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홍연숙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1. 튤립


아무도 없는 저녁의 창가에 서면 
블록을 쌓듯 높아진 집들이 노을을 가리고 
어두운 적막이 가까이 온다
저 좁은 흙의 들썩임은 
바람의 귀를 가져야만 들을 수 있겠지만 
이 숨막힘은 
상념의 문에 걸린 커다란 빗장이여서 
한 줄기 빛이라도 비춰야만 
저 들썩임이 보일 것만 같아 
가만히 저녁의 창가에 서면 
가로등이 유리창에 잠기고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그림자 무늬로 어른거려 
그 감정이 바람의 결 따라 흐른다 
어쩌면 저 바람의 울림속에도 
아름드리 추억의 날들이 들었으리라 
그 울림으로 심지를 만들어 
격정의 혈관을 타고 번지는 꽃이었으니 
그 비밀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아무도 없는 저녁에 혼자 붉는 것이 
꼭 자신의 심장을 보여주는 듯이

 

2. 환생


나는 묘지를 걷고 있다 

허공에 
뼈다귀들이 날아다니고 
뱀의 눈알들이 독을 쓴다 
질긴 비린내는 
마른 가죽에서 뿜어 오는 것이고 
검 푸른 핏 자국은 
저 죽음들을 찢을 것이다 

봄의 열창이다 

무덤들이 연이어 터지며 
쏟아지는 시체들 

노랗다!

 

3. 어느 시인의 안전화


별의 
발자국이 하늘에 찍히고 있다 

옥상에 
서성이는 하얀 그림자 
음탕한 낱말을 씹으며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는 안전화를 신지 않았다

소를 먹은 안전화 
방탕한 시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고
악명높은 시인의 모가지를 당겨 
공사현장으로 
감자밭으로 끌었다 

그래도 
한 고집이 남았는지
돌가루를 먹은 시줄들이 
불뚝이며 살아 있었고 
감자눈에 꽂힌 시어들이 
푸르게 독이 올라 그처럼 아렸나보다 

​충혈된 새벽이 
땜빵으로 봉고차에 오를 때
시인의 집은 
담뱃불에 타고 있었고
비틀거리던 연기는 
자정까지 거리를 방황했다

이제 시인은 
바람난 시를 버렸는데 
안전화는 지금 
누구의 발을 잡고 목을 조일까?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가?

 

4. 바람이 지나간 자리


그녀는 
사막을 넘었나 봐요 
무릎에 모래바람이 불어요
등에는 모래무덤이 있어요
쇄골이 불거지고 
등골에서 방울 소리가 나요
진단서에는
바람이 지나갔다고 해요
오십 년의 바람이 
그녀를 모르게 관통했대요
엎어지듯 휘 청이는 자세는 
불안했어요
그래도 그녀는 
쉬지 않고 쓰고 있어요 
한 글자 한 글자
몸으로 쓰고 있어요
바닷가 해풍에 굽은 소나무처럼
오랜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죠
그녀의 거친 시처럼 말이예요

 

5. 대봉감 7알

 

대봉감 7알을 얻었는데 
하나같이 떫은 표정이다
저런 멍 진 얼굴 어디서 많이 본듯
생생한 아픔에 언 손이 
선 뜻 다가가지 못한다

이별의 순간까지
그 뒤에 오는 슬픔 따위를 상상이나 했을까
세상의 모든 고통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 공포로 긴장된 근육이 저렇게 
긴 아픔을 이어가게 했을까

허공에 남은 것들
동고 동락하며 꽃 무지개같은 생각을 키워온 것들
그것들을 하늘에 말리고
비에 적시고
땅에 묻어야 하는

스스로 그 슬픔이 짓무를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아무리 먼 곳의 슬픔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가을의 선물은 슬프다

 

6. 자엽자두 


긴 침묵 끝에
자엽자두나무가 잎 하나를 툭 던졌다
타는 불꽃 같았다
바람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활활 타 번지는 말들
그 뜨거운 것들이 한 그루에 담겨 있었다
분노하고 
자책을 하고
용서는 두려운 것이었다
만신창이 된 언어들이 
입술에 매달려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하얗게 소름 돋은 것들이
손 대면 터질 것 처럼 말랑말랑했다 

 

7. 엄마는 거실매트를 뜨고 있대요  

 
엄마는 거실매트를 뜨고 있대요
거미처럼 웅크리고 앉아
새벽부터 한밤까지 뜨고 뜬데요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한땀한땀 뜨고 있대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딸한테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는 엄마는
맨발로 쏘다니기 좋아하는 딸에게
거실매트 하나 떠준대요
이제 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화장실에서 주방으로
쪼르르 밟고 다니기도 하고
그 우에서 막걸리를 홀짝이다가
퍼질고 티비를 보다가 낮잠도 자겠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디 아픈 데는 없니
그런 걱정들을 꼭꼭 눌러 떠가는 거실매트는
엄마의 힘줄로
엄마의 날숨으로 뜨는 거실매트는 
제가 다 빨아먹고
거죽만 남은 엄마처럼 되겠지요
엄마는,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는 엄마는
저의 살찐 엉덩이가 시릴까 봐
저의 젊은 발이 시릴까 봐
뜨개바늘보다 더 가늘어진
꼬챙이 같은 손가락으로
거실매트를 뜨고 있대요
엄마를,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엄마를 누벼가고 있대요

* 포항문학제 중국조선족문학상 수상작 

 

8. 꼬막

 
짬뽕 한 그릇 시키고 
고명으로 앉은 꼬막을 집었다

새 같어!

분명 한마리 새였다
옹송그린 태아의 모습으로
한번의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였다

너는 왜 날지 않았는가

날개를 포개고
한없이 자신을 가두어
진흙속에 감춘 시간들

썰물에
뼈대없이 흐르는 몰골을
기어이 날개밑에 쑤셔 넣는다

한 낱 세상의 안주로
날개는 점점 굳어져 가고
너는 비릿내 나는 바닥만 긁고 있다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


9. 고목


죽어서도 흙을 덮지 못한 
당신에게

담쟁이는 연초록 피부를 
진푸르게 당겨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사방에서 날려드는 벌레들에 
당신의 썩어가는 뼈가 걱정이 되여

밤 낮 무릎 걸음으로 
한 계절 물 들이고

돈도 명예도 다 옛날의 것인
당신을 기억하는 이 있을까마는

그 풍경을 읊어주는 
새 한 마리 앉아 있어
당신은 
죽어서도 꿋꿋이 서 있다

홍연숙 프로필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포항문학제 중국조선족문학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메일 a3078125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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