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김화숙 시인의 신간 시집 '날개의 예의' 중 대표시 10수를 선정해서 싣는다. (편집자)

김화숙 시인 약력 1963년 심양 출생. 1986년 사평사범학원 정치계(철학학사) 졸업. 1986년 ~ 1999년 길림조중 근무. 1999년 일본 이주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연변작가협회 회원.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이사.2014년 월간 「문학세계」신인문학상. 2015년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2020년 「동포문학」10호 해외문학 작가상 시부문 최우수상. 2020년 「도라지」해외조선족 문학상 수상.시집 「아름다운 착각」(2015), 시집 「빛이 오는 방식」(2017),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2019), 시집「날개의 례의」 연변작가협회 계획도서에 선정(2022).
김화숙 시인 약력 1963년 심양 출생. 1986년 사평사범학원 정치계(철학학사) 졸업. 1986년 ~ 1999년 길림조중 근무. 1999년 일본 이주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연변작가협회 회원.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이사.2014년 월간 「문학세계」신인문학상. 2015년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 부문 대상. 2020년 「동포문학」10호 해외문학 작가상 시부문 최우수상. 2020년 「도라지」해외조선족 문학상 수상.시집 「아름다운 착각」(2015), 시집 「빛이 오는 방식」(2017), 시집 「날개는 꿈이 아니다」(2019), 시집「날개의 례의」 연변작가협회 계획도서에 선정(2022).

바위채송화


오래된 성이라고
옛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노인이라고
낡은 얘기만 하는 거 아니듯이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오늘이 첨 사는 날인건
마찬가지
성벽 틈새로 날아와
이슬 먹고 피어낸
노오란 말씀
신의 메시지 

 

젖어 살자


사지가 늘어진 시금치를 
찬물에 담가놓으니
파랗게 다시 일어선다
하물며 내가 시금치만 못하랴
욕조에 물을 받아
시금치 되어 들어가 앉는다
마른 나무뿌리 같던 
손끝 발끝을 거쳐 온몸으로
물기가 촉촉이 스며든다
악착스러움이 빠져나간 틈새마다
그리움이 눈물처럼 고여
숲속 안개처럼 금세 자욱하다
살아있는 동안 젖어 살자


흔들리는 달


강물에 빠진 달은
순간의 고요함을 모른다
흔들리고 출렁이고
끊임없이 불안하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깨지고 부셔지고
그러면서도 흩어지지도 못해
다시 몸서리치며 모인다
강물 속 달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몸도 흔들리고
부셔지고 또 모인다
강물은 흘러가는데
달과 나는 흘러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출렁일 뿐이다
그런 나와 달을 
교교한 달빛이 안개처럼
감싸주지 않았다면
나는 울었을 것이다.

 

향기 있는 삶


꽃 진 자리 위에
열매 동글하게 들어앉는다
엉덩이 크게 넓히며
열매 둥글게 무르익는다
열매는 죽은 꽃의 봉분
우린 그 봉분을 먹는다
살아생전 향기롭던 꽃
죽어서도 달콤하고 그윽하다
향기롭게 살 일이다.

 

날개의 예의


쫓으려 하지 않았는데도
산책을 하다 보면
비둘기며 까마귀며 참새며
날개를 가진 것들은
다가가면 본능적으로 날아오른다
잠시 멈춰서 올려다보니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아서는
머리만 갸웃거릴 뿐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더니
파다닥거리며 한 말씀 하신다
허공이 날개의 것이라면
땅은 다리의 것
너에게 길을 내주는 건
두려워 피한 것이 아니라
날개 없는 너의 다리에 대한
나의 예의일 뿐이야.

 

내 삶의 이유


아기 웃음처럼 핀 벚꽃을
순식간에 쓸어가 버리는
저 냉정하고 엄한 손을 보라
그 손이 지켜주고 있는 난
얼마나 축복받은 생인가
그 손이 되어 
내가 살펴 지켜야할 존재
채송화며 고양이며 
가족이며 이웃들이 있다
그가 나를 보살피듯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
내가 살아가야하는 이유다.


소쇄하다


가는 봄 잡느라
오는 겨울 막느라
한 해 헛되이 바빴다

돋아나 꽃피울 때까지 백 년
창자마저 텅 비운 채
청정하게 살아가는 대나무처럼
남은 생 짧을지언정
물어뜯고 뜯기는 세상을 피해
푸르게 직립할 수는 없을까

살포시 눈 감으니
울산 갈대숲 일렁임이
물결 되어 나를 삼킨다


물감


겨울 햇볕 아래
동백나무 붉게 서있습니다
어지러이 
널브러져있는 꽃들
동백나무 그리다
흘린 물감 같습니다

흠칫 주변을 둘러봅니다
나를 그리다 흘렸을
물감의 색깔이 
궁금해졌습니다.

 

날개가 허공을 지킨다


수백 마리 새의 무리가
일제히 날아오를 때 '후욱' 하며
하나 된 새들의 날개가
허공을 들어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
새들이 보이지 않을 때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면
'후욱'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때가 있다
내 시선이 도달하지 못한 곳에서
수많은 날개들이
허공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날개들의 수고에 
허공이 존재하고 나도 산다.


꽃은 귀가 없다


꽃은 조용히 핀다
들꽃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산야를 점령할 수 있는 건
그의 조용함 덕분이리라
사람들이 덥다고 아우성 칠 때도
연꽃이며 배롱나무며
여름꽃은 활짝 피어도 조용하다
꽃은 입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귀도 없는 것 같다 
소리가 아닌 고요함을 먹고
향기로 뱉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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