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녀를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

정련 약력 : 2002년 흑룡강성 문과 수석. 현재 SI증권 미래전략본부장, 동북아신문 칼럼니스트.,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수필, 수기, 칼럼, 여행기 등 수십 편 발표.
정련 약력 : 2002년 흑룡강성 문과 수석. 현재 SI증권 미래전략본부장, 동북아신문 칼럼니스트.,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수필, 수기, 칼럼, 여행기 등 수십 편 발표.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드라마(티빙, 작가 위소영)가 나오면서, 이것은 나를 위한 작품인가 희열을 느꼈다. 참 부러웠다. 그녀들의 우정, 정신줄 놓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배짱, 그만큼이나 당찬 그녀들의 삶. 아, 정말 다양한 맛있는 안주가 나오는 그녀들의 단골 술집이 참 부러웠다.

그녀들은 술을 참 맛있게 먹는다. 보다 보면 술이 고파 져서 슬그머니 한잔 먹을 기회를 두리번 거린다. 등산, 여행 다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일전에 “산”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산을 참 좋아한다. 산에 함께 가는 사람들도 참 좋고 끝나고 하는 한잔도 참 좋다. 얼마전에 친구들의 체력을 감안하여 초미녀(자칭 “초미녀모임”) 완전체로 청계산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등산로 입구 맛집에서 김밥과 오뎅을 든든히 먹고, 등산에 필요한 장비를 입구 매장에서 구매하였으며(꼭 필요하다 기 보다는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예쁜 재킷 같은 것) 그 후 흐뭇하게 등산을 시작하였다. 산근육이 튼튼한 나는 앞에서 리듬을 잡았고 그나마 산에 다녀본 친구가 뒤에서 밀었다. 가다 보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두 명을 가운데 놓고 몰았다. 어떤 수다를 떨었던가. 우리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청계산 정상을 찍었다. 청계산 정상에는 어떤 아저씨가 막걸리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컵라면을 팔고 계셨다. 내가 잔막걸리를 부르짖었지만 그들은 내려가서 맛있게 먹어야 한다며 나를 말렸다. 산에서 내려와 우리는 그 동내 닭볶음탕 맛집을 갔다. 당연히 참아 둔 막걸리부터 주문하여 시원하게 쭉 들이켰다. 우리 중에 한명은 알쓰(알콜쓰레기)여서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 내내 놀 수 있다. 유독 술을 사랑하는 나와 한 친구는 막걸리를 가볍게 각 1병씩 흡입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바로 해여지시 아쉬운 우리는 그 옆 꽃이 유난히 예쁜 카페에 가서 볕 좋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계속 수다를 떨었다. “초미녀”는 모두 금융회사 직장인이고, 그 중 나 포함 두명은 워킹맘이고 한명은 개딸을 키우고 있으며 또 한명은 골드미스다. 우리는 함께 맛집을 가기도 하고 지방여행도 가끔 다니면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고 헛헛한 마음을 서로 채워준다. 속초로 가는 내 차 안에서의 블루투스 마이크 타임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흥이 이리 많은 여인들이 일터와 살림에 갇혀서 살 리는 없고, 우리는 일도 화이팅 넘치고 살림도 매사 최선을 다 한다. 그래서인가, 세상에 대한 불만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고 투덜거리기 보다는 실없는 웃긴 얘기를 나누며 깔깔거리는 것을 훨씬 잘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속초가 참 좋다.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동내가 거의 전부이며 속초관광시장이 있어서도 참 좋다. 우리는 청계산처럼 잘 걷는 2인과 잘 걷지 못하는 2인으로 밀고 끌며 30분 걸어 속초 관광시장에 갔다. 만석닭강정도 사야 하지만 속초의 명물은 시장 수제맥주이기에 수제맥주 매대 앞에 자리를 했다. 종류가 참 많다. 술못녀 2인이 빨리 골라봐, 라고 하는 순간 술꾼녀 2명은 종류별로 하나씩을 비닐에 주어 담기 시작했다. 놀라운 발견은 속초 관광시장의 수박쥬스는 지금까지 먹었던 수박쥬스 아니 과일쥬스 중에 최고였다. 과일까지 사 들고 짐이 두 손 가득해진 우리는 걷기를 고집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맥주를 냉장고에 잘 모셔 놓고 우리는 맛집을 탐닉하러 다시 걸어 나갔다. 술 한잔 걸치고 나서 한껏 흥이 오른 우리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의 한껏 신난 기분을 공유했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고 저녁 늦은 시간 “클레멘타인”을 함께 보며 이불킥을 했다. 우리는 아직도 네이버 댓글천재들의 댓글을 보며 그 때의 여행을 되새기곤 한다.

술도녀 그녀들은 참 당당하게 산다. 선생님이었던 지구는 학생에게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서 종이접기 유투버를 하게 된다. 요가강사 한지연은 원래 영양사 선생님이었는데 부당한 일을 바로잡으면서 시원하게 때려친다. 안소희의 인상적인 전라도 욕메들리도 한몫 한다. 술을 마시고 한껏 취기가 올라 헛소리를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의 바른 그 무엇 때문에 당당하게 또 행복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낭만적인 삶인 것 같다.

가치관이라는 것, 세상의 바른 것에 대한 나만의 그림이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큰소리로 말할 수 있고 술에 취할 수 있고 떠들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그렇게 낭만적이다.

술도녀 1을 떠올리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안소희 아버님의 장례식이다. 모든 것들이 거기에 다 녹아 있다.

친구라는 그런 것, 같이 성장하고 같이 새로운 것을 맞아 오고 같이 이별하는 그런 것이다.

내 책상에는 아직도 아주 오래된 바랜 메시지 카드가 하나 꽂혀 있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너의 미래를 위해 – 유안타 친구들이”. 나의 정든 9년의 시간과 이별하면서, 나와 함께 울어 준 사람들이 참 많다. 내 친구는 회사를 사랑한다면서 퇴사할 때 한달 내내 울었다고 한다.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참 힘겨운 일이긴 하다. 친구에게 나의 퇴사를 알리려고 자리에 찾아갔다. 나는 내 서랍장 속에 오래 있었던 반지를 슬쩍 꺼내 그녀와의 감격적인 이별을 하려고 “손 이리 줘봐”라고 했다. 그 반지는 나에게 조금 커서 소장만 하고 있었던 액세서리 반지 였다. 검지, 어, 안 들어가네, 중지, 어… 애끼손가락 까지 시도할 때쯤 우리의 그렁그렁했던 눈물은 쏙 들어가고 빵 터졌다. 지금은 애들 마냥 각자 손가락에 맞는 우정반지를 하나씩 나눠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친구가 바로 그 회사를 사랑한다며 떠날 때 한달이나 울었던 친구다. 지금은 바뀐 회사와 동료들과 또 사랑에 빠져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늘 헛헛한 그녀는 주말마다 회사 근처의 맛집을 공부하여 네이버 즐겨찾기로 모아두고 있다가 월요일이면 그 즐겨찾기들을 방문할 스케쥴을 떠올리며 월요스트레스를 이겨낸다고 한다.

요즘 재미있는 일 좀 없나. 친구들끼리 늘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내고 더 재미있게 보내려고 최선을 다 한다. 참 야박한 세상이라고들 많이 한다. 화가 많고 범죄가 많고 사고가 많다. 많아진 것인지 인터넷을 통하여 공유가 더 많이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참 많다. 외로운 것이 아닐까 싶다. 믿는 구석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빠와 육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살짝 다툰 적이 있다. 나는 아이들을 방목하는 편이고 교육보다는 대화를 많이 하고자 하는 편이다. 아빠의 생각은 좀 다르다. 어느 순간을 놓쳐 버려서 자칫 시간을 잘못 보내면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신다.

따뜻한 모든 사람이 따뜻하게만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엎어지기도 하고 뒤쳐지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넉넉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에너지 넘치게 사는 사람들, 최소한 나는 많이 봤다. 나는 내가 참 잘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한 것처럼 흉내만 내도 잘 자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돌이켜 따져 보면 나도 늘 넉넉하게 따뜻하게 자라온 것 만은 아닌 데도 말이다.

나에게는 우정이라는 뒷배가 있고 낭만이라는 방향이 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든 세상의 잣대에 희망을 잃었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든, 어느 순간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진다. 누군가가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손길 하나 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우정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떨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남에게 극단적인 결과를 안겨주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우정이라는 따뜻함과 옳고 그름에 기인한 대범함이 찾아들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술도녀2에서 그녀들은 한지연의 암 치료를 위하여 산으로 은둔한다. 그리고 2년간 술을 끊는다. 한지연의 치료에 차도가 보여 도시로 돌아온 그녀들은 소주 한 병에 맛이 간다. 지구는 배달일을 시작하여 친구들을 먹여 살리고 안소희는 방송국으로 복귀하며 한지연은 요가교실로 취직한다. 사회로 복귀한 그들은 힘겹지만은 않게 다시 삶을 시작한다. 그들은 우왕좌왕 일에 적응하고 싸우고 술 마시고 사랑도 한다. 지구는 심부름 알바를 하다가 아이를 잠깐 돌보게 되는데, 아이 엄마가 도저히 연락이 되지 않아 그녀들과 함께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 어렵게 엄마를 찾아냈을 때 엄마는 알콜중독에 엄마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생존조차 위태한 상황이었다. 그녀들은 그 엄마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이야기를 듣고 힘든 마음을 나눈다. 그녀들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마음을 이렇게 수시로 남들과 나눈다. 지인 중에 술도녀2에서 지나치에 그녀들의 과거와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부분 때문에 재미가 좀 덜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부분까지도 다 좋았다. 그들의 근거있는 술꾼생활과 원인 불분명의 선함이 나에게는 너무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원인 불분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모두에게 힘들었던 시간은 있었으나 낭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스토리의 흐름 때문이다.

누구나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상처 받고 실패하고 스스로가 맘에 안 드는 그런 수많은 시간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있어야 어떤 사랑을 받아야 어떤 형편이 되어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날 문뜩 느낀 우정 한줄기와 내 마음속의 옳고 그름의 그 에너지, 내가 낭만이라고 부르는 그것, 그런 것들을 조금 일깨워 보면 나름 살만한 세상에 나름 근사한 내 삶이 보이지 않을까.

술도녀2가 끝나면서 나는 또 서운했다. 사랑스런 그녀들을 더 볼 수 없는 허전함 때문에.

그리고 나는 느꼈다. 나는 우정과 낭만, 이런 것들을 누리고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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