短 評

 

현실초탈이 불러오는 가상세계의 충격

金賢舜 시인의 옵션…」에 렌즈를 대본다 

노사량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초탈을 꿈꾼다. 그것이 세상을 조금씩 밀고 나가면서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주어진 삶에 대한 반역과 초탈, 이것은 예술의 생명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현실에 대한 성찰로부터 초탈, 탈속의 경지에 이르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이란 바로 이 욕망 때문에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서기전 428~347)은 감각을 초월하고 경험을 초월하는 관념으로 새롭게 세상을 관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잠시 머물뿐 이데아적인 模相이라는 이원론과 세계관을 내세웠다. 이런 관념의 세계는 시문학을 망라한 예술영역에도 관통되어있다.

오늘날 詩文學영역에서 복합상징시라는 새로운 流派의 출현이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적 이원론 즉 현실초탈이 불러오는 가상현실의 경지가 충격을 안겨주기 때문다.

 

옵션

 

다시 하루가 기울고

지구의 회전,

사막의 멀미 엎지르는 것 지키어본다

바다 굼실대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불이 켜지고

체인지 손놀림에 공간의 난삽,

어린 시절 곱다란

이름들이 몰래 틈새로 빠져 나간다

처소에 달이 머물고

기다림 마실 나간 동안

풀죽은 바람은

별빛 오리오리 세다가 자리에 든다

밤도 따라 눕는다

자정에 안개 흐르는 소리

새벽 적시며

이슬에 스며들다가

창턱에 내려앉는 회한의 은둔(隱遁),

수탉이 홰칠 때까지 울었다

공작의 날개, 햇살 같다는 생각도 파닥거린다

 

金賢舜옵션…」 全文

 

金賢舜 시인의 이 시가 보여주는 이데아는 옵션이라는 상징적 이미지에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어찌 보면 삶이란, 숙명처럼 차례진 질서 속에서 그에 대한 해탈을 꿈꾸며, 또한 그것의 실현을 위한 모질음이기도 하다.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체들, 지어는 지구마저 끝없이 회전하며 현실세계에서의 탈출을 실천해가고 있다. 그것은 태양을 망라한 우주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의 첫머리에서는 다시 하루가 기울고라고 시작을 선고한다. 여기에서 하루는 숙명처럼 주어진 삶 그 자체를 뜻하게 된다. 그런 삶이 기울었다가 다시 일어서고, 이렇게 거듭나면서 세상은 초탈의 경지로 내처 달리는 것이다.

 

다시 하루가 기울고

지구의 회전,

사막의 멀미 엎지르는 것 지키어본다

바다 굼실대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초탈을 위한 지구의 회전은 순탄치만은 않다. “사막의 멀미 엎지르는 것 지키어보는것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반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바다의 굼실대는 소리도 들린다.” 이는 거대한 혁신내지 혁명을 잉태하는 암시적 표현으로 된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한 현실을 그대로 방임해 두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극복의 노력은 폭 빠른 부조리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까탈스런 세상 뒤안길에 몰래 깔아두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켜지고

체인지 손놀림에 공간의 난삽,

어린 시절 곱다란

이름들이 몰래 틈새로 빠져 나간다

 

이같이 화자는 상기의 이념을 이미지에 용해시켜 상징의 可視化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처소에 달이 머물고/ 기다림 마실 나간 동안/ 풀죽은 바람은/ 별빛 오리오리 세다가 자리에 들 듯이의 열망은 거듭되는 윤회의 따분함에 마비되어 버린다. 따라서 밤도 따라 눕고삶은 평화로운 침묵의 마법에 걸려들게 된다. 그것은 또 자정에 흐르는 안개와 같이 새벽 적시며 이슬에 흘러들다가 창턱에 내려앉는 회한의 은둔(隱遁)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수탉이 홰칠 때까지 울었다고 솔직히 반성하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삶에 대한 탈출의 욕구는 자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하여 異次元의 경지를 구축하려는데 있다. 그것이 인간분발의 동력이자 본능이라고 할수 있겠다.

잠간 들렸다 가는 세상이지만 과거는 다반사, 미래는 옵션의 갈림길에 대한 확정의 선택에 달려있다.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그에 따르는 결실을 안아올 수 있다는 게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요르단강 넓고 깊은 물을 건널 수 있는 것도 대안너머에 예루살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동반해주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의 심령에 비낀 그림자는 공작의 날개도 햇살 같다는 생각으로 파닥이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1724~1804) 칸트는 그의 인식론에서 우주는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은 곧 우주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현실과 배제되는 이념으로 세상의 질서를 정립하려는, 현실초탈의식의 강력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이 누리고 있는 현실적 삶의 현장을 초탈하여 가상현실을 구축함으로써 그로부터 얻는 심리적 안위와 지향은 지대한 충격으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예술의 가치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金賢舜 시인의 옵션…」 앞에서 초탈을 다시 곱씹는 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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