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윤일춘은 당위사무실로 향했다. 김서기가 웃는 얼굴로 반겨 맞았다. 
“윤선생님, 바쁘신줄 알면서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전번에 말씀드렸던 건국 70주년 학술론문건으로 찾았습니다. 늦어도 음력설전으로 론문집필을 끝내주세요.”

개학초기에 학교당위에서는 윤일춘에게 “건국 70년 주선률문학의 경향성 문제”란 학술론문을 도맡겼다. 그러나 퇴직을 코앞에둔 윤일춘은 주저심부터 앞섰다. 민감한 “정치소용돌이”에 말려들어 고초를 겪지 않을가 위구심이 들었다. 

“윤선생님, 학술론문 별문제 없겠지요?”
김서기는 기대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솔찍히 이번 학술론문은 힘들것 같습니다.”
“뭐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습니까?  윤선생님의 학술성과에 견주면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요.”
윤일춘은 당위사무실을 나와 강의실청사로 향했다. 그때 문뜩 잡히는 바가 있어 부랴부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희준이냐? 전번에 부탁한 일 련결해 봤냐?”
“네, 윤교수님, 이미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럼--- 돌아오는 주말로 스케줄을 잡을수 있을가?”
“네, 알겠습니다, 일단 주말에 윤교수님을 모시고 갈거라고 련락드릴게요.”

“허참, 내가 또 너한테 인정빚을 지는구나.”
흐려 있던 윤일춘의 안색이 느슨하게 풀렸다. 

주말이 돌아오자 윤일춘은 자가용을 끌고 박희준과 함께 소설가최수길의 고향으로 향했다. 륙도하까지는 족히 50여분을 주행해야 한다. 시골의 청푸른 하늘과 드넓은 광야는 마냥 무궁무진한마력을 갖고 있다. 

륙도촌에 이르니 정갈한 시골길 량켠으로 30여채의 산뜻한 한옥이 한눈에 안겨왔다. 저 멀리 보이는 륙도하는 살얼음이 끼여허연 배를 드러냈다. 

“시골집이라 방안이 루추합니다”
소설가 최수길은 다소 송구스레 인사했다.

“마을이 아주 정결하네요, 공기도 신선하구요.”
새롭게 변모하는 시골풍경에 윤일춘은 혀끝을 튕겼다. 

“윤교수님, 지금 주변의 조선족 마을은 모두 전통 한옥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마을도 20여가구가 이미 새집들이를 했습니다.근데 유감스러운건---”
“최작가님, 왜 하시던 말씀 도로 삼키세요?”

소설가 최수길의 소개에 따르면 구한말(旧韩末)인 1900년 경에륙도하기슭에 이 마을이 생겼다. 1945년 일제가 망할 때 이 마을은 이미 50여가구가 모여사는 조선인부락이였다. 새중국이 성립된후 대약진과 인민공사를 경유하며 한때 100여가구가 모여사는 상당한 규모의 조선족부락을 형성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이후 이마을에도 출국붐이 극성스레 불어닥쳤다.너도나도 앞다투어 낮설고 물선 이국타향으로 떠나벼렸다. 결국이마을은 현재 불과 30여 가구밖에 남지 않았다.

“윤교수님, 지금 이마을의 멀쩡한 한옥들은 실상 반절은 주인 없는 빈집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손꼽아도 불과 20여명밖
밖에 안됩니다. 80여세 고령부부가 세가구, 70대 중반 부부가 다섯가구 60대 젋은 부부가 한가구, 그리구 남은 한가구는 독거중인 저구요.”

소설가 최수길은 귀향후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마을 로인들이 찾아와 옛말을 청들었다. 그는 구한말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할아버지 세대들이 거치른 만주땅에서 억척스레 조선인부락을 개척했던 력사스토리를 뼈에 살을 가첨해 풍성하게 엮었다. 그런데 뜻밖에 마을 로인들이 호랑이 담배 피울적의 케케묵은 이야기라며 쩝-쩝- 입을 다졌다. 

“이보게 글쟁이 량반, 시골 늙은이들의 귀를 빵-빵- 뚫러주는 충격적인 옛말을 들려주게.”

최수길은 마을 로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도회지에 아빠트벽을 귀신같이 잘타는 도둑이 있었다. 하루는 깊은 밤중에 도둑이 벽을 타고 9층에 뛰여들어 한창 돈가는 물건을 뒤졌다. 그때 잠결에서 깨여난 주인장이 갑자기 도
둑의 어깨를 툭- 쳤다. 
여보게, 나 뜨내기 품팔이로 살아가는 빈곤호네. 이 집은 셋방이라 돈맛이 나는 물건이 없네. 더구나 숨겨 놓은 몫돈은 한푼도 없네. 헛탕을 치게 해서 미안하네.

여보게, 내가 일확천금의 돈벌이 구멍수를 알려줄가? 이 아빠트11층에 병원원장이 살고 있네. 그리구 15층은 건설국 국장댁이구. 내 말이 뭔 뜻이지 알겠나? 

여보게, 돈벌이 구멍수가 확 트였으면 나한테 풋돈이라도 주는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나. 병원원장건을 100원으로 한다면 건설국국장건은 200원으로 해도 별로 과분한건 아닐거구. 당장300원을 선불하면 또 엄청 덩치가 큰 구멍수도 알선해주겠네.     

도적이 300원을 넘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여보세요, 주인장, 일단 병원원장댁하구 건설국국장댁을 방문해 몫돈을 쥐게되면 다시 찾아올게요. 주인장, 당분간 이 아빠트 떠나지 마세요. 우리 함께 부자가 됩시다.

마을 로인들이 손벽을 치며 왁작 떠들었다. 

허-참- 진짜 한방에 귀가 뻥- 뚫렸구만. 이보게 글쟁이 량반, 
근데 참 아쉬운 일이네. 우리마을은 병원원장이랑 건설국국장같은 뜨르르한 량반들이 없으니 이거 섭섭해서 어떻게 살겠는가? 

이보게, 글쟁이 량반, 집체화시절에 우리는 좌물쇠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네. 그러니 이웃간의 나들이도 제법 편했네. 근데 지금은 집집마다 철문을 꽁-꽁- 닫아걸었네. 그러니 도적이 기여들 구멍두 깡-깡- 막혀버렸네. 근데 이웃간의 나들이도 부쩍 힘들어졌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구 하더니 참으로 세상이 몰라보게 변했수다.

“최작가님, 진짜 소설 하나 넉넉하게 엮을 충격적인 스토리네요.”
“글세요? 귀맛을 부쩍 당기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륙도하에서 물장구치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먹을 걱정 입을걱정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웃간에는 마냥 주거니 받거니하며 후더운 시골인정에 살맛이 났습니다. 

근데 지금은 마을이 반나마 비여서 하루종일 인적조차 찾기가 힘든 살풍경입니다. 옛적에 색다른 음식을 나누며 떠들석하던 
시골풍경도 오간데 없이 살아졌습니다. 

그나마 아직은 마을에 로인들이 남아 있어 다행입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무척 걱정됩니다.”

윤일춘은 내처 이야기에 솔깃이 빠져들었다. 불현듯 작가 마원(马元)의 장편소설 “분쟁”(纠缠)이 떠올랐다. 

소설 “분쟁”은 로혁명가 요청간(姚清涧)이 600만원의 유산을 모교에 기증해 발생한 일련의 “분쟁”을 다루었다. 소설의 주인공 요량(姚亮)과 누님 요명(姚明)은 작고한 로혁명가 부친 요청간(姚清涧)에 대해 감회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요량(姚亮)의 말 “한평생 무산혁명을 해왔고 한평생 무산계급으로 자청했던 부친이 결국은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놓아 시끄러운 분쟁을 일으켰다.”

요명(姚明)의 말 “부친이 림종시에 무일푼의 무산계급이였다면 한평생 혁명을 해온 보람이 있겠는가?”

로혁명가 요청간(姚清涧)은 “무산혁명”에 투신해 피를 흘렀다. 한평생 무일푼의 “무산계급”으로 살아오면서 자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림종시에 뜻밖에 600만원의 유산을 남겼다. 그것이 분쟁의 씨앗으로 되였다. 참으로 풍전등화의 세상이였다.   

정심식사후 일행은 륙도하강변으로 향했다. 알싸한 강바람이 듬뿍 한기를 먹었다. 짛푸른 하늘은 눈뿌리가 시리게 거뜬히 들렸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최수길이 무춤 뭠춰섰다.

“윤교수님, 요지음 저는 한소공(韩少功)(당대 작가)의 에세이집 <산남수북>(山南水北)에 빠져들었습니다. 읽을 수록 감칠맛이 납니다.” 

“한소공은 대나무가 울창한 팔계동(八溪峒)시골에서 장닭이 홰를치면 안해와 함께 터밭을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팔계동에 초롱초롱 별무리가 드리우면 촌옹들과 함께 담소하며 신선한 도화원기(桃花源记)를 무르익혔습니다. 한소공의 필끝에서 꽃피운 팔계동은 흡사 이곳 륙도촌을 방불케 합니다.”

윤일춘은 련신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요. 사실 저두 작가 한소공을 무척 편애합니다.” 

북경대학 중문학과의 진효명(陈晓明)교수는 한소공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한소공은 유일하게 뿌리찾기문학의 배경하에서 나타난 <뿌리찾기문학>(寻根派文学)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작가 자신이 이미 순수한 당대문학의 사실로 되였고 새로운 시기의 력사명세서로 되였다. 그는 새로운 시기의 문학사대강을 열어놓았고 또 마무리를 지어놓은 작가였다.” (韩少功是唯一可以从寻根的布景中剥离出来的寻根派作家。他本身是一个纯粹的当代文学史事实;一份新时期的历史清单; 一部打开又合上的新时期文学史大纲)
 
장편에세이집 “산남후북”(山南水北)은 작가 한소공이 팔계동 시골에서 새롭게 발견한 싱싱한 문학의 세계였어요.     

최작가님도 아시겠지만 한소공과는 달리 작가 마원(马元)은 이색적인 문학의 길을 선택했어요. 마원은 여화(余华), 소동(苏童),격비(格非), 홍봉(洪峰) 등 작가들과 함께 “선봉파문학의 다섯호랑이”(先锋派文学五虎将)이로 불리웠어요. 

작가 마원은 당대 중국문단에서 “형식으로 내용을 서술한다”(以形式为内容) 라는 새로운 문풍을 개척한 선두주자였어요. 
     
작가 마원은 당대의 소설문단에 대해 이렇게 개탄했어요.

“소설의 력사는 상당이 오래다. 그러나 소설자체가 이미 한가지기예로는 실전의 위기에 직면했다. 아울러 이같은 위기는 이미 돌이킬수 없는 상황이다. 소설은 흡사 멸종위기의 동물군체처럼한걸음한걸음 박멸의 일로를 걷고있다.(小说的历史相当古老,但是它作为一门技艺正面临失传的危机, 而且这危机似乎已不可逆转。小说正像濒危动物种群一样,一步一步走向最后的毁灭)

작가 마원은 한때 이말을 남겨놓고 장장 20년간 깊은 침묵을 지켰어요.

“윤교수님, 소설의 력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박희준이 느낮없이 청들었다. 
“거참, 동생이 좋은 착상을 떠올렸네. 나두 동참불공(同参佛供)이네.”
소설가 최수길도 찬성해 나섰다.

윤일춘은 사색의 실마리를 더듬었다. 

로신(鲁迅)은 “중국소설사략”(中国小说史略)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어요. 
“소설이란 명칭은 옛적에 장주가 언급한 <<식소설이간헌령>>에서 찾아 볼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잡다한 일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후세에 말하는 소설의 의미와는 확연히 다르다.”(小说之名,昔者见于庄周之云“饰小说以干县令”(《庄子》《外物》),然安琪实际,乃谓琐屑之言,与后来所谓小说者固不同) 

그러나 “한서”(汉书), “예문지”(艺文志)의 기록에 따르면 “소설이란 가담항설을 뜻한다”라고 지적하였다. 이것이 현재 소설에 가장 가까운 정의라고 할수 있다. 

“가담항설은 옛적에 비관(俾官)들이 민간에서 떠돌던 풍문을 수집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나라의 민심과 풍속을 고찰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대소설의 가치를 운운할수 없다.”(小说者,街谈巷语之说也. 这才近似现在的所谓小说了,但也不过古时俾官采集一般小民所谈的小说,借以考察国之民情,风俗而已,并无现在所说小说之价值) 

이말의 뜻을 풀이하면 국사(国史)를 기록한 것은 정사(正事)였고일사(逸史)를 기록한 것은 소설이였지요. 그리고 옛적에 비관(俾官)들이 수집한 가담항설은 단순한 “훈계”(训诫)거나 “권선징악”(劝善惩恶)의 교화(教化)에 가치를 두었어요. 

그러므로 중국은 옛적부터 “이야기가 고갈되면 귀신이 나선다”(戏不够, 鬼神凑)라고 했어요. 역으로 풀이하면 중국의 소설은 신화전설에서 기원되였다는 것이 통설(通说)이지요.  

중국은 기나긴 소설문학의 력사를 갖고 있었요. 그러나 문학사의 차원에서 고찰하면 소설문학은 도리여 19세기의 서구문학이휘황한 성과를 이루었어요.

례브 똘드또이의 3부작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 “부활” 발자끄의 대표작 “인간희극”, “그랑데 령감”, 삑도르 유고의 “비참한 세계”, “93년”, 토스토엡쓰기의 “죄와 벌”, 고골리의 “죽은 넋”, 프로펠의 “보바리부인”, 스탕달의 “붉은것과 검은것”, 뚜르게네브의 “파우스트”, “사냥꾼의 수기”, 브론데자매의 “제인에어”, 챨스 디켄스의 “쌍성기”, 이밖에도 대중마, 체호부, 입센,마크트웬 등등 19세기 서구소설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이지요. 

레닌은 레브 똘스또이의 소설에 대해 “러씨야혁명의 거울”이라고 높이 평가했어요. 

19세기 서구의 소설거장(小说巨匠)들은 한결같이 “소설은 곧 정치다.” “소설은 곧 혁명이다”라는 투철한 “력사적 목적성”을 구
현했어요. 

“전쟁과 평화”, “비참한 세계”, “인간희극” 등 소설은 19세기 서구의 거창한 사회변혁의 력사를 리얼하게 묘사했어요. 그러므로 “권성징악”이나 “훈계”를 위한 중국전통사회의 “가담항설소설”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19세기 서구소설문학은 거시적인 력사안목으로 스토리를 엮는 완숙된 “현대소설문학”을 개척했어요. 그러나 20세기의 서구소설문학은 19세기의 소설문학과는 달리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했어요. 

작가 마원은 문학강의록(文学讲演录) “열독대사”(阅读大师)에서 이렇게 지적했어요.

“20세기의 소설은 혁명성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의식류, 의식, 전의식, 잠의식, 무의식 등에 주의력을 돌렸다. 그리고 의식의 다방면을 대량적으로 문학창작에 끌어들였다.이는 현대문학의 리정비적인 혁명이였다. 즉 의식류혁명으로 되였다,”(20世纪小说开始出现了革命性的变化。作家开始关注了关于意识流,关于意思,关于前意思,关于潜意识 ,关于无意识。把关于意识的方方面面,大规模带进文学,成为现代文学一场里程碑式
的革命,意识流革命)

마원의 견해에 따르면 20세기 서구의 소설문학은 인간내면의 “령혼”에 주목을 돌렸어요. “소설창작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려고 시도했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오려고 노력했어요.(开始在小说写作当中,去寻找意义,去找来意义)

마원은 “헤밍웨이의 남성철학”(海明威的男人哲学)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어요. 

“전투, 사냥, 수렵, 투우(斗牛), 음주, 녀자”는 헤밍웨이소설의 주제였다. 3부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太阳照常升起), “로인과 바다”(老人与海), “무기여 잘 있거라 (永别了,武器) 등 작품은 “행동하는 남성철학”이란 창작리념을 투철하게 실천하였다. 

마원은 프랑스의 “존재주의작가”(存在主义作家) 알베르 카위(阿尔贝 加繆)의 대표작 “이방인”(句外人)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어요. 

“주인공 멜소르(墨尔索)는 부조리한 세상에 무관심한 얼간이였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살인범으로 지목되여 끝내 목숨을 잃었다. 대철학가 알베르 카위는 멜소르의 형상을 빌어 법률, 도덕, 
등 사회규제의 쇠사슬에 억매워 자유를 상실한 인간의 곤혹을 폭로했다.”

작가 알베르 카위(阿尔贝 加繆)는 “인생은 끊없는 곤혹의 반복이다”(人生就是没完没了的重复得困境)라는 놀라운 진실을 발견했어요. 

작가 프란츠 카프카(弗兰兹 卡夫卡)는 “인간은 태여날 때부터 끝없는 분쟁의 함정에 빠져든다”(人一生下来就陷入没完没了的纠缠)라는 놀라운 진실을 발견했어요. 

작가 밀란 쿤데라(米兰昆德拉)는 “먼저 죽은자가 후자에게 묘자리를 내줘야 한다(先死的人为后死的人让地方)라는 놀라운 “인간의 곤혹”을 발견했어요. 

사실상 20세기 전반기의 중국소설문학도 시종일관 “인간의 령혼”, “인간의 곤혹”, “인간의 분쟁”을 끈질기게 통찰했어요. 

1919년 “5.4운동”이후 “좌익문학”진영을 대표한 로신의 “아Q정전”, “공을기”, 파금의 3부작 “집”, “봄”, “가을”, 로사의“락타상자”. “우익문학”진영을 대표한 심종문의 “장하”(长河), “변성”(边城), 장애령의 “경성지련”(倾城之恋), “붉은 장미와 흰 장미”(红玫瑰与白玫瑰). 그밖에 “원앙나비파”(鸳鸯蝴蝶派)의 대표적인 작가 장헌수(张恨水)의 3부작 “춘명외사”(春明外史), “금분세가”(金粉世家), “제소인연”(啼笑因缘)등 작품들은 일목료연(一目瞭然)하게 “인간령혼의 곤혹과 분쟁”의 몸부림을 리얼하게 구현했어요. 

1942년 “연안문회좌담회”를 기점으로 중국은 “프로레타리아사실주의문학”(无产阶级现实主义文学)이란 새로운 창작리념이 형성되였어요. 

그러므로 북경대학 중문학과의 진효명(陈晓明)교수는 중국당대문학의 시발점을 1942년으로 획분하였어요. 

모택동주석은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어요. 

“세상에는 초공리주의(超功利主义)가 없다. 계급사회에서는 이계급의 공리주의가 아니면 저계급의 공리주의밖에 없다. 우리는 무산계급의 혁명적인 공리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인민대중의 모든 혁명투쟁은 반드시 가송되여야 한다. 이것은 혁명적인 문예일군들의 기본적인 임무이다. 우리의 문학은 반드시 공농병을 위해 복무하는 문학이여야 한다.”

“연안문예좌담회”가 개최된후 작가 정령(丁玲)은 진찰기변구의 쌍간하일대에서 토지개혁운동에 뛰여들었어요. 그는 이시기의 생활경력을 바탕으로 ““태양은 쌍간하를 비춘다”(太阳照在桑干河上)라는 장편소설을 집필했어요. 

작가 주립파(周立波)도 동시기에 소설 “폭풍취우”(暴风骤雨)를 창작했어요. 

1949년 새중국이 창건된후 토지개혁과 농업합작화운동을 구현한 류청의 “창업사”(创业史), 주립파의 “산간마을의 격변”(山乡巨变), 조수리(赵树里)의 “삼리만”(三里湾), 손리(孙犁)의 “리가장의 변천”(李家庄的变迁) 등 작품은 일매지게 “프로레타리아사실주의문학”의 튼튼한 기석으로 되였어요. 

1950~60년대에는 “프로레타리아영웅주의문학”이 새롭게 대두했어요. 이시기 출간된 오강(吴强)의 “붉은해”(红日), 라광빈(罗广斌), 양익언(杨益言)의 “붉은바위”(红岩), 곡파(曲波)의 “림해설원”(林海雪原), 양말(杨沫)의 “청춘의 노래”(青春之歌), 김경매(金敬迈)의 “구양해의 노래”(欧阳海之歌) 등 작품은 새중국의창건과 건설을 위해 비장하게 목숨을 바친 영웅인물을 가송했어
요. 

그후 “10년대동란시기”에는 “홍등기”(红灯记), “홍색랑자군”(红色娘子军), “사가풍”(沙家浜) 등 “극좌문학”(极左文学)을 대표하는 “여덟개혁명본보기극”(八个革命样板戏)이 극성스럽게 성행했어요. 
  
개혁개방이후 1980년대에 “상처문학”(伤痕文学)이 새롭게 대두했어요. “상처문학”은 지난 한시기 성행했던 “극좌문학”의 울타리를 철저하게 벗어났어요. “상처문학”은 “사실주의문학”, “현실주의문학”을 확고부동하게 지향한 문학의 “황금시대”를 개척했어요. 

당시 로신화(卢新华)의 대표작 “상흔”(伤痕), 류신무(刘心武)의 대표작 “반주임”(班主任), 주극근(周克芹)의 대표작 “허무와 그의 딸들”(许茂和他的女儿们) 등 작품은 “10년대동란시기”에 “극좌로선”이 초래했던 뼈아쁜 “상흔”(伤痕)을 적라라게 폭로규탄했어요. 

그러나 이시기의 “상처문학”(伤痕文学)은 단순히 “폭로문학”이란 단일한 정치적 경향성으로 특징지었어요. 그러므로 19세기 서구고전문학이 지향했던 “인문주의문학”과 20세기 서구현대문학이 지향했던 “개성해방주의문학”과는 도무지 어깨를 견줄수가
없었어요. 

“윤교수님, 죄송합니다. 한가기 질문해도 될가요?”
박희준이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뭘 물어보고 싶은데?”

“윤교수님, 뿌리찾기문학(寻根派文学)과 선봉파문학(先锋派文学을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후기현실주의문학(后现代主义文学)도 설명해주세요. 여직것 의문스러운 점이 무척 많았습니다.” 

윤일춘은 사색의 실마리를 더듬었다.

지난 1987년 림일안(林一安)선생이 콜론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加西亚 马尔克斯)의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百年孤独)을중국어로 번역했어요. 중역본(中译版) “백년의 고독”은 “삼련출판사”(三联出版社)를 통해 처음으로 중국독자들과 대면하였어요.

“백년의 고독” 중역본의 출판을 계기로 당시 중국문단은 “뿌리찾기문학”(寻根派文学)과 “선봉파문학”(先锋派文学)를 새롭게 개척하는 “문학혁명”의 시대에 돌입했어요.  

“백년의 고독”(百年孤独)은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加西亚 马尔克斯)가 “판타치현실주의문학”(魔幻现实主义文学)이란 창작기교를 새롭게 도입한 성과작이였어요. “판타치현실주의문학”창작기교는 당시 중국의 소설문단에 폭풍취우같은 강력한 충격을 주었어요.

작가 막언(莫言)은 소설 “백년의 고독”의 첫페지를 읽고 “소설은 원래 이렇게도 쓸수 있구나”라고 감탄했어요. 

막언의 3부작 소설 “붉은 수수가족”(红高粱家族), “봉유비비(丰乳肥臂), “생사피로”(生死疲劳)는 “판타치현실주의문학”의 경향성을 뚜렸하게 답습하였어요. 

그밖에 가르시야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당대의 중국작가들에게 “문학이란 구경 무엇인가?”라는 심각한 질문도 던져주었어요. 

작가 격비(格非)는 이렇게 말했어요. 

“문학이 어떤 주제를 표현하든 시종일관 인간의 곤경을 지향한다. 이점은 변하지 않는다.”(文学不管表现什么题材,它本身总是指向人的处境,这一点是不会变的)

작가 마원(马元)은 이렇게 말했어요. 

“문학은 두가지 표현방식이 있다. 하나는 형의상학적으로 인간의 심령을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형의상하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는 것이다.”(文学有两种呈现方式, 一种是形而上, 即表现人的心灵, 一种
是形而下, 即表现人的行为本身) 

“뿌리찾기문학”과 “선봉파문학”은 당시 중국사회가 직면하였던 갖은 곤혹과 곤경을 직시했어요. 그리고 그 곤혹과 곤경에서 해탈하려는 인간들의 몸부림과 령혼의 안식처를 탐색하는 것을 문학의 신성한 본업으로 주장했어요. 

작가 한소공(韩少功)은 “문학의 뿌리”(文学的根)라는 한편의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어요. 

“문학의 뿌리는 당연히 민족전통의 문화토양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문학은 현실에 립각하는 동시에 현실세계를 초월해야 한다. 동시에 민족의 발전과 인류의 생존을 결정짖는 비결을 제시해야 한다.”(文学之根应深植于民族传统的文化土壤中. 文学应该在立足现实的同时又对现实世界进行超越, 去揭示一些决定民族发展
和人类生存的迷)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작가 한소공이 주장한 “문학의 뿌리”를 가장 리얼하게 구현했어요. 

“백년의 고독”은 갈리비아해안(加勒比海岸)의 작은 도시 마콘도(马孔多)를 배경으로 주인공 부엔디아(布恩迪亚) 일가(一家)의 가족사를 다루었어요. 부엔디아일가 일곱세대의 무려 100년에 달하는 흥망성쇠의 가족사는 지난 한세기 라틴아메리카지역의 풍운변화의 력사였어요. 뿐만 아니라 지난 한세기 갈리비아지역의 민족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전승이였어요. 

“뿌리찾기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한소공의 “파파파”(爸爸爸), 아성(阿城)의 “바둑왕”(棋王), 정의(郑义)의 “로정”(老井), 왕안억(王安忆)의 “소포장”(小鲍庄), 가평요(贾平凹)의 “상주계렬(商州系列)” 막언(莫言)의 “붉은수수계렬”(红高粱系列)을들수 있어요. 그밖에 풍기재(冯骥才)의 “삼촌금련”(三寸金莲), 등우매(邓友梅)의 “나오”(那五) 등 작품도 “뿌리찾기문학”의 범주에 속하지요. 

“뿌리찾기문학”은 일매지게 중국전통문화의 돈후질박한 풍미를 
발견하고 전승하는 것을 문학의 드팀없는 본업으로 간주하였어
요. 

그러나 “선봉파문학”은 시초부터 “서술혁명, 언어혁명”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형식주의소설””(形式主义小说), “구조주의소설”(结构主义小说)의 새로운 혁명를 시도했어요. 

마원(马元)의 소설 “카일라스의 유혹”(冈底斯的诱惑), “허구”(虚构). 막언의 소설 “투명한 홍당무우”(透明的红萝卜), “백구그네”(白狗秋千架). 잔설(残雪)의 “오향거리”(五香街), “산위의 작은 집”(山上的小屋) 등 작품은 “판타치현실주의문학’의 충격을 받아“소설은 구경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후기현실주의문학”(后现实主义文学)에 대한 새로운 탐구였어요. 
 
“선봉파문학”의 선두주자였던 마원은 “팔진도”(八阵图)를 방불케 하는 마원식의 “서술책략”(叙述圈套)을 성공적으로 선보였어요. 소설 “카일라스의 유혹”(冈底斯的诱惑)과 “잡귀신”(牛鬼蛇神)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라는 “구조주의소설”의 새로운 언어혁명이였어요.  

“선봉파문학”의 대표적인 주장이였던 작가 막언은 “투명한 홍당무우”(透明的红萝卜), “백구그네”(白狗秋千架), “붉은수수가족”(红高粱家族) 등 일련의 작품에서 색다른 “언어혁명”을 시도했
어요. 

대표작 “생사피로”(生死疲劳)는 지주 서문뇨(西门闹)가 당나귀로환생해 “인간서문뇨와 “당나귀 서문뇨”의 대화를 서술의 주체로했어요. 동시에 “인간서문뇨”가 불교의 “륙도윤회”(六道轮回)인 “인도, 천도, 아수라도,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人道, 天道, 阿修罗道, 地狱道, 饿鬼道, 畜生道)를 경유하는 과정을 빌어 “륙도윤회”의 새로운 언어혁신을 실천했어요. 

“선봉파문학”의 제2세대에 속하는 작가 격비(格非)는 “실마리미궁”(线圈迷宫)이란 특이한 서술기교를 성공적으로 도입했어요.

작가 손감로(孙甘露)는 소설의 언어를 초현실주의적인 시가(诗歌)와 회화(绘画)의 표현형식에 접근시켰어요.

“선봉파문학”의 대표적인 녀류작가인 잔설(残雪)은 이렇게 말했어요. 

“순문학 작가의 진실한 돌파구는 오직 하나의 표준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작품이 도달해야 하는 정신적인 심도이다.”(一名纯文学作者的真实突破只有一个标准, 那就是他的作品所达到的精神深度) 

잔설의 처녀작 “황니제”(黄泥街)는 “10년대동란”시기 악취가 풍기는 “황니제”를 배경으로 했어요. 소설 “황니제”는 부부간, 련인간, 이웃간, 동료간의 치떨리는 분쟁을 통해 “굴절된 인성의 본질”을 암울한 필묵으로 심각하게 다루었어요. 

그밖에 잔설의 대표작 “오향거리”(五香街)는 전통적인 “남권의식”(男权意识)을 무자비하게 타매한 “령혼해방”의 절규였어요. 

작가 여화(余华)는 “선봉파문학”의 제2세대 작가였어요. 3부작 장편소설 “생존”(活着), “허삼관매혈기”(许三观卖血记), “가랑비속의 웨침”(在细雨中呼唤)은 생사존망의 잔인한 폭력과 피비린 력사를 랭철하게 직시했어요. 동시에 인성의 잔혹함과 인간존재의 황당함을 적라라하게 폭로규탄했어요. 

작가 한소공(韩少功), 아성(阿城), 정의(郑义), 왕안억(王安忆), 풍기재(冯骥才)를 대표로 하는 “뿌리찾기문학”과 마원(马元), 막언(莫言), 잔설(残雪), 격비(格非), 여화(余华)를 대표로 하는 “선봉파문학”은 “소설창작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 시작하였고 또 새로운 의미를 찾아오려는”(开始在小说写作当中, 去寻找意义, 去找来意义) 창작리념을 투철하게 실천했어요.
어느덧 서편하늘이 황금빛 노을로 곱게 물들었다. 그들 일행은 여흥에 젖어 내처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륙도하 시골에 시나브로 모색(暮色)이 짛어갔다.

다음에 계속

조광연(曹光延) 
길림성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다년간 연변텔례비죤방송국에서 기자. 편집으로 근무
1999~2005년 미국에 체류. 현재 자유기고인으로 활약
소설. 수필. 기행문. 실화문학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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