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22일 서울 구로구 구로갤러리에서

5월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구로구 구로문화센터 갤러리 구루지에서 「문현택 개인전」이 열린다. 문현택 화백(60세)은 “백두(白頭)-한라(漢拏)” 주제로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백두산에 머물며 스케치한 작품들과 중국 연변의 두만강변을 스케치한 작품, 그리고 제주를 수차례 오가며 스케치한 작품 35점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1963년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에서 출생한 문현택 화백은 열 한 살 소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 흥취를 갖게 되어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 해림시조선족고중을 졸업하고 해림문화관 미술반 활동을 하고, 1984년에는 연변 미술공장에 취직해 그림을 그리면서 연변방송통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94년경에는 연변에서 알게 된 한국인 소개로 진주 예원화랑에 전속작가로 있으면서 대구대학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그 후 한국에 머물러 생활했다. 2016년에는 한중포커스신문을 창간해 언론사 대표로 활동하면서 풍경화를 위주로 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림 전시회는 2010년 조선일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2015년, 2019년에 이어 이번에 4번째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이다.

한국예술연구회 임봉재 대표는 이번 「문혁택 개인전」을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비경을 찾아낸 문혁택의 대하 드라마”라고 평가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문현택 작품은 붓이 아닌 나이프(칼)로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도 독특함이 있다.

지난 5월 10일 문현택 화백을 만나 그의 그림과 함께 해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가족 이야기를 들려달라

“나의 아버지는 경남 밀양이 고향이시다. 19세때 중국 심양 무순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후에 연변 안도에서 살다가 흑룡강성 해림시에 와서 수전(논농사)을 하는 농민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큰 형님은 안도에서 태어났고, 5남매 중 막내인 나는 해림시 신안진에서 1963년 태어났다.”

-고향 신안진은 어떤 곳인가?

“해림시 지역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신안진에는 11개의 조선족 집성촌이 있었고, 내가 소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학급당 45명씩 4, 5개 반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다.”

문현택 화백이 2006년도에 출품작으로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사진 속의 소년은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뒤에 굴렁쇠를 들고 허름한 농가에 서 있는 모습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 장애를 갖게 된 문 화백은 어릴 적에 달리기, 공차기 하는 아이들을 제일 부러워 했다고 한다. 굴렁쇠를 들고 있지만 남들처럼 굴렁쇠를 굴릴 수 없었던 소년은 굴렁쇠를 뒤에 숨기고 서 있다. 
문현택 화백이 2006년도에 출품작으로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사진 속의 소년은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뒤에 굴렁쇠를 들고 허름한 농가에 서 있는 모습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 장애를 갖게 된 문 화백은 어릴 적에 달리기, 공차기 하는 아이들을 제일 부러워 했다고 한다. 굴렁쇠를 들고 있지만 남들처럼 굴렁쇠를 굴릴 수 없었던 소년은 굴렁쇠를 뒤에 숨기고 서 있다.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은?

“나는 태어나서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농사일을 거둘 수 없어서 집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다. 의사가 되라면서 마을 한의사에게 붙혀 침술 등 의술을 배우게 했지만, 몇 달 해보고 그만 두었다. 또 TV나 라디오를 수리하는 전기공이 될 것을 권유했지만 거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것은 달랐다. 어릴 적 처음에 고향 선배가 그리는 것을 따라했는데,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니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같다.”

-그림 공부를 별도로 했나?

“시골 농가라 돈도 없었다. 그런데 무료로 그림을 배워주는 곳이 있어서 주말마다 기차 타고 가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다시 집으로 왔다. 그렇게 그림을 배웠다. 나는 생계를 위해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림문화원 미술반에서 활동하고, 신안진 소학교에서 미술서클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배워주었다. 그리고 1984년 연변 연길에 있는 미술공장에 취직했다. 그림 공부는 연변방송통신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연변에서 만나 알게 된 한국인 소개로 1994년경 한국에 유학으로 오게 되었다. 진주 예랑화원 찬속 작가로 대구대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 한국생활은 어떠했나?

“한국에 처음 올때는 3년만 있자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 1997년에는 성남 모란시장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 매스컴을 통해 김해성 목사를 알게 되어 성남 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통역을 해주며 자주 왔다갔다 하다가 2000년 한중동포신문사에 들어가서 그림 컷, 시사만평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동포 관련 신문사 활동을 해오고, 2016년에는 한중포커스신문을 창간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그런 중에도 그림은 계속해서 그려왔다.”

네 번째 개인전 팜플렛을 펼쳐보이고 있는 문현택 화백
네 번째 개인전 팜플렛을 펼쳐보이고 있는 문현택 화백

-이번 네 번째 개인전은?

“2010년 조선일보 갤러리에서 첫 번째로 가진 개인전은 별다른 주제없이 그동안 그려놓았던 그림을 전시한 것이다. 2015년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2019년 구로 갤러리 개인전은 구상과 비구상, 추상과 사실 사이에서 고민을 화폭에 담았다. 이번 4회 개인전은 백두산과 한라산을 주제로 지난해 한해동안 준비한 작품 35점을 전시한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추구하고 표현하려고 했는지 감상해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 그림에 어떤 특징이 있나?

“처음에는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가 점차 풍경화를 많이 그리고 있다. 젊었을 때는 기교를 나타내려 했지만 지금은 상상, 감정을 나타내며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의 그림의 특징은 반추상적,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 강렬한 색채, 붓이 아닌 나이프로 그린 그림이라는 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

문현택 화백은 어릴 때는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림 그릴 때가 잡념도 없고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중국동포 출신 화가가 4회에 걸쳐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도 드믄 일이어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출처 : EKW이코리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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