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아래는 주해봉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ㅡ편집자ㅡ

주해봉 프로필 : 중국흑룡강성조선족작가협회회원.재한동포문인협 시분과장.한국문인협회회원.2018년 계간 '문학의 강'에 시부문 신인상 수상.한국과 중국 여러 문학지에 소설, 시, 수필 다수 발표.
주해봉 프로필 : 
중국흑룡강성조선족작가협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 시분과장. 한국문인협회회원. 2018년 계간 '문학의 강'에 시부문 신인상 수상. 한국과 중국 여러 문학지에 소설, 시, 수필 다수 발표.

1. 철길

 

마주 누워 바라볼 뿐 말이 없다
눈빛으로 쓰다듬는 거리에서
구름을 바라보며
가슴을 새긴 아찔한 두 직선같은 사이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불태우고 싶지만 
당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쌓인 먼지 털어버리고 싶지만
레루우의 아지랑이는 눈을 부시게 해줄 뿐이다

살을 섞는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
긴긴 세월을 베고 누워서 알았나
가슴에는 가깝다는 걸 다소나마 느껴진다

침묵으로 홀로란 말 뱉으며
무덤덤한 세월을 착각해도
넉넉한 자태로 버티는 모습 
흔들리는 소리에 잠드는 게 천성이라
  
비스듬히 누워서 뒤로 가는 느티나무는
언제나 거리감을 모르기에
차타고 가면 휙 지나칠 뿐이다

 

2 . 시험지라는 운명체

 

밑창 빠진 하늘이 미쳤다
뚝딱이던 아파트 현장에서 들려오는 
녹 쓴 망치소리가 꿈을 꾼다

담배연기에 그을린
아버지의 멍든 가슴이 떠올랐다
가난에 덧칠하며 
우릴 키우던 그 험상궂음
오늘 나는 그런 심리로 여기 와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로 살아 온 우리
소귀에 경 읽기라 할가
아니 아예 귀가 없다고 할가
나이 먹고 자격증 시험을 치는 나

낙서하는 폭군을 봤나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든 시험지
머리속에는 시험문제가
흘리는 땀보다 더 힘든 진땀이라
장알 박힌 손으로
n차 방정식 풀 수 있을까         

 

 3.  강물의 마음                        
 

매미는 기뻐할 새도 없이
우는 소리로 낙서를 하더니
제풀에 꺾이고 마니
나무는 내가 벗어야지 하면서
알몸둥이를 보여 준다
이런 솔직함이 무언가 얘기를 했다면

장미보자 예쁘다던 엄마는 왜
산적같은 아버지를 만나서
평생을 고생을 고생하시다 가셨는데
왜 주름살이 말라 있을가
그 속에 무슨 얘기가 남아 있을가

산이 붙잡아도 모른 척하며
거침없이 내처 달리는 
저 강물의 몸짓을 봐라
누구를 닮았나
긴 흐름새가 치맛자락 아닌가
튕겨 오른 방울은 뜨겁거니
 

4. 햇빛에 옷을 쬐이면서

       

어느 날 열어본 옷장안에는
숨을 죽인 옷들이
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자들 같아
코로나 검사 대기자들 같아
장사진을 이룬 옷들

미치겠다 
진시황의 삼천 궁녀 처럼
입어 보지도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
옷장안이 구제물 판매장 되였다

자유를 박탈 당히고
억울하게 고독을 지키는 저 명품들
걸려서 기도하는 예수 같네
저런 존재를 옷이라고 사들이 나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포가 팔딱이는 것들이었다면 
생지옥 아니였을가
그 속에서 잠자는 지구는 어떠했을가

옷이란 이름을 되돌려 줘야겠다
봄바람에 헹구어야지
살며시 돌아누우며 
기지개 켜는 모습이 벌써 부터 그려진다

창 너머 조잘대는
참새들의 지저귐에
옷들이 연으로 날아가는 풍경을 찾았다
햇빛 한 톨을 물고 나는 저 불쌍한 것들


5.  종착역

 

산골짜기 돌틈에서
한방울
산기슭 나무뿌리 밑에서
두방울
후미진 언덕 밑의 모래 틈에서
세방울 
방울방울 새여나온 것들

서로 면목도 모르는 것들이
여기저기서 모여 눈빛을 주고 받더니
멈춤 없이 달린다 
아프리카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크고 작은 정거장 두루 거치며
환승하고 또 환승해 다달은 
만신창이 되어 마침표를 찍은 곳

종착역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누가누군지 알 수 없는 뒤범벅된 울타리

샹그릴라는 사막의 신기루였을 뿐

어딘가를 향해 떠나기 위해
또 다시 몸부림치며 
탈출구를 찾는 저 모습들
밤낮없이 서성이며 두리번거린다
고픈 모습은 아닌데

떠나려는 자들 
새롭게 밀려오는 이들
눈이 아홉이되어 저마다
종착역을 찾아 헤매는데
그놈의 종착역 대체 어디에 숨어있을지

우두커니 뿌리내린 채
무심한 상수리나무는 매일 기도만 드린다  

어딘가로 날아가는 여객기의 동음
안달복달하던 무수한 눈동자들 
순간 그린 듯 굳어지고

 

6. 기다림

 

활등이 된 몸체로 서성이며
저문 들녘을 눈 빗질 한다

툭 툭 무시로 발길질하는 태동을 느끼며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운다

눈물과 웃음으로 빚어진 만질 수 없는 무형의 자석

까만 밤 하얗게 태우고
바다가 육지 되어도
지울 수 없는 가슴에 새겨진 자수

기다림은
눈물로 졸여내는 아교이고
목마름으로 빚어가는 그리움이다

 

7. 나목

 

 

겨울 이불 덮고 봄을 잉태하여
푸르름을 해산하며 
생의 문패 가슴에 걸었다

뜨거움으로 온 몸 지져 
연한 피부 굳히고
비바람 휘어잡아 갈한 목 축이고
땀 절은 몸 시원히 헹구었다

밤하늘 둥근 달 친구하여 
외로움 잠재우고
쌔물쌔물 웃는 뭇 별 
애인 삼아 고독 달래더니

망설임 없이 화려한 의상 벗어버린
알몸으로 비움의 이미지 새겨가는
헐벗었지만 넉넉한 부자의
또 다른 도고한 모습

 

8.  고드름

 

초가집 처마밑을 
아련히 수놓으며

 
할머니 장국냄새
묵묵히 맡아오던

눈물로 
추억 지우던

그리움의 은비녀

 

9.  유희

 

 

하늘과 땅이 살을 섞더니
지평선이 또 해산을 했다
금 한줄 그으며 순풍 낳은 핏덩이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꽃들이 돌아눕는다
나무들이 기지개 켠다

서서이 걸음마 떼는 요술쟁이
난생처음 하는 세상구경이라
행여 빠뜨릴 새라 구석구석
더듬고 헤집고 핥으며 뒹군다

복불복이라 해야겠지
해종일 누렁이 혀 빼물도록 
참기 어렵지만
그래도 벙어리 냉가슴 앓아야함은
절벽이 된 채
무형의 궤적 그으며 즐기는 유희

지쳤을까 낭자하게 하혈하며
스러지는 저 모습
지평선은 또 임신을 했다

 

10. 어디로 간다는 것은

 

 

대림에서 코 삐뚤어지게 술 퍼먹고
왕십리 집으로 간다고
지하철2호선 잡아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눈을 떠보니 열차는 그대로 대림역에 서 있다
제 자리다
웃기는 일이다

철부지 시절
남의 집 참외 훔쳐먹고
아버지께 혼날가 두려워
집을 뛰쳐나간 적 있다
그때 이놈 가긴 이디로 가
등뒤에서 외치시던
아버지의 고함소리 생생하다

그래 가긴 어디로 가

어쩌면 숨쉬고 살면서
맨날 간다는 말 입에 달고 살아온 것 같다

학교 간다고
친구 만나러 간다고
낚시하러 간다고
여행 간다고
등산 간다고
애인 만나러 간다고
돈 벌러 간다고
장가 간다고
매일 떠나면서 살아온 나날들

헌데 개뿔
가긴 어디로 가
어디로 간다는 것은 결국
지하철2호선 타고 지랄하다
개털되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11. 강물은 서러움을 모른다

 

열대사막을 조각하는 낙탁의 끈기에
숨었던 오아시스 얼굴 내밀었다

풍상 속에서 빈 가슴으로 
푸른빛 빚어가는 대나무에 박수갈채 보내는 산새들

아픔을 삼키며 가을을 예찬하는 낙엽의 이별에
수목들 눈물로 조용히 기도 드린다

영원하지 않기에 순응하며 오늘을 그리는 몸짓

칠색무지개로 짜여진
생의 오선지엔
눈물로 찍은 음표들 빽빽하다

서광에 비낀 고독을 둘러맨 나그네의 휘청이는 실루엣
세월의 스크린에 어렸다

쓸쓸하면서도 외로움이 묻은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끝 간데 없이 펼쳐진
안개 낀 고해의 대안을 향해
홀로만의 지도와 나침판 품고 꿈꾸는 뱃사공들

앙상한 가을은 방을 빼면서도 웃음 짓고
강물은 족보를 잃어버리고도 눈물 짓지 않는다

바위를 침질하는 낙숫물 소리 정겹다

 

12. 낙화

 
   
꽃샘추위 이겨내고
싱글벙글 하얗게 웃으며
대롱대롱 그네 타던 목련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자유낙하한 채
땅을 베고 잠들어버렸다

아쉽다
슬프다
잠들었지만 토해낸 향기
가슴 헤집는다

만남을 위한 이별
생을 위한 아픈 송가
산다는 건 죽음을 향한 여행

동녘 하늘에선
붉은 해 바장이며
서산마루 그리고

벌써부터
스멀스멀 가슴 더듬는
애잔한 낙조

13  ♡ 고집덩어리

주해봉

허허로운 황야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림의 목마름 달래며
들판의 이야기 엮어가는 허수아비

투정없이 어둠 속
자맥질하며
평생 감춘 모습으로 사는 지렁이

천날만날 숨박꼭질이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로
채바퀴 도는 햇님

낭만을 그리고 또 그리며
신물나게 백사장 어루만지는 흰 파도

선택권 없는 민들레홀씨는
아무 곳이나 내려앉으면
고향이다

이를 데 없이 오로지
한 우물 파기에 능한
고집덩어리들

평생 독한 엽초에
소똥냄새에 절은 몸으로
땅 파기 밖에 모르시던

고정한 아버지의 모습
새삼 눈에 밟혀온다

       
14. 목마른 가슴 

 

칼바람 껴입고 눈발이 난무한다
찬바람 부는 길목에 서서
부서진 마음 감싸며 흐느끼던
그리움으로 버무려진 뒷모습

소리 없이 침묵으로도
서로 속삭이고
기나긴 겨울 밤에도
마냥 따뜻하던

빛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꿈 속에서도 미소 짓던
내 분신

어둠보다 더 깊은 그리움
목마름보다 더한 기다림
가을비보다 더 쓸쓸한 외로움
뭉텅이로 던져놓고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서
빛바랜 추억 가위질하며
세월의 파도에 멍든
작은 가슴 깁고 있을까

그리움에 주소가 있다면
편지라도 띄워보련만
가슴에서 뿌지직 연기가 난다

유유히 떠도는 흰구름아
소리없이 새김질만하는 
싱거운 바람아

침묵만 지키지 말고
귀띔을랑 해주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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