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문단의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경화의 소설세계를 들여다 본다.
-아래 글은, 조선말 맞춤법대로 씌어졌습니다. (편집자)

김경화 프로필  
1978년 청산리 출생.
중단편소설 60여편, 수필 다수 발표.
연변일보해란강문학상, 도라지소설상, 민족문학 년도상, 연변문학 소설상 등 수상.
전국제8차청년작가창작회의 참가, 2019한중일청년작가회의 참가, 로신문학원 41기 중청년고급연수반 수료.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국작가협회 회원 . 
소설집 ‘적마, 여름 지나가다’
장편소설집 ‘눈부신 날들’ 출간, 

단편소설

1. 낙타에게 묻지 마라 

 

여자가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여자의 두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다. 한참 토악질을 하고 난 뒤라 위가 쓰리고 목구멍이 얼얼하다. 손가락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걷어내고 여자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이 깔깔해 깜빡거려본다. 오른쪽 눈은 이제 아무리 깜빡거려봐도 물체가 부잇하게 보인다. 가슴을 부여잡고있는 여자의 오른손은 파랗게 피줄이 서있다. 손에 물만 묻혔다가 털고 여자는 거울속의 자신을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과도한 약복용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놓는다.

여자가 일을 시작한다. 혼자서 수동과 반자동을 번갈아가며 하는 작업이다. 오른손으로 작은 부품을 집어들고 작업대우에 놓여진 본체 하나를 왼손으로 잡은 다음 오른손 식지와 검지로 부품을 본체 구멍에 끼여놓는다. 설비에 넣고 스타트버튼을 누르면 부품끼리 맞물려 안착이 되는것인데 작업은 여기서 끝이다. 똑각 소리와 함께 자동차에 들어가는 커넥터 하나가 만들어지는것이였다. 단순한 작업이다. 산업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 사람의 손을 통해서야만 이뤄질수 있는 작업들이 많고 그것들은 이렇게 단순한 수백수천번의 작업경로를 통해 하나의 완제품으로 만들어진다. 가끔 일을 하다보면 자신은 거기 없고 어떤 무의식에 의해 손만 거기서 익숙한 동작을 반복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기계가 되어가는게 아닌가 느껴진다. 여자는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단순작업이기에 그만큼 생산량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냐고 물으면 멋모르는 사람들은 품질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건 생산량이고 미친듯이 일에 매진해 남보다 많은 생산량을 내야만 살아남을수 있는게 생산직이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렇다. 여자는 이 사실을 그동안의 한국생활을 통해 깨달았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이 커넥터가 자동차 어디쯤에 들어가 어떤 작용을 하는것인지, 어떤 자동차에 들어가는것인지 여자는 알지 못한다. 아니, 종래로 알려고 한적도 없다. 알아야 할 필요성도, 알아야할 리유도 알지 못해서이다. 여자가 이 회사에 취직한건 불과 석달남짓밖에 안된다. 여자는 중국동포3세이다. 재외동포f4비자를 소지한 여자는 비자문제로 그동안 여기 저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왔었다. 재외동포취업제한이 풀려 생산직에 취업이 가능하게 되자 고정된 일자리를 찾아 신문을 뒤져보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에서 구인광고를 찾아보았다. 몇군데 전화를 넣고 몇 번의 희망과 실망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여자는 일이 손에 익을만하자 미친듯이 일에 매진했다. 쉬는 시간에 종이 울리고나서도 일이분씩 더 일을 했고 종치기전에 미리 일을 시작해서 했다. 잠간의 멈칫함도 없었다. 마치 일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여자는 죽기살기로 매달렸다. 기존에 근무하던 동료들의 눈길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신입인 여자가 자기들보다 생산량을 많이 낸다는건 오랜 시간 이 일을 해온 그들한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였고 참을수 없는 그 무엇이였으며 아울러 곧 닥쳐올 상사의 압력이였다. 그러니 여자의 이런 행동이 미움을 사는건 당연한 일이였다. 대놓고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었고 들으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명희언니는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니야?"
갓 입사했을때 같은 연길이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주었던 미미다. 여자보다 세 살 아래라고 했던가. 언니라고 부를게요. 하면서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던 그 미묘한 표정을 기억한다. 미미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여자를 빤히 쳐다본다. 여자는 그 얼굴에 넋을 뺏긴다. 그 얼굴은 젊고 윤기로 가득차있다. 나한테도 저런 얼굴이 있어본적 있던가. 이쁘지도 개성있지도 않은 그 평범이하의 얼굴을 여자는 홀린듯 바라본다. 

"언니같은 사람만 있으면 회사 사장이 춤추겠어. 같이 일하는 사람은 힘들어죽을테지만."
말꼬리가 진하게 그려진 미미의 아이라인만큼이나 한껏 올라가있다. 넋놓고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여자를 가볍게 무시하고 미미는 여자를 스쳐 지나간다. 여자는 멀거니 미미의 뒤모습을 바라본다. 미미가 지나간 그 자리에 남겨진 진한 향수냄새가 여자를 서글프게 한다. 시큰해나는 어깨를 느끼며 여자는 다시 일을 한다. 내게 타인의 시선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따위것들. 그게 내게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여자는 스스로 자신은 감성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받을만한 말랑한 마음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료들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체념하는 눈치다. 여자는 서서히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여갔다. 마치 오래전 여자의 남편이 직장동료들로부터 고립되였던것처럼. 하지만 여자는 남편과 달랐다. 여자는 절박했다. 더 이상 여자에게는 길이 없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퇴로가 있을리 없는것처럼 여자는 죽지 않으면 살겠지 하는 심정으로 이 삶을 버텨간다는걸 그들이 알리가 없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소통하는것 따위, 그 따위는 여자에게 하찮은것이였다.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여자가 생각하는건 오로지 그것이였다.
언제까지 일을 할수 있을것이며 언제까지 돈을 벌수 있고 아이가 언제쯤 혼자 살아갈수 있는 나이가 될것인지. 그때까지 살아서 이 삶을 버텨낼수 있을것인지, 여자가 생각하고있는 삶은 그런것이였다.
처음 메르스라는 호흡기질환에 관한 뉴스를 접했을때 여자는 무심했다. 고열로 시작되여 기침, 호흡곤란, 숨가쁨 등 증세를 보이다가 폐를 손상시키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이 질환을 여자는 어느 휴일날 오래되여 화질이 뿌연 자취방 텔레비를 통해 접했다. 오래만에 맞은 휴일이였다. 늦잠을 자고 시큰한 허리를 두드리며 먼지낀 리모콘을 눌렀던 날이였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저런것도 있구나 하면서 여자는 리모콘의 빨간 버튼을 눌러 텔레비를 껐다. 피곤했고 샤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했다. 그렇게 무심히 지난친것이였는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메르스라는 이 생소한 질병은 여자의 눈앞에 성큼 다가와있었다. 며칠새에 뉴스에서는 온통 메르스에 관한 보도뿐이고 환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있다고 뉴스채널마다 난리가 났다. 거기에 여자가 있는 이곳 평택은 메르스가 가장 엄중한 곳이라고 한다. 메르스환자가 처음 나온곳이 평택이고 그 환자가 직접 감염을 시켰는지는 확인할바 없지만 중요한건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있다는것이였다. 그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 접촉했던 사람, 탑승했던 버스, 모든게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 환자의 이동경로와 접촉했던 사람을 검출하는 일은 련쇄살인범을 잡을때보다도 더욱 치밀하고 떠들썩하게 진행이 되는듯했다. 
여자는 기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며칠전부터 몸이 지뿌둥 했었다. 목이 아프고 얼굴이 후끈거렸다. 손을 들어 이마를 짚어보니 뜨겁다. 여자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서랍을 열고 감기약을 찾다가 문득 메르스도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기침이 터진다고 했던게 떠올랐다. 
여자는 겁이 더럭 났다. 
서랍을 열어둔채 핸드폰을 끄당겨 인터넷에 메르스 하고 쳐봤다. 
최초의 메르스환자는 중동여행을 가서 락타시장과 농장을 방문하고 락타고기를 먹고 락타체험프로그램을 통해 락타와 접촉한 사람이라고 했다. 여자는 다시 전염병 하고 쳐봤다. 
전염병은 질병이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안 인류는 끊임없이 전염병의 도전을 받아왔다. 전염병은 병원체, 숙주, 환경 세 가지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병원체는 숙주인 사람과 접촉하여 감염 양상을 나타내는데, 병원체의 병원성과 독성 및 침입 경로 등 미생물의 속성, 그리고 숙주의 저항력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전염병의 증상 발현이 달라진다...

락타,

여자는 이마살을 쪼프렸다. 오래전 여자는 동물원에서 등이 릉선처럼 휘여진 그 동물을 본적 있다. 사막에 사는 동물이며, 등에 혹이 하나 있는 건 단봉락타, 두 개 있는건 쌍봉락타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던 기억이 났다. 철조망에 갇힌 그 동물의 순한 두눈과 여자의 두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알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눈빛이였다. 

여자는 마음이 아팠으나 그 아픔은 여자가 동물원을 절반쯤 돌았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게 다였다. 그 이후, 여자는 종래로 락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여자에게 그것은 저 하늘에 존재하는 별이나 달 같은 정도의 존재였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무엇이였다. 잠간 여자에게 아픔 비슷한걸 느끼게 했으나 그것 역시 찰나에 불과했다.

그 동물이 자신과 어떤 련관성이 있으리라는건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그것은 락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상하게 슬픈 눈이였어. 뭔가 느낌이 안좋았단 말이야. 왜 그때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거지? 아아 몰라. 여자는 머리를 흔들었다. 마치 머리만 흔들면 지금 여자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떨쳐버릴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여자는 아아 몰라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이불우에 쓰러진다.

까무룩, 여자가 잠이 든다. 
모든 것이 꿈이기를 ...
여자는 막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며 기도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메르스는 불과 며칠만에 태풍처럼 이 나라를 휩쓸었다. 학교는 휴강에 들어갔고 사람들은 이중삼중으로 차단기능을 갖춘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다닌다. 여자가 다니는 회사도 출근때 형식적이지만 열체크를 하고있고 열이 나거나 기침 등 증세를 보이는 사원들은 자진신고하라고 한다. 모든 것이 불과 며칠만에 일어난 일이다.
빌어먹을. 여자는 낮게 뇌까린다. 여자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죄다 방해만 하고 고통만 줄뿐이다. 이제 락타마저 날 괴롭히는구나. 여자는 머리를 흔든다. 머리가 어질거리고 정신이 흐릿하다. 권장된 량의 배가 되게 과다복용한 약물로 인해서이다. 출근때 열체크를 피해가려고 여자는 통근버스를 타기 직전에 권장량이 한알인 한국 해열제를 두알 먹었고 언젠가 갖고온 중국감기약을 먹었고 기침을 완화시키려고 중국에서 가져온 페니실린항생제를 먹었다. 무분별하게 먹어버린 약으로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간간히 손이 떨린다. 그나마 야간에 혼자 동떨어진 기계에서 일하는터라 남들의 눈을 피해 일을 할수 있는것이 불행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감기겠지...감기여야지.
여자는 중얼거리며 일손을 다그친다. 마음속에 엄습해오는 불안함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설마 내가 그 저주받을 병에 걸렸을가. 여자는 애써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만큼 여자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편이였다. 한적한 시골에서 병약하고 나이든 부모한테서 태여나 일찍 가난을 겪었으며 천성적으로 몸이 약해 오고가는 전염병이나 감기는 다 여자를 거쳐갔다. 어쩌구려 생활력이 없는 남자를 만나 고생이 한층 더 짙어졌으며 여자와 남편을 닮아 또래보다 약하고 작은 아이는 여자에게 한층 더 깊은 아픔이였다. 여자는 기침을 하고나서 주위를 둘러본다. 가래가 차오르면 화장실에 뛰여가 휴지를 둘둘 감아 코끝이 빨개지고 눈물이 나도록 코를 풀고 가래를 뱉어내고 다시 돌아와 일손을 재촉한다. 다 끌어내면 한참은 괜찮다가도 샘물이 솟듯 가래와 코물은 또다시 차오른다. 여자는 짜증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있다. 여자는 눈이 건조하다. 오른쪽눈에 한겹 막이 씌워진것 같이 느껴진다. 여자의 두눈은 빨갛게 피줄이 번져있다. 여자는 주머니에서 안약을 꺼내 고개를 젖히고 눈에 떨구어넣는다. 눈을 깜빡이자 안약이 슬며들면서 눈이 시리다. 
휴식시간을 알리는 노래소리가 울린다. 여자는 여전히 일에 매달려있다가 휴식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탁에는 동료들이 먹다남긴 과일이며 과자따위 주전부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여자는 컵소독기를 열었다가 닫는다. 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정수기우에 놓인 한모금종이컵을 하나 집어 물을 마시고 야식으로 나오는 빵과 우유를 하나씩 챙겨들고 식당을 나온다. 자신이 일하는 설비앞으로 와서 우유를 뜯어 마시고 푸석한 빵을 뜯어 입안에 넣는다. 우유가 여자의 입가에 허옇게 흘러넘친다. 여자는 황급히 손등으로 닦고 또다시 우유를 마신다. 또다시 우유가 입가에 넘쳐흐르고 여자가 다시 손등으로 닦는다. 
새벽이 다가오고, 푸르스름하게 동이 트더니 해가 뜬다. 하루저녁을 드디여 버텨낸것이다. 여자는 주섬주섬 정리를 하고 주저하다가 식당으로 들어간다. 동료들이 밥을 먹다가 힐끔 그녀를 쳐다보고 바로 외면한다. 여자는 죽과 반찬 몇 개를 집어들과 그들과 멀리 떨어진 식탁에 앉아 머리를 수그리고 숟가락을 집어든다. 아무도 여자에게 말을 걸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 죽이 너무 뜨거워 여자는 입을 벌리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다.
드디여 퇴근이다. 통근버스에 오른 여자는 통근버스가 출발하자 이내 잠에 골아떨어진다. 입을 크게 벌리고 여자는 고개를 뒤로 젖힌채 단잠에 빠졌다. 동료들은 그런 여자를 눈짓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빨갛게 깜빡이고 있다. 여자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늘 그렇듯 단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면 그래도 용케 도착역을 지나지 않은 지점이다. 입가의 침을 닦고 부스스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질하고 쿡쿡 기침을 한다. 그런 그녀를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곁눈질했다. 여자는 창밖을 내다보며 일부러 외면한다. 그런 시선따위 여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차에서 앉은 자세로 잠을 잔 탓에 어깨가 쑤신다. 여자는 오른손을 뻗어 어깨를 주무른다. 해빛이 내리쬐여 눈이 부시다. 열기로 입에서 단내가 난다. 여자는 지금 극도로 피로하다. 깨끗하고 포근한 자리에 누워 뽀송한 이불을 덮고 단잠에 빠지고싶다. 시시로 끓어오르는 이 열이 멈추고 이 기침이 어디론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면 살것만 같을텐데. 얼마전부터 시력이 저하되기 시작한 오른쪽 눈이 거짓말처럼 회복되였으면. 여자는 빨간 신호등을 응시하며 속으로 두서없이 기도한다.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이 모든게 치유되여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메르스가 거짓말처럼 종식되여버리면 얼마나 좋을가.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고싶다. 아니 바닥에 그대로 누워 잠들고싶다.
여자가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짜증난 눈으로 신호등을 바라본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조금 멈칫거리다가 차가 보이지 않자 여자는 붉은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를 그대로 건너간다.
함께 신호등을 기다리던 피부가 하얀 여학생이 힐끗 여자를 쳐다봤으나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못했을것 같은 하얗고 깨긋한 인상이나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이 여자와는 백팔십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걸 말해주고있었다. 그따위, 교양없다고 속으로 중얼거릴 그따위, 저런 개념없는 아줌마라니 하는듯한 눈빛, 그따위것들은 여자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여자는 다만 여자를 괴롭히고있는 열이나 기침이 지나가는 감기증세여서 자고나면 기적처럼 말짱해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하지만 여자가 고통을 느끼는것은 고열이나 기침이 다가 아니다. 이거라도 나아졌으면 하는것이지 그게 낫는다고 모든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을것임을 여자는 알고있다.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도 다는 아니다. 수술날자가 두달여 남은 녹내장수술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수술을 받지 못할거라는 두려움도 다는 아니다. 될수록 빠른 시일내에 수술을 해야 합니다. 지체할수록 상태는 악화될것이고 잘못하면 실명에 이를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자는 여자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듯 은근히 여자를 바라보며 낮으나 단호한 목소리로 수술을 권장하던 그 턱 선이 날렵한 의사를 떠올린다. 
그래서 어쩌란말인가. 차라리 나를 죽이시던가. 
이제 여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고통스럽게 여자를 조여가는 모든 상황들에 분노한다.
여자의 피로는 극에 도달해있다. 깊은 잠을 자고나면 나아질법도 하다. 오래동안 여자는 깊은 잠을 자보지 못했다. 시체처럼 잠을 자보고싶지만 몸이 피로할수록 잠은 오지 않는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도 소스라쳐 놀라 깨여나고 그때마다 쿵쿵대는 가슴을 붙잡고 여자는 가쁜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수면부족이나 피로도 여자의 고통의 전부는 아니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복합적인것들일수도 있고 그것 역시 다가 아닐수도 있다. 여자 역시도 여자의 고통에 대해 다는 알지 못한다.
여자가 초죽음이 될 때까지 야근근무를 반복한 삶이 8년 8개월이 되어간다. 가족을 두고 혼자 고국이라면 고국이고 남의 나라땅이라면 남의 나라인 이곳에서 기숙사와 고시원을 전전하며 혼자 사투를 벌이듯 버텨온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있는것이다. 처음에는 길어야 3년정도겠지 하고 시작한 이 생활이 시간이 길어갈수록 끝을 알수 없게 막막해지고있다. 아직 집을 살 때 대출받은 돈을 채 갚지 못한 상황이고 당뇨병을 앓고있는 여자의 남편은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고 초등학교를 다니고있는 여자의 또래보다 작고 마른 아들은 엄마가 돌아가 보듬어주기를 기다리고있다. 팔순의 노모는 이제 거동이 힘든 상태로 요양원에서 간병인이 떠먹여주는 밥과 반찬을 잇몸으로 우물우물 뭉개다가 넘기고있다. 형제자매가 있다지만 노모를 돌보는 많은 몫의 부담은 또 어쩌구려 여자의 몫이 되버렸다. 묵묵히 모든 것을 껴안고 말없이 감내하는 여자의 락타를 닮은듯한 성정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락타처럼 등에 숨쉬기조차 힘든 짐을 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고있다.
8년의 사투를 겪는동안, 여자의 몸은 허약해지고 아프지 않은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위는 헐거워져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하나 둘 흔들리던 치아들이 뭉텅이로 빠져버려 서른중반의 여자는 이제 채소나 과일도 씹기를 포기한지 오래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눈은 수술을 해야 하지만 남편의 치료비와 집대출금, 아이의 생활비와 로모의 양로원비를 떼내고나면 돈은 남지를 않는다. 어떤 방법도 없다. 밤낮으로 일을 하지만 여자가 벌수 있는 돈은 제한되여있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자연의 아침처럼 다가오는 송금날자를 지켜 돈을 보내는 이 버거움이란 말로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친척이나 친구들이 경조사라고 알려올때면 겁이 들다가 이제는 화가 난다. 여자는 핸드폰을 무음상태로 놓고 웬만한 전화는 받지 않는다. 받아봐야 도움이 될만한 전화는 없다는걸 알고나서부터이다. 그렇게 한동안이 지나자 이제 며칠이 지나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때가 많다. 사람들은 서서히 여자를 잊어가고있었다. 차라리 여자는 그게 좋다.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해 스스로 고립되는 쪽을 여자는 택했다.
때론 자다가 훌쩍 깨여났을때, 시커먼 어둠이 가슴을 조여오고 이 낯선 곳에 혼자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때 밀려오는 외로움이 여자를 못견디게 하기도 한다. 여자도 사람이였다. 한밤중에 자다가 깨여 엉엉 소리내여 운적도 있고 그저 눈을 감고 모로 누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적도 있었다. 울다가 지쳐 쓰러져본 사람이 아니면 고통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걸 합친다해도 전부는 아니다.

어떤것도 지금 그녀가 느끼고있는 이 고통의 근원을 다는 설명할수 없다.
메르스퇴치! 안심하십시오!
여러분곁에 저희가 있습니다.
평택시의사회. 

메르스,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수 있습니다.
평택경찰서.

메르스 감염예방, 수칙을 준수합시다.
의심환자 진료병원: 굿모닝병원. 박애병원
의심환자 신고: 평택보건소 8024-5559, 송탄보건소. 안중보건소. 
자주 손씻기, 기침시 입 가리기. 다중이용시설 방문 자제.
프랑카드들이 횡단보도와 전철역 입구에 여기저기 걸려있다. 

저기 말씀 한마디만 들어보세요. 관상이 복있게 생겼는데. 얼굴이 길쭉해 말상같은 여자 하나가 여자의 곁에 바싹 다가붙으며 말을 건넨다. 여자는 멀거니 올려다본다. 조상이 공을 들인 사람같아서. 여자의 눈길에 얼굴이 긴 여자가 말을 건넨다. 알수 없는 간절함이 배여있는 말투이다. 뭐하는 사람인데요? 여자가 노려보며 화풀이하듯 말을 뱉는다. 저기, 도를 전하는 사람인데요. 얼굴이 긴 여자가 웃는듯 우는듯 구분이 어려운 표정으로 말한다. 어딘가 주눅이 든 말투다. 훗훗, 여자가 경멸하듯 웃으며 외면한다. 여자는 자신에게서 광기를 느낀다. 순간적으로 여자는 자신이 두렵다. 얼굴이 긴 여자는 더 이상 따라붙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여자는 차갑게 그 머뭇거리는 얼굴을 스치고 돌아선다. 단호하고 단단하게 외면한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양복차림의키가 작고 말라 왜소한 남자가 십자가 교회건물이 커다랗게 찍힌 종이를 여자에게 내민다. 여자는 눈도 주지 않고 걸어간다. 
여자가 에스컬레이터에 탄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반대편에는 또 수많은 사람들이 내려가고있다. 반듯한 옷차림, 자유로운 옷차림, 늙었거나 젊은 그들은 마스크를 썻거나 손으로 입을 가린채로 올라가고 내려가고있다. 맞은편에서 기껏해 이십대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애 하나가 방실방실 웃으며 연신 옆에 선 남자애의 가슴을 건드리며 뭐라고 종알거리고있다. 여자애는 걱정이라고는 없는듯 해맑다. 그 모습에 여자는 까닭없는 분노를 느낀다. 아픔이 무엇인지, 가슴을 조이는 부담감이 무엇인지 모를 그 어린 여자애가 그녀의 고통의 근원이라도 되듯 여자는 치미는 분노에 몸을 떤다. 
역을 가로질러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건널목을 건너 골목길로 접어드는 동안 여자는 서서히 그 여자애에 대한 분노를 삭히려고 애쓰고있다. 한무리의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들며 지나간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크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다. 여자는 작고 마른 여자의 아이를 떠올린다. 
지금 여자의 몸에 끈적한 가래가 차오르고있다는것을. 고열로 여자의 겨드랑이가 후끈 달아오르고있다는것을,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기침이 목구멍을 간지럽혀 여자가 입을 꽉 다물고 가까스로 참고있다는것을 여자의 곁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수그려 환자가 아니면서도 환자같이 느껴지는 수많은 사람들곁을 마스크도 안쓴채 태연하게 지나가는 무표정한 얼굴의 여자가 실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열과 기침을 온몸으로 품고있다는것을, 가슴에 출처가 불분명한 화산같은 분노를 품고있다는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할것이다. 

계단을 오르고 방문앞에 멈춰서 비밀번호를 누르자 스르륵, 문이 열린다. 여자는 차가운 이불을 들추고 들어가 그대로 눕는다. 한기가 훅 하고 들어온다. 그것도 잠간, 온몸이 노곤하다. 바닥에 잦아들것만 같다. 전기장판코드를 꽂아야는데 하면서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컴컴한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가는것 같은 환각이 든다. 여자는 이내 잠이 든다. 
칵칵. 캑캑. 얼마나 지났을가. 잠결에 참았던 기침이 기다렸다는듯 튀여나온다. 눈물이 찔끔 나오고 가래마저 올라와 여자는 화장실로 뛰여들어간다. 한참 토악질을 하고나서야 여자는 일어선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달아오른 얼굴을 대충 씻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속에 비친 여자의 얼굴은 생기라고는 찾아볼수 없다. 얼굴은 푸석하고 눈밑이 펜으로 그린듯 거멓게 초생달처럼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또렷한 기미들이 조잡하게 얼굴을 덮고있다. 이게 정녕 산사람의 얼굴이란 말인가. 여자는 멍하니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는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것일가. 기약한 녹내장수술날자는 불과 두달 남짓 남아있다. 두통과 메스꺼움이 동반되면서 점차 눈이 안보였던건 지난해말쯤이였다. 두달여를 버티다가 도저히 안될것 같아 병원을 찾은 여자에게 의사는 녹내장이라고 했다. 전이가 많이 된 상태라 빨리 수술해야 된다고 했다. 여자는 수술비용을 마련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술날자를 예약했다. 어떤 마음이였을가. 여자는 여자의 그 마음을 알수 없다. 하지만 약속했던 수술날자가 다가올수록 마음만 불안할뿐 아무런 대책도 없다. 여자는 알고있다. 수술비는 끝내 마련할수 없을것이고 결국 여자는 수술을 받지 못하고 다시 병원을 찾아 의사한테서 정말 빨리 수술해야 된다는, 더는 미룰수 없다는 뻔한 말을 듣게 될것이란걸 말이다.
여자가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된 그 무렵, 남편은 근무하던 학교 교장과의 불화로 계약직으로 들어간 미술교사자리를 그만둔 상태였고 몸이 허약할대로 허약해져있었다. 결혼을 하고 두달후, 시동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고 남편은 하나뿐인 남동생을 잃고 반쯤 넋이 나가있었다. 그무렵, 여자가 임신을 했다. 여자는 새로운 생명이 남편에게 친인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를 바랐다. 애정으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아이가 조금 크면 그녀도 일을 찾아 얼마간의 돈을 벌어오고 그렇게 풍요롭진 않아도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아파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랐었다.
남편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면접을 보러 다니는동안, 여자는 정성을 다해 셔츠를 다리고 넥타이를 고르고 새벽일찍 일어나 따듯한 밥과 정갈한 반찬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하지만 남편은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며 직장생활자체를 버거워했다. 남편은 걸핏하면 결근을 했다. 집안이 뽀얗도록 담배를 피고 리모컨을 한손에 쥐고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리며 하루종일 꼼짝않고 텔레비만 보고있다가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런날, 남편의 단호한 얼굴옆선은 무섭도록 냉정해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다가갈수 없는 그 냉정함에 오싹 한기를 느꼈다. 그저 넋놓고 바라보다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아이를 안고 뒤돌아앉았다. 그런 날이 있고나면 며칠 안지나 이내 남편이 회사를 사직하고 어두운 얼굴로 돌아왔다. 여러번의 좌절을 겪고 나서 그녀는 어느 새벽, 혼자 방안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이였다. 고이 잠든 아이의 얼굴과 모로 누운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여자는 눈확을 타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아야 했다. 여자는 그 새벽, 남편이 직장을 구하기 힘들것이며 돈을 벌어오지도 못할거고 결국 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수 없을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자유로움과 고집이였다. 남편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저 했고 철저히 자유롭고저 했다. 아닌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굽힐줄을 몰랐다.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기에 남편은 맞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는 어디를 가나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같았고 일말의 인내심도 없었다. 그것은 결국 현실을 견디지 못한 그가 번번히 군체속을 빠져나오는걸로 끝났다. 자존심이 강하다고 해야 하는지. 현실도피자라고 해야 하는지. 딱히 모르겠으나 그는 번뇌를 번뇌하지 않았고 생활속의 자질구레한 고민을 고민하지 않았다. 군체속에 들어가 구속받기를 죽기보다 싫어했고 남들의 눈에는 본인이 내캐는대로 사는것처럼 보였다.
이 어린 아이가 먹을 음식과 입을 옷,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야 할 사람은 결국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자는 깨달았다. 6개월된 아기를 눕혀놓고 여자는 직장을 찾았다. 퉁퉁 불은 젖가슴에서 후둑후둑 유백색의 액체가 떨어져 가슴이 선뜩선뜩해났지만 삶은 그것을 생각할 여유를 여자에게 주지 않았다. 6개월된 아이는 쌀알을 입안에서 오물거리다가 그대로 토해냈다. 퉁퉁 불어 흐르던 젖은 가버렸고 돌이 안된 아이는 여자가 출근하면서부터 어쩔수없이 집안일을 맡게 된 남편손에서 커갔다. 아이는 때국이 흘렀고 여자가 윤기나게 닦고 반듯하게 정리하던 집안은 어수선해지고 먼지가 쌓여갔다.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그정도는 이제 여자에게 감내할만한 무엇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도 계속할수는 없었다. 집도 없이 언제까지 밥만 먹을수 있는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결심을 내렸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밤, 여자는 비행기에 올랐다. 
코리안드림.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안에서 여자는 옆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 울고 울다가 작은 비행기창을 통해 내다본 하늘은 찌부둥하게 흐려있었다. 
여자에게 아이는 사랑이라기보다 아픔이였다. 그 아이를 잘 먹이고 반듯하게 입히고 가르치려고 여자는 그 비행기안에서 어떤것도 견뎌내리라 다짐했다. 뜻밖에 이 세상으로 와 자신의 아이가 된 아이, 그 아이에게 여자는 될수 있다면 단 한톨의 아픔도 허용하고싶지 않았다.
애초에 여자는 3년정도 일을 해서 작은 집만 하나 마련하면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지 얼마 안되여서 시부모가 양로원에 들어갔고 치매를 앓다가 돌아갔다. 여자는 또다시 좀 더 이 땅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차례로 남편이 당뇨병을 앓았고 친정엄마가 치매로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환율이 떨어졌고 여자가 살던 도시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 이제 여자가 버는 돈은 점점 가치가 적어졌다.
어느날 문득, 밤중에 잠에서 깨였을때 여자는 어쩌면 자신이 아이곁으로 돌아갈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푸르스름하게 먼동이 트는 새벽이였다. 곤히 잠들었을 아이를 생각하며 여자는 엉엉 크게 소리내여 울었다. 그 밤 이후, 여자는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따져보면 굳이 누구의 탓도 아니였다. 다만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간것이였다는 결론만 내려질뿐이다. 
이 상황을 극복할 그 무엇도 여자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하루하루 버텨갈뿐이였다.
여자는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한다. 배가 고파 속이 쓰라리지만 딱히 먹고싶은것도 없다. 여자는 일어나 보리차를 끓여식힌 물을 한컵 따르고 밥솥에서 누렇게 된 밥을 뜬다.
보리차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여자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남편한테 오래만에 문자를 넣어본다. 
뭐함가.
뭐 안하지.
준이는 잘 있슴가.
냐. 
학교는 잘 다니구?

여자는 핸드폰을 놓고 대충 밥그릇을 싱크대에 담가놓는다. 설거지를 할 기운도 없다. 하고싶지가 않다. 여자는 보풀이 어수선하게 일어있는 이불을 들추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잘 지내냐. 문안이라도 한마디만 하지...여자는 서럽다. 엉엉 소리내여 울고싶다. 말과 말사이의 서먹한 간격이 어색해 여자는 언제부터인가 남편한테 전화통화는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문자로 이렇게 가끔 주고받을뿐이다. 그나마 늘 그렇듯이 남편은 묻는 말에만 단답식으로 답을 보낸다. 묻지 않는것을 종래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먼저 무엇이든 물어오는 법도 모른다. 천성이 무심한 사람이라서인가. 타고난 성격일수도 있고 대신 가장의 짐을 지고있는 여자에 대한 미안함일수도 있을것이다. 그것을 모르는바는 아니지만 노상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여자는 핸드폰 위챗으로 영상채팅을 해서 아들애를 보고싶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걸 안다. 지금은 여자의 마음에서 한순간도 아프지 않은 그 아이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다정한 말을 건넬수 없음을 안다. 
엄마는, 지금 거동이나 하고있을가...요양원에서 밥은 제대로 주는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여자는 까무룩 잠이 든다. 
핸드폰알람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여자는 화들짝 깨여나 급히 몸을 일으키다가 도로 눕는다. 오늘 야간출근을 안한다. 교대주이다. 멍하니 한참 누워있다가 여자는 핸드폰으로 메르스증상에 관해 검색을 한다. 고열에 기침, 가래. 여자는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증세를 생각한다. 메르스와 너무 일치하다. 당장 래일부터는 주간출근이라 어떻게 숨길수도 없는것인데 어떡하지.
여자는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문을 나선다. 약국을 찾은 여자는 머리를 수그린채 좀 더 강력한 해열제와 감기약을 달라고 한다. 머리가 훌렁 벗겨진 약사는 그녀한테 삼일분의 감기약과 해열제를 주면서 병원에 가보시는게. 하고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오물 피하듯 급히 돌아선다. 아니, 자신을 피하며 급히 돌어선다고 여자가 느낀다
여자는 멍하니 약사의 윤기나는 뒤통수를 쳐다보다가 아무말없이 돌아선다. 병원에 가면, 만에 하나 메르스에 감염된것이라면 그건 여자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다. 병원에 격리되면 누가 돈을 벌어 내 아이를 입히고 먹여줄것인가. 
불안함에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여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여자가 횡단보도에 서있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빨간불이 깜박거린다. 여자는 열기로 귀볼이 달아오른다. 여자는 잠간 멈칫하다가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에 그대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4월이다. 어딘가에서 꽃들이 마악 피여나려고 추파처럼 향기를 날리고있다. 바람이 기분좋게 서늘한 4월의 깊은 밤이다. 
훌쩍, 여자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솟구친다.
밤은 고요하고 반쯤 기운 달이 외로이 걸려있다. 한번도 날아본적 없는 여자가 단 한번 눈부신 비상을 한것이다. 여자의 손에서 약봉지가 튕겨져나가고 충격으로 터져버린 케이스에서 하얗고 빨간 약들이 우수수 락엽처럼 날린다. 어디선가 빠져나온 푸른 지폐와 동전 몇개가 춤추듯 펄럭인다. 
퉁. 검은 물체가 밤의 고요를 깨뜨리며 콩크리트바닥에 떨어진다. 끈적한 액체가 어둠속에서 스멀스멀 기여나와 콩크리트바닥을 서서히 적셔간다. 푸른 달빛아래 검은 빛으로 보이는 액체는 서서히 고통처럼 여자의 몸을 빠져나온다. 누군가가 입술을 악물었다가 머리를 운전대에 박는다. 
저 멀리, 십자가가 빨갛게 불타오른다. 
해빛이 눈부시게 내리쬔다. 아침의 거리는 사람들과 차들로 붐빈다. 누군가 출근버스를 놓칠가 침을 삼키며 달린다. 누군가 소리높이 아침식사 됩니다를 외친다. 누군가 짜증을 내며 자명종을 끄고 돌아눕는다. 누군가 피발이 선 눈으로 힘든 야간근무를 끝내고 퇴근준비를 한다.
아침이다. 누구에게는 시작되는 시간이고 누구에게는 끝나는 시간이다. 
고속도로변 풀이 허리를 꺽고있는 수풀에 한 여자가 누워있다. 더는 기침을 하지도 가래를 끌어올리려고 애쓰지도 않는 한 여자가 누워있다.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여자는 너무 작고 말라 눈가의 몇가닥 주름과 얼굴의 기미, 희끗하게 올라온 새치만 아니라면 꼭 성장기의 사춘기소녀같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신발도 신겨져있지 않다. 곧추 내리꽂힌 해살이 여자의 머리께와 주변의 풀잎과 땅바닥에 엉켜붙어있는 액체를 비춘다. 바람이 간간히 불어온다. 비릿한 냄새가 바람이 불때마다 날린다. 여자의 얼굴은 모든것을 외면하듯 세상을 등지고 있다. 

작고 마른 아이 하나가 피기없는 얼굴의 남자와 비스듬하게 앉아 초라한 밥상을 .마주하고 밥을 먹고있다. 메르스가 드디여 종식되였다고 보건복지부가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 악마같은 질병을 이겨냈습니다. 가깝고도 먼 고국의 뉴스를 눈이 큰 낯선 아나운서가 전하고있다. 작고 마른 아이가 엄지와 식지를 뻗어 오래전, 아이의 엄마가 한국에서 택배로 보내온 김을 여러장 집어 입에 넣는다. 바스락, 김이 아이의 입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부서지고있다. 아이의 입가에 거멓게 김가루가 묻어있다. 

*

락타 한마리가 모래둔덕에 엎드려있다. 중동사막의 하늘이 파아랗게 물들어있다. 기묘한 형태의 하얀 구름들이 파란 하늘에 자유롭게 떠있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온다. 락타는 가끔 머리를 좌우로 틀어 하늘을 쳐다본다. 바람이 불때마다 끝없는 사막을 배경으로 부드러운 모래가 물보라처럼 날린다. 화답이라도 하듯 능선처럼 휘여진 락타의 등을 타고 털들이 파도타기하듯 넘실댄다. 락타는 커다란 두눈을 껌뻑거린다. 락타와 모래와 하늘이 혼연일체로 된듯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다. 
락타는 뚜걱뚜걱 발걸음을 옮기고있다. 락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수 있는 존재인지 생각해본적이 없다. 다만 숙명처럼 뚜걱뚜걱 걸어가고 있을뿐이다. 바람은 불지 않는다. 다만 열기로 아래다리가 후덥지근해 락타는 가끔 부르르 다리를 떨뿐이다.

2017. 8월 24일 연길에서
 

 

   단편소설                  
2. 일곱색깔 무지개
     

    엥?
    핸드폰 메시지통에 파란 슬리퍼 한짝이 찍힌 사진이 댕그라니 와있었다. 다시 들여다봐도 슬리퍼 한짝이 찍힌 사진 한장뿐 아무 내용도 없다. 발신인은 모르는 번호이다. 뭐지? 보이스피싱도 아니고 잘못 보낸 메시지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 
    나는 핸드폰을 거머쥔채로 화장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변기물을 내리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시장통에서 파는 싸구려슬리퍼, 게다가 닳고 해져 쓰레기통에 진작 가있어야 할것 같은 물건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상태로, 아니 던져져있다고 하는게 나은 표현일것 같다. 아무튼 그런 형편없는 상태로 찍힌 사진이다. 게다가 슬리퍼는 한컬레가 아닌 외짝이다. 내가 아는 사람중 이런 장난을 할 사람을 나는 찾아내지 못한다.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진을 삭제하고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는다. 휴게실은 벌써 만원이다.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휴게실에 걸린 수많은 가방중에서 내 검은색 천가방을 찾아 봉지커피와 머그컵을 꺼낸다. 
    뜨겁고도 쌉쓸한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온다. 몇모금에 나눠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로 뛰여가 머그컵을 대충 헹궈 갖고 와 정수기우에 올려놓는다. 종이컵이면 커피를 마시고 버리면 그만이니 편할테지만 종이컵 열개면 머그컵 한개를 살수 있다. 한시간에 종이컵 두줄 정도 살 돈을 버는 생산직로동자에게 한줄에 열개짜리 종이컵은 함부로 살수 있는 아무렇지 않은 가격의 물건은 아니다.
    "아이고, 이제 들어가야지."
    "쉬는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나 몰라."
    "나오자마자 들어가네, 나오자마자."
    "오줌 싸고 커피 마시면 딱이야. 아주 그냥."
    "그치. 오줌만 싸야 대. 큰건 안돼."
    한마디씩 하며 다들 라인안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 두시간 버티면 점심시간이다. 하루는 두시간씩 다섯타임. 두시간씩 버티다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 열두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생산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일이란 하는게 아니라 버티는것이다. 버텨야 하고 버티다보며 신기하게도 버텨진다. 어떤 고달픔도. 

    며칠뒤, 
    교대주를 맞아 오래만에 늦잠을 자고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룸메이트로 함께 살고있던, 지금은 짐만 남겨놓고 가끔 챙기러 오는 숙자언니다. 
    "사진 받았어?"
    "네?"
    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고 간뒤 불쑥 언니가 사진을 받았냐고 한다.
    "내가 나갈 시간이 통 없어서 신 하나 사서 보내달라고 사진 보냈었는데 못받았어? 여기 요양원에서 일할 때 신는 아주 가벼운 끌신인데."
    아, 그럼 그게. 큭큭 내 입에서 웃음이 나온다.  
    "언니, 그럼 그 파란색 슬리퍼 한짝 찍어서 보낸게 언니가 보낸건가요?"
    차암, 이 언니가 이렇게 귀여운 면도 있었나? 
    "그게 언니가 보낸거였어요? 저는 낯선 번호에 게다가 닳아빠진 슬리퍼 한짝을 달랑 찍어 보냈길래 누가 이런 장난을 했나 생각했어요."
    "호호."
    전화 저쪽에서 기분 좋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거기 오줌 누라니까 그러네. 아이고 할머니 참 답답도 하다. 거기 앉아 누라니까요. 아니, 그냥 누면 된다니까요. 아참, 누라니까 왜 그래요? 거기다가 네. 아이구 참."
    전화기 저편에서 징징대는듯한 로인네의 힘빠진 소리와 언니의 짜증어린 목소리가 섞여 들린다. 한참을 할머니한테 뭐라뭐라 하더니 다시 
    "아니 할머니가 오줌을 안누고 애먹여서 그러잖아. 여기는 있잖아. 그 저기 머야. 중국에 화룡에 베개봉 알지? 아니다. 내 고향에 중봉리라고 있어. 꼭 거기 같애. 산밑에 요양원 하나 딸랑 있고 아무것도 없어. 버스는 아예 없고 어디 나갈려면 택시를 불러야 돼, 콜택시를. 만 얼만가. 아마 만원 넘어. 한번 나갈려면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대신에 공기는 좋아. 아주 기가 막혀. 아침저녁에 한번씩 나가면 아주 그냥 시원해. 머리도 맑고. 공기 한가지는 정말 요즘말로 끝내줘. 그나저나 야간이야? 주간이야?"
    "주간 어제까지 하고 늦잠 자고 있었어요. 오늘저녁에 야간 들어가는거구요."
    나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았다. 시계가 열한시를 향해가고있었다. 어제밤부터 지금까지 늘어지도록 잤는데도 개운하지가 않다. 온몸의 뼈가 다 쑤시고 아프다. 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뼈는 안아팠는데. 
    나는 한손으로 어깨를 꾹꾹 누른다. 환하지도 깜깜하지도 않은, 새벽이 오기전 막 먼동이 틀무렵의 동녘처럼 으스름한 방안에 해빛이 비스듬히 기여들어와 이불 끝자락을 비추고있었다. 
    "좀 더 자야 할텐데 내가 깨웠네. 그나저나 계속 야간만 해서 힘들어서 어떡해? 잠을 잘 자야 되는데 말이야."
    "그렇긴 하죠. 그렇긴 한데 돈을 벌려면 어쩔수가 있나요."
    "에고, 그러게. 그 돈이 문제라니까. 나도 그 돈땜에 십년을 아들도 못보고 이 고생을 하고있는거잖아. 요새는 돈없으면 그냥 죽는 세상이라서. 병원에 가도 돈없으면 그냥 죽게 놔둔대잖아. 돈을 벌어야지..."
    언니는 아예 수화기를 잡고 늘어질 심사다. 꽤 한가한 모양이다. 
    "언니 주소 보내줘요. 끌신 사보낼게요. 다른것도 필요한게 있으면 얘기하세요. 택배로 보내줄게요."
    나는 전화기를 다른 손에 바꿔쥐였다. 너무 피곤하다. 욱신거리는 종아리를 주먹으로 두드린다. 전화기는 벌써 열기로 뜨끈해난다.
    "피곤한데 내가 또 부탁을 하네. 어디 부탁할 사람이나 있어야지. 내가 선화 안만났으면 어쩔가싶네. 호호. 화장품 종류별로 몽땅 사서 보내줘. 세수하는거 스킨, 로션 영양크림. 그리고 또 뭐가 있던가? 비싼걸로 사. 최고 비싼걸로. 최고 비싼건 얼마나 하나? 화장품가격도 모르네. 호호. 화장이나 제대로 해봣어야지 알지. 왜 여태 이러고 살았나 내가 아주 그냥 후회가 돼서 죽겠다니까. 너무 후회돼. 아무튼 선화가 봐서 종류별로 몽땅 사 보내줘. 한 삼십만원 들면 안될가? 더 들어도 상관없어. 내가 오십만원 보낼테니까 내거 사면서 선화도 하나 비싼걸루 사." 
    이 아줌마가 최고 비싼 화장품이 얼마 하는줄 알기나 하고 이러나. 그런데 그건 그렇고 자신한테 쓰는건 단돈 천원도 아끼는 언니가 삼십만원어치 화장품을 사겠다니. 오십만원을 보내겠다니 이건 뭐지? 
    "그게 이런 일 해도 남한테 뭔가 저기하게 보이면 안돼. 아무리 환자 똥오줌 받아내는 일이라 해도 가족들이 보러 와도 너무 초라하면 얕본단 말이야. 화장도 이쁘게 하고 멋도 좀 내야 해. 내가 이따가 간호사한테 부탁해서 돈 계좌로 보내줄테니까 선화도 꼭 화장품 하나 사."
    불필요한 변명을 늘어놓는 언니의 목소리는 많이 들떠있었다. 무슨 일 있나? 왜 이러지? 
    "언니 전 화장품 있어요. 그리고 맨날 야간하는데 화장품 필요 있나요. 야밤에 화장해서 보여줄 사람도 없구요. 그리고 언니 화장품 최고 비싼게 얼마나 비싼지 언니 모르죠? 큭큭. 언니 중간정도 가격 되는거면 정말 괜찮으니까 제가 봐서 사 갖구 보내드릴게요. 언니는 화장을 별로 안했어서 웬만 한거면 될거예요. 그리구 저 돈 있으니까 돈 먼저 안보내주셔도 돼요. 물건 사서 보낼 때 령수증 끊어서 보내드릴테니까 그만큼만 보내주심 돼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야."
    언니가 특유의 단호한 말투로 내 말을 자른다. 그녀는 아마 전화기 저편에서 손사래까지 쳐가며 아니 아니야 라고 말하고있을것이였다.
    "심부름값이 아니구 사주고싶어 그래. 내가 신세를 진게 한두가지라야 말이지. 아무튼 내거 살 때 하나 사서 가져. 멋도 젊었을 때 따야 대. 내가 살아보니 그렇다니까. 선화두 그저 내 말 명심하구 내가 이거 바르면 주름이 하나라도 없어질가. 내가 이거 먹으면 하나라도 건강에 좋을가 이렇게 살라니까. 나중에 다 후회해. 난 왜 그렇게 살았나 몰라. 내가 선화처럼 살았잖아. 그저 정신없이 일만 하구. 나중에 나처럼 후회하지 말구 내 말 명심해. 사진이 없다니까 내가 좀 있다가 사진 다시 보내줄게. 주소도 문자로 보내줄게. 그럼 화장품은 중간정도 가격으로 살가? 아이구 그나저나 일 좀 쉬염쉬염 해. 내 말 명심하고. 일하다 죽겠어. 그런데 끌신 똑같은거 있을가? 이거 여기 간호사가 사다준건데 정말 한근도 안되게 가볍고 편하거든. 살수 있을가?"
    "네. 언니, 찾아보면 있을거예요. 근데 화장품 정말 종류별로 몽땅 사요? 립스틱, 눈썹그리개. 비누 이런것도요?"
    "립스틱은 있어. 분홍색갈 하나 있어. 누가 선물했거든. 호호, 살다보니 내가 립스틱을 선물받는 날도 있더라구. 이래서 살아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건가? 암튼 세수하는것도 사고 화장품종류는 몽땅 사. 비누는 사지마, 여기 편의점은 있어. 비누랑 샴푸 치약 치솔 같은건 여기서 살수 있어."
    언니는 몽땅이라고 했다. 우리 고향에서는 전부라는 말을 그렇게 한다. 기분은 좋아보였고 말투는 단호했다. 주섬주섬 나는 이불을 개켜 한쪽에 밀어놓고 수납장으로 쓰고있는 종이박스안에서 속옷을 챙긴다. 스킨 로션도 하나가 떨어지면 다른 하나로 대충 떼워가고 여름이 다가도록 반팔 하나 사는것도 주저하던 언니가 무슨 일이람. 갑자기 멋이라도 내려나? 양로원안에서 누가 본다고. 참. 갑자기 살아온게 억울해진건가? 혹시 갱년기가 온건가? 그러고보니 언니가 갱년기가 올 나이긴 하다. 갱년기가 되면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급격하게 혼란이 생긴다더니 언니가 그런건가. 그런데 립스틱은 누가 선물했을가? 환자의 가족? 아니면? 
     나는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다가 머리를 흔든다. 이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정신없이 돌아치는 생활속에서 생긴 습관이다. 이제 나는 나오다가 끊기다가 하는 샤워꼭지를 틀어놓고 찬물에 진저리를 치고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뜨거운 물에 화들짝 몸을 피하며 샤워를 해야 할것이다. 머리를 말릴 때마다 바닥에 시커멓게 깔리도록 우수수 빠지는 머리카락을 테이프로 붙여내며 머리를 말리고 밀린 빨래를 하고 집청소를 하고 그러면 두어시간 훌쩍 지나겠지. 밥먹고 야간 들어가려면 오후에 한잠 자야 할것이고, 야간 들어가면 또 정신없이 두주일이 훌쩍 지나갈거고. 지금부터 빨리 움직여야 한다. 얼른 씻고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한다. 오후에 잠자기전까지의 시간, 그 시간을 리용하여 언니가 부탁한 물건들을 사놓아야 한다. 오늘 물건을 사놓고 래일은 야간 첫날이라 많이 피곤할테니 잠 좀 푹 자고 모레쯤 퇴근해서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보내줘야겠지. 
    나는 창문을 열었다. 옥탑이라 하지만 작은 창문 하나밖에 없고 주변이 고층건물들로 막혀있어 한낮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방안은 밝지 않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방안으로 해빛이 기여들어온다. 어둑함이 남아있는 구석쪽과 해빛이 비춘 한가운데가 방바닥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어놓는다. 얼굴에 닿는 해빛이 뜨겁다. 
    숙자언니를 처음 만난건 재작년겨울이였다. 그날도 야간을 하고 통근버스에서 내려 약간 어질거리는 머리로 스적스적 기숙사로 향해 가고있는데
    "저기, 말 좀 물을가요?"
    하고 등뒤에서 어떤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돌리는 순간, 나는 침을 삼켰다. 팝콘을 련상시키는 뽀글머리의 녀자가 크지 않은 배낭가방을 메고 내 앞에 있었다. 하얗게 저가의 분을 바른 얼굴은 검붉었고 화장이 잘 먹지 않아 번들거렸다. 립춘이 지난 날씨에 두터운 겨울잠바를 입은 녀자의 입술은 메말라있었다. 
녀자는 고시원을 찾는중이라고 했다. 뻐스에서 내려 어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한테 고시원을 어데 가면 찾을수 있냐고 물었고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온게 지금 여기라고 했다. 고시원이 많다고 해서 한바퀴를 돌았는데도 고시원간판이 안보여.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모르겠어. 녀자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여기 고시원이 많은거 맞아요?"
    하고 나를 쳐다봤다.
    그때 그 눈빛,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2월의 차가운 바람이 내 목깃을 훑고 그녀의 목깃을 스쳐 그녀와 내가 어깨를 쭈볏 세운, 난해한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 아침, 보이지 않는 뭔가가 그녀의 눈에서 내 마음으로 날아왔다. 
    나는 녀자와 함께 고시원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그건 온전히 그녀의 눈에서 내 마음으로 날아와 복부 어덴가에서부터 시작된 통증때문이였다. 그 통증은 비슷한 처지의 동족을 만났을 때에 느껴지는 특유의것이였다. 그런 아린 통증이 내 마음에 찾아온건 참으로 오래만이였다. 
    컴컴한 복도를 지나 촘촘하게 막아놓은 고시원은 겨우 사람 하나 잘만한 침대에 공용화장실과 공용세탁기와 공용샤워장을 써야 했다. 공기밥은 제공해준다고 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했다. 화장실을 단독으로 쓸수 있는 고시텔은 또 턱없이 비싸 그녀의 눈이 둥그래졌다. 
    "저기, 언니 혹시 저랑 같이 방 잡고 실래요? 월세만 반반 부담하시면 될것 같은데..."
    터덜터덜 어둑한 고시원층계를 내려오다가 불쑥 나는 그렇게 내뱉었다. 
    그즈음, 나는 세명이 손바닥만한 방에서 부대껴 살아야 하는 기숙사생활에 지친 나머지 고시원이라도 잡고 혼자 나가야지 하고 잠결에도 중얼거리고있던 참이였다. 일할 때는 그나마 나랑 함께 돌아가는 애가 동갑이고 성격도 무난해서 괜찮은데 문제는 휴일이였다. 서울에 집이 있는 동갑짜리가 집에 가고나면 나랑 반대조에 있는 녀자애랑 남게 되는데 나이도 한참 어린 그 녀자애의 버릇없는 행동이라던가 지저분함은 차치하더라도 한사람은 주간을 하고 쉬는거라 말짱한데 한사람은 야간을 하고 쉬는거라 어쨌든 잠을 자야 한다는게 문제였다. 한사람이 피해주는게 가장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밖에서 돌아다니는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다. 집도 없고 아무런 연고도 없기로는 그 버르장머리없는 기집애도 마찬가지라 이건 정말 피를 말리는 일이였다.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내리지도 않고 다시 타고 오기도 했었다. 혼자 집을 구하기엔 비용이 부담되고, 그렇다고 함께 살 사람을 구한다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여서 억지로 버티고 있던 참이였다.
    "어머, 이렇게 고마울줄이야. 그럼 나야 너무 좋죠. 고마워요. 아이구나. 세상에. 이제 한시름 놓았네."
    그녀가 내 등뒤에서 커다랗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도 나만큼 한몸 뉘일 공간이 절박했던것일가. 
    그렇게 그녀와 나의 동거는 시작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바닥만하게 신발 벗는 공간이 있고 바로 화장실이 보이고 주방과 침실이 분리되지 않은, 통짜로 된 옥탑방이였지만 그녀나 나나 만족했다. 더 이상 쉬는 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것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언니는, 함께 사는날부터 내가 숙자언니라고 부르게 된 언니는 너무 좋다고, 전에 살던 곳보다 낫다고 환하게 웃었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 나는 회사에 출근을 하고 언니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식당일을 찾았다. 한동안 식당일을 하던 언니는 한고향 살던 사람의 소개로 간병일하러 간다고 조촐한 짐을 싸들고 떠났다. 식당일보다 좀 더 벌수 있다는것이였다.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간병일도 언니는 불만없이 잘 견디는듯 했다. 잠을 설치는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식당일보다 월 이십만원은 더 받는다면서 좋아했다. 언니는 휴일날도 돈을 받기로 하고 일을 한다면서 두달에 한번, 석달에 한번 철지난 옷을 갖고 오고 제철옷을 갖고 가고 그렇게 왔다갔다 지냈다. 이렇게라도 짐 둘 곳이 있고 쉬는 날 올데가 있어서 좋다고 언니는 말했다. 
    나는 샤워를 끝내고 이제 막 드라이를 끝낸 머리를 만지며 벽에 기대앉는다. 머리카락은 날이 갈수록 얇아진다. 숙자언니한테서 문자가 와있다. 역시 낯선 번호로 저번과 똑같은 사진이 와있다. 또 다른 문자는 간호사가  돈을 보냈으니 확인해보라고 역시 숙자언니가 보내온거다. 
    나는 낯선 번호를 0이라고 이름하여 저장한다. 그걸 왜 저장하는지, 그게 왜 0번인지 누가 나한테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그냥 어리둥절 고개를 흔들것이다. 왜서인지 그건 나도 모른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게 정확히 리유가 있고 설명할수 있는게 아닌건 다들 아시지 않는가. 

    "저기 폼클렌징, 스킨 로션, 아이크림, 수분크림, 미스트. 썬크림 비비크림 영양크림 아 그리고 눈썹그리는거 그리고 또 뭐가 있죠? 잘 몰라서 그러는데. 화장품 종류 또 뭐가 있죠? 눈화장하는 아이샤도?"
    이마가 볼록 튀여나온 어린 아가씨는 카운터에 앉아 졸고있었던 모양이다. 기계적으로 일어나 목례를 하는 눈가에 졸음이 지분처럼 묻어있다. 손님도 없고 졸리기에 맞춤한 하오이다. 
    몇초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가씨는 졸음이 확 가시는듯 눈을 반짝이다 황급히 움직인다. 어떤걸로 드릴가요? 손님이 쓰실거라면 이런걸루. 
    아니, 제가 쓸건 아니구요. 
    그럼 연령대가 어떻게 되세요? 
    사십대후반 나이에 쓰기 알맞은걸로요. 
    가격은요? 
    뭐 적당히. 
    갑자기 바빠진 아가씨는 이것저것 집어들고 끊임없이 나한테 묻는다. 아까 들어올 때 이십대초반으로 보이던 아가씨는 가까이에서 보자 이십대중반은 되여보인다. 앳돼게만 보이던 얼굴이 사실은 밝은 아이샤도우때문이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어쨌거나 그녀의 얼굴은 윤기 돌고 팽팽하다. 내가 밤낮으로 보아오는 푸석하고 누렇게 떠있는 얼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굵은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짧은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있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어느새 아가씨는 커다란 종이빽에 한가득 화장품을 담아간다. 허리를 숙여 사은품으로 샘플과 마스크팩을 챙기는 아가씨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반팔티셔츠가 말려올라가 아가씨는 하얀 등이 드러난다. 아가씨는 한손으로 셔츠를 잡아내리며 한손으로 이것저것 꺼내 종이빽에 넣는다.  
     신발가게에서 나는 숙자가 보내온 사진과 똑같은 신발을 찾지 못한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재질은 비슷한데 모양이 조금 다른건 어떠냐고 한다. 그녀는 그건 안될것 같다고 한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고, 해진 신발을 아직 두달은 더 신을수 있다고 한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있는 나는 아마 다른 가게에는 있을것 같다고, 좀 더 찾아볼게요.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대체로 착하고 순한 성격이지만 별것 아닌것에도 무서울만큼 자기주장이나 고집이 강한 그녀다. 다른 사람한테 신세지는것을 필요이상으로 싫어하는 그녀가 나한테 부탁했을 때는 정말 절박했을터였다. 더욱이 내가 알고있는한 그녀는 한국에 이런 부탁을 할만한 가까운 사람이 없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싶다. 
    시장통에 있는 몇 안되는 신발가게를 나는 순서대로 뒤진다. 나는 사진에 찍힌것과 똑같은 신발을 사지 못한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에 당도한 나는 꺼억 한번 끼익 한번 번갈아가며 소리나는 선풍기를 돌려놓고 땀들일 사이도 없이 핸드폰을 켠다. 카톡에 새로운 이름이 하나 떠있다. 클릭해보니 이름은 0. 깡마른 몸매에 미간이 좁아 다소 옹졸해보이는 인상의 남자사진이 카톡프로필에 떠있다. 웃는것도 그렇다고 웃지 않는것도 아닌 표정의 남자는 그닥 호감가는 인상은 아니다. 
    나는 남자의 스토리를 클릭해본다. 사진 몇장이 있는듯한데 친구공개로 되여있어 나는 볼수가 없다. 나는 카톡을 끄고 모바일마켓을 뒤진다. 
    엇, 한참만에 나는 그녀가 보낸 사진과 똑같은 슬리퍼를 발견한다. 후 안도의 숨을 내쉰다. 같은 색깔 같은 치수로 두개 주문을 넣고 폰뱅킹으로 입금까지 하고나서 나는 숙자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정말 같은게 있었어? 똑같은게? 그거면 일년은 신겠네. 아니 잘하면 이년 신겠어. 나 그거 신고 돈 많이 벌게.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한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보니 출근시간이 앞으로 세시간여밖에 남지를 않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손가는대로 아무 크림이나 뚝 찍어내 대충 바르고 창문을 닫고 이불을 편다. 구석쪽으로 밀려나간 베개를 끌어다가 단단히 베고 잠을 청한다. 두시간후면 알람이 울릴것이고 나는 총알같이 튀여일어나 정신없이 출근준비를 해야 할것이다. 핸드폰시계를 보면서 머리를 말리고 밥을 먹고 빠뜨린게 없나 한번 가방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비로소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야 할것이다. 입술을 감빨며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출근카드를 찍고 조회를 하고, 쉬는동안 약간 서먹해진 몸으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라인안에 들어갈것이다. 이내 나는 일에 집중을 다할것이고 쉬는 시간마다 정신없이 라인밖으로 뛰여나와 핸드폰을 보고 화장실을 가고 커피를 마실것이다. 누구와의 삶과도 닮아있지 않으면서도 누구나의 삶과도 닮아있는 나의 삶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잠을 자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이시각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잠보다 중요한건 이시각 없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눈을 감는다. 이내 잠에 빠져든다.

    변함없는 일상들이 이어진다. 잔업과 특근이 날마다 지속된다. 아직 삼일은 더 버텨야 교대주다. 몸은 항상 찌뿌둥하고 머리는 맑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날씨는 점점 더 뜨거워진다. 나는 어제저녁의 통화를 생각한다. 팔순을 바라보는 내 로모는 여름내내 장염으로 앓고있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는 학습성적은 썩 좋지는 않지만 건강하게 잘 커가고있는듯 목소리가 높고 챙챙했다. 
    "나야."
    막 통근버스에서 내리는데 울린 전화벨소리는 한동안 연락이 없던 숙자언니였다. 저기 하고 언니답지 않게 뜸을 들이다가 내가 남자를 사귀고있는데 하고 말을 꺼냈다. 
    나는 내 전화번호기록부에 0이라는 수자로 저장된, 슬리퍼 한짝을 메시지로 보냈던 남자를 떠올렸다. 제발 언니가 사귄다는 남자가 그가 아니기를 나는 기도했다. 그 남자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언니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잘생겼고 똑똑하고 게다가 키도 크고 착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함께 료양병원에서 간병일을 하고있다는 남자는 언니보다 두살 년하고 총각이라고 했다. 아무런 부담도 없으며 무엇보다 언니한테 그렇게 잘해준다고 했다. 그분이 h2비자인데 곧 만기가 된다고 했다. 중국에 가면 최소 6개월이상은 걸려야 다시 한국에 나올수 있을건데 그 기간을 거치지 않는 방법을 언니는 묻고있었다. 자격증을 따서 f4재외동포자격을 받기엔 남은 기간이 너무 짧다고 했다. 언니가 길게 말을 이어가고있는 동안 나는 내 머릿속의 예감이 점점 현실이 되어오고있음을 느껴야 했다. 기분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저기 내가 한국국적이잖아. 나랑 결혼등록을 하면 비자를 넘길수 있지 않을가? 
    그럼 되죠. 되긴 되지만...언니 그 남자 키가 커요? 말랐구요?
    응. 맞어. 키 휜칠하고 멋있게 생겼어. 
    그렇구나. 바람 한줄기가 내 가슴을 관통했다. 서늘하고 차갑게. 
    좀 성급한가? 
    글쎄요. 언니 좀 그런것 같기도 하고... 
    그럼 그냥 냅둬야겟다. 려행비자로도 올수 있다니까뭐. 
    언니는 그렇게 두서없이 요점없이 한참을 중얼거리듯 말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당분간 교대없이 돌아간다고 한다. 월말까지 뽑아내야 할 물량때문에 회사는 초긴장상태이다. 교대주휴식을 기다렸던 우리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누렇게 뜬 얼굴들이 힘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묵묵히 일을 하고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부은 얼굴로 하품을 해댄다. 불만도 없다. 이 물량을 뽑아내고나면 비수기가 찾아올것이고 그러면 심야수당을 받을수 있는 야간이 없어질것이였다. 남 다 자는 밤에 일하고싶은 사람이 있을가싶지만 심야수당을 더 받을수 있는 야간은 우리처럼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서로 하려고 한다. 비수기가 되면 무작정 쉬라고 할수도 있고 반이상 짤릴수도 있다. 물량을 뽑아낼 때면 왕창 사람을 받아들여 쉴틈없이 라인을 돌려 물량을 뽑아내고 그게 끝나면 사냥이 끝난 포수가 이제 필요없어진 사냥개를 버리듯 가차없이 인원을 짜르고 기약없는 휴무에 들어가는게 한국 하청기업들의 일관된 운영방식이다. 짤리거나 기약없는 휴무가 시작되기전에 하루라도 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이 지독한 피로와 쉴새없이 들이키는 커피가, 청량하게 다가오는 새벽이 차라리 그리울지도 모른다. 숙자언니는 거의 두달가까이 집에 오지 않고있었다.
    "언니 그 뉴스 봤지?"
    "응 그럼, 그냥 죽인것도 아니고 시체를 토막내서 버리다니. 무섭다. 증말."
    휴게실에서 언니들은 요즘 텔레비뉴스를 꽉 채우고있는 토막살인사건에 대해 떠들어댄다. 검은 봉다리에 중년녀성의 시신으로 추정되는것들이 담겨져 경기도 어느 야산자락 여기저기에 버려져있었다는것이다. 
    나는 통근차에서 내려 숙자언니한테 전화를 넣어본다. 언니는 바쁜걸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입술을 감빤다. 내리쬐는 해빛을 손채양으로 가리고 마악 파란불이 켜진 신호등을 건넌다. 머리가 어질거린다. 
    어제도 그저께와 마찬가지로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았다. 영양크림은 떨어진지 한참됐고 아이크림은 사본지 까마득하다. 나는 어제밤 회사 화장실거울에 비쳤던 내 얼굴을 떠올린다. 수분기없이 푸석한 얼굴은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게 눈가장자리와 입가에 주름이 패여가기 시작해 서른중반에 벌써 제법 깊어져있다.
    "네? 숙자언니를 아냐구요? 네. 알죠. 아니아니 잘은 모르고. 잘 모르는건 아니고. 그게. 네? 네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들여다본 핸드폰시계는 오후 세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더 이상 잠을 자긴 힘들것 같았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어떤 로인네였다. 숙자언니를 찾는다고 했다. 몇년전, 숙자언니와 결혼을 했으며 이십년이라는 나이차이에도 몇년동안 잘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언니가 돈을 번다고 올해 봄에 집을 나갔다는것이였다. 처음엔 련락도 잘하고 가끔 보러도 오고 하다가 련락이 뜸해졌다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전화로 섭섭지 않게 돈을 줄테니 리혼을 해달라고 해서 리혼을 해줬다는것이였다. 
    내가 돈을 바라고 살았남. 더러워서 원. 
    로인네가 혀를 찼다. 문제는 그 주기로 약속한 돈가운데 삼분의 일을  받고 아직 삼분의 이가 남았는데 아예 련락이 안된다는것이였다. 내 전화번호는 숙자언니가 집에 남기고간 노트에서 보고 전화를 걸어봤다고 했다. 
    련락되면 말하시오 잉. 그 여자 차용증 써놓은거 내가 갖구있은께 어디 발뺌할 생각 하덜 말라고. 나 고소할거라고 말해주소잉. 어디 중국서 와가지고 국적 못얻어서 죽자 살자 매달릴 때는 언제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이남.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더니 은혜를 웬수로 갚는 년. 경찰에 신고하면 재미없을거이요. 에헴. 이제라도 들어와 싹싹 빌고 나 밥 끓여주면 또 모를가. 그람 머 그깟 돈 나야 안받아도 된다 이 말이요 잉. 나가 뭐 다시 말하지만 돈이 아쉬운 사람이 아니랑께요. 돈보다도 나가 사람 맘보가 괘씸해서 이런다요. 
    나는 숙자언니한테 전화를 넣어본다. 핸드폰이 꺼져있어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수 없다는 자동멘트가 나온다. 다시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만 똑같은 멘트만 반복해서 나온다. 나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해본다. 토막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오십대로 추정되는 중국동포녀성으로 밝혀진가운데 용의자는 아직 잡히지 않고있다고 했다. 
   
    털썩, 하는 소리가 꿈껼에 들던던가. 안들렸던가. 들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다.
    "피곤했나봐. 그렇게 깊이 잠을 자는걸 보니. 내가 문을 따고 들어오고 옷을 갈아입고, 많이 소란했을텐데 꼼짝않고 자더라고."
    푸르스름한 방안에 숙자언니는 그린듯 앉아있었다. 찰싹 달라붙은 머리에 기름기가 흐르고있었고 화장기없는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여있었다. 어둑한 방안에 멍하니 초점잃은 눈길로 바닥에 눈길을 떨군채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언니는 그새 십년은 늙어버린듯 나이들어보였다. 끼익 꺼억 오래된 선풍기가 신음하고있었다. 그동안 어데서 뭘 하느라 언니는 전화도 못받은것일가. 무엇이 언니를 이토록 초췌하게 만든것인가.
    "언니, 언제 왔어요?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도 련락이 안되더니...
    "흑."
    대답대신 언니가 얼굴을 무릎사이에 숨기며 흐느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전등을 켜고 어떻게 우는 언니를 달래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수건을 들고 숙자언니옆에 어정쩡하게 서서 한번씩 등을 가볍게 어루쓸어주고 침을 삼키고 또다시 망설이기를 반복하고있었다.
    "나 어떡해, 선화야."
    바람처럼 나타나서는 이건 또 뭔소리지?
    한참을 소리내여 울던 언니가 입을 열었다. 
    그 남자, 슬리퍼 한짝을 사진찍어 보냈던 그 전화번호의 남자. 언니가 그 남자를 만난건 간병하러 간 료양원에서였다. 모든게 낯선 그곳에서 간병일을 한지 6개월차인 그 남자의 도움은 언니한테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남자는 언니한테 친절했다. 언니는 3층 녀환자병동이고 남자는 2층남환자병동이였지만 자주 찾아와 이것저것 살펴가며 도움을 줬다. 사려깊은 배려로 언니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지친 언니한테 불쑥 나타나 커피 한잔 내밀기도 했고 낑낑대며 환자를 휄체어에 앉힐라하면 어느새 나타나 덥석 환자를 안아 언니대신 휄체어에 앉히고 내리우고 했다. 
    누군가 나를 관심해주고 아껴주는거. 정말 처음이였어. 남편한테서도 못받아본거거든. 오로지 아들 하나 키워보겠다고 지금까지 돈벌고 일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다른건 다 생각안하고 살았거든. 언니가 흐느끼며 하는 말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언니와 그 남자는 사랑했다. 아름답고 행복했다. 영원을 약속했고 미래를 꿈꾸었다. 남자한테 언니의 모든 과거를 터놓았다. 도박쟁이 남편과의 눈물로 얼룩진 결혼생활과 힘들었던 삶에 대해. 사촌언니의 집에 아이를 맡기고 위장결혼으로 선택한 한국행에 대해. 그녀가 벌어오는 돈만 노리는 위장결혼수속을 해준 남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방 하나만 들고 무작정 차를 타고 도망나오던것에 대해. 불법체류아닌 불법체류자로 숨어지내던 그 시절에 법인택시를 보고도 가슴이 떨렸었던것에 대해. 그리고 그 남자에게 일년동안 번 돈을 고스란히 다 주고 겨우 리혼을 하고 한국국적을 해주겠다는 말에 스무살도 더 이상인 로인과 함께 살면서 밤마다 이를 악물었던것에 대해 터놓았다. 
    남자는 따뜻하게 언니를 안아주었고 그 따뜻함에 숙자언니는 이 악물고 결심했다. 언니는 단 한번이라도 행복하고싶었다. 행복할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언니는 혼자가 아니였다. 남자가 옆에 있다는것이 언니를 안도하게 했다.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로인한테 건네주고 오백만원짜리 차용증을 써주고 리혼을 했다. 남자는 언니의 두손을 마주잡고 이제 잘 살아보자고 약속했다. 돈도 함께 갚아나가자고 했다. 리혼한 서류를 들고 언니는 남자와 함께 려행사를 찾았다. 모든게 순조로웠다. 
    문제는 그로부터 한달이 채 안된 어느날, 려행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빈번하게 리혼과 결혼을 반복한 언니한테 령사관은 결혼심사에서 불가를 찍어준것이였다.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어. 그사람도 깊게 한숨을 쉬였어. 하지만 별말 하지는 않더라고. 그런데 며칠 지나 날마다 보이던 그 사람이 안보이는거야. 바쁘겠지 하다가 하루가 지나자 전화를 했지. 안받는거야.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더라구. 병원에 물어보니 그만두고 갔다는거야. 그때 그 사람 나랑 함께 살 집을 중국에 할부로 산다고 해서 천만원짜리 통장을 맡긴게 불쑥 생각나는거야. 어떤 돈인데. 설마 하면서도 불안했어. 일도 못하겠고 그때부터 미치겠는거야. 병원에 몸이 아프다고 휴가를 내고 그 사람을 찾아 댕겼어. 계속 전화를 해보면서 여기저기 막 찾아 다녔어.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지하철역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쳐다봤어.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말이야. 사람들도 나를 한번씩 돌아보더라구. 미친년인줄 알았겠지.
    흑. 어떡해. 나 어떡하냐구 선화야 나 죽어야 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 있어. 나한테 그렇게 다정했던 사람이 어떻게... 
    아니지. 처음부터 그 사람은 나한테 진심이 아니였을수도. 몰라. 흑. 
    언니가 단말마적으로 흐느낀다. 
    경찰서는요, 언니?
    나 그 사람 이름하고 전화번호밖에 몰라. 
    참. 결혼서류에는 등록증복사한게 있을텐데. 
    있다고 해도 찾을수 있겠어? 더구나 난 그사람한테 돈을 건네준 아무 증거도 없단말이야. 흑. 
    나는 언니를 눕힌다. 
    언니의 몸이 내 손길을 따라 스르르 쓰러진다. 
    베개를 가져다가 언니한테 베워준다. 
    언니는 벽을 마주하고 눕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래일부터 당분간 휴무입니다. 
    이제 실컷 잠을 잘수 있게 된건가. 그렇게 원하던 휴무인데 기뻐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이제 무슨 일을 찾아 할것인가를 의논한다. 퇴근뻐스안에서 토막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드디여 잡혔다고 뉴스가 나온다. 피해자와 같은 중국동포인 살인자는 피해자와 동거하던 동거남이였단다. 다른 녀자가 생겼고 피해자와 헤여지려 했으나 피해자가 끈질기게 달라붙자 화김에 살인을 저질렀다는것이였다. 
    졸음이 몰려온다. 나는 어질거리는 머리때문에 이마살을 찡그리고 통근차에서 내린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어제도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았다는걸  떠올린다.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기직전에 건늠길을 건넌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방안은 깨끗이 치워져있다. 숙자언니는 어데로 간걸가. 화장대겸 식탁으로 쓰는 밥상우에 비뚤비뚤한 글씨가 쓰여진 종이 한 장과 만원짜리 몇장이 놓여있다. 
    나 일하러 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여기 전화하고. 나 전화 안되면 여기 전화하면 돼. 언니가 돈벌면 집세 보내줄게. 이 돈 먼저 받어. 건강하고 밥 잘 먹고 있어.
    나는 핸드폰을 꺼내 통화내역을 클릭한다. 언니가 남긴 전화번호는 다름 아닌 로인의 전화번호이다. 
    왈칵,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솟구치더니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나는 어둑한 방안을 가로질러 하나뿐인 창문을 연다. 뚤렁, 눈물 한방울이 창가에 떨어진다. 해빛때문에 눈살이 쪼프려진다. 
    바람도 불지 않는 아침, 거리엔 사람들이 붐비고 차들이 분주히 오간다. 여느때와 같은 하루, 언제와도 다르지 않은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된다. 누군가에겐 끝나는 하루일테고 누군가에겐 시작하는 하루일것인 그런 하루. 특별하지도 않고 특별할것도 없는 그런 하루가 막 시작되고 끝난다. 나는 눈확 가득 고인 눈물로 인해 흐릿한 눈으로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바야흐로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이 시작된다.

                  2015년 3월 31일 한국에서 

 

단편소설 

3. 굿바이, 토요일 

 

1

"복권이나 찍어봐, 닝기미."
반사장이 주방에서 음식 내주는 칸막이사이로 나를 내다보며 충청도 사투리로 넌지시 말을 건네는 날이 있었다. 처음에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사장을 바라보았다. 반사장은 양파를 썰다가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칼을 내려놓고 나와 카운터 아래쪽 서랍을 열었다. 
"한 칸에 수자 1부터 45까지 있지? 거기서 니가 찍고 싶은걸루 여섯개만 찍으면 돼."
손등에 커다랗게 화상자국이 있는 손으로 반사장은 복권용지 한다발을 꺼내 내앞에 털썩 던져놓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복권용지를 살펴보고 반사장의 말대로 수자를 찍었다. 
반사장은 그런 사람이였다. 요점만 말해주고 나머지는 상대방이 알아서 생각해서 하게끔 했다. 사람이 그러했고 화법이 그러했다. 처음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적응했고 익숙해지자 그건 상당히 상대를 편하게 하는 처세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이 반복이 되면서 나는 반사장이 복권을 찍으라고 하는 날은 꼭 화요일이라는걸 알게 되였다. 처음에는 우연인가 했지만 늘 그랬다. 반사장네 가게에서 일한지 반년여쯤 되었을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한번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반사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찍다보니 그런거지 뭐."
대답은 그렇게 무심하게 했지만 그 이후에도 복권을 찍으라고 하는 날이 어김없이 화요일인걸 보면 거기에는 분명 반사장만의 어떤 징크스나 이유가 있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끝끝내 반사장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 가게에 출근해서부터 반사장은 꼭 나한테 복권을 찍게 했다. 번거로운 일은 아니였지만 본인은 한번도 찍지 않는게 궁금해 이유를 물었더니 반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야 그거 자동으로 또르르 나오는 거 사서는 절대루 일등 못맞어. 여태 일등 맞은 넘들 다 찍어서 맞은겨. 니가 복이 있어서 맞을라나 해서 그러는겨. 있잖냐? 일등 맞으면 한몫 크게 챙겨줄랑께 열심히 찍어봐. 나는 안돼야. 내가 그걸 찍어서 로또 당첨 될 운이면 여기서 짜장이나 볶구 있겠냐?"
중국 연변에서 한국까지 와서 서빙을 하는 나도 운이 좋을리가 있겠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반사장이 나를 시켜 복권을 찍는 날이면 손씨도 덩달아 찍었고 연변아줌마 복자씨도 찍었다. 손씨는 가게의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자기절로 사왔고 아줌마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사장의 복권을 사오는 김에 자신의 것도 사달라며 나한테 부탁했다. 

오후 네시쯤이 되면 가게는 한가하다. 
정신없이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면 나는 수저를 삶아 정리하고 냅킨이나 고춧가루를 채워놓는 등 홀 정리를 하고 주방에서는 네모지게 양파를 썰어 나한테 주고 짜장을 볶을 양파도 썰어놓고 해물도 손질해놓고 저녁 장사 준비를 한다. 나는 일하면서 이런저런 공상을 많이 한다. 반사장이 로또에 맞는 공상도 해본다.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 정말로 로또에 당첨된다면 한몫 크게 떼여줄테지? 아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 그러면 바로 짐 싸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아파트부터 척 사는거야. 흠흠 너무 좋겠지? 아니 나도 로또나 사봐? 내가 척 맞으면 그거야말로 대박이겠지? 아파트 뿐이겠냐구, 영업집도 사고 여행도 다니고 그야말로 신데렐라가 되는거겠지?
"야 너 무슨 좋은 일 있냐? 얼른 말을 햐. 같이 웃자구 응?"
그런 날이면 공상에 빠진 내가 주방에서 내다보기에도 무척 신이 나 보였는지 반사장은 그렇게 넌지시 말을 건네면서 소쿠리 가득 네모지게 썬 양파를 담아 내밀군 했다. 
그러면 나는 하던 일을 놓고 금방전에 로또나 사봐? 하던 생각을 에이 허황한 꿈따위에 빠지면 안되지, 열심히 일을 하고 절약하고 그렇게 단단하게 현실적으로 사는거야 하는걸로 얼른 바꿔버리고는 얼른 양파를 랩으로 싸서 랭장고에 넣어놓는다. 이튿날 손님상에 나갈 양파다. 하루밤 묵힌 양파는 매운 냄새가 빠져 춘장에 찍어 먹기가 휠씬 좋다. 손님상에 생으로 나가는 양파는 네모진 모양새로 이쁘게 썰어야 해서 알이 굵고 싱싱한걸로 골라서 모양에도 신경쓰면서 썰어야 하는데 반사장이 내주는 홀양파는 항상 하루동안 장사하고도 남을만큼 넉넉했다. 그렇게 남은 양파는 짜장 볶을 때 쓰고 반사장은 늘 다시 새 양파를 썰어 내여주군 했다.
"사장님, 양파가 항상 남아요. 좀 적게 썰어도 될 것 같은데요? 썰기도 힘들잖아요."
날마다 같은 일이 반복이 되자 나는 양파가 아까워 반사장한테 그렇게 말했다.
"야, 누가 알어? 이러다 갑자기 어디서 손님이 떼거지로 몰려올지? 사람 일은 모르는겨. 넉넉히 준비를 해야지. 대박나는 거 한순간이여. 사람은 항시 대박날 준비를 해야 되는겨. 로또도 내가 맞는다 그럼 어떻게 쓸지 항시 딱 생각해놓구 있어야 되는겨. 안그려? 손씨 아저씨?"
"몰러."
반사장은 큰 소리로 한껏 기운차게 말하는데 주방보조 손씨 아저씨의 대답은 이렇듯 시시하다.
"손씨 아저씨는 모른댜. 대박나면 손씨 아저씨 빼고 우리 끼리 나누자구 잉?"
큰 소리로 웃으며 커다란 칼을 휘둘러 익숙한 솜씨로 오징어 배를 가르는 반사장의 손놀림이 기운차다. 

삑.
저녁장사 준비가 얼추 끝나면 사장은 자신이 먼저 나와 자판기커피를 눌러놓고는 주방에 있는 식구들을 부른다.
"어이, 손씨. 아줌마. 나와. 커피 한잔 먹자구. 인생 뭐 있어. 먹구 하자구."
자판기 커피 한잔 먹는 사치를 누리는 이 시간은 대개 오후 세시 전후이다.
그러면 가뜩이나 짜른 목을 습관처럼 움츠리는 바람에 아예 목이 들어가 자라목이라고 사장이 놀려대는 손씨가 밀가루가 허옇게 번진 앞치마자락을 들추며 끌신을 탈탈 끌고 주방에서 나온다. 손씨는 걸을때도 다리 한번 번쩍번쩍 들어 주는 법이 없다. 손씨의 걸음걸이는 꼭 그 성정을 닮았다. 급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미적지근하게 살아가는 듯한 손씨는 보는 사람은 답답해도 본인은 자신의 생활태도에 꽤 만족스러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항상 손씨를 우습게 보는 연변아줌마 복자씨가 힐끗 손씨를 건너다보고 나한테 입을 비쭉하는것으로서 그 짧은 순간에도 손씨를 한껏 얕잡으며 주방에서 나온다. 복자씨는 본인 말을 빈다면 팔자가 사나워서 도박쟁이 신랑한테 시집을 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리혼을 하고 한국에 나왔다고 한다. 현재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 뒤바라지를 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남편 복 없으면 자식 복 없다는 소릴 누가 했대요? 우리 아들은 내가 낳았어도 정말 괜찮은 애래요. 잘생겼지 똑똑하지 공부 잘하지 내가 그거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는 다니까요."
그런 말을 할 때 복자씨의 눈은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는 잘나고 똑똑한 복자씨 아들의 사진을 여러번 돌려봤다. 잘생긴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얼굴이였고 복자씨 아들이 다닌다는 대학은 중국에서 평범한 대학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늘 엄지를 내밀어 주었고 복자씨는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각자 커피를 한잔씩 뽑아들고 나는 홀과 가까운 1번방문턱에 걸터앉고 세사람은 각자 홀 탁자에 제가끔 앉는다.
"그때는 말이야."
수다의 시작은 항상 사장이 먼저 운을 떼군 했다. 
"아 내가 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장난질만 했는지 몰러. 싸움하고 담배도 펴보고 하튼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했던겨. 공부가 그렇게 싫데? 모르니까 더 싫었던겨. 내가 이 나이를 먹구 본께 우리 엄니가 얼마나 애가 났을가 싶어. 중학교를 갔는데 이거 더는 다니기 싫은거여. 마침 학교 그만둔 애들이 자꾸 쑤시니께 그냥 무단으로 안 나간겨. 집에도 안 들어가고 애들 모인데 가서 먹고 자고 그랬던겨. 그러다가 중퇴를 한겨. 중퇴를 했응께 할게 뭐있어? 핑핑 자빠져 놀구만 있을수는 없는거 아녀. 그런데 마침 동네에 중국집이 선거 아녀? 막 사람 뽑는데 두 살 더 먹은 형이 배달로 들어갔던겨. 그래가꾸는 어느날 그 형이 오라해서 갔더니 짜장을 주는거 아녀? 아 그게 그렇게 맛있데? 짜장 먹을라구 나두 여서 일하고 싶다니께 형이 주인한테 말해주더라구. 주인을 짱꾸이라 하데? 거 싸가지 없는 넘들 짜장면 보구 짱깨 어쩌구 하잖냐? 그게 그거여. 짱꾸이가 변질돼서 짱깨 짱깨 하는겨. 지들이 짱개라 하믄 뭐할겨? 돈 많은면 갑 아니여? 그 대만사장 돈 무지하게 벌었어야. 나야 그때는 뭐 돈이구 뭐구 그런 생각도 없고 짜장면하구 탕수육 실컨 먹을라구 들어갔던겨. 쪼맨한 애가 돈을 알겨. 뭐를 알겨."
"허이구 그러게 왜 그랬대요? 공부했더믄 책상머리에 앉아 있음 얼매나 좋게요?"
연변아줌마 복자씨가 슬쩍 양념을 친다. 
"닝기미. 그래도 하기 싫은 공부보다는 짜장면집 가서 배달통 닦는게 낫데? 어려서 배달은 안 시키더라구. 그래서 배달은 못하구 아침이면 배달통 닦구 음식 나오면 랩으로 싸고 양파 까고 그런 허드렛일을 했던겨. 잡부지 뭐. 그러다가 주인이 배달을 가보라고 하는데 아 좋아 죽겠더라구. 그때는 오토바이가 어딨어? 자전거로 배달을 했던겨. 다리가 짧아서 자전거도 갠신히 타면서 말이여. 나는 짜장면 집 다니면서 키가 컸어. 통두 지금처럼 저런 통이 아니여. 닝기미. 나무로 된 궤짝 있지? 안에 2단으로 된거 그런거였어. 대만사장이였는데 짜장면도 안줬어. 이거 짜장 먹을라구 들어갔더니 응? 짜장두 안주구 말이여. 때려칠가 어쩔가 하구 있음 어떻게 아는지 또 짜장 한그릇씩 먹이데? 그래서 했던겨. 맨날 그 뭐여. 앙꼬없는 빵 있지? 중국말루 만터우여? 그거하고 짜샤이만 주데."
"그럼, 짜장면이 다 뭐여."
그쯤 되면 은근슬쩍 손씨도 끼여든다. 손씨 역시 공부가 싫어 15살부터 짜장면 집에서 양파를 깠었다고 한다. 그래도 반사장은 주방에서 요리를 배워 주방장을 하다가 자기 가게를 차리고 장가도 두 번이나 갔지만 손씨는 기껏 배운게 수타면 뽑는 것 까지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겨."
만만한게 손씨인 사장은 늘 그렇게 손씨를 골려주지만 손씨는 노상 먼 창밖만 바라보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배우지를 않았응께 한뉘 일당이나 하구 기껏해 남의 집살이나 하는거지."
반사장은 한술 더 떠서 그렇게 가만 있는 손씨를 시까스른다. 그쯤 되면 손씨도 은근슬쩍 한마디 얹는다.
"주방일 배웠음 뭐할겨? 장가 두 번이나 가서 나보다 나은게 뭐여? 나는 그래도 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자유의 몸 아니여?"
"그렇게 말하면야 내가 할 말이 없지. 에라이, 닝기미."
그쯤되면 할 말이 궁해진 반사장은 입을 다시며 창밖을 내다본다. 

반사장은 장가 두 번에 두 번째 마누라가 데려온 자식까지 아들만 셋이다. 큰아들은 할아버지가 키웠고 두 번째 마누라가 데려온 아들은 공부는 뒤전이고 되지도 않을 비보잉을 한다고 설치고 다닌다. 내가 보기에도 차라리 주방에서 요리나 배우는게 썩 나을 법한 아이였다.
셋째아들은 지력장애에 시각장애가 겹친 중증장애인이다. 
반사장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그 셋째아들을 자기가 죽는 날까지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그 셋째아들 때문에 술집아가씨 출신인 둘째마누라와 이혼도 못하고 꼼짝없이 잡혀 살고 있다고 푸념을 한다. 
반사장 마누라는 50이 가까워오는 나이에 머리를 새노랗게 물들이고 반사장 말을 빈다면 뿔어터진 짜장면마냥 뽀글뽀글 우에는 파마를 하고 아래쪽은 생으로 늘어뜨렸다. 엉뎅이를 아슬아슬하게 덮은 미니스커트는 찢어질 듯 팽팽하게 육덕진 엉뎅이를 감쌌는데 앞배는 엉뎅이보다 더 크게 튀여 나와 있어 차라리 츄리닝 바지를 입는게 더 보기 좋을 듯 싶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던 말던 반사장 마누라는 시종 꿋꿋이 보통 아줌마들과는 차별화된 자신의 모습에 꽤 만족하며 활개치고 다닌다. 
반사장 마누라는 성정도 보통 그악스러운게 아니다. 생활비가 하루라도 입금이 지체되면 바로 아들을 앞세워 가게로 쳐들어온다. 한두번 본적 있는데 그런 날 그 여자의 얼굴은 푸르뎅뎅하고 작정하고 싸우러 온 것 같은 기세이다. 
"진섭이 왔어?"
손으로 더듬으며 진섭이가 가게로 들어서면 나도 아줌마도 손씨도 반갑게 맞는다. 반사장은 큰 소리로 우리 진섭이 온겨? 아빠 보러 온겨? 하고 말을 건네고 순하고 착한 진섭이는 차례로 우리를 더듬어보고는 정아이모다. 복자아줌마다. 손씨 아저씨다. 하면서 인사하고 주방쪽을 향해 서서는 아빠. 보고 싶었어요. 하고 공손하게 말한다. 

그런 날, 반사장은 묵묵히 정성들여 튀긴 탕수육과 짜장을 내민다. 진섭이는 짜장면 매니아다. 탕수육부터 먹으라고 엄마가 말해도 언제나 입가에 거멓게 짜장을 묻혀가며 양파쪼각 하나 남기지 않고 짜장부터 먹는다. 그런 진섭이를 수시로 내다보는 반사장의 얼굴에는 그토록 흐뭇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그럴 때 나는 반사장이 아들한테 직접 만든 짜장면을 먹이려고 생활비를 입금하지 않은 것 같은 의심이 들군 했다. 진섭이는 짜장면을 다 먹고 난 다음에야 탕수육 몇 개를 집어 먹는다. 반사장 마누라는 마주 앉아 야무지게 탕수육을 집어 먹으며 진섭이 입가를 수시로 닦아준다. 
그렇게 배부르게 한끼 식사를 마치고 나면 코스요리의 순서처럼 반사장이 미리 준비했던 돈을 털썩 복권용지 던지듯 마누라앞에 던져주고 마누라는 아무말 없이 돈을 핸드빽에 쑤셔넣고는 다시 진섭이를 앞세워 가게문을 나선다. 진섭이 뒤를 따라 나가는 반사장 마누라를 보면 그래도 엄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 여자는 창피한줄도 모르는 여자여."
그런 날 반사장이 신세한탄 하며 하는 소리다. 
"얼른 돈을 내줘야지 안 그러면 손님이 있고 없고 상관도 안 햐. 필시 울고 불고 난리를 필겨. 명섭이 엄마 참했는데 다 내가 정신이 빽 돌아서 이런 팔자가 된겨."
명섭이 엄마는 반사장의 전 마누라다. 반사장은 이혼한 전 마누라 말을 할때면 눈빛이 아련하다. 
"내가 명섭이 엄마하고 이혼을 안했으면 팔자가 이 모양 이 꼴이 안됐을거 아니여? 지금 새빠지게 일해봤자여. 장사를 해봤자 남는게 있어야지? 내가 미쳤던거지 뭐. 젊은 혈기에 맨날 술이나 먹구 술집이나 다녔은께 어떤 마누라가 살겠냐구, 어느날 밤새 술먹구 아침에 들어가니께 이혼을 한다고 보따리를 싸데. 그래서 갈라면 가라 닝기미. 그랬지. 그랬는데 이게 글세 정말로 가는거 아녀? 그때 잡았어야 하는데 너 아니면 여자가 없냐 하구 이혼을 할라면 하자 했던겨. 명섭이 네살때여. 이혼을 하니께 애는 우리 엄니가 와서 데려가더라구."
"술집 갈 돈은 어디서 났대요?"
복자씨는 늘 그렇듯 엉뚱하게 말을 얹는다.
"돈이 있으니까 간거 아니여? 그때는 잘 벌었지. 홀에 상이 네 개 있고 주방 있는 쪼그마한 가게를 맡았는데 이거 배달이 불이 나는기라. 최고 잘될때는 배달 열두명까지 뒀었다니까? 하루 장사하면 검은 봉다리에 돈이 묵직했어. 그걸 베고 자고 이튿날 아침이면 가서 은행에 넣어놓고 그랬당께. 아 그때 짜장면 집 있던 거기 삼거리 잉? 거기 농협에 또 이쁜 아가씨가 있었다는거 아녀. 날씬하구 얼굴두 동그란게 무지하게 이쁘데? 아침에 돈 가지구 가면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말이여. 그 아가씨 땜에 날마다 거기 돈 넣으러 가는게 그리 신났어야. 신나면 뭐할겨? 그 아가씨가 짜장 파는 넘을 볼리두 없구 뭐 나두 보기만 하구 넘보지두 않았어. 지 꼬라지를 알라 뭐 그런 말두 있잖여. 그래 돈이 있은께 술친구들이 맨날 전화오구 장사 끝나면 나가 술먹구 그랬던겨. 나중에는 사람 쓰구 술집만 돌아다녔던겨. 미친거지 닝기미. 아 그때 왜 그랬나 몰러 잉? 그때 정신을 차렸어야 했던겨. 그랬음 지금쯤은 짜장을 안 볶아두 살수 있을거 아녀."
"에혀 복을 발루 찼구만유. 명섭이 엄마 이뻤어요? 명섭이 본께 엄마가 이쁜 같애서리"
복자씨가 맞장구를 쳐준다.
"그럼, 이뻤지. 얼굴도 이쁘구 날씬하구 고등학교를 나왔구 잉? 그뿐 아녀. 착하구 알뜰했어. 지금 진섭이 엄마는 발꼬락에 비기지두 못햐. 장가는 제대루 갔는데 다 내가 정신을 못차려서 지금 이 꼬라지가 된거 아녀? 지금 저거 진섭이 에미 술집서 만났는데 덜컥 애가 생겨 버린거 아녀? 어쩔수 없잖여. 지 자식을 버릴수는 없는 거 아녀.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장가는 가야니께 아무거나 델꾸 살자 그래 생각을 했던겨. 그래 갖구는 집에 데리구 갔는데 우리 엄니가 진섭이 에미를 보더니만 돌아 앉는거 아녀? 우리 엄니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보거든. 엄니가 하도 안된다니까 나도 뜨직하긴 했지만 그렇다구 뭐 이미 생겨버린 애를 뗄겨 어쩔겨. 그때는 지금처럼 법으루 락태금지 이런건 없었어. 그랬지만두 나는 또 그 짓은 못하겠데? 맨날 술 먹구 미쳐 돌아댕게두 또 그 짓은 못하겠더라구. 진섭이 에미두 또 그건 못한댜. 암튼 그래서 같이 살다가 애를 낳았는디 낳아보니 저런거 아녀? 눈앞이 캄캄하더라구. 아. 그때 술집서 첨 진섭이 에미를 봤는데 그게 또 그리 이뻐보이더라구 닝기미. 살살 웃어가메 꼬시는데 홀랑 넘어간거 아녀?"

"에혀 이쁘긴 어디가 이쁘다구 거기에 넘어갔대요? 그거 진섭이 에미 시집두 안가구 애를 낳았다면서요? 혼자 애 델꾸 살다가 남자가 돈깨나 있어보이니까 팔자 고칠라구 꼬신거지 뭐."
복자씨가 쐐기를 박는다.
"그때는 이뻤던겨. 지금이야 저렇게 살두 찌구 볼품없지만. 뭐 지두 팔자나 고쳤어? 팔자두 못 고친겨. 그래두 나는 진섭이 낳구 정신을 차렸어. 아 애가 앞도 못보고 그런걸 본께 정신이 팍 하고 드는거 아녀? 그때부터 술 끊었던겨. 진섭이 아니였음 누가 알어? 지금 저기 알콜중독 치료하는데 어디여? 그런 병원에 들어가 있을지 아님 벌써 뒤졌을지 아무두 모르는겨. 어찌보믄 진섭이가 날 살린겨."
반사장이 말끝을 흐리며 밖을 내다본다. 
반사장은 솔직한 사람이다. 숨길만도 한 개인사나 자기 자신의 치부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털어 놓는 사람이다. 
"그전에 장사가 좀 잘될때는 그나마 남았는데 지금은 아무리 해봤자 마누라한테 생활비 주고 또 받아가는건 좀 많어? 낼거 내고 집세 주고 월급 주고 하면 하나도 안 남어. 저번달에는 30만원 남았데. 닝기미. 복권이나 맞아야 뭘 어떻게 하던가 하지. 야야 차 들어온다. 짜장이나 팔자구 잉? 어쨌거나 복권 맞기전까지는 짜장을 팔아야 할거 아니여."
반사장은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에 넣고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고 손씨와 복자씨도 뒤따라 들어간다. 나도 메뉴판을 집어들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내가 길림성짜장면집에 취직한건 2008년 2월이였다. 
나는 좀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한국땅을 밟았고 언니가 있는 충청북도 청주에 짐을 풀게 되었었다. 장기체류를 할수 있는 취업비자를 신청하고 일자리를 찾아 취업한 곳이 이곳이였다. 
"랠부터 나와보슈."
간단한 대화 끝에 반사장은 그렇게 선선히 나를 받아들였다.
그 이후에도 나는 반사장이 어떻게 중국에서 금방 왔고 일도 못해봤다는 사람을 아무런 고려없이 채용할수 있었는지가 무척 의아했다.
"사람 다 똑같지머, 일은 배우면 되는거구."
반사장은 그렇게 뭐든 간단하게 귀결짓군 했다. 그 이후에 연변아줌마 복자씨가 올때도 그랬고 지금의 손씨가 일당으로 왔다가 눌러 앉을때도 그랬다. 
"나와보슈."
"월급으로 안할겨?"
그게 다였다.
누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해도 잡는 법이 없었다. 
"알았어. 사람 구해야지 뭐."
그렇게 무심히 던지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하군 했다. 
이른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반사장식 관계법이였다. 


2

길림성 짜장면집 서빙은 일이 쉽지는 않았다. 
서빙을 거의 나 혼자 하다 싶이 하는거라 아침에 출근하면 테이블 여섯 개와 방 다섯 개를 쓸고 닦고 홀을 밀걸레로 밀고 나면 땀이 흠뻑 난다. 아침밥을 먹고 점심시간에 쓸 단무지와 양파를 작은 접시에 담아 쌓아놓고 춘장도 미리 담아놓는다. 자판기 커피가 떨어졌나 점검도 하고 김치도 썰어놓고 예약이 있으면 미리 세팅을 해놓는다. 그러다보면 하나 둘 손님이 들이닥친다. 음식을 주문받고 날라가고 치우고 계산까지 혼자서 해야 하는 터라 바쁜 시간이면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아다녀야 한다. 

가끔 두 번째 마누라인 진섭이 엄마가 불쑥 차를 끌고 와서는 한껏 사모님 흉내를 내며 이것저것 시켜먹는 날이 있다. 반사장 말을 빌자면 돈이나 좀 뜯어갈가 해서 오는거란다. 
"줄 돈은 없구 탕수육이나 갖구 가."
주방에서 일하다가 반사장은 칸막이사이로 그렇게 마누라한테 말을 건넨다.
"탕수육 말구 팔보채나 해줘 봐. 해물 듬뿍 넣구, 그래봐야 당신 아들이 먹지 내가 안 먹어."
"알았어."
팔보채를 싸들고 짜장도 싸들고 하다못해 양파와 단무지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반사장 마누라는 돌아간다. 그런 날 아니면 홀의 일은 나 혼자 알아서 하는거라 자유스러웠다. 
월급도 나쁘지 않았고 언니네 집에서 걸어서 다닐수 있는 거리라 교통비도 들지 않고 나름 괜찮은 직장이였다. 조건이 나쁘지 않아 나도 길림성 짜장면 집에 눌러앉기로 했다. 나는 월급을 환율로 계산해보며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빠른 시간내에 목표를 달성하고 집으로 돌아갈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한국으로 나올 때 목표가 아파트 한 채 사는것이였으니 그만한 돈만 모으면 될거 아닌가.

복권추첨이 있는 토요일이 오면 반사장과 손씨아저씨 복자씨는 무척 행복해 했다.
토요일 오후 쉬는 타임이면 온통 저녁에 있을 복권에 관한 얘기였다. 표정만 본다면 세사람 모두 벌써 일등에 당첨된 것 같았다. 그런 말을 할 때 반사장은 비밀스런 얘기라도 된다는 듯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복권만 맞으면 진섭이 데리구 여행 떠날겨. 소리 소문없이 가게 처분하고 깜쪽같이 날르는거야."
"사모님한테는 얘기 안하게요?"
일부러 내가 그렇게 한마디 거들면 반사장은 야 무서운 소리 하지두 말어. 그 여자 알면 큰일나는 겨. 하고 정색했다. 
"그럼, 말이라구."
장난삼아 거든 내 한마디에 복자씨까지 거들군 했다.
"저번주 1등상금이 25억이데. 복권 딱 맞으면 잉? 정아 니가 5억 가져. 니가 찍어서 맞았은께 5억은 떼줘야지 뭐. 5억이믄 너두 중국가서 어지간히 살거 아녀? 그리구 한 3억 정도는 로후 대비해서 저축을 해놓고 5억은 명섭이 몫으로 갈라내놓고 나머지 가지구 진섭이랑 여행 다니는겨. 저어기 딤섬인가 있지, 껍질이 파뜰파뜰한 만두 그거 인천 가서 한번 먹어봤는데 무지하게 맛있데? 홍콩가서 그것도 먹어보고, 베트남도 가보고 세상구경 한번 해보는겨. 티비서 보니 베트남도 좋은데 많더라구, 그러다가 어디 적당한데 있음 짜장면집 차리고 눌러 앉는겨."
그런 말을 할 때면 늘 그렇듯 반사장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복권 맞으면 그 돈 다 쓸때까정 돌아다닐겨."
그쯤 되면 은근슬쩍 손씨가 끼여 들며 하는 말이다. 
"그려, 손씨 아저씨야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되니께 실컨 돌아다니라구 잉? 아줌마, 아줌마는 바로 중국 갈거지?"
반사장이 복자씨를 돌아본다.
"그럼요. 말이라구, 아들 몫으로 반 갈라 주고 나머지는 내가 은행에 저축해놓고 실컨 누워서 뒹굴어 볼거라요. 내사 이날 이때까정 맘 놓구 누워서 뒹굴어 본적이 없은께."
"아줌마는 여행 안갈겨?"
"아이구, 난 싫어유. 뭐하러 돈 팔아서 고생한대요?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어휴 나는 그런거 싫어요. 집에서 맛있는거 먹구 누워서 이리 딩굴 저리 딩굴 하면서 실컨 드라마나 보구 난 그게 딱 좋아유."
"그려. 아줌마는 그렇게 햐. 아 그런데 말이여. 여태 복권 맞아서 잘된 놈 별루 없데. 돈 생기니까 놀음하구 어쩌구 흥청망청 써버리구 쪽박 차는 겨. 뉴스에두 나오잖여. 복권 맞았다가 홀랑 다 까먹구 어쩌구 하면서 말이여. 청주에도 그런 놈 하나 있잖여. 복권을 맞았는디 도박에 다 처넣고 몇 년 뒤에 본께 일당 다니고 있더라구. 닝기미. 나는 딱 계획을 세웠은 께 절대 그럴 일이 없지. 아 청주서 배달할 때 하루는 배달 하던 넘이 찍어놓구 사러 갈라는데 그날따라 배달이 밀려서 바쁘다보니 복권을 못산겨. 그랬는데 그날 그 번호가 맞은겨 아녀? 열받아서 주인하고 싸우고 가버리데."
"어이구, 저런, 얼마나 열받았겠어요?"
복자씨가 혀를 끌끌 찬다.
"그럼, 말이라구. 죽이고 싶었겠지. 살인 안 난게 다행인겨."
반사장이 큰소리로 받아 친다. 
"다 운이여. 운."
손씨가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들이켜고 한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와아~"
하루 장사가 끝나고 마감할 때 쯤, 주방에서 떠들썩하는 환호성이 들려오는 날이 있다. 
나는 세사람의 흥분에 들뜬 목소리만으로 오늘이 토요일이며 지금은 밤 아홉시라는걸 안다. 
"얼른 봐봐 맞았나. 어쨌나."
반사장이 주방칸막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흥분에 들뜬 목소리로 재촉한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서 카운터 돈궤 한쪽에 보관해 놓은 복권을 들춰내 황급히 맞춰본다. 
"어뗘?"
"하나도 안 맞았어요. 사장님."
그런 날이면 사장은 어김없이 새롭게 각오를 다지듯이 물 건너 갔다. 복권이구 뭐구 짜장이나 열심히 팔자구. 잉 하면서 앞치마를 벗어 제끼고 주방에서 나온다. 
"어뗘? 손씨 아저씨는 맞았어?"
그러면 눈을 쪼프리고 수자를 맞춰보던 손씨가 복권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넣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맞기는 쥐뿔."
"에라이, 닝기미."
"아줌마는?"
"없지, 맞았음 이러구 있겠어요?"
그런 때 복자씨는 화난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꾸한다.
"모르지, 아줌마 맞구서 가만히 있는지 어떻게 알어? 야 랠 아침에 아줌마 출근 안하면 큰일인데? 사람 구해야잖아."
그렇게 한바탕 떠들썩하다 사장이 어여 가봐 하면 가게에서 자는 사장한테 인사를 하고 세사람은 각자 퇴근을 한다. 혹시 누가 5천원짜리라도 맞는 날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야, 이거 희망 있는데?"
"좀만 더 노력하자구 잉?"
"두개만 더 맞았어야 했어. 아 참."
복자씨도 아쉬워서 혀를 끌끌 찬다. 그렇게 맞은 5천원짜리는 출근때면 사장의 심부름으로 매일같이 은행이나 슈퍼를 들러 오는 나한테 차려졌다.
"이거 돈으루 가져올가요?"
혹시나 해서 물으면 세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웨쳤다. 
"말이라구, 로또로 바꿔와야지. 거의 되다 말았는데."

일요일 하루는 분위기가 확 바뀐다. 
세사람 모두 다시는 복권을 사지 않을 분위기다. 
"돈이 아깝다니까. 그걸루 콩나물을 사봐. 우리가 일주일은 먹을거여. 그렇지?"
반사장이 먼저 말을 꺼내면 아줌마가 받아친다.
"그럼요. 다신 사지 말아요."
"아줌마는 두줄밖에 안 사잖아. 이천원어치. 이천원이 뭐 버스 두 번 타는것밖에 더 돼?"
손씨가 슬쩍 거든다.
"뭐 이천원은 돈이 아녜유? 천원이라도 어디서 누가 공짜루 준대유?"
아줌마는 손씨 말이라면 무작정 면박을 준다. 
"손씨 아저씨는 통이 커. 만원씩 사잖아. 나는 돈이 없응께 5천원어치씩 사고,"
사장이 슬쩍 시까스른다. 
"허이구야, 그러니 못사는거라요. 원래 못사는 사람들이 더 헤픈께."
아줌마가 혀를 찬다. 그쯤하면 화를 낼만도 하지만 손씨는 들은척도 않고 종이컵을 기울여 후루룩 소리가 나게 커피를 마신다. 

 

3

"시민경제가 얼어 붙고 있습니다. 실직한 가장이 자살을 했습니다."
뉴스는 련일 경제불황을 전하고 있었다. 밖에는 지루했던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바람에 훈기가 돌고 식당 앞마당에 풀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가게 안의 분위기는 얼어 붙고 있었다. 
2008년 봄이였다.
3월초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장사가 완전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어째도 점심에는 항상 바빴는데 이젠 점심장사도 뜸하고 저녁장사는 아예 물 건너가는 날이 많았다.
사장은 날이 풀리면 또 될거라고 불안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지만 6월이 오고 마당에 풀이 무성해져도 장사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이 따듯해지면서 랭면과 콩국수를 개시하고 크게 프랑카드까지 식당으로 들어오는 큰 길 입구에 걸었음에도 손님이 뜸했다.
그제는 반사장도 작년 이맘때는 무척 바빴었는데 올해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였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커피 마시러 홀로 나오는 대신 바로 방에 들어가서 말없이 텔레비만 보고 있었다. 장사가 안되니 일하는 우리도 자연히 의기소침해지고 알게 모르게 사장 눈치를 보게 되었다. 

반사장은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복권을 찍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가게장사는 점점 내리막이였다.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였다. 뉴스는 련일 숨막히는 불황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도 걱정에 쌓여있었다. 2월까지만 해도 70을 웃돌았던 환율이 60이 되었다가 이제 50에도 못미치고 있는 것이였다. 환율에 따라 중국돈으로 계산되는 돈의 액수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지라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복자씨는 이 환율에도 달마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한테 돈을 보내줘야 한다면서 한숨을 푹푹 쉬였다. 손씨한테 눈을 흘기는 것도 잊은 듯 했고 목소리도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장사가 안되니 할 일은 없고 홀에 앉아 시간을 때우기도 애매하여 사장을 제외하고 손씨와 나 복자씨는 날마다 별로 할 것도 없는 청소에 매달렸다. 
복자씨는 고무호스를 길게 늘여 유리로 된 출입문에 물을 뿌리고 세제로 닦았다. 나는 창턱을 닦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식탁을 닦고 방석을 수시로 정리했다. 
세사람이서 준비하던 장사준비는 이제 손씨 혼자서도 충분한 듯 했다. 손씨는 혼자 양파를 썰어놓고 짬뽕에 들어갈 오징어를 다듬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사람을 내보내겠단다야."
어느날 오후, 주방에서 나온 복자씨가 나한테 가만히 하는 말이였다. 복자씨는 나와 단둘이 대화할때면 연변말씨를 쓴다.
"누기를 내보낸담까?"
나도 연변말씨로 대꾸한다. 복자씨는 대답대신 턱으로 커피 자판기앞에 서서 커피를 기다리는 손씨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예? 손씨를?"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반사장은 맨날 손씨아저씨는 죽을때까정 우리 가게에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장사가 안돼 사람을 줄여야 한다면 아줌마를 정리하지 손씨 아저씨를 정리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해본 터였다.
"응, 반사장이 아까 주방 청소하면서 말하더라."
그리고 며칠후, 손씨는 사장하고 어떤 말이 오갔는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면서 인사하고 내 예상과는 달리 기분좋게 웃으며 떠나갔다. 사장은 떠나가는 손씨의 손을 오래 잡고 인사 말을 했다. 많이 아쉬운 표정이였다. 나는 홀을 봐야 하고 아줌마는 주방일은 손씨만큼 못한다지만 홀이 바쁠 때 더러 나와서 도와줄수도 있고 무엇보다 손씨보다 월급을 적게 받으니 손씨를 정리한 것일거라고 복자씨가 추측했다. 나는 이해는 가면서도 반사장의 랭정한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서늘해났다. 

그 와중에 내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미 집은 할부로 덜컥 사버렸고 지금의 환율로 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은행대출을 다 갚을지 미지수였다. 지금의 방문취업제 h2비자는 만기가 되면 돌아가야 하고 또 한동안 중국에 있으면서 기다려야 다시 비자를 받아 한국에 나올수 있다. 달마다 갚아야 하는 돈에 생활비까지 지출은 고정되여 있는데 그렇게 공백기간이 생기면 감당이 안될것이였다. 중국에 들어가지 않고 비자를 바꾸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기술자격증을 따서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를 따는 것인데 기술자격증을 딸수 있는 학원을 다녀야 한다. 그럴려면 여기를 그만둬야 하고 기술자격증을 따려면 서울이나 경기도권에 올라가야 했다. 일도 못하고 비용이 허망 들어가야 하는터라 그때의 나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해볼수 없는 길이였다. 
다른 하나는 계약을 하고 비자를 따는것인데 회사나 가정부 두가지가 가능했다. 회사는 2년계약을 하고 만기가 되면 비자를 받을수 있는것인데 알아보니 그렇게 계약해주겠다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만약 반사장이 나를 가정부로 계약을 해준다면 가능하긴 한데 그렇게 해줄것인지가 의문이였다. 홀서빙은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구할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써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나는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일부러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반사장한테 내 사정이야기를 했다. 안되면 말고 밑져야 본전이였다. 
"그럼 가정부로 계약을 하면 확실하게 될수 있다는 거지?"
"예"
"알아봐, 그럼."
나는 우선 반사장이 고용지원센터에 가정부를 구한다는 구인등록을 하고 다시 연휴에 사람을 구했다고 통보를 하고 계약을 해야 한다고 미리 알아본 내용을 말해주었다. 번거로운 일련의 절차외에도 반사장이 매달 8만원정도의 고용보험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반사장은 그려? 알았어 하더니 이튿날 바로 전화로 청주고용지원센터에 구인등록을 했고 며칠후 점심시간이 끝나자 복자씨한테는 은행에 볼일이 있어 나하고 함께 가봐야 한다고 하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와 소리쳤다.
"야, 얼른 가."
반사장은 검정색의 낡은 쏘나타승용차에 나를 태워가지고 청주고용지원센터와 출입국 사무소 등을 다니며 그 번거로운 일련의 절차들을 짜증 내는 기색 하나 없이 다 밟아 주었다. 가게가 현상유지도 어려운 상태에서 달마다 8만여원의 돈이 더 나간다는건 반사장에게 꽤 큰 지출일텐데 거기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었다.

 

4


가을이 되자 반사장은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하면서 힘들어서 그만뒀던 배달장사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했다.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배달통을 꺼내다가 복자씨와 반사장이 닦았다. 사람모집 광고를 냈고 스포츠카나 몰고 다니면 좋을 얼굴이 하얀 남자애가 면접보러 왔다. 
반사장은 선선히 나오라고 했고 그렇게 민영이라는 그 애는 우리 길림성 짜장면집 새 식구가 되였다.
"일을 잘하네, 먼거리도 순식간에 갔다오고,"
그날 오후, 오래만에 반사장이 얼굴에 화색을 띄우고 홀에 나와 커피를 뽑으며 하는 말이였다. 예상과 달라 꽤 흡족하다는 표정이였다. 
배달을 시작하자 가게는 화기가 돌았다.
홀에 손님이 없을때에도 배달전화는 왔고 나도 음식포장을 돕고 아줌마와 반사장도 홀장사와 배달 두가지를 준비해 내놓느라 주방에서 분주히 돌아쳤다. 

"복권 좀 찍어봐. 오래만에 꿈이나 좀 꿔보자구."
배달이 많아 바빴던 날, 반사장이 양파를 썰다가 주방칸막이사이로 나를 내다보며 말했다. 반사장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있었다. 
가게는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 듯 했다. 
오후쯤이면 반사장과 복자씨, 손씨 대신 민영이가 홀에 나와 커피를 마셨고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복권을 샀다. 민영이는 2만원어치씩 샀다. 그들은 토요일을 기다리며 꿈을 꿨고 즐거워 했고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실망을 하군 했다.


5


2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배달원은 여러번 바뀌였다. 
민영이와 그 뒤에 유난히 까칠했던 재영이라는 남자애, 그 뒤에도 여러명을 거쳐 지금은 박씨라는 허리가 구부정하고 비쩍 마른 아저씨가 배달을 하고 있다. 
반사장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복자씨와 나는 오래오래 적어도 중국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가게에 남아달라는 말을 심심찮게 했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꽤 두터운 사이가 되어있었다. 

반사장과 가정부로 계약한지 일년이 되어 나는 재외동포비자를 신청했고 순조롭게 비자변경을 했다. 
그 즈음, 경기도쪽에 있는 친구로부터 주야간을 하는 회사에 다니면 휠씬 돈을 더 벌수 있으니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 재외동포비자는 회사면접에서도 꽤 유리하다고 했다. 나는 고민끝에 길림성 짜장면집을 그만두고 주야간을 하는 회사로 가서 좀 더 많은 돈을 벌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출도 갚아야 하고 돈을 벌러 왔으니 일단 돈을 벌어야 했다. 인정은 그 다음의 일이였다. 
나는 식당을 그만둬야 될 것 같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얼굴까지 붉혀가며 겨우 반사장한테 말했다. 미안했고 배은망덕한 것 같아 죄스러웠다. 했으나 반사장은 뜻밖에 화통하게 대답했다.
"돈 벌러 왔응께 돈 더 벌수 있는데로 가야지 뭐."
"그럼 사람 구할때까지만 할가요?"
하지만 반사장은 손을 저었다.
"괜찮어, 네 일이 더 중요한께 네 일을 봐. 여기 사정은 생각 말고, 야 외국서 멀리까정 돈 벌러 온 사람이 그리 생각이 많음 어떡햐? 당분간 진섭이 에미 나와서 홀 보라고 해야지머. 아님 일당을 쓰던가. 힘든대로 또 그렇게 넘기다가 사람 구하면 되는겨. 야, 걱정말어. 저기 뭐여. 복권이나 몇장 찍어놓구 가."
그날은 목요일이였다. 
"저기 사장님, 벌써 오천원어치 사놓았는데요?"
"더 찍어. 까짓거 소나 말값도 아니고, 야 누가 알어? 일등 턱 맞으면 바로 가게 접는거야. 몇장 찍어놓구 가."
그날 나는 어느때보다도 더 신중하게 복권을 찍었다. 복권방에 가서 수자를 선택한 용지를 내밀고 복권을 사서 카운터아래 서랍에 정히 넣어두었다.

떠나는 날은 토요일이였다.
나는 일찍 가게로 나가서 작별인사를 했다. 
사장과 박씨아저씨, 복자씨가 따라나오며 몸 조심하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세끼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나는 허리굽혀 인사를 하고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얼결에 오늘이 토요일이네요. 라고 했다. 
"그려, 일등 맞거든 전화할게, 다 때려치고 내려와."
사장이 허허 웃었고 복자씨와 박씨아저씨가 따라 웃었다.
귀전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봤더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날아예고 있었다. 해빛이 눈부시고 불어예는 바람이 싱그럽고 하늘이 파란 참으로 화창한 5월이였다. 
나는 손을 저어보이고 택시에 탔다.
새로운 출발이다. 
이제 이곳의 모든 것들과 영영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자 반사장과 복자씨 박씨아저씨가 벌써 그리워졌고 토요일밤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주야로 돌아가는 회사에 가면 더는 내게 토요일의 여유란 존재하지 않을것이였다. 나는 잠간 나도 새로운 곳에 가면 화요일마다 복권을 사볼가, 토요일의 헛된 희망에 잠간 기대볼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머리를 저었다. 좀 더 단단하게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으니 헛된 희망따위에 기대를 거는 일은 없어야 할것이였다. 
"어디까지 가유?"
머리가 희끗한 택시기사가 나를 힐끗 곁눈질했다.
"터미널이요."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것들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고 있었다. 
내가 탄 택시가 막 큰 도로에 막 접어들었을 때 나는 맞은켠으로부터 눈에 익은 은회색 승용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차번호를 확인해보니 반사장의 둘째부인 진섭이 엄마의 승용차였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굿바이, 내가 사랑했던 이들. 굿바이, 나의 토요일. 

2019년 1월 21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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