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중경제무역촉진협회 조병인 회장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2009년 방한 당시 조병인 회장(좌)을 접견했다.
2009년 12월 18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방한 당시 조병인 회장(좌)을 접견했다.

사단법인 한중경제무역촉진협회 조병인 회장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지난 4월 4일 점심, 신사동에 위치해 있는 그이의 사무실에서다. 

구내식당에서 무공해 웰빙 요리로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 한잔을 나누며 담소를 나눴다.

2006년 4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실질적인 경제 교류와 분야별 연구 사업을 통해 국가에 공헌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을 설립해 "중국 32개 성, 시와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해온 조병인 회장은 1970년대에 벌써 중국 관련 석사 논문을 써낸 중국 전문 1호 학자이다. 그동안 조병인 회장은 중국 각지 고위층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중문화예술교류, 경제무역교류, 신기술 교류" 등을 위해 열심히 뛰어왔다. 

그는 국내 체류 중국 동포가 100만 가까이 된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며 중국 동포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아래는 조병인 회장과의 일문일답. 

조병인 회장, 이수성 대한민국 국무총리(좌)와 함께 기념사진 남기다. 
조병인 회장, 이수성 대한민국 국무총리(좌)와 함께 기념사진 남기다. 

기자: 고생 많으십니다. 국내 체류 중국 동포들에 대해 인사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조병인 회장: 저는 2000년 초부터 중국을 오가며 한중경제 친선교류에 힘을 써왔습니다. 

조상님들이 일제의 등쌀에 못 이겨 한반도를 떠나 중국으로 이주를 해서 피눈물로 이주의 역사를 써왔지요.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이들 후손이 다시 우리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정착해 살면서 우리 국민과 함께 행복한 삶의 터전을 열심히 닦아가고 있지요. 상전벽해라더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그래서 어렵게 다시 만나고 재회한 만큼 조상의 땅 대한민국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그럴 자격과 권리가 있습니다. 

기자: 먼저 부탁할 한마디가 있다면? 

조병인 회장: 호칭부터 잘 썼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란 호칭을 썼지만, 한국에서는 중국 동포, 또는 중국교포라고 호칭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서는 55개 소수민족 중의 한 민족이니 그렇게 써도 무방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스스로 "중국 동포", "중국교포"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호칭해야 존경을 받을 수가 있어요. 중국 동포들은 "미국교포", "일본교포"와 무슨 다른 점이 있어요? 그들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요? 잘살든 못살든 우리의 조상은 같고 한 핏줄입니다.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떳떳하게 생각해야 떳떳하게 일을 할 수가 있고, 타국에 나가 있는 우리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대우를 잘 받을 수가 있습니다. 

기자: 혹시 "청년 경찰" 영화를 보셨나요? 많은 내국인이 중국 교포들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는데, 무엇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병인 회장: 중국과의 역대로 내려온 냉전 문제, 중국에서 살아온 안 좋은 문화풍속문제, 한국 문화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 등, 일일이 말하자면 길지요. 그러나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동포 스스로가 빨리 변해서 한국문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솔직히 대림동을 중심으로 중국 집거 지역에 대해 많은 내국인들이 불안해하거나 안 좋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한국에 온 것은 정말 돈 벌어 잘 살자는 게 목적이 아닌가요?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내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운 문화생활도 하고 한국의 선진문화를 습득해서 자유롭고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정치"한답시고 주먹을 들고 자꾸 데모하는데 나가고 대한민국에 자꾸 불만을 쏟아놓게 되면 누가 좋아하겠니까? 물론 우리 동포들에 대한 잘못된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건의를 제기하고 항의할 권리가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불만스러운, 안 좋은 이미지로 굳어지면 동포를 배척하는 내국인들이 점차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대부분 동포들의 국적이 중국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잘 준수하고 내국인들의 정서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살기 편해집니다. 

사단법인 한중경제무역촉진협회 조병인 회장과 본지 이동렬 대표(좌). 
사단법인 한중경제무역촉진협회 조병인 회장과 본지 이동렬 대표(좌). 

기자: 국내 체류 중국 동포들의 직업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병인 회장: 초창기에 한국에 들어와 기피 업종에만 종사하던 1세대 중국 동포들은 뒤로 물러나고, 유학을 왔거나 기타 재능이 있는 1세대 자제분들이 체류 거주하고 있다보니 당연히 직업도 다양해지고 있고, 점차 우리 중국 동포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류사회가 되어가고 있지요. 그만큼 중국 동포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국 동포들은 한국과 북한, 중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훌륭한 인적네트워크도 갖고 있지요. 한반도가 요즘 갈수록 대립모드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동포들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중국 동포들은 한반도의 통일에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 동포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할을 인지하고 내국인들도 우리 동포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있도록 잘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국 동포들은 통일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기자: 소중한 시간을 내주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중국 동포들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 또 찾아뵙겠습니다. 

조병인 회장: 네, 언제든지요. 감사합니다.   

 

조병인 회장 
-現 '대한민국 한-중 경제무역촉진회'(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직속) 회장이다.
-조 회장은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한국 정부를 대표해 중국 측 리샤오린(李先念·이선념의 조카)과 한중 경제무역전략협력협정을 체결했다.
-1992년 말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최형우(내무부 장관)의 보좌관(장관급)으로 재직했다.
-한국 정부와 한국 측 기업을 대표해 여러 차례 중국에 가서 중국과 협의했다.
한국 현대자동차가 중국에 진출할 때 조 회장은 한국 측을 대표해 베이징 측과 담판을 지었다.
-한국농심공사가 상하이에 진출할 때 조 회장은 한국 측을 대표해 상하이 측과 담판을 지었다.
-조회장은 한국을 대표해 광둥(廣東)성 왕양(王洋) 서기와 한·중 경제무역전략협력협정을 체결했으며,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양제츠 부장은 광저우(廣州)로 건너가 조회장 등을 만나 '한·중 우호교류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조 회장은 최근 몇 년 간 '대한민국 한중우호협회' 회장을 맡아 왔다.
-조 회장은 수십 년간 한국 정부를 대표해 '한·중 우의' '한·중 경제·무역·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힘써 왔다.
-장쩌민(江澤民) 주석(1995년), 리톄잉(李鐵英·2002년), 시진핑(習近平) 부주석(2009년), 탕자쉬안(唐家访) 등 중국 고위 인사들이 방한할 때는 대부분 조회장이 배석·상담을 맡았다.
-다른 예로 광동경찰청이 경남경찰청과 자매결연을 맺을 때 조 회장은 한국 측을 대표해 중국 측과 협의·서명했다.
-길림성과 강원도가 자매결연 관계를 맺을 때도 조 회장은 한국 측을 대표해 중국 측과 협의하고 협약을 맺었는데, 조 회장은 2022년 11월 랴오닝(周寧)성 한국주간 상담행사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한국 측을 대표해 랴오닝(宁寧)성 국영기업과 여러 건의 한·중 경제무역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등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조 회장은 최근 몇 년 간 '한국의 4차 산업 관련 프로젝트 중요 기업'을 대표해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 계약을 맺었다.
-2023년에는 '한국 포스코'를 대표해 리튬전지 관련 협상을 위해 중국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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