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류일복 수필가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1. 물소리를 사랑하여
                            

하늘이 바람을 몰아오고 바람이 구름을 몰아오고 구름이 비를 몰아오고 비가 어두워진 마음을 몰아온다.  비가 쏟아지어 옷이 젖고 마음이 젖고 세상이 젖고 내가 젖는 줄 안다. 다시 하늘이 바람을 몰아와 비가 저쪽으로 멀어져가고 나는 옷을 말리고 마음을 널어놓고 싱싱해진 나를 줍는다.

여름날의 목욕을 한 뒤끝에 나는 얼굴을 깍지 낀 두 손으로 가리고 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금방 언제 왔나 싶게 비가 지나간 모래톱은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 눈이 시고 가슴을 마렵게 하고 겨드랑이를 가렵게 한다.

몸뚱인 점잖게 겻불로 지져오는 듯 나는 그만 참지를 못하고 거기에 이런 반발의 손가락 글자를 가만히 쓰는 것이다.
 “미스리를 사랑한다 . 내 사랑을 받아줄래?”

밀물이 밀려와  3년 동안이나 애써 감춰 키워온 그 사랑의 밀어를 실어가 버렸다. 잠시 모래톱은 반듯한 모습을 되찾았고 대신 물 위에 무더기로 둥둥 떠다니는 내 청량한 목소리. “미스리를 어쩌고 어쩐다고?”
 쿠쿡 쿡 , 키득키득 배를 끌어안고 웃는 목소리들이 물결이 넘실거릴 때마다 들려와 파문설처럼 퍼지는 듯했다. 주위에 수두룩이 소문나면 어떡하지?

바빠 맞은 젊은이는 다시금 모래톱에 변명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놀려댔다. “난 미스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별이는 원래부터 미스리를 모른다.”
 다시 썰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고, 내 마음의 껍데기가 되는 목소리를 휘말아가 버렸다. 모래톱이 반듯해지는 대신 내 목소리가 그대로 물 위에 차고 넘쳐나 뭇 목소리들을 제압하는 것 같았다.

호 - 안도의 숨결이 물 위에 사뿐히 실린다. 젊은이는 일어나 앉아 먼 지평선에 시선을 박고 넋 나간 듯 응고된다. 물소리는 목소리 같았다.  온몸으로 사랑한 나머지 나는 그 이상한 환청의 신비에 사로잡히고 있었을까.  짝사랑했던 여자,  단 한번 사랑한다는 말 감히 꺼내 못 보고 부대꼈던 고뇌가 물목을 만나 방백으로 이뤄주는 걸까. 

홀가분하고 후련했다. 눈물이 모래톱에 자취를 남기듯 점점이 젖어 든다.  아이러브유, 처음으로 낭만적인 그 낱말 자체를 가슴 꾸러미 헤쳐 들고 되뇌어본다.  떨리는 것이 아닌 가슴이 뛴다. 툭툭 누군가 다쳐놓아도 내 심장부의 말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누구 하나만을 사랑한다고 하나의 간추린 목소리를 내는 일정이 이토록 어려운 줄 이 청춘은 몰랐다.

강 어느 위치에서 기억해낼 수 있을까? 내가 흘린 목소리들. 내 증좌들. 쏴아 쏴르르 철퍽 - 내가 던져놓고 나 혼자만이 듣고 있는 사랑의 속삭임 같았다. 꽉 우거진 풀숲을 들추고 뛰쳐나오는 물소리 저편에 바로 내 피사체가 모래톱에 순진토록 얹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미련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항상 물소리의 어느 부위인가를 만나고 사랑을 주고받게 되는 사랑스러운 느낌에 젖는다. 강 건너 전조등 같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황소가 한가롭게 물을 들이켜는 소리마저 나를 사랑해주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못 참게 애절한 내 사랑이야기에 말 못 하는 미물도 감동하리라. 

절구처럼 물확을 판다. 파면 모이고 파면 모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물은 도루묵의 투명한 깊이로 가버린다. 백사장에서도 나는 왠지 사상누각을 믿지 않았다. 모래흙을 정성 들여 쌓는 노력은 원래부터 안 되는 일처럼 허물어지기만 했다. 곧게 집어넣은 내 마음이 휘어드는 물확 깊이 내 끈끈한 사랑 이야기를 천년이고 만년이고 간수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내 못다 한 사랑이 장황히 흐름에 넘쳐나면 전달될지도 몰랐다. 흐르는 물이 썩을 때 되면 기적처럼 내 사랑도 빛을 발하겠지.

이번엔 용기 내어 근사한 여자의 모습을 모래톱에 그린다. 채 그리지 못했는데 쿡쿡 웃는 듯 목소리가 들려와 잽싸게 지운다. 내 마음이 보인 듯 씁쓸한 물소리의 음색만 낭자하다. 지운다는 일이 슬픈 그것은 거리였다. 물소리와 목소리의 거리, 내 사랑이 닿지 못한 여자와 나누어지는 목소리 밖이 물소리였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서 나 밖의 타인이 터놓은 맹랑하고 애먼 감상평은 물소리의 화음과 조화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열병이었다.
 사랑할 수 없는 용기에 강물은 암초를 닦고 깎아 부싯돌로 제련해주었다. 하지만 이 다 무슨 소용이랴. 부싯돌은 부딪쳐야 불씨를 얻듯 애초부터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에랴.

나는 벌떡 일어섰다. 물결이 그녀의 손결처럼 흐늘흐늘 바지 기슭을 매만지고 물러간다. 알았다고, 됐다고. 색깔도 없는 물처럼 순수한 목소리는 허위를 담지 않은 소리다.

뭔가 두려웠던 날들, 맑은 마음과 투명한 음량으로 등판을 간질이는 물소리에 귀를 뚫리고 나서 나는 허망 웃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옳게 듣는 목소리 때문에 새로 가진 것에 대한 거뿐한 대답은 그것이었다. 

그냥 돌아서라. 과거는 과거다. 물소리는 과거의 기억엔 없다. 물소리는 흐르는 물 따라 새롭기만 할 뿐이다.  과거라도 내 마음을 담은 물소리를 사랑하리라. 그게 깊숙이 비밀로 숨겨왔던 응보일 것이며 전부의 결과물일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듯 강물은 영겁을 흐르고 똑같은 목소리를 들려주듯이.

발목이 빠지는 모래톱에서 나는 또 하나의 물소리의 절규 때문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를 얼추 안다. 짝사랑의 고민에서 나오듯 걸어 나왔다. 나는 아직도 홀몸을 사랑하고 나이를 먹음에 사랑하고 사랑하고파서 사랑하더라도 너는 잊으리라. 과거는 과거였음에. 흘러가는 강물은 돌아오지 않음에.
 물소리는 여전했고 그 감미로움을 어찌하랴. 사랑도 죄랴.


  경수필      
2. 나는 지금 하숙생

 

텅 빈 뜰, 그리고 시원히 탁 트인 강바람을 마주 서 있기 좋아했다. 여름에는 무성했다가 간 밤새에 조락해 내리는 나뭇잎들, 티끌도 남지 않는 그 현장을 되게 기분 좋아했다. 나는 무엇이나 비어서 조용하고 넓어서 헬 수 없는 자연의 의미를 무조건 즐기고자 했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이기를 안 했다. 사업을 하게 해서 실패를 알게 하고 사람을 만나게 해서 싸움을 알게 하고 돈을 벌게 해서 시건방짐을 알게 하고 나이 들게 해서 삶에 대한 초조함을 알게 했다.  훈훈한 여름처럼, 풍족하게 살고 싶은

여름은 화려했다. 화려해서 현기증이 일게 했다. 내리고 싶지 않은 여름 역을 지나 가을 역을 경유해 겨울 셋방살이로 보따리들을 풀었다. 그리고 겨울, 할머니 매돌 갈 듯 돌고 돌아도 제 자리로 돌아온 일상들을 복창했음을 알았고 셋방살이는 내 전유물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구나 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계절 갈림의 신비한 마력이 다시 힘들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주위에 모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진보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비여서 조용한데 대한 아름찬 단념일 수밖에 없다. 휑뎅그렁한 뜰과 삭막한 나무를 의지하고 앉아있는 나를 축소하고 있었다. 빈 것도 미완성의 한 뜻일까.

인생은 어차피 하숙이다. 하숙하면서 살도록 짐을 들려 떠나보낸다. 잠자리가 맞갖지 않으면 하루 이틀 한뎃잠을 묵어가게 하면서 비어서 조용한 그 쓸쓸함의 풍경을 납득시키고 다시 떠나보낸다. 남의 인생을 살아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거지 같은 의미의 반목은 간이역이란 속성에서 하숙의 부끄러움을, 멈춤의 잔재를 깨닫게 한다. 

남의 인생을 살아주는 기분이 드는 하숙생. 내 집이, 내 삶이, 내 자취를 못 하는 전체가 형편없는 인생 열차에 탑승하게 했다. 다시 허둥거리며 흔들리며 떠나는 요원한 미래도 넓어서 깊고 비여서 조용한, 좋아진 날들이 올까 말까. 나이를 허물기에 집중하기보다 삶을 알차게 메우기 위해 핍박한, 넉넉해서 흡족한 훗날이라면 마감하고 싶다. 하숙생 인생을-

그리고 바다로 향하는 욕망으로 이루는 흡족한 날, 하숙생은 차분해지고 있다. 아아, 더 넓어서 더 깊고 더 비여서 조용한- 
                 
 

 경수필            

3. 미완성의 한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미완성일까? 을해년 나의 돼지띠해에는 새삼 절감한다. 운명이란 어떤 숙제인가 함을. 사랑에서도 미완성이고 살아가는 일에도 미완성이고 삶 자체가 미완성인 그야말로 내 인생은 고뿔에 걸렸고 오물투성이로 점철된 것은 아닌지?

좌절의 여운은 있게 되면 또 연속을 끌어내게 되어 굳어진 미완성의 뜻에 조바심치게 된다. 나이가 그만큼 부재치 않으면 그만큼 해내 싸야 하는 젊음이란 패기, 마냥 울적함과 함께 동요하고 있다. 끊임없는 파도의 속성처럼 부딪는 미완성의 날은 철 못 들게 하는 자신에 대한 무언의 논증이었다. 

내 삶을 점검하면 미완성의 사건들이 너무 많다. 아직 살아갈 시간이 많다는 건 변명으로 칠 정도로 내겐 수치가 많다. 미완성의 불감은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 떨리게 하는데 완성의 유혹은 투지로 불타오르게 하고 있다. 
 “슬 됐다” 할 때는 곧 벌레 먹은 개암 알을 생각하고 “잘 여물었다” 할 때는 알알이 영근 고개 숙인 벼 이삭을 생각한다. 가을이면 한편으로 까불려 나가는 쭉정이처럼 미완성되어있는 자아를 성찰한다. 

어떻게 나이 먼저 완성해보겠다는 것이 늘 어깨를 화물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일을 해놓고 후회 없어야 하고 할 일 없어 안타까워 말아야겠다는 게 돼지띠 그해 의도였는데 이건 이름 그대로 처먹고 욕심부리는 데만 열중해 신세 망치였다. 조금만 게으르다 보면 미완성의 덤터기를 뒤집어쓰게 된다. 

완성하는 과정은 주저앉기 아니면 일어서기. 굽힐 땐 굽히고 설 때는 설 과단성을 주문한다. 일어서기 과정이 있는바 하곤 주저앉지 않는 일어서기로 완성하고 싶다. 
 완성은 내게 사활을 거는 문제였다. 다른데 한눈팔새 없이 이 절주 빠른 시대는 전력투구를 필요로 한다. 항상 완성은 내게 사명이다. 결정적인 보람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가고 앉고 하는 시간에도 자신에게 귀띔하고 있다. 허망한 사고와 주책바가지 같은 이념 사이에서 나는 미완성을 골수에 미치는 실수 하나라고 절실히 느낀다. 

그런 남루한 욕망도 버려야 하겠다. 잠시 젊음의 미완성에 대한 아집을 버리니 이토록 편한 잠을. 젊음의 미완성에 부끄러움을 못 느껴 바보처럼 멍청하니 앉아 아직 둥그러짐에 이르지 못한 달을 미망처럼 쳐다본다. 이지러진 조각달은 얼마나 못났는지? 미완성의 한은 결국 돌고 돌아 완성으로 가는 근원이고 있었다. 젊음은 미완에 죽고 완성에 환장했다. 미완성과 애인처럼 이별하고자 안간힘을 쓰던 꽃다운 나이를 사랑했고 기억할 것 같다. 영원처럼-

류일복 약력

중국 화룡시 숭선촌 태생. 화룡방송국 편집기자. 청도 한글신문사에서 기자 근무. 연변작가협회 회원.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직장 생활.  2016년 수필집 <한국서 밥 먹고 삽니다> 출간. 문학상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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