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화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연변대학교 조문학부를 졸업했다. 2011년에 한국에 왔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중국 조선족 문예지들에 소설과 수필을 발표하며 활동 중이다.
전춘화 :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연변대학교 조문학부를 졸업했다. 2011년에 한국에 왔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중국 조선족 문예지들에 소설과 수필을 발표하며 활동 중이다.

메이는 몇달을 앱에서 검색하며 찾아 헤매던 중고 폭스바겐을 드디어 자가 명의로 계약하고 핸들을 잡게 된 날 엄마와 쌍둥이 오빠 길을 동시에 생각했다. 다리 관절이 아파 먼 길 떠나기를 꺼려하는 엄마를 폭스바겐에 태워 아쿠아리움의 살아있는 돌고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엄마는 처음 보는 것에 대해 아이처럼 신기해하거나 그닥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고래는 그저 고래고 꽃은 그냥 꽃이었다. 엄마는 고래를 보고 있으면서도 수심 깊은 얼굴에 늘 하던 걱정들을 곱씹을 것이고 꽃 향기를 맡으면서도 지끈지끈 느껴지는 두통에 미간을 한껏 찌푸릴 게 뻔했다. 그럼에도 메이는 엄마가 미처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한번씩이라도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메이 스스로도 납득이 어려운 자기 고집이나 자기 만족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엄마와 함께 이왕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작은 단칸방에 앉아 엄마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듣기보다 밖에서 콧바람을 쐬고 고래나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일이 훨씬 좋아 보였다.

이어 길이에게로 생각이 전이되자 메이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백미러를 조절하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속도위반으로 결혼해 연년생 오누이를 키우는 길이네는 아직 자가용이 없이 이인용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이였다. 길이 눈 앞에 자가용을 타고 나타나면 이야, 우리 춘매 성공했네, 하면서 주말엔 조카들도 좀 태워줘, 하며 넉살 좋게 들러붙겠지만 정작 속으로는 어떤 생각 회로가 작동할지 메이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메이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엄마와 길이, 그리고 메이가 세 점이 되어 삼각형을 이룬 가족이라는 모형이 제법 위로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물질적인 도움이나 일상에서의 대소사에 대해 조언을 바란 적이 없지만 메이가 벌어온 첫 월급으로 셋이 조그만 앉은뱅이 테이블에 양념을 잔뜩 바른 치킨을 놓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말없이 먹는 일상이 더없이 편안했다.

당연히 치킨을 가장 많이 먹는 건 길이었지만 오빠는 닭 날개나 닭다리를 잡으면 엄마와 메이쪽으로 슬그머니 옮겨주고 푸석푸석한 가슴살을 먼저 먹었다. 메이가 치킨의 바삭한 껍데기를 벗기고 속살을 꺼내 엄마의 앞 그릇에 놓아주면 엄마는 두 세점만 먹고는 “벌써 배부르다, 많이들 먹어.”하면서 살며시 뒤로 물러앉아 말없이 오누이가 치킨을 뜯는 모습을 구경했다. 마지막 치킨 한조각이 남으면 오빠는 치킨 뼈를 뜯으며 메이에게 눈빛으로 “니가 먹을꺼야?”라는 말을 건넸다. 그럼 메이도  “아 됐어. 배 불러. 오빠 먹어.”라는 말을 입 대신 얼굴 표정으로 대신했다. 마지막 남은 치킨 한 조각으로 싸우지 않고 서로의 의향을 묻는 일은 각자 대학 생활로 인해 떨어져 지내던 오누이가 몇 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만나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약간의 서먹함이 둘 사이에는 구세주였다. 오누이 사이에 예의가 가능해진만큼이나 할 수 없는 말들도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쌓일 수 있다는 것을 메이는 길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길이는 셋이 살던 투룸에서 짐을 빼던 날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메이는 저 인간이 절대 가족 걱정을 해서 표정이 안 좋을 재질은 아닌데 왜 저러나, 하고 퉁명스럽게 지나가는 말로 “제 좋은 장가 가면서 표정은 도살장 끌려가는 소같네?” 하고 걱정하지 않는 척 조롱하는 투로 물었다. “야, 엄마 해주는 밥은 눈치 보지 않고 먹어도 되지만 마누라 해주는 밥은 그렇지 않아. 게다가 이 집에서는 여자 둘이 날 먹여 살렸지만 이젠 내가 먹여 살릴 입이 두 개나 생겼잖니.” 메이는 이럴때보면 길이가 꼭 멍청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겉으로는 잘코사니를 부르며 “이제 곧 나이 서른이다. 스스로 뿌린 씨니 알아서 잘 책임지시고, 이젠 어엿한 가장이니 나와 엄마에게 엉켜 붙지 마라.”고 선을 그었지만 몇 달전부터 헤어지네 마네 고민하던 사이 덜컹 아이가 생겨 결혼하는 꼴을 보니 내심 짠하기도 했었다. 길이는 역시나 결혼하고나서도 독립을 하지 못했다. 엄마가 관절염으로 고생하기 전까지 모았던 돈의 절반을 떼어 길이에게 빌라 전세를 마련해주었지만 새 언니는 아파트 전세가 아닌 것에 불만인지 행여 얼굴을 마주할 때면 어딘가 샐쭉해있었다. 출산을 하고 나서는 출산축하금을 길이에게 보내주었고 돌은 또 돌이라서 엄마와 메이 둘 다 돌 반지를 선물해줬건만 새언니는 길이와 통화할 때 옆에서 지나가는 말로 “감사해요~”라고 한마디를 했을 뿐 엄마와 메이를 집으로 먼저 초대한 적이 없었다.

결혼 초에 엄마가 길이네 집에 가서 손녀도 봐줄 겸 임신한 새언니의 밥상을 차려줄 수 있다고 하자 눈치 없는 길이가 여과없이 새언니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부담스럽다네요. 차라리 혼자 고생하는 게 낫대요.” 엄마는 그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가족끼리 뭐가 부담스러워?” 길이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이어서 말했다. “가족은 엄마랑 나고요, 엄마랑 제 와이프는 이제 얼굴 익힌지 겨우 1년인데 어떻게 가족이에요. 저도 지금 와이프랑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인데요. ” 옆에서 듣고 있던 메이가 어쭈, 이놈의 길이 봐라, 장가가기 싫다고 징징댈 땐 언제고 벌써 완벽하게 와이프에게 길들여졌네, 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 말때문에 섭섭해진 엄마가 길이의 문자를 일주일은 씹었지만 그뿐이였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쌍둥이를 키우며 어느 정도 배짱이 두둑해졌으니 일주일정도는 아들의 문자를 씹을 수 있는 것이지 메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엄마는 아들의 못난 그 어떤 것도 차마 씹어내지 못했다. 어릴 때야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지만 길이가 키 178에 건장하게 커가자 미리 엄마는 아들을 쳐다보면서 듬직하다고 자주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길이는 셋이서 치킨을 같이 뜯어도 닭 날개와 닭다리는 와이프와 아이들 앞 접시에 먼저 놔줄 것이라는 걸 알아버리자 메이는 그건 당연한거라고 머리로는 수긍이 되면서도 낯설고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메이는 길이가 분가한 후 엄마에게 얼른 짝을 찾아 결혼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러면서 정작 메이에겐 통금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밤 10시전에 매이가 귀가하지 않거나 행여 전화를 받지 않으면 엄마는 걱정에 못 이겨 길이까지 동원해서 전화를 여러 통 하기가 일쑤였다. 이럴 땐 또 오빠랍시고 엄마 걱정하지 않게 일찍 다니라고 제법 잔소리를 하는 길이가 눈꼴 시려워 “속도위반을 한 주제에 잔소리 할 자격은 돼?”하고 비아낭거리면 오빠라는 자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지지 않고 침착하게 응수했다. “그러게 우릴 봐봐, 뜨거운 한 낮에도 모텔은 항상 젊은 체력을 위해 열려있다. 굳이 밤 10시 이후까지 만나면서 엄마가 걱정스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거 그건 불효지.”

메이가 밤 10시 이후에도 귀가하지 않는 건 주로 같은 어학원 동료들끼리 분위기 좋은 바에서 마시는 술 한잔의 재미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메이를 춘매라고 불렀지만 어학원에서 춘매의 이름은 메이었다.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어학원에 중국어 강사로 합류할 수 있었던 건 메이가 꾸준히 20대 초반부터 10년을 이 바닥에서 뼈를 굳힌 덕분이었다. 춘매의 중국어 이름은 춘메이였으므로 춘매는 교포 영어 강사가 데이비드 오, 라고 호칭하듯이 명함에 자신의 이름을 메이,리 라고 적었다. 이름만으로 자신의 존재가 훨씬 더 세련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메이는 출신도 상하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하이에 있는 꽤 괜찮은 대학을 나왔음으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렇게 상하이 출신 메이, 리는 밤 10시 이후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어 강사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일상과 사고방식, 가치관을 들었다. 덕분에 메이는 영어도 많이 늘었고 춘매의 마인드와 멘탈을 메이의 세련된 방식으로 빌드업 할수가 있었다. 강사 중 아무도 메이에게 애인은 있는지, 결혼할 의향은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적이거나 예민한 질문을 하지 않고도 유쾌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았다. 설령 누군가가 먼저 가족의 얘기를 해도 그들은 진지하게 들을지언정 참견과 판단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 강사가 엄마아빠는 아직도 결혼 등기를 하지 않았고 연애중이라 하자 강사들의 반응은 “와우, 로맨틱!”이 전부였다. 무자녀부부나, 법적 책임 없는 동거연인이나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각자에게 맞는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메이가 위드 맘, 이라고 말했을때 강사들은 탄식과 감탄이 절묘하게 섞인 요상한 신음소리를 냈고 메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오해들 하지 마시라고, 딸이 엄마로부터 독립을 못한 게 아니라 엄마가 딸로부터 독립을 못한것이라 첨언했다. 강사들은 아시아 문화는 그런 게 있지, 하고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이 문제를 꽤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샌프랜시스코에서 왔다는 영어강사 로건이 “그럼 결혼을 해야만 독립하는거야?”하고 묻자 다른 강사들이 “우~~”추임을 넣으며 메이를 독립시키고 싶은 부담감이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부추겼다. 로건은 노노, 자신은 독신주의라고 손사래를 쳤고 메이는 “어쩌면 나도”하고 얇은 미소로 대답했다. 강사들에게 엄마가 딸로부터 독립을 못한 것이라고 말한 날 메이는 술을 잔뜩 마셨고, 그래서 대리기사를 불러 겨우 집까지 왔다. 밤 12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메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이 놈의 지지배 어디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하며 휘청거리는 메이를 침대에 눕히고 양말을 벗겨주는 동안 메이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좋았다. 아침에 엄마가 끓여준 해장국을 먹으면서도 메이는 전날 엄마의 체취와 보살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아직까지 독립을 못한 건 엄마가 아니라 메이일지도 몰랐다. 프랑스 강사 쟈드가 말하길 프랑스에서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성인이 되는 순간 독립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부모 옆에 있는 동안은 보살핌을 받기도 하지만 더 엄격히 말해 독립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덕분에 그들에게 서로와 떨어져 지내는건 그립고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쟈드가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거라며 메이에게 자라오는 동안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메이는 한참을 매운 주꾸미를 씹으며 골몰히 생각에 잠기다가 대답했다. “엄마는 너희 때문에 사는거란다.” 

쟈드는 “오!”하고 예상밖이라는듯 얼굴을 찡그리더니 엄마에게 자식 외의 삶은 없냐고 물었다. 과부 혼자 쌍둥이 둘을 키우는 삶은 너무 버거워서 다른 어떤 삶도 끼여들 수가 없었을 거라고 메이가 영어로 또박또박 말하자 쟈드는 이내 쏘리, 하면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는 친한 언니들의 일상을 엿보며 결혼한 딸과 친정 엄마의 관계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얼핏 알고 있었다. 그들은 육아에 지쳐 여전히 친정엄마를 필요로 했다. 엄마의 육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자 했고 정작 값비싼 국산 소고기는 본능적으로 먼저 아이의 입에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면 친정엄마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은 자식을 언제 몸져누울지 모르는 엄마보다 더 애틋하게 느끼곤 했다. 이건 그냥 인간의 본능이고 인간사의 섭리라고 하니 메이는 그런가보다, 머리를 주억거리면서도 길이처럼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한다거나, 삼십내 중반의 나이에 어느 남자에게 한눈에 뿅 가서 결혼 이후의 삶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데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용기와 체력이 남아돌지 않는 자신은 피동적 독신주의라고 정의했다. 엄마는 메이에게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효도라고 말하지만 장작 결혼하면 엄마와 보내는 시간도 적고 마음의 많은 자리를 길이처럼 새로운 가족에게 점령당해 엄마가 설 자리가 턱없이 줄어들어 현실적인 효도가 힘들어지면 섭섭함과 상실감은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걸 미처 모르고 있는 듯했다. 물론 메이가 지극한 효녀라서 엄마때문에 결혼을 꿈 꾸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요즘 것들의 결혼은 예전과 달라 엄마에겐 한없이 불리해보였다. 엄마 때의 결혼은 위로는 부모에게 잘 효도라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잘 키우기로 사생결단을 하면서 이 한 몸 성냥개비처럼 까맣게 태울 준비를 하는 신고식이나 다름없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이 과연 개인에게 득이 될지, 삶이 질적으로 향상될지를 고민하고 선택한다는 것을 엄마는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메이는 엄마에게 신용카드를 맡겼다. 그리고는 다리 아픈 엄마가 굳이 무거운 식재료들을 사서 빌라 3층에 있는 집까지 들고 올라오지 않도록 인터넷 쇼핑도 가르쳐주었다. 엄마는 메이의 신용카드로 식재료를 사서 냉장고에 넘치도록 밑반찬을 차곡차곡 쌓아 놨고 메이가 퇴근해 일찍 집에 온 날은 옥수국수며 가지 밥같은 연변 음식도 곧잘 만들어 놓았다. 엄마는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마다 손바닥만한 노트에 일일이 그날 쓴 금액을 적었다. 딸의 돈이 자신의 돈보다 더 소중했던 엄마는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매달 정해놓은 식재료값보다 돈에 조금 남아돌 때는 월말마다 메이 모르게 손자손녀의 간식거리나 길이의 보양식을 쇼핑해서 오빠의 집으로 배송했다. 메이의 핸드폰 앱에는 실시간으로 결제 내용이 뜨기에 메이는 모를 수가 없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엄마는 어릴 때처럼 택배를 배송하고는 어김없이 길이에게 문자를 했을 것이다. 춘매에게는 비밀이야, 라고. 언제나 오빠를 더 챙긴다고 생각하는 메이가 섭섭해할까봐 엄마는 더 신경 써서 메이를 챙기는 대신 메이는 모르는 쪽을 택했다. 메이도 그런 엄마에게 화도 나고 섭섭했던 적이 꽤 있었지만 서른이 넘어 심적 여유도 생기면서 노인에겐 변화되길 바라지 말고 섭섭함을 느끼는 주체인 자신이 바뀌는게 훨씬 빠르고 현명한 방법이란걸 터득했다. 

길이는 가족 셋이 모인 단체대화창에 매일 손자손녀의 영상을 한두개씩 발송했다. 손자 손녀가 보고싶다고 극성인 엄마를 위해서였다. 메이와 함께 살면서 한달에 한번 정도만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길이 집에 가서는 고작 몇시간을 머물거면서 사비를 털어 아이들 간식거리와 아들 며느리의 보양식까지 들고 가는 엄마때문에 메이는 여전히 종종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길이에게 애들 데리고 엄마 보러 니가 오라고 소리를 꽥 지르면 길이는 메이를 노처녀 하스테리라고 놀렸다. 엄마도 아들 집에 와보고 싶어하는데다 새언니는 육아때문에 힘들어서 주말에 어딜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그러는건데 뭐가 문제냐고, 아직 결혼 안한 메이가 뭘 몰라서 그런다는 투로 길이가 말하던 날 메이는 몇 달을 벼르고 벼르던 중고차를 구입했다. 메이는 엄마가 지금이라도 아들에 대한 그 놈의 바보스런 짝사랑을 그만두고 남은 생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이 세상에는 자식이라는 존재 외에 돌고래나 꽃같이 걱정에 종일 저당 잡힌 마음을 잠시 풀어줄 동식물도 있고 등산이나 뜨개같이 가성비가 좋은 취미도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물론 메이가 생각했던 이러한 것들은 엄마에게 추천해 줘봐야 기껏 계란 흰자위에 해당하는 들러리겠지만 그렇게라도 관성처럼 자식에게만 향하는 엄마의 노른자같은 마음의 지분은 작아져야만 했다.

메이는 간만에 휴일을 맞아 바라던대로 엄마를 설득해 처음으로 폭스바겐을 타고 아쿠아리움에 갔다. 전통시장 수산 가게에 있는 해산물보다 훨씬 많은 고기 양에 엄마는 세상에, 하고 혀를 끌끌 차며 넋을 잃은 듯 커다란 수조속 해류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아이처럼 손가락으로 처음 포인팅한 물고기는 비단 잉어였다. 

“얘는 연길에서 왕쑤네 집 가삿일을 할 때 봤던 놈이야. 그 집 어르신이 커다란 수족관에 넣고 키웠던 것 같아. 색깔이 하도 요란해서 신기했더랬지. 반짝반짝 황금색이었어. 집에서 이런 물고기를 키우면 돈이 더 들어온다고 하길래 역사나 돈 많은 집이 돈을 부를 줄 아는구나 싶었다니까.” 

메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비단 잉어를 원하면 우리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 뭣하러 이제 와서 이런걸 키워. 엄마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련없이 비단잉어 곁을 떠났다. 정작 엄마가 꼼짝 않고 수조에 붙어 가만히 지켜본 바다 동물은 블루탱이었다. 엄마가 5분 넘게 보고있었지만 블루탱은 수조 밑바닥에 가만히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거여?”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메이는 처음 보는 아쿠아리움의 낯선 바다물고기에까지 걱정을 철철 흘릴 정도로 엄마의 걱정은 너무 오래되었고, 과하게 발달되었으며, 심지어 오작동할 때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메이는 수조를 몇 번 퉁퉁 치다가 옆에 붙어있는 설명문을 읽었다.
“블루탱은 편안하게 쉬고 있는거래. 자주 그러나봐. 자고 있는 거니까 수조를 톡톡 치지 말래.”

엄마는 메이의 설명에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블루탱이 다른 물고기들처럼 활발하게 유영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시름을 놓겠다는듯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메이는 아직 펭귄과 고래, 바다거북이같은 희귀동물들을 마저 구경하자고 엄마의 손을 잡아 끌었고 그제야 엄마는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지만 이내 돌고래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말의 아쿠아리움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인들은 표고버섯 모양의 투명한 보름달물해파리 앞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보호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다니거나 수달을 구경했다. 그 틈에서 메이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이마가 볼록 튀어나온 프론토사와 신체의 일부가 잘려도 쉽게 재생된다는 투명하도록 하얀 우파루파, 그리고 실제로 전기를 뿜어낸다는 전기뱀장어를 보여주었다.  모든 바다 동물을 구경한 뒤 표정이 훨씬 밝아진 엄마를 보며 메이는 안도했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마치 아이에게 묻 듯 오늘 아쿠아리움에서 본 물고기 중에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팔자 좋은 블루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야.”
그 대답을 하고 엄마도 웃었고 듣고 있던 메이도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메이의 옆 좌석에 앉아 잠깐 코를 골며 달게 주무셨다. 그러다 앞차가 갑작스럽게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메이가 급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자 엄마는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더니 스쳐지나가는 말로 “우리 춘길이도 아쿠아리움에 가봤을까?”하고 물었다. 그때는 메이가 빨간 신호등에서 잠깐 차를 멈췄을 때였다. 메이는 창의력과 성의라고는 없는 길이가 매번 새로운 연애를 할 때마다 비슷한 데이트 장소에 여친을 데려가는데 그 중 빠질 수 없는 장소는 아쿠아리움이였으며, 매번 아쿠아리움에 가서 여친 발 밑에 무릎 한쪽을 굽히고 앉아 최대한 여친의 단신이 길어보이도록 사진을 수없이 찍어대면서도 정작 엄마는 단 한번도 아쿠아리움에 가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 적도 없다는 점을 엄마에게 누누이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생각은 뻔한데 표현을 안하는 것뿐이라고 굳건히 믿었다. 근거 없는 믿음과 시도 때도 없이 자라는 잔 근심은 엄마의 삶의 근간인 것 같았다. 메이는 대답대신 직장에서 만난 외국인 동료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엄마, 있잖아. 직장에 로건이라는 미국인 남자가 있거든.”
“오 그래? 몇 살인데? 너 좋대?”
“아니, 그냥 동료야. 로건의 엄마는 매주 월요일 독서 모임에 가고 연애도 한대. 로건이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관심이 생겼다며 한인타운에 가서 한복도 직접 사다 입고 사진도 찍었더라고. 엄마도 이런저런 취미생활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 있으면 배우는 건 어때? 죽기 전에 꼭 하고싶은 일 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씩 해보는 것도 좋고.”

메이의 말에 엄마는 대답없이 잠자코 듣고 있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춘매야, 혹시 결혼을 하자고 하는 남자가 외국 사람이니? 직장에 외국 사람이 많다길래 어쩌면 우리 딸이 엄마를 떠나 외국에서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늘 했단다. 우리 딸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외국이라도 보내줘야지 어쩌겠어.”
메이는 아직 남자친구도 없다고 잘라 말하고는 빨간 신호등이 걸리자마자 차를 세우고 생각에 잠겼다. 엄마의 말투는 전혀 아쉽지 않았으므로 자식 사랑이 남다르다 자부하던 엄마의 어떤 기분과 감정에서 기인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한달에 한번, 길이 집에 가는 날이 오면 며칠 전부터 길이가 좋아하던 밑반찬을 만들고 손자손녀의 먹거리들을 준비하며 분주히 보냈다. 메이는 엄마가 그러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게 안쓰러워 차를 마련하기전까지는 전철역까지만 바래다주고 길이에게 문자했다.
“엄마 출발. 40분뒤 화곡역 3번 출구로 나와 카드 찍는 곳에서 엄마 픽업해. 또 한 보따리 들고 간다.”

집에서 밥 먹을 일이 거의 없이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길이는 엄마가 만든 밑반찬을 먹기 어렵다고 초반에 분명히 말을 했음에도 엄마는 주말에라도 먹으라며 고집을 부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새 언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엄마가 그 집을 떠난 뒤 밑반찬들은 며칠 간만 냉장고 안에 예의상 머물다 곧 새언니가 음식물쓰레기로 폐기할 것이란 걸 메이는 길이와 새언니의 표정을 엇갈아보며 진작에 눈치챘다. 아들 집인데 한달에 한번, 딱 정해진 세번째 주일에만 갈수가 있다니, 처음에 엄마는 이같은 사실을 통보 받고 화병이라도 올 것처럼 드러누웠지만 하늘같은 아들의 설득에 애써 마음을 풀었다. 평일은 새언니 혼자 육아한다고 힘들다보니 토욜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쉬는 날로 정했고 주일은 아이들 데리고 가족끼리 문화생활도 좀 하고 한달에 한번은 처가집에서 놀러 오고 또 한번은 시집에서 놀라오는 걸로 정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바쁜 거 아시잖아요, 엄마. 화 풀어요.”
“그러게 며느리가 육아하는게 그리 힘드니 내가 봐준다니까.”
“에잇 엄마. 부담스럽게 왜 그래요.”
길이가 허허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엄마 속을 쿡 쑤시길래 옆에서 듣고 있던 메이도 그 싫다는 장가를 억지로 가더니 길이가 제대로 불효를 시전하는구나, 싶었다. 
“같은 가족끼리 뭐가 그렇게 부담스러워?”
엄마는 여전히 같은 가족끼리, 에 대한 미련과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결혼을 하는 순간 지난 인생을 낯도 코도 모르고 지내던 배우자 쪽의 가족과도 당연히 가족이니 잘 지내보자는 마음가짐을 왜 며느리는 갖지 않는지, 그저 며느리가 의뭉스러워보였다.
“며느리는 참……하이고..하여튼 특이해.”
“엄마, 오해는 마시고요. 워낙 친해지는게 느린 사람이라 지금도 매달 한번씩 보면서 친해지려고 노력 중이잖아요. 와이프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친해져야죠.
“그렇게 천천히 친해지다가 이 에미는 다 늙어죽겠다.”

메이는 옆에서 짐짓 엄마의 눈치를 보았지만 대놓고 엄마 편을 들지도 못했다. 노처녀라는 말을 백번 넘게 들어도 메이에겐 결혼은 그저 신기루같은 것이고, 설령 결혼까지 한다고 해도 처음 보는 시어머니에게 아이고, 어머니, 아무때든 편하게 우리 집에 놀러오셔요, 하면서 싹싹하게 대할 자신도 없었다. 어쨌든 엄마는 한달에 한번이라도 아들과 손자손녀 얼굴을 보고싶었음으로 아쿠아리움에 다녀온 그 다음주에 길이네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메이는 엄마를 태워 직접 길이네 집 앞까지 모셨고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빌라 앞에 마중 나온 길이는 매일 강도높은 업무와 간헐적 육아로 피곤했는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차를 스윽 훑어보더니 “야, 조카들도 좀 태워줘. 드라이브 30분만 해주면 애들 금방 잠들 것 같은데.”하며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애인이 생기면 차가 데이트 장소로 보이고 애 아빠가 되면 차가 애 재우는 도구로 보인다더니, 메이는 혀를 끌끌 차며 못 들은 척을 했다. 집 앞까지 왔던 김에 기어코 들어오라고 해서 메이는 못이긴 척 엄마와 함께 길이의 집에 들어섰다. 아침에 부랴부랴 얕은 화장을 한듯한 새언니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식탁에 미리 준비해놓은 다과를 꺼냈다.  엄마와 새 언니는 예의상의 싱거운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엄마는 본격적으로 도망치는 손주손녀들을 억지로 껴안고 할매야,할매~그새 잊었나 하면서 말을 걸어봤지만 둘은 금세 엄마 품에 스며들었다.  새언니는 걸상 위에 앉아 말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메이는 문득 저번 달, 그 저번 달도 엄마 혼자 길이 집에 왔을 때 분위기가 이랬을까 싶어 살짝 빈정이 상할 것 같았다.

“새언니, 많이 바쁘신가봐요? 간만에 어머님이 오셨는데.”
새언니는 민망한 듯 얼굴을 들며 기분 나빠하지 않고 사근사근 말했다.
“점심식사는 배달을 시키려고 메뉴를 보고 있었어요. 뭐가 좋을까요?”
메이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주문할꺼면 먼저 손님들의 취향을 물어보고 배달 앱을 보는게 순서가 아닐까 싶었다.
“새언니는 뭐 드시고 싶은데요? 지금 보고 계시는 메뉴는 뭐에요?”
“아, 저랑 남편은 마라샹궈가 땡겨서 마라샹궈를 미리 결제했어요. 어머님과 아가씨 메뉴는 따로 주문하려고요.”
메이의 눈썹이 움찔 올라가는데도 엄마는 미동이 없었다. 어느 정도 새언니에게 적응한 듯한 표정이었다.
“저도 마라샹궈요.”
“아, 네..”
새언니의 표정이 살짝 샐쭉해지다가 이내 평온하게 바뀌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새언니가 마지못해 어머님에게 뭘 드시겠냐고 물었다.
“아가야, 나도 마라샹궈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단다.”
엄마의 말에 메이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럼 오늘은 모두 마라샹궈로 하지요. 결제 취소하고 다시 주문하면 되겠네. 우리 와이프는 또 어머님이 매운 음식 잘 못 드실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배달 시간을 줄이려고 우리걸 먼저 주문했나봐요.”
길이가 모두의 표정을 한번 스윽 스캔하며 혼자 머쓱한 듯 하하하 웃었다. 
“애들은 뭐 먹냐?”
엄마는 손자손녀 생각에 들고 온 보따리를 풀었다. 길이와 메이가 아이었을때 잘 먹었던 찹쌀전과 한입에 쏘옥 들어가는 팥 넣은 작은 만두와 윤기가 차르르 도는 가지 밥이 식탁 위에 놓이자 한번 스윽 훑던 새언니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어머님, 너무 감사해요. 아이들이 어머님 만든 음식을 잘 먹더라고요. 이거면 며칠은 전 애들 밥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 쉴 수 있겠어요. 남편 반찬은……남편이 먹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냥 남편 반찬 대신 애들 반찬 더 만들어주 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거침없는 새언니의 말에 메이는 그동안 몇 번 보지 못한 새언니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새삼스레 궁금해졌다.
“에미 마음이 어디 그러니. 아들도 챙기고 싶지. 아들이 안 먹으면 며느리가 먹으면 되잖니.”
엄마 말에 새언니는 공손하게 웃으며 받아 쳤다.
“어머님~아들을 주려고 만든걸 며느리가 먹으면 어머님 마음이 어디 편하시겠어요.”
“뭐 어때~다 가족..”
엄마는 또 가족을 입에 올리려다가 이내 뒷말을 삼켰다.
“엄마, 새언니는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새언니 것도 반찬 좀 하면 되지. 사실상 집에만 있는 건 새언니인데 애 보면서 세끼 해결하는게 쉽겠어?”
그제야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
“아이고~내 정신 봐라. 그래 며느리는 뭘 좋아하지?”
바싹 말라붙었던 분위기가 메이의 말에 다소 누그러뜨려졌다. 메이는 마라샹궈가 오는 동안 조카의 말이 되어 네 발로 바닥을 누볐다. 마라샹궈가 문 앞에 배달되자 엉덩이 가볍게 일어나 익숙한 솜씨로 테이블에 마라샹궈를 세팅한 건 길이었다. 엄마는 먼저들 먹어, 하며 뛰어다니는 손자 손녀를 한놈씩 붙잡아 입에 계속 먹을 것을 넣어주었다.
“아이고~요놈들 언제 커서 어린이 집에 가겠니~”
엄마 말에 새언니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음달부터 갈건데요.”
“아직 아기들인데 벌써?”
엄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게 내가 봐준다니까! 이 어린것들을 마음 아프게 벌써..”
메이가 옆에서 엄마 옆구리를 툭 쳤다.
“요즘은 만 두살이면 어린이집에 다 보내요. 0세반도 있는데요 뭐. 연년생 애 둘 혼자 보기 얼마나 힘든데 이제 만으로 두 살, 한 살이니 보내도 되죠 뭐.”
길이도 지지 않고 새 언니 편을 들었다.
“아이고, 할머니 입장에서 신경 쓰여 한마디 한 건데 재빠르게 와이프 편 드는 것 바라. 난 그냥 오빠인데도 섭섭해지려고 하네.”
메이가 엄마 편을 들며 슬쩍 껴들자 길이는 나 몰라라, 무표정하게 마라샹궈를 우적우적 씹고 있었고 새언니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이들이 잠든 오후에 메이와 엄마를 바래러 밖에 나온 길이는 우는 표정을 하며 둘에게 굽신했다.
“엄마~누이동생아~나도 다~먹고 살자고 하는 노릇이니 좀 봐줘 응? 우린 가족이잖아~”
“그쪽은 가족 아니야?”
“가족이 되어가는 중.”
길이가 얄미워서 메이는 주먹으로 과한 액션을 하며 길이의 배를 내리치는 척했고 길이도 크게 맞은 듯 꼬꾸라지는 시늉을 했다.
“하여튼 요즘 젊은 애들 결혼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차에 올라탔다.

귀갓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임영웅의 트로트를 들었지만 엄마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지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문자가 울리는 소리에 빨간 등에서 멈춘 메이가 확인해보니 길이었다.
“누이동생아, 차 산거 축하해! 기념으로 다음달 이 시간엔 차에 엄마랑 니 오라버니랑 조카들 태우고 야외로 놀러가지 않을래? 엄마는 손주손녀랑 마음껏 친해지고 우리 마누라는 혼자 집에서 푹 쉬고 우리 가족끼리 친목도 도모할겸 너무 좋다, 그치?”
“이런 여시같은.”
메이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여전히 창 밖을 내다보는 엄마의 옆모습을 보고는 “어.”한 글자를 보냈다.
“그대는 그저 빛. 그나저나 우리 엄마에게 깜찍한 강아지나 한 마리를 사드릴까? 요즘은 강아지가 자식들보다 더 효자라잖아.” 

메이는 길이에게 중지 표시의 “ㅗ”자를 하나 보내고 핸드폰 알람을 껐다. 내일이면 메이는 또 프로패셔널하게 보이는 풀메이크업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혼자 40분동안 비즈니스 중국어 강의를 하는 영상을 찍어야 한다. 현장 강의와 인터넷강의를 병행해서 인지도를 더 올려 스타 강사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는 메이는 그 꿈만큼이나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주말마다 엄마를 폭스바겐에 태우고 다니면서 보여줄 세상을 꼼꼼하게 핸드폰 메모지에 적어가고 있었다. 옆 의자에 기대 곤히 잠든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메이는 다음주에는 여자들의 일생을 주제로 토론하는 간담회에 함께 가도록 어떻게 엄마를 설득할까 잠깐 고민에 잠겼다. 엄마는 끝까지 메이의 가장 사랑하고 애틋한 엄마였지만, 지금과는 다른 엄마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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