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 :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동포문학 수필 최우수상 등 수상 다수. 수필, 수기 수십 편 발표.
천숙 :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동포문학 수필 최우수상 등 수상 다수. 수필, 수기 수십 편 발표.

피천득시인의 5월에 대한 묘사처럼 5월은 금방 찬물에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 같다.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모란, 찔레, 장미, 라일락...... 수많은 꽃들의 달이다. 신록사이로 5월의 산들바람이 분다. 길섶에 선 풀잎마다 싱그러움이 가득하고 한껏 생명의 기운을 머금고 피어 나는 들꽃들이 신비롭고 대견하다. 야생화들은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性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서로 잘 어울리고 질투하지 않고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中和를 이룩한 대자연은 이렇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天命을 기다리며 살아 간다.

5월의 어느 날, 우연히 강남의 어느 한 단독주택옆을 지나다가 담장에 살고 있는 찔레꽃을 보게 되었다. 옛날에는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냇가와 골짜기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요즘은 도심 속에서도 가끔 그들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덩굴 장미가 한창 절정기를 맞아  아름다움을 자랑하듯이 요염하게 피어 있었다. 하지만 찔레는 하나도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아주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소박한 모습 그대로 비타민과 미량원소를 듬뿍 안은채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도심속 찔레꽃을 보노라니  저 찔레의 고향은 어디일까? 주인 따라 온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발길은 점점 담장 가까이로 옮겨졌다. 달콤달콤한 내음이 그리움을 불러 오며 고향의 싱그러운 향기를 안고 내 마음 속으로 들어 왔다. 

그러고 보니 어느 덧 40년이란 시간이 흘러 갔다. 찔레꽃처럼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내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찔레꽃 송이마다 찔레꽃향기처럼 청신한 마음을 간직했던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불러 낸다. 

개혁개방을 갓 시작했을 때인지라 변변한 교육설비도 별로 없는 시골 학교에서 제일 유리한 환경이란 자연교실이였다. 그 때 나는 애들을 데리고 자연교실로 자주 나들이를 가군 하였다. 사계절의 자연교실은 실내의 교육보다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군 하였다. 1~3학년 초등학생들이라 군대놀이, 숨박꼭질, 보배찾기, 식물체취, 단풍잎 줏기, 눈사람 만들기와 눈싸움 등등 다양한 놀이들을 하군 하였다. 나도 늘 애들 속에 파묻혀 동심이 되어 같이 뛰어다녔다.

6월의 어느날, 애들을 데리고 야외를 나갔는데, 애들은 찔레꽃을 따서 먹기도 하고 머리에 꽂기도 하면서 분주히 뛰어다녔다.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자애가 찔레꽃을 꺾으려고 들어갔다가 찔레가지에 종아리가 긁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꼬맹이는 아픔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우는 그 모습마저도 어쩌면 그렇게 귀엽던지~ 지금 생각해봐도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도심 속에서 덩굴 장미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찔레는 그렇게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소박함과 고향의 정을 담은듯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찔레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중고등학생의 부모가 되어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 가는 나의 제자들처럼.

그 많은 꽃 중에서 나는 또한 "나"를 찾아 보게 되었다.

15년이란 교직생활을 접고 개혁개방의 물결을 따라 대도시로 , 외국으로 진출하여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었다. 

15년이란 교직생활에서 나는 성취감도 있었고, 일정한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교직생활과 또 다른 체험이었다. 교직생활처럼 틀에 맞추다가는 융통성이 없다고 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자니 몸에 익숙된 그 역할이 잘 놓아지질 않았다. 결국 사회에 진출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해 보았지만 나는 모두 이루어내지 못했다.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나는 무슨 일을 하나 모든 열정을 다하는 편인데 성취감도 없고, 성과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하며 진정 그 일을 원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벗어나려고만 애를 쓰면서  달려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찔레가 장미의 흉내를 내는 식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찔레는 찔레의 삶이 있고, 장미는 장미의 삶이 있는 것인데 말이다 .  각 자 개성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본질을 벗어나 자신의 현재모습을 부정하며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부러워 하며 살아 온 내가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늦게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그 것은 바로 2천5백년 전의 "공자"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공자" 선생님을 만나서 인생3락과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中庸을 실행할 것인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롭게 깨닫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다져가니 매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찔레꽃을 바라보았다. 찔레꽃은 낮은 자리에서 다른 식물들과 잘 어울리면서 장미를 질투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는 기색으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산들바람에 자신만의 樂을 즐기고 있었다. 본질을 벗어나는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였다.

그래, 찔레는 장미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최선을 다하며 온전한 樂을 즐긴다면  참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乐乎, 人不知而不愠 不易君子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 벗ㅡ> 뜻이 같은 사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머리로 사는 인간은 가슴으로 사는 인간보다 못하고. 가슴으로 사는 인간은 온 몸으로 樂을 즐기며 사는 것 보다 못하다. 자기만의 樂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자기의 문양을 가진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2022년 송화강 6호 발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