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령 : 연길시 출생. 박사수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일전 필자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화성시에 거주하는 이주배경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로 직업 체험행사가 열리게 되었고 스타일스트학과에 재학중이었던 나는 스타일리스트 직업 체험의 도우미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들의 스타일리스트 직업체험은 그들의 나이대를 고려해 실제의상을 모델에 피팅시키는 방식이 아닌 종이인형 놀이로 진행되었다. 미리 짤라둔 종이 인형과 명품 의상 그림이 있는 종이를 배부해주면 그들이 종이 의상들을 짤라서 종이인형에 스타일링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 아이들보다 좀 더 어렸던 시절 일본만화 <세일러 문> 캐릭터 종이인형들을 너덜너덜해지도록 갖고 논 그 시절을 미리 경험해 본, 이제는 어른이 다 된 나로서는 직업체험의 감투하에 진행되는 인형놀이가 너무나도 익숙해마지 않은 나머지 그 시뮤레이션이 저도 모르게 눈앞에 막 그려져 식상하고 뻔하다는 편견이 들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재료를 받고 난뒤 이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한 아이가 싹둑싹둑 가위질을 하면서 완성해나가는 종이인형 스타일링을 본 나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Opps...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중 흰 색 자켓의 팔소매는 싹뚝 짤라져 발팔자켓으로 변해버리고 원래 자켓과 매치되었던 풍성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짤리고 짤려 피팅되는 미니 스커트가 되어버렸다. 팔소매가 짧아진 대신에 롱 글로브를 매치시키니 디올 뉴 룩 고유의 우아함은 다르게 해석되어 보였다. 또한 스타킹을 짤라서 연출한 니하이 워머는 전반룩에 힙한 느낌을 더했다. 샤넬의 트레드 마크들을 가져다 붙이는 저 호기는 또 어찌하고...

패션사를 짚어본다면, 1950년대에 치마를 부풀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디올룩이 트렌드가 되었을때 그전 시기 수의나 하녀들의 복식에 쓰이던 블랙 컬러 원단을 여성 일상 복식에 쓰는 등 패션에 획기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샤넬은 파리와 유럽에서는 각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나간 치열함의 역사가 언젠 가는 샤넬과 디올의 콜라보를 이룬 장으로 등장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초등학생의 독특한 발상이 장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문소리에 의해 샤뗑과 디뗑의 콜라보라고 오해받았던 전지현의 짝이 맞지 않게 신었던 블루 컬러의 샤넬의 스웨이드 펌포스 힐과 옐로우 컬러의 크리스찬 디올 시그니처 펌포스 힐의 코믹스러운 조합이 미래에는 진지한 차원의 논의가 되지 않을것이라는 속단은 함부로 못할 듯 하다. 
 
직업체험을 참관하러 오셨던 스타과의 정년을 앞둔 교수님께서는 ‘순수 한국인’이 아닌 어린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나를 홍보수단으로 십분 ‘이용’하였다. 저 언니는 중국에서 왔고 서울의 좋은 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했었고 저번 학기에 학과 수석이었다고.

그러면 뭐해. 알파세대 아이들의 스타일링 직업체험을 보면서 언니라고 불리기에는 솔직히 나이가 그들의 부모뻘 되는 밀레니얼 세대인 나는 <먼저 난 머리보다 나중에 난 뿔이 무섭다>는 속담을 조용히 되뇌이게 되니 말이다. 먼저 난 머리가 단단해봤자 뿔을 당할소냐 하는 위압감.

내 생에서 아날로그 시절, 티비를 통해 중국에 수출되어 방영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속 주인공들이 입은 옷들을 흠모하고 인형 옷입히기 놀이를 즐겼던 나는 멀고 먼 길을 돌아 스타일리스트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나에게 거침없는 ‘샤넬과 디올의 콜라보한 뉴 룩 스타일링’으로 후에 난 뿔이 더 우뚝할 것임을 직감한데서 비롯된 ‘좌절감’을 선사했던 그 아이와 미처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해 그가 단 하루의 직업체험을 통해 스타일리스트로 진로를 정할 것이라는 속단을 할 수는 없다.

단, 이제 어른이 되어 혹여 패션 필드에 서게 된다면 이 직업체험행사에서 했던 또다른 스타일링처럼 콧대 높은 디올과 샤넬을 콜라보 시키고 샤넬의 트레드 마크인 하이얀 동백꽃을 핑크로 물들여 머리에 꽂고 샤넬 로고를 박은 스커트를 입고서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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