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80년대 초중반 장춘에서 공부하면서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아 34전짜리 캉스푸(康師傅)를 질리도록 먹은 이후 고향 연변에 돌아와서 가끔 한해 한두 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먹었다. 라면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한 한국에 와서도 역시 한해 한두 번 정도 피치 못할 상황에서나 먹는다. 이렇게 라면을 멀리하는 내가 라면 관련 글을 쓴다는 것은 실로 웃기는 일이지만 글쟁이는 우연한 기회에 글감을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 편의 글을 생산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법. 

나에겐 수년래 자주 만나 밥 먹는 친구들이 있다. 매번 때가 돌아오면 뭘 먹어야 하나? 고민이다. 못 살던 세월에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아주 행복하게 먹었는데 요즘은 음식이 너무 풍부해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큰 고민거리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때가 오자 역시 뭘 먹어야 하나? 넷이서 시비가 오갔다. 양꼬치는 너무 자주 먹어서 싫고, 불고기나 샤부샤부는 더워서(그날 기온은 26도) 싫고, 오리고기가 맛은 있는데 가게 거리가 멀어서 패스하고, 이래저래 한참을 고르고 골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누가 예전에 없었던 일, 한 마디 던졌다.
“아예 라면이나 끓어먹지 뭐.”
두 사람 찬성표를 던지는 바람에 나의 의견만 남았다.

나는 라면을 싫어하지만 셋이 먹자고 하는데 나만 딴소리 하면 분위기에 초를 치는 것 같아 그냥 머리를 끄덕이고 말았다.

라면을 선택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고 또 다른 한국인도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었다. 얼마만큼 한 시간이 지나면 라면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 절대다수 한국인들의 음식 취향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지구촌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한다. 통계가 말해준다. 국민 1인당 5일에 한 번, 1년에 80번 먹는다.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인구가 4,500만 명이라면 1년에 36억 개 라면이 소비된다는 얘기이다. 

한국은 라면왕국답게 오뚜기, 너구리, 신라면, 삼양, 배홍동, 안성탕면, 팔도, 김치라면, 짜파구리, 불닭볶음, 틈새, 왕뚜껑 등등의 종류가 많고도 많다. 한국라면은 중국을 비롯해 지구촌 수많은 나라에 수출된다. 얼핏 보면 라면의 원조가 한국이라고 여겨질 지경이다. 그러나 라면의 원조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이 원조이지만 오리지날 일본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대만계 일본인 모모후쿠(安藤百福)라는 사람이 1958년 8월 25일에 국수를 기름에 튀긴 라면을 개발했다. 라면 나이가 만 65세이다. 당시 라면은 본래 면발이 가는 중국음식으로 ‘납면(拉面)’이라 불렸는데, 면발이 굵은 일본의 ‘라멘’으로 바뀌었고, 면발을 기름에 튀긴 인스턴트 라면이 현재 한국의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라면 원조가 아닌 한국이 지구촌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일 것이다. 한국라면은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맵고 얼큰한 것이 특징이고, 라면은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냉수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이치우는 민족은 백의민족밖에 없다. 우리 세대들이 어릴 때 밥 먹을 때면 부모들이 빨리빨리 먹으라고 닦달한다. 백의민족은 무슨 일이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밥도 중국인처럼 먹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먹었다는 결과에 치중하고 비중을 둔다. 라면이 곧바로 먹었다는 결과에 가장 잘 부응 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가 짱이다.

라면은 이렇듯 시간도 줄이고 먹었다는 결과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식으로서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음식인 라면은 한 사람이 홀로 끓여먹을 때에만 ‘간단’이 성립되나 여러 명, 셋 이상이 모여서 끓여먹을 경우 말이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가장 간단해 보이는 라면이 가장 복잡한 음식이라는 얘기이다.
우선 무슨 라면을 살 것인가부터 시비가 오간다.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라면은 신라면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삼양라면이 더 좋다고 하거나 어떤 이는 얼큰한 김치라면을 선호한다. 컵라면이냐, 봉지라면이냐? 선택의 문제도 있다. 시비 끝에 겨우 하나로 합의를 보았다.

다음 시비는 몇 개를 끓일 것인가이다. 1인당 한 개면된다는 주장, 한 개 반(1점5개)은 먹어야 한다는 사람, 두 개를 추가해서 골고루 한 개 반 씩 먹자는 사람, 양이 너무 많으니 한 개를 더 추가하면 된다는 사람. 실로 각양각색이다. 
끓이는 방식에도 의견이 다르다. 국물을 좋아하니 물을 많이 넣자는 사람, 소스를 많이 넣으면 짜니까 절반만 넣자는 사람, 라면은 짭짤한 맛에 먹는 것인데 소스를 3분의2는 넣어야 한다는 의견, 가지각색이다. 
라면 끓일 때 계란이 필수이다. 적어도 라면 한 개당 계란을 한 개는 넣어주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 계란을 많이 넣으면 느끼하니까 한두 개 적게 넣어야 한다는 주장, 각자 요구가 다르다.

푹 끓일 것인가? 흐드러지기 전에 살짝 끓일 것인가가 또 시빗거리이다. 한 사람은 살짝 꼬들꼬들한 맛을 좋아해서 다 끓이기 전에 미리 자기 몫을 퍼낸다.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던 사람 왈, “라면이 가장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했는데 이렇게 복잡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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