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흑룡강성 철려시 출생. 연변 작가협회 회원.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요녕성 조선족 문학회 이사. 연변문학, 국제시단 등 문학지와 중국 잡지에 中韓文으로 시, 수필 발표. 번역시집(공역) 《취객》과 중문시집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1976년 흑룡강성 철려시 출생. 연변 작가협회 회원.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요녕성 조선족 문학회 이사. 연변문학, 국제시단 등 문학지와 중국 잡지에 中韓文으로 시, 수필 발표. 번역시집(공역) 《취객》과 중문시집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1.압록강 갈대

 

흐르는 강물 바라보며
한없이 그리움 흔드는
압록강 갈대여

강에서 물장구치는
벌거숭이 아이들 보며
추억을 잘근대는 갈대여

물동이 이고 가시는
저 흰 저고리의 할머니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아주머니를
부르시는걸가

햇볕은 괜히
어부들 살결만 새카맣게 태우는데

강물 우를 자유로이 날아예는
흰 두루미는
갈대의 소원이라도 전해주렴아

 

2.엄마

 

양태머리 땋아주던 
섬섬옥수는 어디 가고 
감자 껍질처럼 터실터실한 
엄마 손

바람과 함께 
치렁치렁 어깨 위를 넘던
숱 많은 머리채는 어디 가고 
흰 머리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바람 불어 눈물 나네

나와 남동생, 
손녀와 외손자의 요람이었던
새우 등처럼 휘어진 엄마 등

들국화 흐드러진
밭두렁을 오르시는 우리 엄마,
내딛는 걸음 걸음마다 
풀무치 소리가 귀를 찌른다 

 

3.잉태

 

꽃 사이를 서성이던 벌은
말없이 꽃의 옷고름을 풀었다
 
바람이 꽃을 흔들어도
벌은 흔들리지 않는다
 
꽃의 몸부림에 취한 벌
자리 떠 또 어디로 가는 걸까
 
꽃은 가슴을 여미며
말없이 숙연해진다
 
씨앗은 그저 맺히는 것 아니다
꽃의 아픔이다.

 

4.우담화
  

삼천년에 한번 찾아왔구나
별들이 잠 든 사이
하얀 면사포 쓰고
  
그 몇 시간의 만남을 위해
긴 긴 세월
혼신을 불태웠다
  
밤을 환히 밝혀놓고
소리없이 떠난 그 자리
체취만 남아 전설을 이야기하는데

 

5.첫사랑
 

첫사랑 그 남자는 바보 멍청이였다
 
편지지 한 장도 채우지 못한
쑥스러운 고백을
책속에 몰래 끼워놓고는
이름자도 변변히 밝히지 못한
등신 쫄보였다
 
저녁자습 후 학교 뒤 
벤치에 불러놓고도
우물쭈물 말 한 마디 못한 채
사감선생님께 들켜버린
벙어리 천치였다
 
영화구경 가서도
손 한번 잡아볼 줄도 모르고
공원에 가서도 뽀뽀 한번 시도할 줄 모르는
얼간이 병신이였다
 
맑은 물이였다
티없이 순수한
 

6.쌓인 눈

 

가득했는데
어느새 말끔히 비워졌다
말끔히 비웠는데 
어느새 가득했다

채우지 못해 
용을 쓰는지
비우지 못해 
어깨가 처지는지

무거운 발자국만 
어디론가 뻗어 있다

 

7.노을을 마시며
 

창가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에 시집 한 권
노을 불러 들여다 본 시 한 줄
시어들이 스멀스멀 꿈틀대며 
춤을 춘다
 
손을 살살 간지르다가
심장을 콕콕 찌르다가
커피잔에 뛰어들기도 하고
 
노을과 시어들이
잘 섞인 커피 한 모금 마시면
손끝에서 또 다른 시어가 
발레춤를 춘다 

 

8.바다이고 싶다
 

바다처럼 가끔은
애교가 넘치는
여자이고 싶다
 
바다처럼 화날 땐
포효하면서
스트레스를 걷어차고 싶다
 
바다가 되어
거칠 것 없는 배낭려행도
훌쩍 떠나고
 
지치고 힘들 때
어머니 자궁처럼 품어주는
항만도 가지고 싶다
 
흰구름 몇 점과
갈매기 몇 마리 날려
둥실 두둥실 몹시 설레는
그런 바다이고 싶다

 

9.다듬이소리

 

토닥토닥 긴긴 다듬이소리에 
하얗게 발가락까지 쭈욱 편 이불보
빨래줄에서 해빛 들이켜느라
하염없다

저 다듬이의 토닥거림에 
흘러가는 흰 구름도 
그렇게 주름 하나 없이 
펴질 수 있을까

맞는다는 게
이토록 의미심장하다는 걸
다듬이돌은 늙어가면서 
알았을까

구겨지며 펴지며
세월의 주름마저 두드려
싱싱하게 살아날 수 있을까 

 

10.신발

 

아침 산책 나간 신발 안에 
어느 에 들어온 모래알 
발바닥을 콕콕 찌르기도 하고 
발가락 이에 끼여들기도 한다

산책 나가면 
드문드문 모래알과 만나는 발 

웃음꽃 피여나는 날에도
눈비 내리는 날 잊지 말라는 
무언의 계시 같아 
발바닥 찌르는 모래알이 정답다

 

11.고향집 돌절구
 

진눈깨비 빈 콩깍지처럼 흩날리는
고향집 부엌 모퉁이에
절구공이를 팽개친 돌절구가
홀로 앉아 무슨 생각에 잠겨있다
 
새벽마다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절구 소리
절구와 공이의 입맞춤소리
사라진지 오래 
 
머리에 대야 이고
검은 치맛자락 휘날리며
시린 새벽 별밭 밟으며
장마당에 찰떡 팔러 다니시던 엄마도
어느새 곱사등이 되셨다
 
해빛에 그을리고
비바람에 할퀸
저 돌절구의 깊은 속내
상처투성이마다 숨 쉬는 그 사연들
 
고향집 돌절구는
오늘도 명상을 찧고 있다


12.낙수물 소리 

 

뚝,뚝.....
 
지붕을 뚫고
천장으로
도둑처럼 침입해
뚝,뚝.....
 
어릴 땐
천장이 무너질까 봐
마음 졸였지

천둥 번개와 싸우던 밤
길기도 했지
 
이제는 가고 없는
비 오는 날이면
음악처럼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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