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강매화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1. 화투놀이

 

새된 북풍이 늙은 문풍지 울리면
오두막 밤을 깎는 파르르 소리
가냘픈 등잔에 불씨를 지펴놓는다
 
따끈한 아랫목에 올방자 틀고 
한바탕 화투판 벌여놓으면
긴 겨울밤은 외할머니의 가르마를 톺아오른다
 
우리 외손녀 얼른 커서
두둥실 공산명월처럼 밝고
사쿠라꽃길만 걸으라던 외할머니
 
마흔에 9남매 키우신 청상과부
비영감님 어서 데려가소 놀려주면
철없은 우스개에 쓴웃음만 지으셨다
 
수줍은 달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때면
각 떨어진 매화꽃 화투 쪽에 
서글픈 외할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2.허수아비
 

가을바람  불어
너덜너덜한 허수아비
이마전을 스치면
막대기 하나로 간신히 서있다가
먼 산 보며 고개 주억거리는  허수아비
 
황금물결 파도 치는 논두렁에서
허연 머리카락 휘날리며
지팽이 하나로 
저무는 해 받쳐올리시던 아버지
 
눈가의 깊은 주름에서도
잘 익어 향기로운 벼이삭의 
신명난 춤이 일렁거렸다

 

3.고향에 와서

 

길가에 늘어선 은백양나무들은
어느새 아름드리 되고
매미가 한 세월 건너가는 노래
허공에 흩뿌리고 있었네

초라한 초가들 모두 사라지고
아파트들이 번듯한데
시내물은 저혼자 지줄대며
개구쟁이처럼 투정부리네

엄마의 정성은 예나 다름없이
터밭의 가지 오이 풋고추들
저기 저 옥수수 밭둑까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만 날리네

삼십년 전에도 고향이였고
삼십년 후에도 고향일텐데
이름만으로도 남아있어준다면
이름으로만이라도 남아있어준다면

 

4. 아,가을이네

 

처마밑 하얀 회벽
빠알간 고추가 꽃물 들쓰고
푸른 하늘 새털구름한테
윙크를 날린다

아낙네 엉덩이같이
펑퍼짐한 떡호박은
잘익은 사과를 훔쳐보다가
제가 먼저 부끄러워 돌아앉는다

싸리나무발에서
일광욕이 한창인 
가지말랭이 고추말랭이 
찬연한 빛갈로 맛을 챙긴다

고향집 뜨락에 가을이 깃들면
샛노란 국화향기가
유독 소녀의 가슴을
한껏 부풀게 했다

 

5. 흰 타래실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첫 돌상 차려주진 못했어도 
딸내미 탈 없이 자라라고
몸에 감아줬던 흰 타래실

시집 가는 딸에게 
장롱에 고이 간직한 타래실로
첫날 이불 한 땀 한 땀 꿰매주셨지

검은 머리 백발이 되도록 
잘 살라고 타이르던
엄마의 머리에도 
어느새 흰 타래실이
얼기설기 내려앉았다

 

6.목욕탕에서
 

사람들로 와글와글한 목욕탕
겨우 낯선 할머니 곁에서
핸드샤워노즐을 얻어썼다 
 
등 밀어줄 수 없겠냐는 부탁에 
목욕타월로 쓱쓱 밀어 드리는데
말라 비틀어진 젖가슴이
내 눈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갈참나무 껍질처럼 거칠고 
축 늘어진 살에서 
떨어져 나가는 각질들이 
내 발등을 아프게 내리친다 
 
엄마 칠순이 되도록 
등 밀어준 기억이
머리속에 까마득하다 

 

7. 우리 엄마

 

양태머리 땋아주던
그 손은 어디로 가고
눈앞에 출렁이던 
그 머리채는 어디로 갔을가
 
달 뜨는 고향산 등성이는
지금도 엄마를 닮아
휘우듬히 등을 내밀고
어서 온나,
손주 손녀들을 부르는 같은데
 
들국화 흐드러진 밭두렁길
오르시는 엄마, 
우리 엄마
내딛는 걸음걸이마다
풀무치 소리로 세상을 깨우셨지

해가 뜨면
엄마가 오시는 것 같아
저기 피여 오르는 노을이 울엄마다

 

8.아버지

 

굳은 땅 
깊은 속살을 찾으면서도
소의 눈동자에는
높은 청산을 담고있다

깊이 파인 주름 속에
수많은 생활의 무덤이 숨었지만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밝은 별이 뛰놀고 있다

추수를 지향하는 봄밤은
뚜벅뚜벅 깊어가는데
아버지 주름속의 소 한 마리
무거운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9.잉태

 

꽃 사이를 서성이던 벌은
말없이 꽃의 옷고름을 풀었다
 
바람이 꽃을 흔들어도
벌은 흔들리지 않는다
 
꽃의 몸부림에 취한 벌
자리 떠 또 어디로 가는 걸까
 
꽃은 가슴을 여미며
말없이 숙연해진다
 
씨앗은 그저 맺히는 것 아니다
꽃의 아픔이다

 

10. 탈

 

시원히 벗었다
구겨진 주름 사이로
너덜너덜해진 얼굴

마침내 벗었다
장한 척 뚝심으로 
버티던 
자존심

확 벗어버렸다
화사한 웃음 뒤
얼룩진 세월

벗고보니 
나는 없고 
나는 있다

 

11. 해바라기씨

 

겉은 까맣다 아니 수수하다
속은 하얗다 아니 고소하다

톡 까서 입에 넣으면
깨 볶는 냄새

터실터실 갈라터진 외할머니
그 무딘 손끝으로
힘겹게 한 알씩 까서
내 입에 넣어주시던
깜장 정성 하얀 사랑

강남 갔던 제비는
호박씨만 물어왔나

이제 외할머니의 뭉툭한 손을
거치지 않은 해바라기씨는
고소함을 잃었다

 

12.너를 위한 시를 쓰고 싶다

 

머리에 떠오르는 
시들 넘어 
너만을 위해
가슴으로 쓰고 싶다
 
머리는 늘 차가워도
네가 있어
늘 뜨거운 가슴으로
시를 쓰고 싶다
 
너만을 위한 시어가 되여
우리란 이름의
또 다른 풍경으로
 
물푸레나무에
머문 햇살처럼
구름 우에
떠있는 산새소리처럼

강매화 약력:
1976년 흑룡강성 철려시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요녕성조선족문학회 이사. <연변문학><국제시단> 등 문학지와 중국잡지에 중한문으로 시, 수필 발표. 번역시집(공역) 《취객》과 중문시집《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음. 요녕성 조선족문학회 2021문학상 은상, 제6회 전국조선족여성수기 우수상, 조선언어문화진흥회 수기 우수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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