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약력 : 흑룡강성 상지시 야부리조선족중학교 교사, 연변TV방송국 드라마역제부(译制部) 편집, 기자 역임. 시 100여수, 수필, 소설 10여편 발표, 수상 다수.

바다 


억천만년
이 세상 어머니들이 흘린 눈물이
바다가 되고 소금이 되였나

몸과 혼을 갈라 나뉘며 
자식을 낳을 때 흘린 진통의 눈물이 
어머니로 된 순간부터 눈에서 마르지 않는 
이 세상 어머니들의 모정의 눈물이
짜디짠 망망한 바다가 되여 
출렁이고 파도친다

그 눈물의 바다가
수많은 싱싱한 해어를 키워주며
모든 음식과 반찬을 맛나게 하는 소금을
우리 몸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을 
날마다 우리 식탁에 올려준다

하늘과 해와 달과 별을 가슴에 품고
우리에게 꿈을 실은 배를 띄워주고
인생항해의 돛을 펼쳐주는 푸른 꿈의 바다
풍진세상의 먼지와 혼탁한 공기를 정화해주며
사랑과 헌신과 포용을 가르쳐주는 바다

가없이 푸른 저 바다가
억천만년 마르지 않는 까닭을
그 바다 속 황금보다 귀한 생명의 소금이
천년만년 소진되지 않는 까닭을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연변문학 2017년 11호)

 

어머니

 

활등같이 굽은
엄마의 등
한평생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한평생 끝없는 고된 일에
지문마저 닳아 없어진
엄마의 갈퀴 같은 손
한평생 떠인
사랑의 무게는 얼마일까

이 세상을 떠받치는
어머니들

그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은
이 세상에는 없으리

 (연변문학 2021년 12호)

 

바닥

 

바닥에 추락해
바닥인생을 산다
날마다 바닥을 쓸고 닦으며
바닥을 먹고 산다

너도 나도 모두가
바닥인생을 사는 우리들
팔자타령을 한들 뭘하랴
흙먼지와 오물을 들쓰고
억압 받고 짓밟혀도
잡초처럼 파랗게 고개 들고 살자

새들도
바닥을 차고
하늘을 날고
꽃씨도 
바닥에 뿌리를 박아야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하늘을 찌르는
저 고층건물들도
바닥을 다져서 일떠서고
이 세상 모든
빛나고 위대한 것들은
바닥위에서 이룩되거늘
바닥노래를 부르며 살자

돌고 도는 인생사
돌고 도는 지구와 낮과 밤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이 따로 있나
바닥이 위로 180도 회전할 때면
바닥이 하늘이 된다
별도 달도 태양도 바닥아래다
 
 (동포문학 12호)

 

넥타이 

 

스스로 
목을 옭아매는
올가미
비딱해지려는 남자를
낚아채
중심을 바로잡아 주는
고삐 

사내의 야성미와 
남자의 숫기를 
야금야금 잘라내는

수컷의 뿔과
휘날리는 거친 갈기를 잘라
매끈하게 단장해주는 
가위

(2020년 연변문학 8호)


상주

 

한 독거노인이 세밑에 소리 없이 죽었다
시골의 폐가나 다름없는 어두운 집안에서
그믐밤 불 꺼진 창문이 이웃에 부고를 전했다

젊어서 인근 동네까지 소문난 미인이셨다
꽃다운 서른에 하늘 같은 남편을 잃고
사랑도 성애도 여자도 다 잃고
어머니로만 살아온 고달팠던 긴긴 세월
자식 4남매를 공부시켜 키워 내신 어머니였다

성에꽃이 벽에 하얗게 핀 얼음장 같은 구들에
굳어진 노인의 주검 곁에는 낡은 돋보기와
색 바랜 옛 가족사진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
노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 눈에 담고 간 건
외롭고 아픈 나날에 수백 번도 보고 또 보았을
결혼사진 속 일찍 하늘로 가신 젊은 남편의 모습과
자식들과 함께 찍은 옛 가족사진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 사진이었다

그녀의 청춘과 사랑을 깡그리 파먹고 잘 자라서
잘난 아들딸들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잘 먹고 잘 살려고 해외서 열심히 일하는 자식들이다

설날에 죽어서 자식을 기다리는 노인의 주검 곁에는
아프고 고독한 여생에 유일한 가족이었던 검둥이가
여러 날 굶어 탈진한 토종개가 검은 상복을 입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슬픈 눈을 맥없이 껌뻑이며
앞발 꿇고 엎드린 채 노인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동포문학 13호)


아버지와 술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수십 년 가혹한 박해에 만신창이 되여
생전에 피골이 상접한 쇠약한 몸에도
항상 밥보다 술이 먼저였던 아버지
고량주를 사발들이로 단숨에 마시던 아버지
애주가로만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술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해방직후 대학교 청년교원이셨던 아버지
단지 그 배운 죄로 우파가 되고 반혁명이 되여 
반평생 옥살이에 귀양살이한 아버지
동란시기엔 온갖 죄명을 다 들쓰고
하루건너 조리돌림 당하며 비판투쟁 맞고
한때는 농촌생산대 외양간에도 감금되고
농촌학교 변소치기였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술은 망각제였습니다 
낮에는 “노동개조”로 모진 고역살이를 하고
밤에는 끌려나가 피 터지게 두들겨 맞는 일상에
맑은 정신으로는 살수가 없었던
살 떨리는 무섭고 끔찍한 기억들을
하늘도 하느님도 없는 비정한 세상을
잠시나마 망각 속에 잊게 해주는

아버지에게
술은 진통제였습니다
삭신을 바늘로 쑤시는 아픔과
피멍 든 가슴의 한과 울분과 통증을
다소나마 덜어주는

아버지에게
술은 수면제였습니다
만신창이 된 지치고 골병 든 심신에
악몽에 시달리던 불면의 밤에
하루 밤의 짧은 안식을 주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에서
온 세상이 당신에게 돌을 던질 때
그마저 남 모르게 마셔야만 했던 술은
아버지를 위안해주는 유일한 벗이었고
지옥의 나날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체념의 환각제였고 마취제였습니다

빼앗기고 짓밟힌 쓰라린 인생에 
아버지가 평생 마신 독한 술
시대의 아픔을 타 마신 아버지의 술
슬픔과 원한을 녹여 마신 아버지의 술이
때때로 기울이는 나의 술잔 속에 흘러들어
아버지의 파리한 얼굴이 얼른거립니다

(한국 숲문학 2020년 21호)

 

아기별 

 

우리 집에 아기별이 생겨났어요
우주에 떠 있던 우진(宇晨)별이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집을 찾아
수백 년 광년의 시공(时空)을 날아
황금돼지 타고 가을날 아침에
행운의 우리 집으로 이사 왔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아기별은요
온 집안의 사랑 먹고 잘 자라서
장차 가문을 빛내는 별이 된대요


       손자에게

 

아가야, 매번 영상통화로 너를 볼 때면 
어찌하여 이 몸 속에 불덩이가 켜지는 듯
가슴이 울컥 벅차고 뜨거워 진단다
태여나서부터 앙증맞게 조그마한 것이
온 집안을 꽉 채우는 발광체가 되여
말도 못하는 너의 옹알이와 환성이
바둥거리는 네 신난 몸짓과 웃음이
하루가 새롭게 꽃처럼 피어나는 네 모습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이 세상 가장 감동 주는 영화가 되여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아가야
네가 있어 석양은 더더욱 아름답단다


  
 365송이 꽃이 피고

 -손자 돌에 부치는 시

 

이 세상 제일 좋은 엄마 아빠를 만나
우리 복덩이가 태어난지 돌이 됐구나
네가 태어나 집안은 새천지가 열렸단다
집안에 매일매일 새로운 꽃송이 피어나고
날마다 밝은 아기별이 떠 반짝이고
아침해님이 솟아 방실방실 웃음 짓고
어린 새 날개 짓 하며 우짖는 별천지로
아기 판다보다 귀여운 우리 아기
집안에 웃음과 기쁨 주는 행복바이러스
모든 것이 눈에 새롭고 신기한 아가야 
아름다운 것만 눈에 담아 새겨 넣고
모든 걸 먹으려고 입에 무는 아가야
좋은 것만 눈에 익혀 가려서 먹고
눈이 밝고 심성 고운 아이로 자라거라

 

보름달

 

밤하늘에 걸린
저 밝은 둥근달은
세계인의 축구의 밤을 빛낸 
축구황제의 골든골이런가

세기의 대전 월드컵결승전에서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공을 몰고 바람처럼 질주하며
마술 같은 신들린 드리블로
겹겹의 포위와 수비를 뚫고
대기층의 중력을 뚫고
포탄 같은 강슛으로 
하늘의 골문에 쏘아 넣은
15억 축구팬을 열광시킨
축구공이런가

저 하늘의 둥근달도 무색게 하는
21세기 축구의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축구의 신 메시의 결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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