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박만해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1. 《馬蟻일기》
그 어떤 바람의 터널속에서



다행이다. 천지를 요동치는 굉음소리가 서서히 사라졌다.
실오라기같은 빛가닥이 어귀에서 망설이다 드디어 칠흑같은 동혈(洞穴)을 더듬으며 기어들려고 시도를 한다. 
엇갈린 갱도속엔 짙은 어둠과 굳어버린 밤들이 중첩되여 우리는 시커멓게 찌들은 토템을 껴안고 한 가닥 또 한 가닥의 빛줄기가 반복적으로 끼어들다 죽어가는 따분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 또 깨여나곤 한다.
 

새까맣게 뭉쳐진 우리는 마냥 든든하기만 하다. 
허나 나의 고독은 왜 나날이 깊어가고만 있을까? 또한 반짝이는 광원(光源)이 두어 알의 모래에 가로막혀 동구밖에서 온 종일 흐느끼는 소리는 왜 나의 심금을 이토록 괴롭게 만들까? 
지금 우리는 세상의 밑창에서 여전히 숨을 쉰다. 그리고 또 숨을 쉰다. 서성거린다.
지겹게 한가로운 호흡의 반복이다.
 

그 빛은 끊임없이 알른거린다. 알 수 없는 새들의 지저귐까지 들린다. 
밖은 무척 청명한 날씨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깊은 동굴의 시궁창을 벗어나 가물거리는 그 광원의 따뜻함을 맞아 더 넓은 광야로 향해 올라 나설 때가 아닐까 싶다. 
전도양양한 앞길은 결코 평탄하지는 않을 거다. 티끌을 제외하고 미소한 모래알마저 우리로써는 늘 힘겹게 지고 넘어야 할 육중한 거암(巨巖)들이라 생각한다.
 

아! 세상은 한없이 넓다. 
나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빛깔과 그 형태들이다. 햇빛은 나를 감싸주기도 하고 때론 살짝 찌르기도 한다. 현묘한 투각으로 육신을 허황케 하는 순간순간들이다. 나는 이미 빛과 빛사이에 가려져 있는 어두움의 무게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빛줄기 속에 또 하나의 어둠의 터널이 숨겨져 서로 공생,대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내가 경건하게 군산들을 우러러 볼 때 민들레홀씨들이 휙-휙- 소리을 내며 황막한 벌판을 쓸고 지나간다. 정말로 경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소! 
광활한 대지에 조화를 이룬 비금주수와 산천초목은 모두 무슨 까닭으로 사는 건지 알바가 없네.
그리고 더 거센 인류들은 지금 막 무리지어 떠들어대며 온갖 들을 향해 덥석거리고 동족상잔으로 저들만의 제궐(帝闕)을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균형이 깨진 황폐한 자연을 흔히 인간들은 “사람사는 세상”이라 자찬하고 있지.
우리는 항상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맡겨야 할것인가?
 

인간에 비해 우리는 턱없이 미약하고 보잘것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 속에 자비로운 자가 이 땅에 강림하여 “개미의 시각”으로 천지만물을 가늠할 것이며 그들이 함부로 흘린 한 방울의 눈물마저도 개미 한쌍의 사랑을 흩뜨릴 수 있다라는 사실을 차차 깨달을 것이다.
 

나와 모기는 교제가 깊은 친구사이는 아니다. 
단지 가끔 지날 때 나에게 인간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몇가지 들려 주는 정도뿐이다.
오늘 허둥대는 그녀의 넋두리가 사뭇 예사롭지가 않다. 나에게 와인 한병을 건네주고 “이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ʻ인간생명의 유전물’이라 보신도 되고 선악시비도 가릴수 있는 보약”이라고만 말을 아꼈다.
 

세상에 이런 신비한 일도 있나?
내 발밑에서 당당하게 피여 있는 조그만한 오색찬란한 꽃들이 보인다.
나의 손톱보다 천만배나 더 작고 정교한 생명체들이 보인다.
저 아득한 밤 하늘에 뭇별이 보인다. 
이 깊은 땅속의 모든 뿌리와 씨앗의 대화소리도 들린다.
 

때는 이미 한로(寒露)다.
요즈음은 웬지 한 동안 요란을 피우던 풀벌레소리가 제법 뜸해진 느낌이다. 
아니, 전혀 소리가 없는 듯 하다. 
한때는 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어 놓았던 귀뚜라미도 행방불명이다…
 
 

지금은 많이 수척해진 몸이다. 들고뛰는 일상에 늘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오늘도 여전히 몇가닥의 먼지를 일으켜 송구스럽다. 한톨 한톨의 먼지가 허공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볍게 날리다가 그 작은 몸체들이 땅에 부딪치는 순간--예전에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아니, 어쩌면 한번 비상하였다가 다시 대지로 귀의(皈依)할수 있는 희열의 절규일지도 모른다.
 

밤이다.
잔잔한 달빛에 살짝 기대어 천뢰(天籁)를 경청할 수 있는 정적(靜寂)이 너무나 고맙다.
그 어떤 바람의 터널속에서, 나 역시 한알의 티끌처럼 지금 분명 어딘가로 날고 있다.
나와 스쳐지난 당신이여!
우리들의 존재는 어디에서 다시 시작될 것일까?
                                       

 

2. 《번역할 수 없는 슬픔》
 

초원의 가장자리에서 
흩날리는 락엽을 방목합니다
텅 빈 가을하늘을 번역하기 위해
잔잔한 호수 속에 
돌 하나 던져봅니다
 
호수가에 앉아 
구름밤을 스쳐가는 철새를 그려봅니다
산 속의 깊은 정적을 번역하기 위해
나는 별과 어둠과 
바람같은 이름들을 
가슴이 미어지게 불러봅니다
 
어머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어머님---
어머님 그립습니다
 
어머님의 헐어빠진 부뚜막
불을 내며 허덕이던 아궁이
떼묻은 가마속의 밥향기
그리고 호롱불에 일렁이는 그림자
깨진 구들장으로 새여 나오는 연기 내
그을고 허름해진 돗자리…
아하 어머님!
눈가에 알른거리는 이 모든 것들
전 왜 단 하나라도 제 뜻대로
번역할 수가 없나요?
 
그리고 
그리고 가엾은 우리 누이여,
누이 머리위에 피여 있는 맨드라미
맨드라미속에 톡톡 파열하는 핏방울…
저 또한 죽어도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단란한 행복을 만나가는 길엔
늘 슬픈 이별이 앞서갑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붉게 타는 노을 속에 묻어 버려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해독하지 않으려 단념합니다
                           

 

3. 《국외인(局外人)》
 

복숭아 한 입 냉큼 물고 보니
부드러운 속살 안에 애벌레 반 토막이 
잠에서 깨여 난다
삼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휴! 이건 히스테리가 아니란다
요즘 너나 나나 먹고 살아가는 일 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나)
 
구경꾼들이 말하기를,
이건 불행과 우연의 만남…
허나 이것은 결코 애벌레 하나 만의 불행인지,
아니면 누구와 누구와의 
우연한 결탁으로  
또 다른 상잔의 계주로 이어갈 것인지?
 
난 단지 믿고 있다
이 과일은 분명 오래 전 
그 어떤 나무에 살포시 매달려 
익어가는 가을의 황홀을 만끽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후 누가 스스럼없이 안방까지 끼여들었고
누군가는 뛰여들어 무자비하게
탯줄마저 끊어 놓았다
또 어떤이는 기절한 얘들을 함거에 밀어넣고
머나먼 타향까지 유배시켰다는 것
 
그럼 나 또한 어떤 존속인가——
싸늘한 새벽녘에
다만
참지 못 할 허기를 구실 삼아 
잠자고 있는 남의 가택을
비틀어 열고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가
애꿎은 딜레마에 빠졌다고 
동녘을 향해 
고래고래 울부짖어야 성에 찰것일가?
                                  
 
4. 《색조(色調)》
 

귀밑머리가 희끗한 형님이 
생전의 아버지 모습 그대로 
뒤뜰에 쪼그린 채 멍하니 노을을 바라본다 
세살박이 터미도 제법 인간의 심사를 읽는 듯 
꼬리를 끼고 조용히 따라 낙조를 지켜본다
 
그들 뒷모습에 일그러진 어두운 그림자는 
기다랗게 상추밭으로 늘어져 갔고
상추잎의 엷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엉겅퀴속에는
벌써 별들이 총총한 밤이였다
달팽이는 온종일 손바닥만한 잎새속에서 
앞길을 더듬다 이제서야 지친 고개를 들어본다
달팽이도 별을 보고 있을까﹖
얇은 꽃상추의 두께는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큼 헤아릴 수 없었나 보다
 
밤이 옅어져 간다 
풀벌레 소리가 별빛처럼 
형님의 가슴속에서 알른거린다
여름내 엉겅퀴 꽃잎에 뭉쳐있던 
수만 개 자줏빛 색소들은 
일시에 어디론가 탈출해 간다
깜박 졸고 있는 새벽이슬을 뒤로 한채...

 

5. 《이방의 슬픔》
 

운명의 질곡에 내려 앉아
내불지 못 한채 묵묵히 피고 지는 꽃들에겐
어떠한 속정들로 애타고 있었을가
 
혹독한 겨울 휘몰아치는 폭풍속에
갈매기가 쓸쓸한 낙도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결코 무엇이였을까
 
나는 왜 모든 유산을 뿌리치고
배낭 하나에 별과 여한과 백의의 혼만 담고
이방이 아닌 이방에서 방랑해야만 했었던가
 
오늘도 계절을 잃은 텅 빈 창공은 
빨간 태양을 등에 메고 스쳐가는 철새 떼의 
비명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6. 《食指의 덫》  
 

머리를 톡 톡 떼여내고 꼬리도 뚝 잘라보며
날개를 사정없이 찢어 버려도
그들은 한참이나 어딘가로 날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러한 숙명과 업보로
반생을 어지럽히다 낯설은 이방에 추락되여
매일 버릇처럼 두 손을 치켜올린다
 
경건한 자세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육과 원한이 배여 있는 식지를 드러내여 
세속의 따가움속에서 거듭나기를 원했다
 
잠자리 하나 둘씩 손끝에 머물다 가면 
몽매에 갇혔던 동심은 깊은 전율에서 벗어나
해탈된 허깨비 따라 어디론가 날아간다


7. 《석하(夕霞)》
 

노을은 
잔몽(殘夢)이다
부서져 가는 영혼의 상처다
마지막
터뜨린 열망으로
치유하려는
최후의 환멸이다
 
낙화 속에 숨겨진 
애절한 겁(劫)이다
 
그대의 
수정보다 더 맑은
눈동자를 
바야흐로
별똥별로 빛나게 하는
가장 절망의
위안(慰安)이다           
 

박만해 프로필

중국 심양시 출생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재한조선족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조선족문학회 이사
료녕성작가협회 회원
2021년 료녕성조선족문학회 문학대상 등 수상 다수 
메일 : piaowanhai@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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