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변창렬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소와 아버지 

 

소의 눈에는
아버지의 타다 남은 담뱃불이
타고 있었다 

아버지와 소는 마주서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면
소는 그 담배연기를 새김질해 주고
이렇게 수년을 엉켜 다닌 친구였다 

소는 아버지의 담뱃불만 봐도
아버지의 속을 알게 되고
아버지는 고삐를 소머리에 얹으실 때마다
소의 지친 눈길을 미리 알아 내셨다 

아버지는 소가 되려고
소의 성질을 익혀 두셨고
소는 아버지를 닮으려고
아버지 손등을 핥기도 하였다 

아버지께서 소수레 위에 쓰러졌을 때
집앞까지 모셔 온 소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아버지 담뱃불만은 익히고 있어
그대로 껌뻑이고 살아 온 것이다 

소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울면 담뱃불이 꺼질가 안타까워 했고
웃으려니 힘든 아버지 불쌍해서였다 

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새김질하면서도 자주 게낀다
담배냄새는 죽어도 구수하다는
소 

(제4회 중국조선족 효사랑 글짓기 공모 대상작)

 


허수아비 

 

누더기 한 폭에 숨긴
노을 반 자락
지는 해를 짊어졌으니
어찌 뒷짐 질 수 있을까 

서너 알 새똥으로 배부른 
저녁상 

시 한 수 놓친다 

 

그네 

 

하늘이 뭔데
점 하나 찍으면
내 집인 걸 

날 보지 말고
하늘을 봐
난 하늘을 굴리고 있어 

날아갈게
등 뒤를 봐
하늘이 업혀 코 골고 있어 

 

지게 

 

산이 떠서 간다
뒤에서 보면
두 발만 옮겨 진다 

해묵은 산의 능선 따라
짐은 산등성이다
노인님 허리도 산등성이다 

짊어 진 산이 힘들어 쉴 때
비탈에 올라 선 두 다리도
메고 갈 길 더듬으며 쉰다 

산이 무너졌다
지게 목발로 꺾인 어르신
감은 듯 뜬 듯 지친 눈은
지고 갈 무게를 안타까워 한다 

지게우에 울고 있는 산
노인님 눈언저리에 틀고 앉았다
산이 된 어르신
꺾인 목발로 비탈을 받치고 있어
또 하나의 등성이로 되였다 

 

별의 가게 

 

북극성을 간판으로 걸고
별을 팔고 계시는 아버지 

하늘에서 농사지어 거둔 낟알
알알이 영글어 눈부시다
익는 족족 줄 지어 팔려 간다 

한 뼘 빛이 천 냥이면
한 팔 빛이 만 냥이라
밤마다 잠 몽드는 사람들
북두칠성 삼태성 오라온좌
훔쳐가는 별자리는
아버지가 쌓으신 볏낱가리다 

내 몫은 왜 없나
불러 봐도 빛만 내리시는 아버지
저 밝은 빛은 누구의 것인가 

하늘에도 사막이 있어
락타의 방울소리 은하수를 흔드니
캄캄해도 별이 반짝이여
별은 별데로 금빛 낟알이다 

별의 가게 주소는 어디
눈에 맺힌 눈물을
바람에 실어 택배보내고 싶다 

새벽이 되면 계명성 거느리고
가게문 내리시는 아버지
햇빛은 별의 가게 총수입 아닌가 

(도라지 해외조선족문학상 대상작)

 

소는 꽃을 아낀다 

 

소는 풀을 핥으며
생김새까지 살피고 뜯어 먹는다 

꽃과 풀의 다름을 알기에
삼켰다가 꺼내서 새김질하며
꽃이 없음을 알아내고 다시 삼킨다 

소는 밭을 갈 때도 
꽃을 피해가며 
발을 옮겼다 

송아지도 꽃이라고
등과 머리를 핥아 주는 건
배 곺아도 꽃은 먹지 말자는 뜻이다 

눈을 크게 뜬 소는
꽃에 빠져
눈동자도 퉁방울꽃이다

 

코스모스     

 

옷깃을 끄당기는 간절한 손짓이다
눈 감고 끌려오는 말쑥한 꽃그림자
보고도 못 본 척 할까
휘감기는 그 눈빛 

어쩐지 두고 가면 외로울 얼굴인데
집에도 하나 있어 발걸음 뗄 수 없다
차라리 지고 말거라
꺾으려니 떨린다 

 

흙으로 가신 아버지 

 

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손에 쥐이는 것이라
배고플 때 삼키고픈 밥이다 

하늘을 보는데 눈이 뜨거워
쏟아지는 게 눈물이다
아버지가 하늘의 흙으로 계신다 

한생을 다루다 가신 아버지의 흙은 
식은 적 없이
가슴을 뜨겁게해 준다
온 몸이 달아오르게 되는 불이다 

울고싶으나 울지 않으련다
싱그러움이 감도는 흙이 진해서
아버지의 굳은 살로 까맣다 

아버지는 흙이다
흙에서 나오는 수증기는 우리다
서사시로 한생을 사신 아버지
흙으로 빚은 관으로 하늘에 묻으셨는데
달빛이 묘비였다 

 

더디 오는 봄 

 

양지쪽 고목곁에 서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축 처져 있던 엄마의 배가죽 

뿌리는 낡아 
흙속에 숨으려고 오무리는데
더는 못 버틸 신경줄은 늙어 헐렁하다
제 자리를 못 떠난 신세
둥지 떠난 새들은 어디 갔을가 

봄은 저만치 서서
손가락으로 사주팔자를 튕기며
올가 말가 망설이거늘
고목은 봄을 알기나 할까 

언제면 새싹 돋을가
속 썪이는 고목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고 있어
엄마의 뱃가죽이 더 처진 것 같다 

 

콩나물 

 

보자기가 하늘이다
밝아지면 눈이 시려 밤이 더 좋다 

바깥세상은 알기 싫다
잔뿌리 어수선하고 몸통은 부어도
이런거지 하고 사는 콩나물
주는 물이나 받아 먹고 
서로 밀고 닥치며 살아
반항이 뭔지 모르는 콩나물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져도
세상살이 별거나 여기며
보자기 하나로 만족했으니
많아도 걸을 수없는 발이라
하루 종일 빗디디고 서 있다 

빼곡한 자리다툼 설음에도
얼굴 맞대고 밟고 올라서는
판가리 싸움도 고요속에 연습중이라
보자기가 여래불 산아귀여서
그 속에 길들여진 노예들 

날 것으로 먹으면 비린내 역겨워도
삶으면 축 처지는 나약함
질길 때는 없는 뼈가 씹히여서
콩나물의 침묵이 시원하다 

 

56세 

 

허공에 걸어 둔 장삼이다
오솔길 이슬에 젖은
색바랜 옷이다 

쑤시는 뼛마디
헐어가는 신경줄을
넣을 만큼 넣어 둔 헐렁한 옷장이다 

구겨진 팔꿈치 바로 잡고
새롭게 입고 나서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실감 좋게 웃어 볼
오후 다섯 시 육십분 쯤
바람에 나붓긴다면
노을도 누렁지 맛으로 펄럭일 나이 

수염따위는 사치다
삐걱이는 장농속의 구겨진 속옷
다듬이로 다스릴 
주름조차 정겨운 하루의 햇빛이다 

 

부은 달 

 

너무 커서 쑥스럽게 웃는 달
분홍 얼굴이 환한 저녁에
부은 발을 씻고 있는 나 

낮에는 숨어서 걷고
밤에는 홀로 가기에
달아 너도 부었느냐
나처럼 앉아서 씻고 있구나
그 모습이 대야에 비끼니
부은 이 발이 시원하다 

어릴 때 주물러 주던 손
달빛으로 부드럽게 다가오니
눈물이 퀭
발가락 사이로 달빛이 뜨겁구나 

팅팅 부은 나의 발과
부은 저 달이
엄마의 거칠은 발을 닮아가거니
달도 엄마의 아들이다 

 

출렁다리 

 

살다가 돌다리만 지나 왔겠나
흔들거나 흔들리거나
외나무다리도 건넜을 거다 

흔들자면 함께 흔들어야
벌어진 잔금도 줄어들 수 있어
흔들며 사는 재미가 즐거울수록 
더 흔들게 된다 

중심이란
흔들리며 바로 잡는 것이다
엇비슷 흔들어도
기우뚱해지는 중심이 바로 서는 게 묘하다 

손이나 발로나 흔들어도
반경은 내 몸 가장자리에 있어
흔들수록 바로 서는 게 
우리의 두 다리가 출렁다리이기 때문 아닐까 

 

변창렬 

-중국 서란시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도라지해외문학상 대상', '동포문학 시 대상' 등 국내외 수차 수상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