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김택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그 자리에


300톤 프레스 3호기
손목 짤려 중국으로 돌아간
김아저씨 일하던 그 자리에
오늘은 내가 서 있다

비린내 묻은 바닥 닦아 놓고 
원 주인을 그려보며
범 아가리같은 기계앞 그 자리에
오늘엔 내가 서 있다

네손가락에 기름때 간득 묻고
식지만 하얗게 그대로인 장갑
그런 면장갑 끼고 그 자리에
오늘은 내가 서 있다.

쿵쿵 뛰는 마음을 달래며
언젠가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서 있을 그 자리에
오늘은 내가 서 있다

 

그해 겨울은 추웠다

                         

개구리 폴짝
처음 우물을 뛰었다가
반 남은 땅에 내려
바다 바람에 휘날리던
그때는 겨울이었다

바깥 같은 집안에서
찬 목석들의 눈치 보며
얼음목재 나르고 나르던
그해 겨울은 추웠다

연필 보다 무거운 망치로
해와 달을 두드리며
김치조각 배에 두르고
찬 바다바람 막던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피 묻은 시


                   
다 낡은 대장간
기계가 시 쓴다
스트레스에 취한 손발과
버둥질 하는 지친 몸
돌아가는 기계속에서 
피 떨구는 시 꺼낸다

뻐얼건 시는
납작한채로 신음하고
돌아가는 기계는
걸음 재촉하기 급하다

차가운 금속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치며
녹쓴 음악 감상할 때
피 묻은 시들은
하늘의 뜨거운 태양과 
고요한 별빛에 숨 한 번
쉬어 본다
칠색의 꿈 한 번 꾸어 본다

기름에 절어
너덜너덜한 시상은
지지리 긴 밤에
두만강 마셔보고
진달래꽃에 앉아
어머니도 그려본다

기인 한숨은 또다시
기계에 소재 집어넣고
뻐얼건 시 길게 뽑아본다

 

    보이지 않는 나무 

 

프레스공장 차가운 바닥
철판위에
사과나무 한그루 자란다

피빛으로 빠알간 사과에는
노동자들의 땀이 줄줄 흐르고
끊어진 손가락과 발등과
허리뼈들이 매달려 있다
가끔 인육이 썩은 냄새도 
비릿하게 풍긴다

그래도 사과라
그 풍기는 향기에
용접불도 꽃으로 피어나고
금속들이 부딪치는 악청도
음악으로 들려온다

그 나무가 비바람 맞아 
좌우로 흔들릴 때면
노동자들은 피땀속에 빠져들어
자기의 끊어진 손가락과
발등과 허리뼈를 붙잡고
살려달라 소리 지른다

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열매와 키 높이에만
여념 없는 보이지 않는 나무여.
 


 나도 사랑시를 쓰고 싶다만   

                     

나도 사랑시를 쓰고싶지만
현실은 피를 쓰라 한다
나도 꽃피는 봄과 
황금의 가을을 쓰고싶지만
현실은 피 비린내 풍긴다.

저기 저 출근하는 사람들
내 눈엔 죄다 피방울로 보인다
여기 저기 다쳐서 피 흘리는.

땅 밑에 반쯤 파묻힌
손바닥만한 세집은
종일 볕도 들지 않는데
그곳에 이산가족, 외국인,
탈북자, 미성년 가출자, 미혼모들이 
서로 서로 쌓이고 쌓여
짓뭉개져 피 터지고

낮이면 생계 위해 뛰어다니다
밤이면 피곤을 잡아 뜯으며
피를 찍어 글을 쓰는 나도
결국 한 방울의 피.

질병, 실업, 강간, 살인, 자살.
한 장의 납품서를 둘러싸고
한반도의 서해안은 지금
무형의 칼을 휘둘러 댄다 

여기까지만 해도 당신은
벙어리라도 귀머거리라도
가만 있지 않고
이 시대에 무겁게 드리운 
침묵을 갈기갈기 
쪼개고 찢을 것이다.

나도 사랑시를 쓰고 싶다만
오늘도 하늘이 터지도록 
피를 쓸 것이고
나도 봄 가을을 시로 쓰고싶지만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쓰고 있다

 

    나는 쇠가루를 마신다   
  

                           
그라인더 돌려
반짝반짝 빛나는 
고운 눈동자는
회사와 제품에 양보하고
서해바다에까지
흩날리는 쇠가루를 
커피에 타서 
나는 지루함을 마신다

양심 한점 없이
빼빼마른 손가락질에 
억울해 하다가도

나의 뒤통수를 
더욱 아프게 하는 
어릴적에도 못 배운 
그 욕질엔 다시
울분을 타서 마신다

나는 하루 아침에도 
내국인이었다가 
외국인이 되었다 하는 
카멜레온 같은 
신세에 슬픔을 타 마신다

백두산 칼바람엔 
따뜻함과
그리움을 타 마신다

마시고 마셔 이젠 
더 마실 수 없어
도로 토해낸다

지루함과 억울함과 울분과 
슬픔과 그리움을 토해
거기에 붓을 찍고
자랑스럽지 않게 모국에서
눈물의 시를 쓴다

 

   그리움
 


일에 지쳐 
까닥 않고 잠시 죽어버린 밤
밤이면 윙윙 날아다니는 
  
가끔씩 찾아오는 휴일도
용케 밀어버리고 와 
애들처럼 매달려
살갑게 구는 
  
마시는 술 
술잔에 풍덩 들어앉아
눈물 따르고
  
자는 잠과 꿈에
자꾸자꾸 유령처럼 나타나
흔들어 깨워놓고
  
참으려 해도 참지 못하게
울려 해도 울지 못하게
  
부모를 모시고 고향과 같이
처자들 손잡고
친구와 이웃을 데리고
  
나를 꼼짝 못하게
내 머리 속 공간
꽁꽁 묶어놓고 가는 
  
손에도 잡히지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게 
그러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가을날의 어느 일요일
    

               
자전거 타고
공단5거리로 가는데
뒤에서 노오란 가을들이
따라오다 
저만치서 그만 둔다

중국집에서
배갈 두병 사들고 나오니
노오란 가을들은 취해서
길거리에 
이리 저리 나딩굴고 있다

가을이 묻어나는 거리
빈 술병만 휘휘 휘파람 분다

 

 별을 만들다
  

             
캄캄한 밤하늘에
또 하나의 별이 걸린다

목박스 포장 하조 현장서
철야 연속 삼일째  
쓰러지던 지친 혼

천이백도 펄펄 끓는
알미늄 도가니 속을
헤염치던 그 고통

쇠를 갈고 찢고 붙히며
쇠가루를 커피에 타
마시던 억울함과 지겨움

프레스에 눌리워
짤려 나간 
오른쪽 식지들이

뜨거운채로 
쓰거운채로
철 지붕 뚫고
밤 하늘에 치솟아
어둠속에서 반짝 반짝

 

열매따기  

              

오래지 않은 나무가지에
거미줄이 매달려 있다
그 거미줄에 걸린 나는
열매 따기에 여념 없다
나무가지들은 
내 몸 여기 저기를 찌르지만
그런거 나는 생각할 새 없다
주린창자 달래려면
손을 빨리 놀려야 하니깐

어둠이 깃들고
가느다란 거미줄은 
당금이라도 끊어질듯 
길게 늘어난다
바람도 불고 
비도 퍼붓는다
열매 딸 마음이
하늘공중에서 흔들린다
따뜻한 품이 그립다

어둡던 하늘에
별이 깜빡인다

 

     타공(打工)

 

뼈만 남아 해골 된 
이 눈엔
부품도 다 해골로 
보인다
아침부터 해골 밀치고 
일어나
망치 잡고 일하는
해골들
별이 지쳐 꺼졌어도
전등불 켜놓고
계속 망치질 한다
두드린다
한 달 두드리면
딸애의 우유값이요
반년만 두드리면
아들애의 등록금이라
망치가 닿을 때마다
불빛이 반짝반짝
해골이  이쁘게 웃는다
해골을 두드리다가
두드리다가 그대로
해골우에 싸늘히
앉아 쉬고 누워 쉬고.

 

     쇠먼지

 

망치에 맞아 죽고
그라인더에 가루되고
압연기에 깔려 죽고
돌아가는 기계에 찢겨진
나는 쇠먼지

울고 
터지고
기브스하고 
목발하고
혀를 물고 쓰러져 
죽었어도 
죽어서도
여기 저기 날아다니며
어덴가에 내려 앉아
살려고 
살아 남으려고 애 쓴다

살아 남아서
숨쉬는 로봇과 
부딪치는 금속과 
말라가는 피들이 남긴
멍든 유언도
또박 또박 받아 적고.
 ...

지쳐죽은 쇠먼지는 
이밤도
아무데나 내려
살아 남으려 버둥질 친다

김택 프로필

본명 림금철, 중국 연변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연변문학 문학상, 백두아동문학상, 동포문학 대상 등 수상
동시집"이슬", 시집 "고독 그리고 그리움"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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