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송화강 5호, 2023 송화강 1호, 2023 연변문학 1호에 발표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포항문학제 중국조선족문학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한 그루 목련


목련때문이었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백로가 꽃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그 풍경에 홀린듯 
비 오는 강따라 무작정 걷고 걸었다
그건 긴긴 날의 고독을 날개에 감추고 
온 세상을 돌고 돌아 온 삶이었다
조용히 한 발로 꿋꿋이 서서 
좀 처럼 흔들리지 않는 당신
끊임없는 반복과 지겨움을 하얗게 태운 
치명적인 문장의 완결
지금 나는 온 힘을 다해 당신에게 간다
미친 바람으로 읽으며 
쏟아 붓는 비로 스며들어
헐렁한 시 몇 줄로 출렁대기까지
그 각박한 삶의 배경에 푸른 빛 감돌고 
붉은 노을 비추는 풍경속으로

 

자엽자두 나무 아래

 

긴 침묵 끝에
자엽자두나무가 잎 하나를 툭 던졌다
타는 불꽃 같았다
바람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활활 타 번지는 말들
그 뜨거운 것들이 한 그루에 담겨 있었다
분노하고 
자책을 하고
용서는 두려운 것이었다
만신창이된 언어들이 입술에 매달려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하얗게 소름 돋은 것들이
손 대면 터질 것 처럼 말랑말랑했다 

 

달맞이꽃

 

그녀는 달을 이고 있었다
환하게 달맞이 꽃이 피어
걸음 걸음  뼈가 녹아 내렸다
달그락 달그락 
식당 일로 
손가락 마디가 익어가는 사이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남편의 취중에 깨지는 밤은 
숨 죽여 흐느끼는 
그녀의 눈물로 아물어지고 
아이들은 눈부신 달빛 속에서 
철없이 놀아 댔다
삶은 고단하지만  
꽃을 피우는 것이라면
지는 꽃은 삶의 구원일까
달이 이그러지고 
다시 부풀기를 반복하며
그녀는 긴나긴 밤을 걷고 걸었다 
달그락 달그락 
드디어 달은 자취를 감추고 
붉은 해가 떠올랐다
달맞이꽃은 불타고 있었다 

 

강태가 익으면

 

강태가 
제 눈을 까맣게 익히던 날
아버지도 
기억을 까맣게 익히고 
어린 나를 찾아 맨발로 뛰쳐 나갔다
저녁에야 
길에서 만난 아버지
손에 강태 한 줌 쥐여 있었다
내 어렸을 때 
강태를 따다주던 것 처럼
이제 
반짝 반짝 별이 되여 
지금 쯤 강태 한 줌 쥐고 
맨발로 오고 있을까

(2022년 송화강 5호)

 

어느 시인의 안전화


별의 
발자국이 하늘에 찍히고 있다 

옥상에 
서성이는 하얀 그림자 
음탕한 낱말을 씹으며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는 안전화를 신지 않았다

소를 먹은 안전화 
방탕한 시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고
악명높은 시인의 모가지를 당겨 
공사현장으로 
감자밭으로 끌었다 

그래도 
한 고집이 남았는지
돌가루를 먹은 시줄들이 
불뚝이며 살아 있었고 
감자눈에 꽂힌 시어들이 
푸르게 독이 올라 그처럼 아렸나보다 

충혈된 새벽이 
땜빵으로 봉고차에 오를 때
시인의 집은 
담뱃불에 타고 있었고
비틀거리던 연기는 
자정까지 거리를 방황했다

이제 시인은 
바람난 시를 버렸는데 
안전화는 지금 
누구의 발을 잡고 목을 조일까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가

 

페츄니아

 

 

시월의 별 없는 밤
은은한 가로등이 비추는 
너의 단순한 비유는 강렬하다
여름의 모든 시어들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어떤 
신생의 에너지가 너 만을 선택하여 
촌 스러운 분홍에 신비한 수식어만 
가득 채웠을까  
이 밤은 
부드러운 너의 언어에 부풀어 
작문의 바다에 떠다닐 것이다
너의 강렬한 흡인력에 파도를 치며
절대로 벗어 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장이 
저 멀리 해 뜨기 전까지 펼쳐졌다
온 통 너 뿐이다
페츄니아~

 

바람이 지나간 자리

 

그녀는 
사막을 넘었나봐요 
무릎에 모래바람이 불어요
등에는 모래무덤이 있어요
쇄골이 불거지고 
등골에서 방울 소리가 나요
진단서에는
바람이 지나갔다고 해요
오십년의 바람이 
그녀를 모르게 관통했대요
엎어지듯 휘청이는 자세는 
불안했어요
그래도 그녀는 
쉬지 않고 쓰고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몸으로 쓰고 있어요
바닷가 해풍에 
굽은 소나무처럼
오랜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죠
그녀의 거친 시처럼 말이예요

(송화강 2023년 1기 발표)

 

대봉감 7알

 


대봉감 7알을 얻었는데 
하나같이 떫은 표정이다
저런 멍 진 얼굴 어디서 많이 본듯
생생한 아픔에 언 손이 
선 뜻 다가가지 못한다

이별의 순간까지
그 뒤에 오는 슬픔 따위를 상상이나 했을까
세상의 모든 고통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 공포로 긴장된 근육이 저렇게 
긴 아픔을 이어가게 했을까

허공에 남은 것들
동고 동락하며 꽃 무지개같은 생각을 키워온 것들
그것들을 하늘에 말리고
비에 적시고
땅에 묻어야 하는

스스로 그 슬픔이 짓무를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아무리 먼 곳의 슬픔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가을의 선물은 슬프다

 

트럭 아래의 은유 

 

 

피로한 늦가을이 걸쳐진 밤
무례한 경적소리에 새우잠 자던 
고물트럭이 부시시 자리를 내 준다 
떨어진 배추 잎 하나 
마치 불변의 선언처럼 선명하다
설 자리도 없는 마을을 
언제까지 돌아야하는 트럭에 대하여
계획적으로 사육되어
뿌리 잘리고 쫓겨난 것들에 대하여
하나 뿐인 지구의 
끝없는 자리 다툼에 대하여
그리고 끝내 매수된 땅에 대하여
그러거나 말거나 
슬며시 머리를 드리민 하이브리드*
하루가 지겨운 듯 눈을 감는다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관심이 없는 듯
이제 배추잎의 시론은 계속 될 것이고
쫓겨난 트럭이 어느 구석에서 
꿀잠을 자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뿌리 없는 것들이 거럴 듯 하게 포장되어 
동서남북으로 누빌텐데
그놈의 빵에 중독되어 
눈만 뜨면 다투고 다투는
할 부의 처지를 변명할 길 없는 
밤은 짧기만 하고 이 땅은 
쪼각난 운명을 한탄할 새 없이 
또 하루를 버텨 보려고 
뼈가 으스러지게 기지개를 켠다

*신형 자동차

 

고목 

 

죽어서도 흙을 덮지 못한 
당신을

담쟁이는 연초록 피부를 
진푸르게 당겨 무덤을 만들었다

사방에서 날려드는 벌레들에 
당신의 썩어가는 뼈가 걱정이 되여

밤 낮 무릎 걸음으로 
한 계절 물 들이고

돈도 명예도 다 옛날의 것인
당신을 기억하는 이 있을까마는

그 풍경을 읊어주는 
새 한 마리 앉아 있어

당신은 
죽어서도 꿋꿋이 서 있다

(2023 연변문학 1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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