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권기식 칼럼니스트
권기식 칼럼니스트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2년이 지난 1990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냉전 체제가 해체되는 대변동의 시기였다. 이 시기 군인 출신인 보수주의자 노태우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인 결단을 한다. 바로 냉전의 한축이자 과거 적대국가였던 소련과의 수교이다.

노 대통령은 고종사촌 처남인 박철언을 비밀특사로 활용하고,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방문 당시 방미 중이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나 한소 수교에 합의했다. 마침내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은 오랜 적대관계를 끝내고 수교를 이루었다.

지난 2021년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 북한 양국의 견제와 압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우선 북한은 한소 수교에 반발해 당시 모스크바에 있던 대표단 전원의 철수를 얘기하며 소련 당국을 압박했다. 또한 미국도 한소 수교로 한미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다며 걸프전 지원 문제를 거론하는 등 한국을 견제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 한소 수교를 이루어냈고, 이는 한국 외교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한소 수교는 1992년 한중 수교로 이어졌고, 이어 30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또한 한반도 평화 관리의 튼튼한 기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에는 '통찰'이 있었다. 국제 관계의 변화를 빨리 읽고 주도적 대응을 하는 외교 전략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북방 외교를 통해 한국은 외교적으로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 글로벌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한국 외교부가 지난 9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전날 이뤄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회동에서 싱 대사가 한 발언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외교부의 싱 대사 초치는 몇가지 점에서 부적절하고, G8 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의 외교 답지 않다는  지적이다.

첫째, 지금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이다. 대중국 무역적자는 갈수록 늘어나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단체여행 해제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서민경제와 밀접한 여행, 숙박, 음식, 유통산업 등이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둘째, 싱하이밍 대사는 대표적인 지한파이자 친한파이다. 그는 4번째 한국에 근무하는 중국 외교부의 대표적인 '한국통'이자, 김치를 누구 보다 좋아해 부인이 직접 김치를 담가 먹을 정도다. 그는 또한 북한에서 대학을 나오고 근무하기도 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중국의 고위 외교관이다. 그동안 중국 외교부 내 강경그룹에 맞서 한국의 입장을 많이 옹호해온 것은 외교가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싱 대사를 초치하는 것은 옹졸한 행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셋째,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중국에 밀착하는 흐름에서 한국만 소외될 수 있다. 얼마전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대중국 접근법인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말이 나왔다. ‘위험 줄이기’라는 뜻이다. 중국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해온 ‘분리’라는 의미의 ‘디커플링(decoupling)'보다 외교적으로는 더 온건한 접근법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중국과의 전략 경쟁과 경제 협력을 함께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테슬라·JP모건·엔비디아 등 미국 대기업들이 중국으로 가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중국으로 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반중국 정책에 첨병 노릇을 하다가 자칫 '낙동강 오리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필자도 지난 6일 정대철 헌정회장과 함께 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대사와 만찬을 함께 했다. 그날 싱 대사는 한중 관계에 대한 걱정과 한중 경제협력의 중요성, 한중 공공외교의 강화 등을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는 한중 우호에 대한 깊은 철학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한국은 반도국가이자 분단국가이다. 지경학적인 조건은 우리에게 외교의 통찰을 요구하고 있다. 외교가 이 나라 생존과 번영의 핵심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의 외교적 통찰과 추진력이 더욱 생각난다. G8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외교의 통찰을 기대한다. 그것이 한국이 살 길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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