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自選작품은 제일 잘 된 작품부터 차례로 선정해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2편도 괜찮습니다.

아래는 리문호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그런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인이였다
기억의 끝으로 간 시인, 
가끔 모아산에서 한 송이 흰구름으로
가물거려 오는 이름
서울 가리봉동에서 
초면에 만났던 시인

두더지 소굴 같은 쪽방촌에
그의 요청으로 갔을 때는 무더운 여름
구석구석 곰팡이 노래가 고적한
두 팔 벌리면 두 벽이 손 끝에 닫는 방에서
선풍기는 욍욍 울고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늑지한 되지 대구리 고기 한 접시
생활고처럼 콕콕 쏘는 동태탕에
시를 넣고 담론하였다

그의 시는 은유의 쥐며느리도 
그의 시는 상징의 바퀴벌레도 
고생의 야유도 암유도 아니였다
담백하고 순수한 감성의 시
진실이 배여 마음으로 쓴 시

독자를 속이는. 거짓 말
눈물 없는 슬픔, 비통, 아우성
허상, 허구가 난무하는 시단에
난해로 독자를 우롱하는 시단에
그의 시는 피로 땀으로 쓴
고생 속에서 신음 소리 없는
슬픔 속에서 낭만이 가득한
진정한 시였다 

시단이 왜 이렇게
타클라막칸 사막의 고사목처럼 삭막해 졌는가
그는 한탄한다
청초 같은 그의 시가 뿌리 내릴
한줌
흙과 비물이 없는
모래 밖에 보이지 않는 사막

방바닥에 쌓여 있는 원고 뭉치
곰팡이가 낭독하고 있다

내일 아침 5시
인력 사무소 막노동 가야 하는 그이기에
좀 휴식하라고
나는 자리를 떳다
후에 그는 연변 고향으로 간다고 하였다
후에 그는 귀천하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한 시인은 갔다
발표 했다는 20여수의 시
어디에 발표했는지 그 행적은 묘연하다
어느 책더미에
파묻혀 있을 주옥같은 시
페지로 팔려간지도 모르는 시
그 것만으로 그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아 모아산, 그의 시혼은
흰 구름으로 걸려있을 것이다

2020,12,11 

 

서울 가리봉시장 일경

 

무거운 몸을 지탱한
무거운 발걸음들이 어둑한 저녘
네온등 불빛 눈부시게 감긴
만두김,어물전 비린내
왕족발 구수한 향이 허기진 콧구멍으로
밀물처럼 파동쳐 들어온다

하루 땀 값이다 피값이다
돈을 쪼개 동태 한 마리 무우한개
소주 한 병 산다
먹고 남는 것은 꿈이다
웃음이다 보람이다
차곡차곡 모으고 쌓는 것은 희망을 쌓는 것이다

좁은 골목의 쪽방에서 찌개를 끓인다
콤콤히 애락의 맛이 나는 
보골보골 군침에 서려 오는
그리운 부모님의 허연 백발이 타래쳐 오르고
아내의 눈빛,아가의 웃음이 풍긴다

곰팡이 꽃 까맣게 핀 천장은
그의 꿈나라 생긋거리는
뭇별,동경(銅鏡)같은 달
고향 천리로 질주하는 내연기의 코고는 소리
그리고 어느역에서 부둥켜 안고
부대끼는 잠꼬대
밤이가고 아침이오면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하루 같은 하루를 잇는 하루 같은 고달픈 나날에 
매일 지나가는 무거운 발걸음 무거운 꿈들 

가리봉 시장에 수척한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지나간다

(동북아신문안민문학상최우수상수상)

 

부끄러움

 

독산로 인행길을 걷는다
문뜩 한 녀학생이 내게 다가와
아주 부끄러운 기색으로 버스비 천원을 달라한다

홀연
그 말에 나도 나의 존재를 발견한다
일상에 깡그리 잊은 나의 존재 
그 자리의 공간과 시간에 내가 있음을
네가 깨워쳐 주었구나

그 녀학생은 멀리서 나를 보며
달라할까 말라할까 콩콩뛰는햇마음으로
한 참 생각했을것이다
그러다 내가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게로와서 달라고했을 것이다
그 믿음,참 고맙다 세상에 늙은 얼굴들고
다니는 내를 밉지 않게 봐주는 
그것 만으로 얼마나고 마운가

나는 엉겁결에 뒷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준다
굴러 나왔는지,집혀 나왔는지 모른다
만원이다 돈 못 버는 백수 시인이 
한 번 큰 맘쓴다 

학생은 고개를 살짝들어 나긋한 얼굴에
웃음 띄우며 고맙다고 꾸뻑 절하고 
달아 나는데 얼굴이 당근처럼 빨갛다
야,너 꽤나 부끄럼 타누나 
세상에 부끄럼 못 본지도 오래다
부끄럼이 얼마나 값진것인지 잊은지도 오래다

책가방 메고 달아 나는 것도
기쁨이 절반, 부끄럼이 절반이겠지

나는 학생의 뒷 모습 바라보며 생각한다
얘야,너는 크거들랑 
그렇게 부끄러워스랑
정치는 못 하겠구나
쯔쯔, 그래 그래

2019,3,,22서울에서

 

시인과 인력거 할머니

 

시일륜 풍상이 하얗게 서린
여든을 바라보는 한 늙은 시인이
서울 독산로 길를 걷고 있다
흰 눈썹아래 축 늘어진 눈까풀
눈을 절반 가리고 세상을 반 즘 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 걷고 있을까

문득
독산로 가파로운 오리막 길을
깽깽거리며
말똥 마분지를 주어
인력거에 재어 싣고
간신이 끌고 가는
등 굽은 할머니가 보인다
초라한 등에는 얼핏
한강이 스쳐 지나간다
아마 한강의 기적은
저 등허리에서 나왔겠지?
그러나
기적의 밑창에는 아직 고생이 남아
처량한 광경이다

사치에 젖은 젊은이 들이
웃음을 깔딱거리며
못 본 척 지나가간다
사회는 이렇듯 냉담해 졌다
늙은 시인이 무의식적으로 다가가서
두 손으로 밀어 준다
늙은 사람은 아직 동정심이 희미하게 좀 살아 있다
할머니의 무릅 관절과
시인의 무릅 관절
그리고
기름이 소진된 차 바퀴의
삐걱거림이 슬픈 시 낭송처럼 들린다

한 참 만에야 펑퍼짐한 목적지에 도달했다
할머니는 인력거를 세우고
할딱거리는 숨을 돌리고
땀을 딱으며 말한다

다 왔어요 고마워요

주름진 지친 얼굴에
처녀적 고왔을 바탕으로
감동의 미소가 살짝 뜬다
시인은 시를 써 누구를 감동시켜 봤는가
그 자리에서
시를 써준다든가
시를 낭송해 드리면
감동은커녕
미친 정신병자를 만났다고 질겁할 것이다

이거 팔면 돈 얼마나 벌어요
(중국에서 온 평안도 말투다)
요새는 박스 값도 내려
오천 원도 받을 가 말 가 해요

아, 고작 오천 원
코 바람에 날려갈 종이 짜박지 한 장
냉면 한 그릇
뼈다귀 해장국 한 그릇도 못 사먹는 
달랑 오천 원 한 장
땀은 얼마나 흘렸고
힘은 얼마나 들었고
하루 종일 줏느라 시간은 얼마나 들었고
아하, 고작 율곡님 그림 한 장

원고 비도 못 버는 궁한 시인이
제 속 쓰린 줄 모르고
남을 속 쓰려 동정한다
허구푸다, 허 허

시인은 침묵하며 웃음을 거둔다
시 한 수가
인력거를 밀어주는 힘이 된다면
그런 감동이 된다면 얼마나
시인다운
가치 있는 삶이 될까 하고

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시를 쓴다

2020,9,29 서울에서

 

시흥동 비단길 시장 소묘 

 

촘촘한 빌라 좁은 골채기 량켠에 
몇 백명, 몇 천명 똑 같지않은 명(命) 
늙고 젊은 형태들이 앉아 장사한다 
골 가운데로 내리 흐르는 인파와 
올리 흐르는 인파들이 부딪치지 않고 
무질서하게 엇갈려 골패친다 

하루 같은 하루의 길고 긴 연장선 
사람 사는 세상, 먹을 골목엔 
올챙이 처럼 사람들로 오골보골하다 

패쪽 하나씩 달고 
바구니에, 광주리에, 노끈에 매달려 있는 
제주 한라봉, 영광 굴비,신고 배 
진도 멸치, 아사기 고추, 쭉 드러누운 채소들 

세계 방방곡곡의 물품들도 비비고 끼여 들어 
한자리 틀고 앉았다 
중국산 옷과 신발, 미국산, 호주산 쇄고기 
러시아 산 동태 ,뉴질랜드 산 고등어 
초점을 잃은 동그란 눈들이 
이방의 오가는 사람들 구경한다 

망해 갈려는 가게는 목소리도 갈린다 
눈물 머금고 폭탄 세일 
단 하루만 폭탄 세일 
게딱지 같이 붙은 대자보 
단 하루가 맨날 단 하루다 

선거 땐 
붉은 옷, 파란 옷, 노란 옷들이 
웃음 팔러 다닌다 
박스 싣고 인력거 끌고 가는 
꼬꼽새 할머니에게도 손잡고 웃음 던진다 
비단길 벗어나와 금빛 공원엔 
허연 머리들이 모여 한,촉의 정치판 벌인다 
장야 멍야, 멍야 장야 
저 쪽에선 아다리 아다리 아야 다리 

사람 사는 세상 - 
일하고, 먹고 배설하고, 잠자고 
하수도 구멍마다 올려 미는 
냄새는 곱지는 않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한 풍경 …. 

2019,4,14 서울에서

 

한양의 반유구화역에서

 

화개엽낙 무상춘추 몇 백년인고
창천도 변했는지라 땅도 변했는지라
한자 밑 진토에 잠긴 풍진세월의 음운
달구지 소리 발자국소리는 들리지 않네 

내 옛 사신 아니래도 두루 배회사억 하노라니
안양천 수광에 떨어지는 저녁 노을
붉은 빛에 흘러 온 이 나라 광음이 눈물겹고 
우여곡절에 괴인 피눈물이 금천 벽파에 이글거리네

분주히 지나간 사람들 다시 오지 못하고
오늘 사람들 이어 분주히 오가네
자동차 승용차 발걸음 물밀 듯 지나가는 역두
전설처럼 사락이는 노란 은행잎만 예전처럼 흩날리네

허나 세계화의 역두에 발차고 일어선 거인아
유구한 문명고국은 영광을 지니고 그칠새 없이
치솟고 떠밀며 거세차게 양양히 흘러라
역두에서 잠사성오 하노라니 감개가 아슬아슬하여라

2021,11,3일 서울에서

주: 서울 시흥대로 독산3동 구역에는
한양의 반유구화역 옛 역참 터와 기념비가 있다 


한강에서의 낚시


초리대의 방울은 천년 침묵에 잠기고
시간은 도도한 강물에 밀려 간다
비장한 가슴엔 유구한 력사가 굽이치고
서울은 한강에 비껴 긴나 긴 요설 들려준다
막걸리 한 병 꼴깍 부으니
주절주절 무슨 알아 듣지 못 할 장광설
잠꼬대가 그리도 많느뇨
한강아 -

2019, 7,13일 서울에서

 

덕수궁 돌담 길

 

이 길엔 내가 찾고 싶은 무엇이 있을 것 같습니다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무엇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알려 주는 것 같아 돌담을 어루 만지며
먼 오천년을 혼자 조용히 오고 갑니다

무엇이 나를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아 걷습니다
공연히 그리워지는 무엇이 있을 듯해 걷습니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사귀에 물어 봐도 말이 없습니다
꽃에 얼굴 비비며 무엇을 엿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번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쉽게 떠납니다
번마다 다시 부르는 것 같아 또 옵니다
이 길엔 무엇이 숨어 나를 그립게 하는 걸까요
아, 떠나서 그립고 와서 더욱 그리운 돌담 길 입니다

2015,5,1 서울에서

 

미풍의 잠언

 

나는 본시 고풍스런 물안개 속
고요한 참대 마디 마디에 
움츠리고 있다가 
누구의
퉁소 소리에 불리워 나온 
바람입니다

전설같은 애달픈 곡에 
혼을 방랑합니다

꽃밭의 나비들이 날아 들어
무지개를 펼쳐 주었습니다
오두막집 솔개불이 앞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봉창을 눈물로 적셔 구멍을 내고 나와
유산이라고는 없는 가벼운 바람이 되였습니다

고저장단(高底長短)의 가락은 나의 발걸음입니다
피할 수 없는 폭풍에서 나와 깡기는 좀 있습니다
불길에 휘말리여 나와 현운증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성정은 온순하고 부드럽습니다

정의 응어리들이 풀어져 물들어
약간은 색깔을 띄고 있습니다
각고의 밤에는 서재에 잠적했다 나와
수묵의 냄새도 좀 있습니다

나는 가고 푼 곳으로 가는 행자입니다
때로는 산을 넘으려고 우뚝 일어서기도 합니다
때로는 초원을 지나려고 엎드려 기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곳으로 가는 집념입니다

남기는 것은 밀고 온 구름발 눈물입나다
그것이 숲의 웃음이 되여 꽃을 피웁니다
좀 더 세상이 아름다워 지기를 고대하며
시행 길 마디마디 자국에 
점점의 정을 고이게 합니다

2019, 7,20 서울에서

 

대림을 아시나요
       


대림을 아시나요
골목골목 구석구석 이국의 설음 많은
민들레 홀씨들이 날아와 뿌리 내린
붙잡고 울어야 할 대림을 아시나요

한 핏줄의 망국노가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다가
모국이라고 찾어 온 홀씨의 슬픔을 아시나요
경멸의 눈초리들이 비틀거리는 뒷 그림자에 서려
악명 높은 이름, 대림을 아시나요

살아 보겠다는 소박한 꿈들이 흐르던 거리
시름 많고 쪼들린 얼굴들이 흐르던 거리
쓰디 쓴 참 이슬로 고달픔 달래며
이 붓 자식의 홀대를 참아 가던 거리

드디어 햇살이 구름을 비집고 나와 환하게 비추네요
동포애 따스하게 봄 기운 일고
꽃망울도 터지네요. 웃음꽃도 터지네요
불쌍한 얼굴들에 희망의 생기가 흐르네요

민들레가 꽃을 피워 또 홀씨를 날리네요
자장가 소리, 동요의 노래가 흐르네요
어린 꿈들의 색동 저고리, 책가방이 물결치네요
대림 곳곳이 정착의 요람으로 화기애애하네요

-못 나 없수이 여겼구나, 한 핏줄아
어머니 품은 넓고 자애로운 품이니 주눅들지 말고 살아라 
세종대왕의 환한 미소가 흐르는 거리
아, 그 고마움이 흐르는 너그러운 품
 
그 사랑이 대림의 거리거리 골목골목에 흐른다
동포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그 이름 대림
누가 비양 거려도 박차고 일어나
민족 지림의 무성한 숲에서 설레 일 겁니다

사랑해요 대림
아름다워요 대림 

2022,7,22 서울에서

 리문호 프로필: 70년대 연변문학으로 시단 데뷔. 2007년 8월 26일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수상, KBS성립 45주년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망향시 우수상 두 차례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작가협회 회원,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역임. 심양 시조문학회 부회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집 '달밤의 기타소리' '징검다리' '자야의 골목길' '팔공산 단풍잎(한국 학술정보(주)에서 출판)' '다구지길의 란' '료녕성조선족 시선집(리문호편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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