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넘기다 ‘올해의 책’ 지면에서 잠깐 멈추었다. 내가 읽었던 책 표지가 눈에 띄게 들어왔다. 나는 신문 너머로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서 그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이 참 괜찮은 책이었구나. 살 때부터 왠지 애착이 가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혼자 읽기 아쉬워 독서모임에도 나갔고, 한 번으로 아쉬워 2차 독서모임까지 했던 책이다. 추석에는 지인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 책을 10권을 사서 선착순으로 주기도 했다. 그 책이 바로 김훈 소설가가 쓴 ‘하얼빈’이다. 하얼빈은 나의 10대 시절의 중요한 환승역이었다. 개학하고 방학할 때마다 하얼빈역에서 환승해야 했다. 학교 졸업할 때까지 적어도 열여섯 번을 환승했을 것이다. 이렇게 익숙한 이름이 책 제목으로 나오니 당연히 고향을 찾은 기분이기도 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다시 ‘올해의 책’지면으로 왔다. 갑자기 ‘올해의 책’이 ‘올해의 나’로 바뀌고 있었다. 잠깐 2022년의 나를 돌아보았다.

 4월에 출간한 책
 4월에 출간한 책

나 곁에는 늘 음악이 있어 좋았다. 매일 아침 눈이 떠지고 귀가 열릴 때면 항상 들리는 소리가 있다. 전날에 들었던 음악이나 최근에 즐겨 듣던 음악이 베게 속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아직 완전히 뜨지 못한 두 눈을 비비며 서재에 가서 음악을 튼다. 연 초에는 웅산의 재즈음악을 즐겨 들었었다. 봄이 되고 야외운동 하기 좋을 때는 박강수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자전거를 탔다. 무더운 여름에 극장에 가서 ‘헤어질 결심’ 영화를 관람한 후부터 나의 일상 주제곡이 바뀌었다. 영화 끝날 무렵 흘러나온 ‘안개’는 나를 극장에서 떠나지 못하게 꼭 붙잡았다. 음악이 끝나고 영화가 끝났지만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이 노래를 들으며 책상에 마주 앉았다. 정훈희가 부른 ‘안개’를 들은 후부터 나의 아침은 늘 안개 속이었다. 그래도 안개가 좋았다. 

올해는 기록을 가장 많이 한 한해였다. 지천명知天命을 알고 나서 기록할 거리가 많아졌다. 덕분에 올 한 해만 책 두 권을 냈다. 한 권은 나의 반백 년을 기록한 책이다. 그렇게 나의 전반생을 기록하고 나니 후반생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기특하다. 다른 하나는 학원 소식지와 비슷한 책이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부모님들과 상담하면서 쓴 글도 있고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이나 그린 그림들을 어울려 예쁘게 만들었다. 아홉 번째로 만든 이번 책에는 백한 소설가가 쓴 학원 성장소설도 있어 읽을거리가 더 풍성해졌다.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서울국제학원 학생이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학원을 다니지 않지만 늘 눈에 밟히는 학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회가 된다면 서울국제학원에 다시 와서 선생님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10월에 펴낸 학원 이야기 E-BOOK 에서 읽기 https://book.yunzhan365.com/twhxf/dsno/mobile/index.html
10월에 펴낸 학원 이야기 E-BOOK 에서 읽기 https://book.yunzhan365.com/twhxf/dsno/mobile/index.html

현재 학원에 50여 명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하루 다르게 쑥쑥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내가 학생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도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붓으로 學而時習不易悅乎을 거침없이 쓸 때 곁에서 오타를 알려 준 학생은 다름 아닌 중학교 2학년 완헌이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다시 붓을 들었다. 올 한 해 특별히 정성 들여 연습한 것은 구양순欧阳询체의 천자문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 썼으니 2천자를 쓴 셈이다. 2천자를 연습하다 보니 더 이상 붓을 잡은 손이 떨리지 않았고 하루에 쓰는 글자도 점점 늘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10자씩 쓰기로 했는데 언제부인가 붓을 들면 단숨에 5~60자를 거뜬히 써내려갔다. 지난주에 두 번째 천자문 탈고를 마치고 세 번째 천자문을 준비 중이다. 주문한 천자문 임서를 아직 받지 못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거라 해를 넘겨서 받게 된단다. 이번에는 아예 두 세트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내년에는 글 쓰는 양을 좀 늘려볼 참이다. 붓을 잡는 힘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나만의 글씨체로 허난설헌의 명시를 써보려고 한다.

嫁時舅姑贈 繫在紅羅裳
今日贈君行 願君爲雜佩
不惜棄道上 莫結新人帶
-許蘭雪軒-

내가 이런 ‘야심찬 계획’을 갖게 된 것은 지난 가을에 허난설헌 생가를 방문하면서였다. 오전 일찍 서울을 출발해서 오후 내내 난설헌과 얘기하다가 저녁에 근처 선교장 한옥에 머물렀다. 선교장 주인 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거처했다는 서별당에서 천자문 붓글씨 연습을 하던 중 난설헌 동생의 한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설헌은 꽃다운 나이에 일찍 요절하였는데 생전에 세 가지 한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김성립의 아내로 된 것이다. 조선이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나 나랑 비슷한 나이만이라도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못다 쓴 시를 붓으로 써서 널리널리 알려보고 싶다.

강릉 명품한옥 선교장
강릉 명품한옥 선교장
선교장 서별당에서

나는 간혹 혼자서 훌쩍 떠나는 버릇이 있다. 산과 들도 좋지만 그곳에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허난설헌도 그렇게 만났다. 예전에 극장에서 허난설헌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후 기회만 닿으면 난설헌을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그러나 난설헌이 있는 곳은 강릉이라 한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야 함으로 당일에 돌아오기 어렵다. 몇 번이고 강원도까지 간 적은 있지만 가족들과의 여행이라 함께 정하는 여행코스에는 언제나 빠졌다. 결국 혼자 가야만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연초에 제주도에 가서 추사 김정희를 만날 때도 그랬다. 가족 여행이라 각자 가고 싶은 곳을 한 곳씩 정하기로 했다. 내가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를 추천했는데 마지막 날 마지막 코스로 정해졌다. 결국 그날도 비행기 시간에 쫓겨 유배지 기념관에서 30분도 채 머물지 못했다. 서울에 돌아온 후 과천에 있는 추사박물관을 혼자 다녀와서야 아쉬움이 좀 풀렸다.

올 한 해는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한 달 내내 골골 아픈 적도 있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밥처럼 먹어야 하는 약을 받아온다. 식전에 먹는 약, 식후에 먹는 약 이렇게 하루 세끼 먹다 보면 위가 아파 다시 병원에 간다. 그러면 위장약을 처방한다. 그래도 위 쓰림이 심해서 또 다시 병원에 가면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주사를 맞고 쩔뚝쩔뚝 주사실에서 나올 때면 만감이 교체한다. 왜 이렇게 아프면서 살아야 하나. 그나마 입원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한다. 한 달 내내 병원신세를 지고 나서 무병 무탈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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