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每人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권명호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ㅡ편집자ㅡ

권명호 시인 : 권명호 시인은 1953년 중국 길림성 왕청현에서 출생했다. 연변직업기술학원 전직 고급강사직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한국문학의강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산맥시회 특별회원이다. 한국 '문학의강'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등단했으며 신간 시집 '천상의 연인'으로 '동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권명호 시인 : 권명호 시인은 1953년 중국 길림성 왕청현에서 출생했다. 연변직업기술학원 전직 고급강사직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한국문학의강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산맥시회 특별회원이다. 한국 '문학의강'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등단했으며 신간 시집 '천상의 연인'으로 '동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시부문 6수    

 

타버린 넋

 

이 땅에 내려서 
고요히 묻혀 살고 싶었다

불의 세례를 받을 운명은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낯선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다
정처 없이 발길 내려 이 한 몸 불사르며 
허기에 여념 없었다

빨갛게 익어 터지는 몸으로
불타는 뜨거움을 해산할 때
야비한 좀비들은 흥청망청 
영혼 없는 춤을 질탕 추었다

불꽃을 안고 살아온 한 세월 
찌그러진 체구에 주름만 살아
입마저 다물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쓸쓸히 버려진 처량한 신세
담장 한 구석 찢어진 김치독에 기대어
웅크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타버린 심장 하나 울고 있다

 

본연
 

날 때부터 벙어리인 나무들
춘하추동 오직
나이테로 속살을 수놓는
무언의 고백
 
물려받은 색깔로 투정 없이
자태를 뽐내는
들녘의 야생화는 곁눈질 없이
세상을 향해 순정을 펼친다
 
목마름의 아픔으로
사막을 스케치하는 선인장
진흙 속에 탯줄 묻고
순결을 그리는 연꽃
앉으나 서나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의 갸륵한 심성
 
외로움 지우며 웃고 선
길섶의 강아지풀
고독을 둘러멘
정처 없이 보금자리 더듬는
자유의 영혼 민들레 홀씨
 
한순간도 멈춤 없이
둥지를 향해 달리는 강물
피곤기 가신 채 해님은 
오늘도 서산마루에 걸터 앉았다


울엄마


그을려 쩔은 어두운  부뚜막
찌들어 얼룩진 삼베 저고리
까맣게 타버린 넋 하나
손끝의 그 맛만은 별미였다

별이 곯아 떨어지는 심야
한 뜸 한 뜸 고달픈 정성
동녘 하늘 밝아오니
열네 살 맏며느리
소스라치게 일어나네

배고픔에 한서린 그세월 
여린 몸이 돌을 이고 찧던 
울 엄마의 고생방아   
아 눈물의 보릿고개여

야윈 등마루 그의 눈매
뻔한 날 없이 고생만하다
바람에 업혀 세월에 실려
몸 단장 곱게하고 가셨네

 

소풍 가던 날 

 

굳은 눈길이 천정에 꽃혀 갈 길을 잃었다 
꾹 다문 그의 목소리 들은 적이 없다
세상이 그의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

사모님이 어쩌다 멋진 잠바 솜바지를 사 왔다
그 큰 덩치 돌려눕히며 갈아 입히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휠체어에 앉은 그의 눈빛이 한결 부드럽다

갑자기 얼굴이 빨갛고 눈이 꼿꼿해 냄새가 역하다
살펴보니 앗차 큰 일 터졌다  
새 솜바지 속 종아리까지 똥 벼락에 엉망이다 
마님은 눈만 동구래 말문이 막혔다 

뒷골이 확  땡겨 쓰러진다 
잽싸게 닦고 씻고 또 닦아  옷
갈아입히니 차가 부른다
설한풍이 흠뻑 젖은 몸뚱이를 칼로  찌른다

그도 한때 잘 나가던 사나이로 
꽃밭 같은 향기가 넘쳐흘렀다 
지금 몸에 밴 냄새는 그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깨끗하게 씻은 솜바지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봄꽃 향기 그윽한 세상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외래 진료가던 하루 


일상 야곡

 

보여도 보이지 않는다  
잡아도 잡을 수가 없다  
옷깃을 스쳐도 못 본 척하고 
서로를 무시하며 어두움을 만끽한다    

찬물에 밥 말아 후루룩 넘기는 시간  
열대야에 통닭이 구워지고  
마른 하늘 날벼락에 해가 찔려  
보름달마저 불구름을 토해낸다 
 
가는 이 없고 올 이 없는 
적막강산에 홀로 앉아 
잔 들어 허공에 부으니 
이 한 가슴 애간장이 녹는다        
 
고향은 지척인데 멀어만 가고 
손 내밀면 닿을 듯해도 닿지 않는 님 
입 막고 백수로 돌아온 나그네  
덫에 걸려 인고하는 가슴앓이여   
 
향수에 취해 찾아간 정든 산천 
아내와 도랑물에 저린 발 담그고 
밤하늘에 흐르는 별을 헤며 
개구리 울음소리에 이 마음 적시고 싶다   
 
이제라도 구슬땀 흠뻑 젖도록
통장에 낟알 쌓이는 소리 들으면 
정든 타향 구로동 자취방에도 
콧님의 웃음소리 달콤해지련만  
 
이 밤도 서울 버전 
일상 야곡은 흐른다 

 

왕 청     
                     

그 누가 부르지 않았는데
나는 왔다 
동심에 젖어 나의 뿌리를 더듬어서 

가야하 푸른 물결 위에
당신의 웃는 모습 비껴 있네
말 없이 가만히 감고 있는 그 눈빛이 깊네 

햇볕의 허리를 파랗게 껴안은 저 언덕
한여름이 붉은 꽃물결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네 

나를 낳은 초가의 돌담과
힘을 키워준 외나무다리 
가슴에 묻고 한량없는 품에 안겨 너의 숨결을 아껴 먹는다 

눈 감으면 들려오는 그 흐름소리만 여전하네 

그리운 고리로 이어진 소꿉놀이 친구야
너의 숨결이 있는 곳에 
그 누가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왔네 


시조부문 7수 

 

         난초

 

이 품에 그리운 정 그렇게 가련터냐
쌍곡선 푸른 날개 설한에 가슴 열어
군자의 귀한 품성은 청정향에 어렸네

나이테 돌고 돌아 겹겹이 쌓여가고 
세월에 얼기설기 엮어진 연륜 속에
사라진 풍진 세월에 인고의 삶 고였네

 

진달래

 

이른 봄 모진 고초 시린 몸 허리 펴고
찬이슬에 목 추겨서 꽃망울 움틔우며
봄오는 길목에 서서 웃음 활짝 짓누나
 
산하의 초목들이 푸르러 물드는데 
천지에 연분홍빛 봄빛에 더욱 곱다 
진달래 수줍은 얼굴 낯붉히며 웃는다

 


       단짝

 

오로지 한마음에 한곳만 바라보는 
순결한 보석 하나 확실한 믿음 심고 
가꿔온 인생의 여로 진달래로 피였네 

한배의 천생연분 파도위 노를 저어 
살아온 자국마다 찍혀진 희노애락 
불타는 저녁 노을에 무지개로 피였네 

 

        사모

 

초가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 피면
조반상 올려 주고 홀로 드신 아침 식사
어머니 바가지 속엔 무슨 별미 있을까

돌담의 호박넝쿨 매달린 너의 숨결
모내기 쉬는 짬에 봇도랑 가재 잡던 
그 추억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백의 혼

 

아야는 어디 가고 그느도 안보이네
강 건너 굴러온 돌 배긴 돌 튕겨내듯
외래어 밀물 되여서 우리 글밭 덮치네

천백 년 고이 쌓은 겨레의 고유정서
외세에 머리숙여 백의 혼 버릴손가
천만에 어림도 없지 훈민정음 지키리

우리 말 바로 하고 우리 글 옳게 써서
백성을 가르치는 세종의 뜻 받들고서
천만세 지켜 이어 가 주옥처럼 빛내리

 

    엄마의 호미

 

어둠이 깃을 펴자 섬광이 선 보인다
생으로 갈고 닦은 못 잊을 작은 모습
엄마의 절벅한 정을 듬뿍 먹은 넋이다

새아기 그리움이 물들인 산과 들에
구슬땀 쏟아부어 사랑을 키웠나니
오곡이 익어 갈수록 넘쳐나는 향기여

흙속에 묻은 혼이 살아서 꿈틀대니
호미 쥔 엄마의 손 왜 이리 눈부실가
앙상한 저 작은 쟁기 외로움에 젖었네

 

      농부

 

봄아씨 아장아장 흙 속에 꿈을 심어
낫 가락 휘두르며 구슬땀 쏟아부니
불볕에 등 익었지만 오곡백과 살찐다

등골에 흘러내린 비지땀 싹틔우니
만물은 땡볕아래 오롯이 익어가네
황금빛 벼낟가리에 엉덩이 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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