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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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닥쳐오기 전 해, 2019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동포밀집지역 한국여성단체와 동포사회가 함께 기념행사를 개최하면 좋겠다는 교류가 있어 사전 회의가 있었는데 도무지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중국에서 생활해온 동포들은 축제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평등을 위해 싸우는데 무게를 두고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투쟁을 벌일까 하는 토론이 위주였다. 

한쪽은 축제, 다른 한쪽은 투쟁. 수화상극처럼 도무지 어울릴 수가 없어 공동행사개최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지구촌에서 세계 여성의 날(3.8국제부녀절)을 가장 성대하게 기념하는 집단은 중국 조선족사회일 것이다. 간략해서 3.8절이라 부르는데 산재지구든 연변에서든 3.8절이면 각종 축하공연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연변에서는 3.8절이면 각종 축하공연은 물론이고 남자들이 여성들을 위로한답시고 며칠 동안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긴다. 남자의 명절인지, 여성의 명절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관변 축하공연이든 민간축하공연이든 또 남자들이 여성을 위로하는 술상이든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말이 있다.
‘여성은 꽃이라네.’

최근 몇 년래 재한조선족사회도 먹고 살만 하니까 3.8절이면 남녀들이 끼리끼리 모여 술상을 벌이고 노래방에 가서 ‘축하’하고 많은 예술단체에서도 축하공연을 하는데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와 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타향’에서 살면서 예전에 고향에서의 향수를 즐기는 것은 고달픈 타향살이를 달래는 ‘보약’이다.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조선족 여성들은 이렇게 3.8절이 오면 꽃이 된다. 

한편 여성을 꽃이라 함은 여성이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워서라고 알고 있고 또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아니 보편적인 수준을 넘어 거의 100%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믿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역사문화적인 유래를 알고 나면 그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믿음이 산산조각이 날 터, 여성들이 한껏 부풀어 오른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확 퍼부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이 글을 쓴다. 
비유는 두 가지 비교대상 사이 상호 유사성을 갖고 있을 때 성립된다. 
“아무개는 원숭이 같다.”
라고 할 때 아무개의 생김새가 원숭이와 비슷하다든지 행동거지가 원숭이처럼 날렵하다든지 상호 공통적인 유사성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줄여서 ‘유사 공감’이라고 한다.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여성과 꽃 사이 유사 공감성이 있기 때문인데 그 유사성이 꽃이 아름답고 여성이 아름다워서 공감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의 외모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화장법이 발달하고 복식문화가 발달한 이후 생겨난 것이지 여성이 태초부터 외모가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동물세계를 보면 수소가 암소보다, 장끼가 까투리보다, 수탉이 암탉보다 외모가 훨씬 아름답다. 인간도 마찬가지. 선천적으로 남성의 외모가 여성보다 훨씬 멋지다. 

그런데 세계 신화역사를 살펴보면 여성신이 먼저였다가 부계시대에 진입해서 여신을 지우고 남신을 세우고 돋보이게 하는 작업이 창궐했다. 중국에서는 여성인 여와와 서왕모가 남신보다 훨씬 앞섰다. 여와의 외모는 개구리와 비슷하다는 것 말고는 별로 전해진 것이 없어 어떤 형상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 비해 서왕모의 외모는 구체적으로 전해 내려온 탓에 형상을 알 수 있다. 표범 같은 사나운 얼굴에 집채 같은 몸집, 팔은 코끼리 다리처럼 굵고 다리는 천년 묵은 아름드리 나무통을 연상케 했다. 한 번 소리 지르면 천지가 진동했다고 한다. 이런 여인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역사적인 흐름으로 말하자면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여성과 꽃 사이 외모가 공통분모가 되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과 꽃 사이 또 다른 강력한 유사 공감이 생겨난 공통분모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산성이다.

인류가 대략 1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짓기 전에는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했다. 채집의 대상은 주로 열매였고 열매는 꽃에서 맺어진다. 즉 꽃이 열매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또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의 다수(복숭아, 살구, 사과, 배, 토마토, 앵두)는 생김새가 외형상 여성의 음부와 비슷하다. 아이는 열매와 비슷하게 생긴 곳에서 태어난다. 
여성의 이 생산성 때문에 여성을 신으로 받들었고 여신이 남신보다 앞선 것도 역시 여성의 생산성 때문이었다. 

원시시대 자연재해, 질병, 전쟁 등 때문에 인류의 생존율이 15% 정도이고 평균수명이 15~20세 미만이었다. 씨족, 부족의 생존확보를 위해서는 아이를 많이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이를 많이 생산할 것을 기원하는 것에서 생식숭배문화가 생겨났다. 생식은 여성이 한다. 고로 여성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모계시대라고 하는 것은 생식숭배문화가 모든 사회현상을 지배했던 사회였고 생식

숭배문화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아이가 나오는 음부를 숭배하여 음부와 외형상 닮은 자연물에 눈길을 돌리고 다산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녔다. 제사는 자연물의 신력(神力)이 인간의 몸에 전이되어 다산이 이루지기를 기원하는 행위이다. 대표적인 식물은 복숭아였다. 서왕모가 3천년 묵은 복숭아를 음부에 넣었다가 남자들에게 먹이면 강력한 정력제였다든가, 남자가 아내를 잘 만난다든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을 도화운(桃花運)이라고 하는 것, 진사(鎭邪) 부적에 도목을 사용하는 것 모든 행위가 생식숭배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 생명력이 눈에 띠는 것이 약하다. 동물이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체의 상징이다. 그래서 여성의 음부와 심통하게 닮은 조개에 제사를 지냈다. 조개껍질이 인류의 최초의 화폐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 생식숭배문화와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물고기도 숭배의 대상이었다. 두 마리 잉어를 포개놓으면 여성의 음부와 비슷하고 물고기는 역시 다산의 상징이다. 연년유여(年年有餘)는 본래 연년유어(年年有漁)였다. 풍족하다는 여(餘)와 물고기 ‘어(漁)’는 중국어에서 같은 발음이다. 물고기가 많다는 것은 자손 대대로 번창한다는 뜻이다. 왕비가 타는 가마를 ‘어가(漁架)’, 연애편지를 ‘어서(漁書)라고 하는데 생식숭배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부위의 숭배로는 다산의 결과를 이루는데 한계가 있었다. 한 걸음 더 진화하여 개구리가 숭배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개구리는 하루아침 봄비를 맞아 수천수만의 알을 생산한다. 다산의 상징이다. 중국최초의 여신의 이름이 여와이며 그녀는 만인의 어머니로서 다산의 상징인데 개구리의 화신이다. 또 한 걸음 더 진화하여 달을 숭배의 대상으로 꼽았다. 달이 이지러지고 차는 것은 여성이 임신하여 배가 차고 생산한 후 이지러지는 것과 비슷하고 여성의 생리주기도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주기와 심통하게 닮았다. 그래서 여성의 생리를 월경, 월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류의 생식숭배문화는 오랫동안 지속해왔고 수많은 문화가 이로 인하여 파생되었다. 현대사회에서도 모계시대 잔재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자녀의 성이 아버지를 따름에도 불구하고 성이라는 글자는 여전히 여성이 생산한다는 의미를 지닌 姓을 사용한다든지, 보통 고모보다 이모와 더 친하거나, 친삼촌보다 외삼촌과 허물이 없거나 하는 등등의 현상은 역시 모계문화의 잔재 표현이다.   

3.8절이면 여성을 여신이라고 높이 받들고 심지어 여신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생식숭배문화의 잔재의 표현이다. 아울러 여신이라는 표현은 다산숭배문화에서 생겨난 것인데 요즘 세월에 아이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는 여성은 절대 신이 아니다. 고로 3.8절을 여신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어폐가 있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3.8절의 유래는 여성노동자들의 인권과 빵을 위해 싸운 데서 생겨난 것이지 여성이 아름다워서 찬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여성이 아이를 생산하는 신적 기능을 찬미하여 여신으로 받들기 위해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을 꽃이라네.’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여신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사실상 되게 웃기는 일이다. 

그렇긴 한데 하도 3.8절이 오면 ‘여성을 꽃이라네.’와 아무 여성이나 신이 되는 것처럼 여신절이라고 떠들어대기에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 여신의 유래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맘으로 이 글을 써보았다.    

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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