들이 떠다니는 냇물 아래로 새끼 붕어들이 무리 지어 쏘다녔다. 그 위로 청둥오리 두 마리가 사이좋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푸드득” 재수없는 붕어 한 마리 잡혔다. 바로 오리의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수면은 다시 평정을 찾았고 오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점잔을 빼며 데이트를 즐겼다. 하천을 따라 이름 모를 풀들 사이로 청포가 뾰족하게 올라오고 뚝 가장자리로는 돌미나리가 빼곡했다. 하얀 씨앗 주머니를 달고 딸랑대는 냉이꽃들이 길 가장자리에 일종대로 줄을 지어 있었다. 마치 삶의 터전을 지키는 용맹한 시민들처럼. 나는 미나리 두 줌 정도 뜯고는 동천강으로 걸었다. 터널 안의 양쪽 담벼락에는 담쟁이들이 아기 손을 짝짝 펼치며 분투하고 있었다. 오른쪽 담벼락 위로는 고층 아파트들이 보였고 왼쪽에는 지붕 위의 안테나나 빨랫줄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몇 개 정도 보일 뿐이었다. 빨간 벽돌집 마을이었다. 그 마을의 역사도 그렇게 희미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더 높은 빌딩들이 들어설 것이고 그들의 삶은 하천을 따라 흘러갈 것이다.

이제 동천강이다. 나는 강변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보온병의 커피를 따라 마시며 눈을 강의 지평선에 고정시켰다. 백로와 갈매기, 왜가리, 오리, 물닭들이 강 가운데의 모래밭에 서로 어울리며 햇빛 쬐임을 하고 있었고 반짝이는 햇무리 사이로 수많은 숭어들이 뽐내며 쉴 새 없이 튕겨 오르고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쏜살같이 강물로 꽂히더니 숭어를 물고 하늘로 오른다. 그 뒤로 탁 트인 강의 하류는 태화강과 합류하여 방어진 바다로 흘러간다. 그곳에서 모든 역사는 다시 만나 포효할 것이다. 그리고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강의 저쪽에는 유채꽃들이 출렁이고 강의 이쪽에는 야생 갓들이 노랗게 피어 있다. 야생 갓의 꽃과 유채꽃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매운 향도 같아 다들 야생 갓을 유채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신분에는 차이가 있다. 유채꽃은 사람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심은 것들이고 야생 갓은 저절로 난 잡초일 뿐이다. 유채꽃 밭에는 마음대로 들어 가지 못하지만 야생 갓은 마음대로 채집한다. 새들이나 사람들의 발굽이나 바람에 의해 서로의 씨앗들이 섞여 들었고 이쪽도 저쪽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채꽃과 야생 갓은 그런 데에 별로 연연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런 것에는 우리 인간들 만이 전전긍긍하며 투쟁하고 쟁취하려는 것 같다. 그런다고 뭐가 더 달라지는가? 

할아버지 한 분이 강둑에 서서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시를 쓰는 것 같기도 했고 그림을 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구나 4월의 풍경을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이다. 4월은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다. 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들은 듣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또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아도 삶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고집스럽게도 그런 생각을 하려 하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4월을 만나기에.  

* 이 수필은 '동포문학'과 '송화강'문학지에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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