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월간문학”지는 박희준이 집필한 “문학의 마력”을 등재했다. “백두문필회”는 축하모임을 갖고 갑론을박으로 열띤 설전을 벌렸다.  

“문학은 인간의 령혼을 불태우는 료원의 불길이다. 문학의 마력은 영원한 것이다.”
누군가 강경한 어투로 단호하게 직설했다.

“중국은 문학을 상실했다. 광란적인 오락에 빠져죽었다.(娱乐之死) 위채(微信) 한마당은 온갖 해프닝과 흑색유머가 란무하고 있다. 이것도 문학이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소 웃다 꾸레미 터질 꼴불견이다. 오락에 질식한 시대에 문학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누군가 날카롭게 면박했다.

“문학이 왜 죽는가? 설사 위채 한마당이 료원의 불길로 번진다 해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새순이 돋아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언젠가 온갖 해프닝과 흑색유머가 명랑한 웃음을 고갈시켰다고 삿대질 할 때가 도래할 것이다.”

“루루천년 인간의 곤혹을 달래준것은 애오라지 문학이였다. 문학은 인간의 심령을 정화하는 소중한 물이다. 문학은 인간의 령혼을 승화하는 신성한 빛이다. 문학은 죽지 않는다. 죽어서도 않된다.” 
누군가 또박또박 야무지게 설토했다. 

“나도 할말이 있다. 나는 문학이 좋아서 백두문필회에 가담했다. 나는 문학이 살아 있기를 기원한다.”
누군가 목청을 돋구었다.

“떠들지 말라, 나는 박희준회장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문학의 마력이란 구경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여러분들의 의향은 어떻는가?”

누군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박희준을 요청했다. 장내에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졌다. 일순간 수십 쌍의 눈길이 박희준에게 쏠렸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요청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은 미숙한 견해라 여려분들이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희준은 장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연후에 차분한 목소리로 말주머니를 풀었다.

저명한 학자 이중천(易中天)교수는 “공민심사”(公民心事)란 책의 첫 머리에 이런 글귀를 적었어요. 

“지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래일에 다시 말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공밈심사이다.”(今天的“不能不说”, 是为了明天的 “不用再说”。这,就是我的“公民心事”)

“공민심사”가 세상에 나온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강렬한 공명을 울리고 있어요. 이것이 “공민심사”의 마력이지요. 그러면 “공민심사”는 구경 무엇을 말했을가요?

이중천교수는 이렇게 지적했어요. 

“현재 중국에서 발생하는 매개 사건들은 대개 상식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现在中国每发生一起事件,差不多都会牵涉到常识问题, 但.  这是一种“无奈的选择”)

개혁개방이래 중국은 악착스레 재부를 축척했어요. 광란적으로 재부를 숭배했어요. 그러나 현재 중국의 “공민사회”는 부자를 증오하지요. (仇富) 이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문제지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齐家治国平天下)는 전통 유생들이 부귀영달(荣华富贵)을 위한 열광적인 신앙이였어요. 그러나 현재 중국의 “공민사회”는 벼슬아치를 증오하지요. (仇官) 이 역시 상식에 어긋나는 문제지요. 

지난 수천년간 중국은 “인지초 성본선”(人之初, 性本善)의 유교학설로 후생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천하위공”(天下为公)의 태평성세를 앙모했어요. 그러나 현재 중국의 “공민사회”는 “사람마다 자신을 위한다”(人人为我)라는 사리사욕이 춤추고 있어요. 역시 상식에 어긋나는 문제지요.

중국의 “공민사회”는 오리무중에 빠졌어요. 진실히 거짓에 가리우고 있어요. 선심(善心)이 악심(恶心)에 짓밟히고 있어요. 도덕이 악행에 짛눌리고 있어요.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지요. 

그러니 만백성의 눈길은 또다시 “공민심사”(公民心事)에 쏠렸어요. “공민심사”의 마력에 빨려들었어요. 

그렇다면 현재 중국문단의 상황은 어떨가요? 

“소설은 이미 죽었다.” 어쩐지 선입견같지요. 상식에도 어긋나구요. 그러나 엄연한 현실로 대두했어요. “문학”이 독자를 상실했어요. 광란적인 오락이 독자를 앗아갔어요. 조잡한 흑색유머가 독자를 앗아갔어요. 

“문학이란 구경 무엇인가?” 지난 한시기 이같은 질문이 나를 괴롭혔어요. 밤을 패가며 뒤척거려도 도무지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런 고민과 방황의 뒤끝에 힘들게 작성된 글이 “문학의 마력”이였어요.

중국현대문학의 거장 심종문(沈从文)의 “철사록”(哲思录)에는 이런 글귀가 있어요. 

“내가 글을 짓는 것은 세상을 개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자신을 안착하기 위해서였다.”(我的写作不是为了改变世界, 而是为了安顿自己) 

어느날 문뜩 이 글귀가 나의 앙가슴을 두드렸어요. 드디어 소망했던 답을 찾았어요. 

“세상을 개변하는 것은 결코 문학이 아니였어요. 지난 수천년간 이 세상의 “진애락정”(尘埃落定)을 롱락한 것은 권력의 힘이였고 금전의 힘이였어요. 단연코 문학이 아니였어요. 

그렇다면 “문학이 왜 필요할가요?” 루루천년 문학은 애오라지 이세상 문인들의 마음의 안식처였어요. 애오라지 이세상 문인들의 정신적인 가원(家园)이였어요. 

“머리 들어 밝을 달 쳐다보고 고개 숙여 고향땅 그리네”(举头望明月,低头思故乡) 

이 시구는 시성 리백의 “호인지지”(胡人之地)에 대한 절절한 향수였어요. 부평초같이 타관땅을 떠돌던 나그네의 마음의 안식처는 결국 두구절의 시구(诗句)였어요. 

“천하대세란 통합이 오래면 분렬되고 분렬이 오래면 통합된다.”(天下大势,合久必分,分久必合) 

“삼국연의”의 저자 라관중(罗贯中)은 풍진세상의 “진애락정”(尘埃落定)을 고작 열두자의 문구에 담았어요. “천하영웅”(天下英雄)을 호질(虎叱)했던 라관중의 심령의 안식처는 결국 “도원삼결의”(桃园三结义)였어요. 

이것이 제가 깨달은 “문학의 마력”이였어요.

여러분들은 작가 량효성(梁晓声)이 별로 생소하지 않지요. 그러나 “인터넷문학”(网络文学)에 길들여진 신세대들에게 작가 량효성은 이미 이름 석자도 생경한 늙은이로 되였어요. 

작가 량효성은 개혁개방이후 “상처문학”의 대두와 함께 “지식청년문학”(知青文学)의 대표적인 작가로 맹활약을 하였어요. 당시 중국문단은 “남쪽에는 엽신(叶辛), 북쪽에는 량효성”(南有叶辛,北有梁晓声)이란 미담까지 전해졌어요. 

1980년대 작가 량효성은 선후로 “지식청년”(知青), “년륜”(年轮),  “설성”(雪城), “오늘밤 눈보라가 불어친다.”(今夜有暴风雪),“여기는 신기한 땅이다.”(这是一片神奇的土地) 등등 작품을 집필해 다산작가로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어요. 

량효성은 공화국과 동갑내기인 1949년 생이였어요. 그는 할빈에서 평범한 로동자의 아들로 태여났어요. 1968년부터 그는 북대황에서 무려 7년간 간고한 “생산건설병단”생활을 하였어요. 그후 1974년에 “복단대학”(复旦大学)에 추천받았어요. 

이같은 생활경력은 작가 량효성을 “지식청년문학”의 선두주자로 내몰았어요. 그러므로 1980년대 량효성의 작품세계는 공소와 폭로 규탄이란 “상처문학”의 시대적인 락인을 선명하게 찍어놓았어요.

그러나 1990년대에 량효성은 갑자기 필묵을 돌려 “중국사회 각계층을 분석하다.”(中国社会各阶层分析), “량효성화두”(梁晓声话题), “97년을 응시하다”(疑视九七) 등 에세이집를 펴냈어요. 

“중국사회 각 계층을 분석하다.”에서 그는 당대의 자산자계층, 매판(买办)자계층, 중산자계충, 지식분자계층, 도시평민계층과 빈민계층을 날카롭게 분석하였어요. 

“량효성화두”에서 그는 1950~60년대 중국녀성문제, 문화대혁명시기 중국녀성문제, 1980~90년대 중국녀성문제를 집요하게 주목하였어요. 

그리고 “97년을 응시하다”에서 그는 “농민과 공복들”(农民和公仆们), “자본주의의 문화모순을 의논하다”(推荐资本主义文化矛盾) “상업시대를 의심하다”(疑视商业时代) 등 문제점을 집약하여 다루었어요. 

그는 “중국사회 각 계층을 분석하다”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어요

“인류사회가 계급사회에서 계층사회로 진입한 것은 조잡한 사회구조가 세밀한 사회구도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류사회의 일대 진보이고 축복이다. 계급에서 계층으로 세분화된 사회는 다시는 계급투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글은 계급분석이 아니라 계층분석으로 되였다.(人类社会由阶级化而阶层化,意味着是由粗略的格局化而细致的布局化了。 这是人类社会的一大进步,一大幸事。由阶级而细分的阶层的社会不再发生阶级斗争。故曰阶层分析,而非阶级分析)

개혁개방이후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중국의 사회재부는 새로운 분배모식을 갖게 되였어요. 

당시 금덩이를 소지한 자는 자산자계층으로 되였어요. 은덩이를 소지한 자는 매판자계층으로 되였어요. 그리고 하루 세끼 배불리 먹는 자는 중산자계층으로 되였어요.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먹는 자는 부득불 평민계층 또는 빈민계층으로 되였어요. 그러나 이같이 새롭게 세분화된 계층구도사회는 사회배분에서 새로운 충돌과 대립을 야기시켰어요. 

그러므로 이시기 량효성의 작품세계는 격변하는 중국사회를 랭철하게 직시하고 분석하고 판단한 “독립된 인격”의 마력을 발산
하였어요. 

그후 작가 량효성은 수년간 깊은 묵상에 잠겼어요. 그러나 문학의 끈질긴 마력은 또다시 그를 문단으로 내몰았어요.

지난 2012년을 전후하여 작가 량효성이 집필한 “울적한 중국인”(郁闷的中国人), “중국의 생존계시록”(中国的生存启示录), “중국인의 인성과 인생”(中国人的人性与人生), “중국인의 일상”(中国人的日常) 등 에세이집이 륙속 독자들과 대면하였어요. 

그는 “울적한 중국인”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어요. 

“공업분야에서 체제개혁과 최적화 조합을 실시해 철밥통을 까부셨다. 그러자 일자리에서 물러난 수천만의 <<령도계급>>들은 전례없는 울적함을 체험했다.”(工业实行体制改革,优化组合,炸掉铁饭碗,于是,千千万万的《领导阶级》体味了空前的郁闷) 

“주택개혁을 실시하자 적지 않은 도시주민들이 울적해졌다. 교육분야에서 개혁을 실시하자 학생들이 몹시 울적해졌다. 의료분야에서 개혁을 실시하자 역시 중국인들을 울적하게 했다. 중국인들은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도무지 울쩍함을 회피할수가 없었다.(住房改了,不少城市人郁闷了。教育改革了,学
生们大为郁闷。医疗改革了,这又使中国人郁闷了。解决了温饱的中国人,简直没法逃避郁闷了)

그는 “중국인의 일상”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어요. 

“좋은 사람은 대개 명성을 유지하는 인생원칙을 신봉한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리성과 좋은 사람의 인성이 상호 충돌할 때면 또 시행착오를 규정하지 못해 얼마나 곤혹스러워 하는가!(好人大抵奉行维名的人生原则。但是,当好人的理性和好人的人性相互冲突时,好人们又是多么可能犯难以纠正的错误啊!)

그는 “중국인의 인성과 인생”에서 이렇게 지적하였어요. 

“법리(法理)와 정리(情理)는 분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법리로는 승소했지만 정리로는 도리여 패소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의 립장은 오히려 정리일면에 치우치게 된다.”(法理和情理,纠错不清之时颇多。故有人在法理上胜诉了,在清理上却败诉了。在这种情况之下,我的立场,倒宁愿站在情理一边的) 

이 시기 작가 량효성은 유순하고 담담한 필묵으로 각양각색의 인정세태를 평온하게 거론했어요. 그러나 그속에는 이미 세상 리치를 터득한 “각성한자”(觉醒者)의 무궁무진한 지혜가 슴배여 있었어요. 그의 작품세계가 발산한 또다른 마력이지요.

지난 2017년 작가 량효성이 집필한 장편소설 “인간세상”이 출간되였어요. 상중하 3권으로 무려 115만자에 달하는 “인간세상”은 “제10계 모순문학상”을 수여받았어요. 

소설 “인간세상”은 1960년대 말부터 2010년까지 지난 50여년간 중국사회의 거대한 변천사를 다각적인 화폭으로 다루었어요. 
1960년대의 “지식청년운동”(上山乡下运动)과 “삼선건설”(三线建设), 그후 1970년대말의 “대학추천”(推出大学)과 “대학입시제도회복”(恢复高考), “지식청년회귀”(知青返城)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대외개방”(对外开发), “국유기업개혁”(国企改革), “개체업경영”(个体经营), “판자촌개조”(棚户区改造), “부패제거와 청렴제창”(反腐倡廉) 등등 일련의 사회변혁의 력사를 주선으로 선보였어요. 

소설 “인간세상”은 근면하고 정의로운 도시 평민 주병곤(周秉昆)의 형상을 통해 긍정적인 민간륜리본위의식(民间伦理本位意识)을 구현했어요. 
그리고 지식분자출신으로 고위급 관직에 부임된 주병의(周秉义)형상을 통해 영웅주의와 랑만주의 문학의 창작리념을 실천했어요. 

그리고 “자유가 없으면 죽음이다”(不自由,毋宁死)라고 웨친 주용(周蓉)의 형상을 통해 부조리한 “남권사회”에 도전한 현대지식녀성의 해방의식을 구현했어요. 

그밖에 “삼선건설”에 뛰여든 로일대 공인계급 주지강(周志刚), 도시빈민출신으로 근면하게 살아가는 정연(郑娟), 지식청년출신의 “관료2세대”(官二代) 학동매(郝冬梅)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중국사회 각 계층의 생존계시록을 선보였어요. 

소설 “인간세상”은 전충실(陈忠实)의 장편소설 “백록원”(白鹿原)다음으로 중국당대문학사에서 또다른 특이한 문학의 마력을 발산한 거작(巨作)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어요. 

작가 심종문(沈从文)은 “소설과 사회”(小说与社会)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별로 할일이 없을 때는 소설을 읽어라.”(没有事情作, 可以看小说) “휴가를 할 때면 소일거리로 소설을 읽어라.”(放了假, 怎样消遣, 看小说吧) 

바로 한가로울 때 소설을 읽는 취미가 문학의 진지한 마력이였어요. 휴가철에 한적한 심심풀이를 달래주는 놀거리가 문학의 신비한 마력이였어요.

작가 장애령은 이렇게 말했어요. 

“인생이 너무 길면 적막함이 두렵고 인생이 너무 짧으면 늦어질가 두렵다.”(人生太长, 怕寂寞, 人生太短, 怕来不及) 

장애령은 20대에 “천재몽”(天才梦)으로 문학에 투신했어요. 그후 한평생 문학의 마력에 끌려 “홀로서기인생”의 적막함에 시달렸어요. 그러나 “홍루몽연구”에 집착한후 그녀는 인생이 짧아 늦어질가 두려웠어요. 이같은 위구심은 드디여 그녀를 “문학의 미치광이”(文学之疯子)이로 몰아갔어요. 그녀에게 문학의 마력은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였어요.

누군가 작가를 념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어요. 

“작가란 응당히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써야 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성된 글은 다만 읽는 사람의 흥분을 자아낼 뿐 별다른 계시를 주지는 못한다.”(作家写文章理应写人家所要说的, 人家所要听的, 可是, 这些文章, 只予人的兴奋, 不能予人的启示)  

사실상 현재 많은 작가들은 세상의 메가폰에 지필묵을 얽매웠어요. 이렇게 작성된 글은 당연히 독자들의 열광을 받고 있어요. 그러나 별다른 계시가 없어요. 인간의 령혼을 찔러주는 문학은 가뭄에 콩나듯 찾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러므로 “문학은 이미 죽었다.”라고 개탄하였어요.

작가 막언(莫言)은 “위대한 장편은 고독하다.”(伟大的长篇是孤独的)란 한편의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어요. 

“현시대 독자들은 다수가 세속을 따르고 사유하기를 별로 원치 않는다. 그러나 장편소설은 이같은 선동적인 시대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 응당히 소지해야 하는 존엄을 희생할수는 없다.”

“장편소설은 어떤 독자의 취미에 맞추어 함부로 편폭을 줄이고 밀도를 감소하고 심도를 저락시킬수는 없다. 설사 단 한사람의 독다만 남아도 나는 여전히 이렇게 쓸것이다”(在当今这个时代,读者多追流俗,不愿动脑子。长篇小说不能为了迎合这个煽情的时代而牺牲自己应有的尊严。长篇小说不能为了迎合某些读者而缩短自己的长度,减少自己的密度,降低自己的难度。哪怕只剩下一个读者,
我也要这样写) 

작가 막언은 단 한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문학의 파수꾼으로 되겠다고 대성일갈했어요. 이는 문학의 마력에 대한 작가 막언의 장엄한 선언이였어요. 

장내에 뢰성같은 박수갈채가 울렸다. 박희준은 이마에 내돋은 흥건한 땀을 딲았다. 뜨거운 박수갈채가 여전히 귀전에서 맴돌았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가 있습니다. 

(다음에 계속) 

조광연(曹光延) 
길림성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다년간 연변텔례비죤방송국에서 기자. 편집으로 근무
1999~2005년 미국에 체류. 현재 자유기고인으로 활약
소설. 수필. 기행문. 실화문학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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