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루돌프~!"

산타의 하얀 수염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헤쳐진 선물보따리엔 찢겨진 인형 따위가 지저분하게 널려있었습니다. 쵸콜릿껍질과 바나나껍질과 과자부스레기는 산타의 워낙 붉은 얼굴을 더욱 붉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한 선물인데!

산타의 눈앞엔 서까래마을 판자집에 살고있는 칠석이, 팔석이형제가 눈앞에 선히 떠올랐습니다.

아빠는 러시아장사길에서 실종되였고 엄마는 한국에 돈 벌러 나갔다가 메돼지같은 남자를 만나 살면서 자식마저 내친 지독한 사람이였습니다. 등 꼬부장한 할머니의 슬하에서 외로움과 가난속에서 세월 보내는 칠석이, 팔석이형제에게 올해 성탄이브날밤에 꼭 풍성한 선물을 가져다 주리라 진작 맘 먹고 벼려온 산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글쎄… 몇백년을 순종으로 고마웁던 루돌프 사슴이 선물보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줄이야.

"루돌프, 너 이젠 죽었어…!"

산타는 솥뚜껑같이 큰 손으로 꽈악 으스러지게 주먹을 틀어쥐였습니다.

산타의 은빛 채찍에 살가죽이 터지도록 얻어맞은 루돌프가 문밖을 뛰쳐나간지도 이슥히 지났건만 산타의 화는 종내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 이를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이제 곧 인간세상으로 떠나야 할 참인데..."

악에 바친 산타는 하늘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루돌프, 루돌프~!"

이때였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땀투성이 된 루돌프가 헐떡거리며 산타의 앞에 척 나타났습니다. 높이 솟은 뿔관엔 아롱다롱한 칠색의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루돌프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또옥또옥 떨구면서 산타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고 뿔관에 걸린 무지개를 고스란히 부리워 놓았습니다. 무지개는 금시 오색찬연한 빛을 뿌리면서 산타의 떨고있는 거쿨진 손을 부드럽게 어루쓸어 주었습니다.

"에헴…!"

무지개를 보는 순간 산타의 마음은 어느새 행복감에 젖어 누그러들었습니다.

"그래, 할수 없구나. 루돌프 네 놈이 그래도 대신 무지개를 얻어왔으니 이거라도 선물할 수밖에…"

산타는 드디여 허공에 손을 뻗치고 휘파람을 휘익 불었습니다. 그러자 금새 찰칵대는 금빛가위가 산타의 손에 쥐여졌습니다.

찰칵찰칵…

산타는 로년한 솜씨로 가위를 휘둘러 무지개를 가쯘하게 여러 토막으로 잘라 정교하게 만든 함속에 차곡차곡 넣은 다음 선물보따리에 집어넣었습니다.

으랴~ 쨔…!

루돌프 사슴이 끄는 마차는 산타클로스와 선물보따리를 싣고 인간세상으로 신나게 달렸습니다.

마차는 어느새 서까래 마을 판자집동네에 이르렀습니다. 대낮처럼 환하게 밝은 등불 밝히고 이브날을 맞이하는 부자동네와는 달리 판자집동네는 칠흑같이 캄캄한 밤의 어둠속에 잠겨 허우적거렸습니다.

판자집동네에서도 맨마지막 산기슭에 자리잡은 칠석이, 팔석이네 집앞에 살그머니 내린 산타는 깨진 창문유리로 집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뭇가지에 긁혀 찢겨진 솜옷을 입은 꼬부랑할머니는 철석이, 팔석이의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 옷섶으로 자꾸 눈굽을 찍고 있었습니다. 쪼글쪼글한 얼굴의 주름살은 더구나 쪼그라붙고 말라붙어 바싹 말라 비틀어진 시래기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할머니의 무릎아래엔 겨우 배나 가릴 죄꼬만 이불을 둘이서 함께 덮은 칠석이와 팔석이가 옹송그리고 누워 콜락대고 있었습니다. 불덩이같이 뜨거운 이마에선 뜨거운 김이 물물 피dj오르고 있었습니다.

"애고~ 불쌍한것들… 이 할미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니들을 이리 고생시키노…"

부들부들 떨며 할머니는 솜이 삐죽삐죽 삐져나온 자기의 옷을 벗어 칠석이와 팔석이의 차갑게 얼어붙은 두발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애들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은 겨릅대처럼 바짝 마른 할머니는 잠시후 꼬부랑꼬부랑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뭔가 두런대더니 스르르 눈 감고 깊이깊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흐윽… 흐윽…"

밖에서 지켜보던 산타의 눈에선 어느새 콩알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드디여 주먹으로 쓰윽 눈물을 훔친 산타 클로스는 선물보따리에서 선물함을 꺼내여 칠석이, 팔석이형제의 머리맡에 놓고 발끝으로 발볌발볌 걸으며 살며시 자리를 떴습니다.

산타가 떠난 잠시후였습니다.

선물함속에 놓여있던 무지개는 선물함뚜껑을 살짝 들어올리고 빠꼼 고개를 내밀고 집안을 두릿두릿 살펴보더니 사르르 기여나왔습니다. 삽시에 방안은 온통 환한 무지개빛으로 백촉짜리 등불을 켠것처럼 환해지며 후끈후끈해났습니다. 엄동이라 불을 지피지 못해 얼음덩이처럼 떵떵 얼어붙었던 판자집집안은 대뜸 여름날의 후더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무지개는 방안을 한바퀴 휘이 돌더니 짜잔~! 눈 한번 깜박하는 사이에 네개로 몸이 나뉘였습니다. 그중 세 개의 무지개는 각기 할머니와 칠석이, 팔석이형제의 코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순간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거짓말같이 눈을 번쩍 뜬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얼굴의 주름살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꼬부장하던 허리도 꼿꼿이 펴지는것이였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할머니는 삼십대의 머리 새까만 자상한 어머니로 변신해있었습니다.

한켠으로 된 고뿔을 앓던 칠석이와 팔석이형제는 언제 그랬더냐싶게 생기로 끓어넘치는 끌끌한 소년으로 되었습니다. 보얗게 살진 얼굴에서는 장미향 미소가 마악 피여오르고있었습니다.

"할머니, 이건 대체 어찌된 일인가요?"

어리벙벙해진건 칠석이, 팔석이형제뿐이 아니였습니다. 인젠 젊은 녀성이 된 할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칠석이, 팔석이형제를 와락 그러안았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불쌍한 우리들에게 이토록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하나님, 고… 고맙습니다…"

이때 마지막 남은 무지개 하나는 깨진 창문유리로 사르르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할머니와 칠석이, 팔석이형제는 너무도 신기하여 무지개를 따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지개가 앞뜰안을 왔다갔다 하더니 땅속으로 쑥 사라져버림과 동시에 앞뜨락에는 금새 따스한 봄이 활짝 피여났습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이 생글생글 웃어주는 가운데 호랑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아까 산타 클로스의 눈물이 떨어진 그 자리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람키만한 이상한 나무가 자라나 있었습니다. 팔 벌린 가지마다엔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맛깔스런 빵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배고프던 김에 군침을 꼴딱 삼키던 그들은 냉큼 빵을 뜯어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잠간 새에 빵나무의 빵은 거덜이 나버렸습니다.

"아, 난생 처음 이렇게 맛있는 빵… 정말 잘 먹었구나."

셋은 배가 불러 트림을 꺼얼 하였습니다. 그런데 빈 가지만 남았던 빵나무에 또 순식간에 빵이 열려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셋은 너무도 좋아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어댔습니다.

한참후 제정신이 든 셋은 자기집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저 앞집 춘자네 집에서랑 개똥이네 집에서랑 자기네들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엄동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이건만 성탄을 맞이하는 서까래동 판자집동네는 봄기운으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수고스럽게 돌며 일을 마친 산타는 스마트폰으로 서까래동 판자집동네의 경상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루돌프의 목을 그러안았습니다.

"고맙다. 루돌프야… 그까짓 쵸콜렛이나 사탕이나 인형 따위가 어찌 진정어린 선물이 될수 있겠니.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시적으로 필요한건 사랑과 따스함이란걸 실제 행동으로 깨우칠수 있게 도와준 네가 진정 나의 지기로구나. 고맙다. 루돌프… 내게 맞은 상처는 지금도 아픈거니?"

이렇게 말하며 산타는 솥뚜껑같은 거쿨진 손으로 루돌프의 잔등에 난 찢겨진 생채기를 어루쓸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금새 생채기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루돌프 사슴의 높이 솟은 뿔관은 에메랄드 하늘을 환히 밝혀주는 보석으로 오래도록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The And)

김현순 프로필: 
중국 조선족시몽문학회 회장.
순수문학지 <시몽> 잡지사 사장, 발행인.
세계동시문학상 등 해내외 문학상 수상 십수차. 
시집, 동시집, 동화집, 설화집 등 출간 십여권.
시론집 <봉합상징시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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