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4호] 순간 포착과 诗의 절묘한 만남
-연말연시 건널목에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자국마다 보석들로 채워져 반짝입니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됩니다. 한결 밝은 앞날을 향해 껑충 도약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1) 태동/ 오영실
별들도 숨죽이고 기도하던
음과 양을 오가던 밤을 지나
지평선 너머로
해님의 숨결이 너울진다
새날은 오는구나
2) 사는 법/ 박계옥
알고도 모르겠네
우리와는 스타일이 완전 다르군
이제부터 코로나와 함께 산다나
3) 하충어빙(夏蟲語氷)/ 박만해
투명한 유리 한 장이 자유와 햇살, 40도의 온차;
더 넓은 세상과 삶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푸덕이는 간절함에 못 이겨 창 열어 환기를 해 본다.
파리떼의 투정 소리만 한층 더 거세진 양상이다.
——호접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논하고 있을까…
4) 첫눈/ 한미나
밤새 빚으셔서 살짝 놓고 가셨네
올해는 강아지표 백설기로
이맘때면 기다려지는 엄마 선물
풀어 보면 눈물 될까
만질 수 없는 그 온기
5) 불가항력/ 이초선
어찌하여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
6) 각성하라/ 김경애
지금은
여여야야 할 것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7) 우상(偶像)/ 한하나
빠진 이 하나 없이
검은 머리 한 올 없이
참, 곱게도 나이 드셨네요
나도 당신처럼 우아하게...
8) 붓/ 김성옥
뚝뚝 흐르도록 고인 잉크
콩콩 핑크빛 연서
흐드러지게 피울
9) 뜯게질/ 성해동
뜨개옷 풀린 실밥, 걷잡을 수 없는가
횡격막을 경계로 으르렁대는 이성과 감성
결국은 심연 속 탈출인가, 글쓰기란 영혼의
10) 아련한 추억/ 최미영
울 엄마 마지막 가시던 날
긴 여행을 함께 가자며
수많은 천사들이
보슬보슬 내려와
아득한 그리움을 남겼지
11) 꽃잠/ 김순자
헐거워도 따뜻한 자리
못난 새끼 파고드는 품
당신의 레퍼토리는 여전하시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12) 앞을 잘 가리라 하신다/ 최기건
한 뼘 크기로 천하를 덮으니
세상이 그 속에서 헐떡인다
세월의 신음 소리
잠든 혼백을 깨운다
13) 그림자/ 이해란
어떤 색깔이든
검은색으로 번역한다
침묵에 담은
많은 것들
14) 반객위주(反客爲主)/ 김단
밤길에
잠깐 쉬어가라고 자리를 내주었더니
드러누워 제집이다
네가 불편할까 봐 나는 숨죽이고 있는데
15) 계절의 흐름/ 김춘자
빛바래고 마른 것이
어디 나의 잘못이던가
계절이 오고가는 것처럼
당연한 일 또 있을까
16) 요즘 대세/ 최춘란
열
17) 여의도의 밤거리/ 이광일
이곳을
지날 때마다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18) 선물/ 박화순
소리 없이 순백의 꽃으로
얼룩지고 때묻은 자리
이 세상 아픔과 슬픔
모든 액운 다 지웠소
19) 탄지경/ 함향
뜨거웠던 열정도
눈부시던 모습도
밤하늘 밝히는 불꽃처럼
영원한 찰나였음을
20) 연말연시/ 김영란
나도 숨 쉬고 싶어요
나도 푹 자고 싶어요
21) 요술쟁이/ 주해봉
녹색 우산 펼치더니
어느새 빨간 우산으로 바꾸었네
머지않아 또 투명 우산 펼치겠지
22) 모정(母情)/ 김동휘
올해도 어김없이 보내주신
양털 이불
역병으로 얼어든 가슴
녹여주는
23) 생존의 법칙/ 심송화
가끔씩 뒤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되는 거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어디서든 기죽지만 않으면 돼
24) 한동네/ 황정혜
나는 집안에서 열이 나고
너는 하늘에서 열이 나고
25) 年货/ 신명금
가족 웃음 한 보따리
손주 사랑도 듬뿍
발길 가벼워지는
26) 결별 선언/ 이준실
언젠가는 부딪쳐야 했던
우리라 하고 싶지 않은 우리
질척대지 말고 놓아주자
다시는 보지 말자
27) 소원/ 장문영
저 동네에 가서 실컷 놀다가
돌아올 때는 버튼이 고장 났으면
아니 아니
단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28) 쌀 포대처럼/ 박춘혁
마지막 매듭 잘 짓고
엉킨 매듭 풀어
해마다 술술 풀리시길
29) 느낌표/ 김성애
시린 날 안겨오는 뜨거움
너도 열이 나는 걸까
가지 속 저 멀리 깊은 곳에서
더디게 오는 발걸음 소리
기어이 터지고야 말 팡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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