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 시인
이문호 시인

내 고향엔
이 세상에 오길 바라지 않았던
달갑지 않은 체내 애들이 있었어요
말순이, 개순이, 땡순이
이름을 이렇게 지으면 
다음엔 꼭 아들을 낳으리라고

그런데 그들은 꾀나 깜찍하고 
예뻣어요
나는 그 애들과 휩쓸려 즐겨 놀았어요
또깝살이, 나물캐기,돌각담에서 숨박꼭질을
내가 도깨비 달밤에 춤추듯 오줌을 갈기면
갸들이 조롱조롱 모여와
내 꼬쟁이를 구경하군 했어요
- 야, 너는 왜 서서 싸니 ?
- 너희들은 왜 앉아 싸니 ?
누구도 의문을 풀지 못 했어요 
아라사 병정 같은 털보
말순이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야, 고거 까 불에 구어 술안주 할까
허리춤에서 칼 꺼내는 시늉하면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달아 나군 했어요
말순이가 옆에서 웃으면
너도 하나 달고 나올 것이지 핀찬 주며
서글퍼 하셨어요
몰라요 왜
달린 것을 좋아하고 
안 달린 것을 싫어 하는지를

그걸 모를 때가 참 좋았어요
점차 셈이 들어가면서
체내 애들은 나를 만나면 부끄러워
말도 잘 안하고 멀찌감치 피해 다녔어요
이상하지?
내가 왕가네 누렁개도 아닌데 …

후에 생각하니
체내 애들이 무었이든 빨리 아는가 봐요
나는 어리숙 했거든요
그런데 나도 셈이 좀 들어 은근히
마음 가는 체내애가 있었어요
그 애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매일 되지 풀 뜯으러
나물 캐러, 땔 나무 주으러 다녔어요
얼굴엔 허연 버즘이 끼고
목에는 때가 재질재질 했어요
고운 얼굴이 숯덩이 같았어요
대추씨 같이 야무져도
자칫하면 어머니가 신경질이 나
끄데기를 잡고 때리기도 했어요
- 안 나올 것이 게 나와 가지고 …하며
그러면 말순이는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나는 그 체내애가 불쌍해
학교에서 오는 길에
바자 굽에 숨어서 훔쳐 보군 했어요
때로는 기운 바가지로 
되지 물을 퍼 주군 했거든요

내가 부모 따라 도시의 교외로
이사 오구부터 만나지 못했어요 
밤이면
꿈결에 찾아가도 만나지 못했어요
깨여나면
베개는 눈물에 젖어 있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희미하게 잊어졌어요
늙으면서
까마득해 졌어요
그런데 
상해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고향집 국수집에 몇 번 갔댓는데 
주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알았어요
- 야, 너 그럼 말순이가 아니니 ?!
- 야, 너 쇠지구나 ?!
하하, 우리는 부둥켯어요
다 늙은 것이 애들같이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붓고 마시며 숱한 말들이 오고 갔어요
술 한 잔에 몇 십 년 세월이 오고 갔어요
무수한 세월에 걸어 온
수많은 애락이 담겼어요
한잔의 술을 꿀꺽 목에 넘기듯
한 생도 그렇게 빨랐어요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했을
체내가 걸어온 애달픈 이야기
밤 가는 줄 몰랐어요

상해는 졸음 겨워 졸고
우리는 옛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기나긴 길을 걸어
추억은 상해로 오고 있었어요
눈물겹고 섪어도
이야기는 즐거웠어요 …

2010 상해에서

후기;
남존녀비는 우리 민족의 열근성으로 농경문화에 근원을 두고있다.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에 들어 서면서 여성들은 사회적 위치가 높아졌다
이 시는 무지몽매한 과거에 대한 역사의 증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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