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수필가 
박영진 수필가 

다사다난한 범띠 해가 가고 희망찬 2023 계묘년 토끼해가 다가온다. 어쩐지 나이 들수록 점점 한해가 짧게만 느껴진다. 별로 해놓은 일도 없는데 나이만 자꾸 먹는 안타까운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해마다 새해가 다가올 때 즈음이면 나는 어김없이 글 한편씩 써서 새해선물로 삼는다. 새해에 새롭게 나를 독려하는 계기로 삼고 싶은 심정이다. ‘2017 정유년을 맞으며’, ‘2018 황금개띠해 단상’, ‘2019 기해년 새해벽두에’, ‘쥐띠년 만필’ ‘2021년 소띠해의 소망’ ‘임인년 잡감雜感’ 등 많은 글이 이름 있는 동북아신문과  KBS한민족방송에 방송되는 기쁨과 영광을 맛보았다. 2023년 토끼해를 맞으며 토끼와 관련된 글을 쓰려고 했더니 어렸을 때 있었던 동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중국에서 태어난 1968년은 문화대혁명시기였다. 전대미문의 대동란속에서 성장한 우리 세대들의 학창시절은 학교폭력이 난무했었다. 그때 학교폭력이 너무 두려워 나는 학교 다니기도 싫었었다. 게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늘 술에 취해 술타령만 부르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우울증이 생겨 엄청 괴로웠고 힘들었다. 때로는 아버지가 너무도 미워서 집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휘영청 밝은 달을 우러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가출하여 월궁月宮에 올라가 어여쁜 상아아씨와 사랑을 나누며 계수나무아래서 떡방아 찧는 귀여운 옥토끼와도 즐겁게 놀고 싶었다. 그렇게 토끼는 어린 나의 정서에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친근하게 자리 잡은 동물이었다. 나는 달 속에서 불로장생의 떡방아 찧는 옥토끼를 그리며 행복하고 근심 없는 이상세계를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이웃동네에 사시는 외갓집에 갔다가 옥토끼와 똑같이 귀여운 흰 토끼와 깜찍한 검은 토끼를 가져왔다. 나는 너무도 좋아서 학교에 갔다 오면 토끼풀을 잔뜩 캐다가 정성들여 키웠다. 얌얌거리며 맛나게 토끼풀을 먹는 토끼들을 바라보노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생각밖에도 토끼는 쥐처럼 번식력이 엄청 왕성했다. 1년도 안 되어 토끼 굴에는 귀여운 숱한 토끼들이 뛰어다녔다. 나는 남을 미워하고 해치는 사악한 사람들보다는 착하고 악의 없으며 귀엽고 영리한 영적인 토끼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언젠가 하루는 내가 학교에 갔다가 일찍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왔다면서 아버지가 내가 키우는 토끼를 잡아 토끼 탕을 끓여서 술안주로 대접했었다. 그 일로 인해서 나는 아버지를 더더욱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동안 나와 깊은 정이 든,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면서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 토끼 친구를 잡아먹으니 내가 좋아할 리 만무했다.  

어려서부터 착하고 귀여운 토끼들과 함께 살면서 아름다운 감성이 풍부하게 생겨난 나는 배려심이 깊고 공감능력도 강하다는 호평을 받는다. 하여 정치에 깊은 관심이 생겨 정치칼럼도 자주 발표했고 ‘삼강포럼’과 다 같이 함께 하는 ‘다가치포럼’ 같은 한국사회와 동포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많은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가했다. 중국동포인 내가 한국사회에서 혐오와 멸시, 인간차별을 당하다보니 피해를 입는 소외계층 사람들만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얼마 전에 불행하게 발생한 이태원참사 녹사평분향소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었다. 49제를 치르는 날과 성탄절이브에 말이다. 역지사지라고 나는 이번 참사가 좀처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아들과 같은 나이 또래가 되는, 너무도 억울하게 서울한복판에서 참사를 당한 아까운 청춘들의 희생과 하루아침에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안타까운 유가족들에게 조그마한 위로와 힘이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혹했던 참사현장을 둘러보노라니 피가 거꾸로 흘러 울분을 참지 못하여 나는 즉흥적으로 이런 시를 지었다.
 
 이태원 참사(5행시)
이/ 이런 한심한 일이 어떻게 이태원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가?
태/ 태만하고 부실한 어른大人때문에 아까운 청춘들이 쓰러졌다!
원/ 원래는 이런 어른大人들이 먼저 하늘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참/ 참담하고 비정非情한 현실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사/ 사고는 예고가 없다는데 사실 이번 참사는 예고가 많았다. 
 
 요즘은 자기중심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려 사회도덕이 너무나 타락되어 철면피,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시대(악인 전성시대)라고들 하는데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소시오 패스나 사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적 도덕불감증인간들이 점점 늘어나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으며 정부와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정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오인설五人說이 유행되고 있다. “사람人이 사람人이라고 다 사람人이냐. 사람人답게 살아야 사람人이다.”

2023 계묘년 토끼해를 맞으며 그동안 돈에 미쳐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사람들이 각자도생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나약하고 힘없는 불우한 이웃들도 도와주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기 바란다. 총명하고 귀여운 영리한 토끼해의 영적인 기운을 받아 사랑받는 사람 되기 바란다. 

2022 12 30 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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