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5-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自選작품은 제일 잘 된 작품부터 차례로 선정해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2편도 괜찮습니다.

아래는 류재순 소설가의 自選수필 대표 작품입니다.

 

1. 겨울맞이 여자 
                                                     

쌓여진 가을 낙엽을 밟으며 단풍의 의미를 새김질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새파랗게 올려 붙은 겨울 창공에서 싸늘하게 불어오는 찬 공기가 빨간 귓불을 핥고 지나간다. 어느덧 나목이 된 양변의 가로수를 가로 지나며 기다란 산책길을 걷고 있다.

아직 미련을 다 털어버리지 못한 모든 의미의 풍경에도 가차 없이 찾아온 계절을 실감하고 나는 움츠러지는 내 형체를 현실 앞에서 오롯이 자백시키며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산책길 옆에는 좀작살나무, 볼레나물, 산철죽, 개쉬땅나무 등등 봄, 여름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키 낮은 관상용 잡목들이 즐비하게 줄져 있다. 이제는 그 이름을 분간하기 어렵게 똑같이 벌거벗은 모양새로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부류의 나무가 유별히 눈길을 끈다. 꽃도 잎도 다 떨어진 나목이긴 한데 이 추운 겨울의 언덕에서 물 오른 봄버들마냥 초록빛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지 않는가?바로 황매화(山吹)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조그마하게 쓰인 팻말 설명서를 읽는다. 황매화의 꽃말은 숭고, 고귀, 왕성 이란다. 나무 전체를 뒤덮는, 4~5월에 피어나는 노란 꽃은 개화 기간이 유난히 길 뿐만 아니라 가을의 노란 단풍과 추운 겨울에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초록색 줄기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단다. 그리고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추위와 공해에 강한 것이 특징 이란다…

이 신비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상하게도 내 머리 정수리에도 미약하게나마 분명 따뜻한 햇살 몇 오리가 집요하게 내 머릿결을 헤치고 입맞춤을 해 준다. 가슴 구석의 어느 세포가 봄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꽃잎마냥 환생의 입김을 불어 넣는다.

산책의 흥분을 안고 돌아온 나,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엔 분명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얕고 짙은 주름을 지닌 작은 키의 노녀(老女)가 서 있다. 아, 저 얼굴, 나는 누구인가? 내 나이는 얼마인가?

어느 날인가 손자 놈이 할머니하고 달려올 때, 나는 한번 깜짝 놀랐었다. 아직도 풋풋하게 느껴지는 내 가슴에 할머니라니!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텔레비전 앞에서 골몰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하였다. 

"당신 가끔 입을 좀 벌리고 초점 없이 티비 보는 거 알어? 똑 마치 치매 걸린 사람같이 흐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화를 버럭 내였다. 남편은 웃으며 농담이라 하였지만 나는 당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모든 세포가 신경줄을 놓아버린 찰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엔 그런 ‘순간’이 없었다. 그런 장면을 나는 요양원 할머니들 속에서 본적이 있었다. 놀란 내 가슴은 슬픔으로 차 오르기 시작했다. 젊음, 아름다움, 능력, 민감,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젊고 당당했던 멋진 우먼커리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세월의 섭리 속에 남겨진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나의 초상화다! 어느 날 인가는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완전 가능하게 치매 노인이 될 수도 있는… 
 
환각일가? 문득 거울 속에서 겨울동화 속 같이 새파랗게 물올라 있는 황매화가 예쁜 윙크를 보내고 있음을 보아냈다.  나는 내안의 또 다른 하나의 "나"를 발견하였다. 유치하고 감성이 넘치며 바다 저편의 신기루를 기다리는 귀여운 소녀 같은 천진한 눈길, 삭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절절한 삶의 추구를 가진 짓궂은 생명력, 어쩌면 볼품없는 겨울나무에 청사과(青苹果 )를 만들려는 착각은 아닐까?

한번은 한 문학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어머 선생님, 발톱 메니큐어도 빨갛게 하셨네요!"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웃으며 조용히 대답하였다.

"음, 내 마음 가짐의 표현. 흐흐"

그렇다. 나는 멈출 수 없는 추구와 향기를 만들고 싶은 내 마음의 집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빈티지한 모습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다.
 
나의 청춘은 얼굴에 크림 한번 못 바르고 예쁜 옷 한번 입어 보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처녀로 시집 온 나의 "새엄마"의 뽀얀 얼굴을 보고 그가 쓰는 "구루무"(크림)를 몰래 손가락으로 찍어 발라봤던 소녀시절 ,할머니에게 들키어 종아리가 빨갛게 회초리 세례를 받던 일은 나에게 오랜 아픔이었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키 작은 자신을 보완하기 위하여 하이힐을 신고 다니며 문밖을 나설 때 면 옷장 안에서 내 기질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무지 기운을 뺀다. 여인들은 모임에 나설 때 면 옷장에 아무리 옷이 가득하다 해도 항상 그 상황에 대처할 마땅한 옷 한가지의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조급히 고르다 시간이 되어버리면 아쉬움을 삼키며 급급히 블랙으로 된 옷가지를 몸에 걸치고 떠난다. 어느 장소에서나 무난한, 소화가 되는 색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을 하면 꼭 립스틱을 바르는 걸 잊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를 그렸을 때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다. 바람이 불어 노녀의 머리를 푸시시 날리는 계절이면 여인 식 베레모를 예쁘게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메이커나 유행을 따르는 건 질색이다.

스포츠 댄스도 다니고 가끔은 친한 친구들과 마주 앉아 마작도 치며 수다를 떨고 여행도 다니지만 나에겐 또 하나의 취미가 있다.

열다섯 살 소녀시절, 그때 아주 보기 드물었던 "음식 만드는 법"이라는 북한에서 나온 책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만 먹으며 음식 작식법에 전혀 무관심 했던 나였는데 내용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그 책을 한글자도 빠짐없이 다 읽어 버렸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망라해 음식 조리법-레시피가 어디나 차고 넘치지만 그때는 그 책 한권이 대단한 발견이었다. 새 세계를 알게 된 나는  뒷장에다 엉뚱한 글 한 줄을 써 놓았다.__음식을 잘 만들어 가족의 건강을 지켜 주는 것, 이것은 여인의 직책__ 지금 생각하면 갖잖아 죽겠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도 좋은 요리책 보는 것이 흥취고 가족들에게 갖가지 영양 가치에 신경을 써 음식을 차려 주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일하러 갔다 돌아온 식구들이 내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맛깔스레 먹는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없이 행복하다.

마음은 그런데도 내 성격은 통통 튀는 익살스런 탄력도 없고 푸근한 미소나 유머도 없이 직설적인 표현에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  내 얼굴의 냉철한 표정은 상대방의 거부를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잘 다툰다.  군인 출신의 그와의 혼인 생활은, 감성이 넘쳐나고 완벽함을 주장하는 나와는 달리 현실적이고 편안함을 좋아하는 같지 않은 개성으로 쇳소리 나게 부딪칠 때가 많다. 일평생 원망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몇 년 동안 그와 갈라져 있을 때 나는 공중전화를 붙들고 그와 대화를 하다나면 그칠 줄 모르는 눈물에 말이 막혔었고 남편이 그 작은 맹장 수술을 하는데도  수술실 밖에서 엉엉 울어 뭇 사람들을 웃겼다.

애들 셋을 키우며 젖먹이 어린것을 등에 업고 방에 엎드려 밤을 새우며 글을 쓰던 그 나날에 내가 살림과 식구들에게 돌려져야 할 많은 시간을 할애 하여도 돈벌이도 안 되는 글쟁이가 되는 것이 어려서 부터의 소원이었다는 나의 한마디 말에 남편은 모든 것을 받아 들였다. 그것이 나는 고맙다. 가끔은 나도 살짝 애교를 부려본다. ―내가 그나마 글까지 안 쓰면 아무 가치도 없는 여자가 되요. 당신 운명인걸요.

나는 "옛날 그 시절"이란 말을 문학 후배들 앞에서 절대 하지 않는다. 이십 몇 년이라는 중간의 창작 공백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늦으막에 또다시 글쟁이라는 주술에 빠져들고 말았다.

오랜 세월에 무뎌진 솜씨에도 글 한편을 금방 탈고 시키고 필을 놓는 그 순간, 산출의 그 환희와 쾌락과 행복감은 글쟁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작가들도 초고는 끔찍했다고 말한다던데  나는 볼품없는 그 첫 탈고의 "성공'에 도취되어 자신이 아직은 청춘이고 최고인 줄 안다. 매번의 이런 유혹에 빠져 이 노녀의 마음에도 겨울 황매화의 초록색 줄기가 풋풋하게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여생에 무슨 대단한 성과를 이루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색의 고독 속에서 세상을 나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상을 잉태하여 글을 써 내는 주술에 빠진 인생을 즐기려 한다. 그것이 나라는 겨울여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숨 쉬는 시체ㅡ좀비 같은 존재를 면할 수 있는 내 특유의 길일 것이다. 나는 자신을 한수의 시와 같이 파헤쳐 볼수록 의미 있는 향기를 풍기는 여인으로 노숙되어 가고 싶다.

그 속에 끊임없이 내 추구의 내용물을 리필 하련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잘 맞추어 보리라 

겨울 황매화에게는 봄 향기가 있다.

       2017년 2월 9일  서울에서

 

2. 가을의 향연

 

조용한 멜로디가 내 귀가로 흘러들어 온다.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아침6시, 시원하고 경쾌한 기운이 밤새 답답이 숨을 죽이고 있던 내 폐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스며든다. 매일 시작되는 나의 아침 산책ㅡ빠른 걷기 운동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바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다리 아래 영등포 수변 둘레길, 도림천 둘레길에 이르게 된다.

가을이다. 9월의 가을은 아직은 완연한 황금빛과 단풍 빛이 아닌 녹색의 미련들을 머리에 버티고 있는 계절이다.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생긴 황갈빛이 녹음의 원숙이 남아있는 그 독특한 진녹색을 헤치고 언뜻언뜻 선을 보이고 있다.  발효된 내음 같은 것이 저 멀리 숲속으로부터 우리 마음에 다가와 계절의 발걸음 소리를 노크 한다. 짙은 보랏빛, 연두빛 , 핑크빛 새벽 나팔꽃들이 싱싱히 피여서 길 량 옆을 수놓고 있다. 저 야트막한 오른쪽 둔덕길에는 넓은 부영 꽃 밭, 그리고 어디서나 눈에 띄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길 양 옆 흐트러진 풀숲에서는 타닥타닥 무엇인가 여물어 가는 소리, 채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걷는 산책길 옆 자전거 도로는 벌써 자전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난 비둘기들의 구구 소리, 까치들의 깍깍 반가운 소리와 모습이 자전거 행렬 속에서 흩어졌다 모였다 바쁜 날개 짓을 한다.“ 누님, 좋은 아침!” 칼칼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젊은 아저씨가 나에게 건네는 인사말,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아침운동에서 익숙해진 얼굴이다. 어쩐지 기분이 업그레이드 된다. 이름 모를 설레임과 즐거움을 안고 가슴을 쭉 펴고 뒤 발꿈치를 먼저 땅에 부착 시키며 제대로 된 걷기운동 자세로 활기차게 걸어간다. 생활 패턴이 각자 다른 낯설고 낯익은 사람들이 앞뒤로 스쳐 지나며 나름대로의 자태로 열심히 걷고 뛰는 행렬 속에서  생명이 자기의 연장선을 위한 갈구와 분투의 소리를 나는 듣는다.

길 양 옆의 가로수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무성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기다란 녹색 터널ㅡ구로 올레길은 내가 꼭 거치는 코스다. 그곳엔 즐비한 운동기구와 다문다문 세워져 있는 시목( 诗木 ) 들이 넘 좋다. 여기에 오면 나는 동반하던 음악을 끄고 물 안개마냥 끝없이 피여 오르는 내 사색의 해양에서 유영 하게 된다. 눈앞엔 윤동주 시인의 “코스모스” 시목이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써늘이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 간다

나도 소녀 시절의 안타까웠던 첫 사랑을 떠 올린다.그 여운은 오랜 세월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의 남편과는 저기 걷고 있는 노부부들처럼 한번도 정답게 나란히 손을 잡고 다닌 적 이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본분과 직책을 다하며 지금의 이 가정을 지켜 왔다. 어느 날, 나는 약을 입에 삼키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아팠다. 

“여보, 당신이 죽으면 난 어떻하라구..” 

내 입 옆에서 약을 든 손이 가볍게 떨리며 말하는 남편의 젖은 목소리였다. 나는 가슴이 뭉클하여 더 약을 먹을 수 가 없었다. 무심히 덤덤하게 같이 걸어 온 세월, 언제 이렇게 하나가 되였나, 그것은 분명 봄, 여름, 그리고 냉냉한 겨울도 겪었던, 오랜 기간 발효된 탁주 같은 취향(醉香)ㅡ.오늘의 향연이 아니었을까?

올레길을 내려와 다시 도림천 둘레길로 들어서는데 저 멀리에서 휠체어 하나가 다가온다. 벌써 며칠 째인가 오늘은 어쩐지 눈길이 자꾸 휠체어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휠체어를 미는 여인의 긴 생머리가 아침 바람에 가볍게 흩으러지고 있다. 그 앞 휠체어에는 70대쯤 되여 보이는 할아버지가 힘없이 머리를 옆으로 떨어뜨리고 앉아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늦어진다. 오늘은 휠체어 한쪽에 예쁜 코스모스 몇 송이가 걸려 있다. 휠체어가 눈앞으로 다가오더니 서서히 옆으로 지나간다. 

“ 아빠, 눈 좀 뜨고 이 꽃 좀 봐요” 젊은 여인의 말이다. “ 애 데리고 매일 출근길도 바쁜데... ” 

힘은 없으나 분명한 뜻이 전달되고 있는 할아버지의 말씀 이였다. 나는 금방 머리에 감이 왔다. 무엇인가 좀 더 듣고 싶은데 휠체어와 나의 간격은 벌써 멀리 떨어져 버렸다.. 이 세월에 조금은 낯선 듯한 오늘의 풍경, 무엇을 더 알아야 할까. 또다시 스펀지마냥 무겁게 퍼져 나가는 나의 생각...진주보다 더 귀한 자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아글타글 키우느라 아빠가 보낸 그 겨울, 봄, 여름의 헌신과 고투를 생각 해 본다. 그 무게는 저 늙고 병든 몸에 무겁게 무겁게 쌓여져 있을 것이다. 그 무거움에 비해 아침마다 병든 아빠의 건강을 위해 휠체어 산책에 나선 딸자식의 마음은 어쩌면 아빠의 넓은 바다 같은 수심의 몇 방울의 무게뿐일 수 도 있다. 그런데 어이하여 지금 이 가을 햇빛 아래서 이처럼 오색영롱하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끝없이 높고 파아란 하늘, 자갈돌 위에 돌돌 굴러가는 맑은 개천 물, 늦은 사랑에 심취되어 예쁜 끼를 한 것 뽐내는 아름다운 들꽃들, 무르익어가는 과일과 곡식, 이제 곧 불타는 단풍이 올 것이고 바야흐로 풍요로운 황금 들녘이 펼쳐 질 것이다. 이 속에는 지나간 날 언 땅을 비집고 일어선 봄 새싹들의 의지와 갈구, 한 여름의 무성한 성장 진통이 수렴 되여 있다. 정말  뿌려놓았던 모든 것이 가식 없이 결실을 드러내는 긴 장막극의 에필로그다. 나도 지나간 나의 세월들을 반추해 본다. 열차 밖의 풍경처럼 언뜻언뜻 지났던 한번밖에 스칠 수 없었던 그 매매일의 “현재”를 혹 “다음 역에서 보자”는 게으름의 빙자로 모두 무심이 흘려버리지 않았는지? 

내 마음 깊은 곳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꾸물거리며 올라오는 센티멘탈의 우수가 밀려온다. 그것은 항상 부족함의 기아를 안고 사는 인간의 상정이라기보다 분명 내 자신이 불충실함이 빚어낸 만회 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다.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는 유턴의 신호는 인생의 어디에도 걸려있지 않다는 이 가장 상식적인 이야기는 왜 때늦은 뒷 풀이로만 되고 마는가.복합의 멀티 맛으로 가득 찬 이계절의 특유의 칵테일이 각자 앞에 놓여있다. 가을이 선물한 내 앞의 이 찰랑이는 칵테일은 나에게 과연 어떤 맛을 선물 할 것인가?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해 본다.  저 넓은 들녘의 개미처럼 아주 미약한 이 존재에게도 후회 없는 삶으로 인생의 가을에 티끌같이 작은 아름다움의 향연이라도 남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2015 9 25 서울에서

 

3. 지움을 위한 기억
                    

이른 봄이면, 겨울 내 얼고 말라버린 누런 풀섶이 산책길 양변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무심하던 눈길을 돌려 허리를 굽히고 그 풀섶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빛이 있다. 

누렇게 엉켜 붙은 검불 아래서 진한 보랏빛 꽃잎이 내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이다. 바로 까치꽃이다. 

앳된 사춘기 소녀마냥 수줍은 듯, 그러나 당당하게 이른 봄 누구먼저 검불을 헤치며 반짝이는 별빛 같은 보라색 작은 얼굴로 봄소식을 전한다. 봄 생명을 잉태한 작고 여린 꽃님의 또렷한 존재감의 메시지다.

나는 이 여린 꽃과 마주앉아 그의 검불을 헤치며 속에서 발돋움하는 작은 꽃잎을 밖으로 내어놓는다. 

그러며 엉뚱한 사색을 해 본다. 좀 더 기다려 봄이 활짝 문을 열 때 피어났으면 이른 새벽, 늦은 밤의 추위에 떨지 않고 활개를 펴고 무럭무럭 피어 날 텐데…

소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반 동학들은 공부도 잘 하지만 제가끔의 특기와 개성들로 유명하였다.

금방 5학년에서 올라 온지 얼마 안 되어 연변 쪽에서 여학생 한 명이 전학 해 왔다.
쭉 빠진 키꼴과 잘 빗겨진 짧은 양태머리, 단정한 옷맵시, 하야말쑥한 얼굴, 아직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우리 12~13살의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알고보니 우리보다 두 살 더 많다고 하였다. 공부도 우등생이지만 원래 있던 학교서 무용반에 있었고 학교 무대서 독창도  허였다고 전학 오던 날, 반주임 선생님이 소개 하였다.

그때 우리 졸업반은 첫 두 시간 수업후의 간조(間躁)시간이면 발풍금을 운동장에 내다놓고 학생 사교무를 췄다. 즉 안쪽의 여학생들은 “도래미도래 솔화미래 도도”음악에 맞춰 노래부르며 박자에 따라 손벽을 치며 제자리 답보를 할 때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바깥 줄 남학생들은  하나씩 앞으로 전진하며 계속 바뀌는 앞의 여학생과 손과 발을 맞추며 빙~ 몇 바퀴씩 돈다.

전학 온 여학생은 반장과 손을 잡고 추게 되는 기회가 올 때면 두 볼이 빨갛게 물 들며 눈에는 황황함과 감격이 숨어 있었다. 얼굴엔 환희가 넘쳤다.

반장은 전교에서도 주목받는 어느 중학 교장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를 인기로 만든 것은 그가 4학년 때부터 “연변 소년보”에 동시나 작은 글들을 써 보내 신문사로부터 원고료 대신 부쳐오는 아동도서 몇 권씩 때문이었다. 또래들보다 키꼴도 훤칠하고 얼굴도 반듯한데 항상 최우등생이었건만 그는 전혀 우쭐되거나  떠들지 않았으며 눈빛은 알 수 없는 수줍음이 담겨 있었다. 거기다 “소년 문학가”라는 별호까지 달고 있지 않는가? 

어느 날, 하교 시간이 되어  나는 반장과 함께 교실 점검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다 반장이 나에게 보라고 주었던 도서-빅토르 유고가 쓴 “집없는 소년”을 책가방에서 꺼내 그에게 돌려주려 다가갔다. 갑자기 그는 머뭇거리며 무슨 말인가 하려 하였다. ‘저~’

나는 이상해 수줍음에 가득 찬 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한참 머뭇거리던 반장은 책가방에서 제비꼬리 모양으로 착착 예쁘게 접힌  종이쪽지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쪽지를 받아 급히 펼쳐 보았다.

“나는 반장을 사랑합니다. 요즘 보니 우울 해 보입니다. 무슨 일 있나요? 마음이 아픕니다. 반장을 사랑 하는 ˟˟로부터”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그 예쁜 연변 전학생의 이름이었다. 비록 아주 간단하지만 분명한 연애 편지었다.

‘이걸 왜 내게?’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물었다.

반장의 말에 의하면, 간조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와 책상에서 책을 꺼내는데 책갈피 속에서 떨어지더란 것이다. 그러면서 너에게 맡기니 네가 알아서 처리 하라는 것이었다. 왜? 내가, 부반장이기에? 반장은 아무 말도 안했다.

그날 나는 어떻게 교실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연애편지란 걸 처음으로 접하게 된점, 온지 얼마 안 되는 전학생이 썼다는 점, 또 반장이 부반장인 나에게 알아서 처리 하라니. 충격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고민에 머리가 욱신거렸다. 나는 반장께 되돌려 주고 싶었지만 그가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까봐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자신이 처리하지 않고 왜 나에게 줬는지 어린 소녀는 알 수 없었다.

이튿날 나는 기어이 이 쪽지를 반주임 선생님께 바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학생 연애는 교풍 문란 행위로 처분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처리할 것이라 믿었다. 아무튼 그러면 나는 짐을 벗어낸 셈이다. 

하루건너 토요일 마지막 시간은 주말 반회 시간이었다. 뜻밖에 반주임은 이 일을 반회의 주제로 내놓고 “교육”하였다. 물론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누구야?’ 반주임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란 학생들은 킬킬 거리다 서로 앞뒤를 돌아보며 삽시에 교실 안을 들끓게 하였다. “교육”을 위한 반회였지만 그때만 해도 십대 초반에 연애편지라는 것은 역시 신비하고 신선하고 충격적인 반란이었다. 선생님이 교탁을 몇 번이고 탁탁 치며 조용하라 하였지만  술렁이는 교실은 좀처럼 가라앉질 못했다. 앞에 앉은 나는 뒤에 앉은 그 여학생의 자태와 표정이 어떤지 볼 수 없었다. 아니, 옆에 앉았다 해도 감히 쳐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아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정말 이렇게 까발리고 공개되라고 반주임께 바친 것은 아니었는데, 반장을 훔쳐 보았다. 마침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수줍음으로만 가득 차 있던 그의 눈엔 온통 원망과 질타의 빛이 강력하게 나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반회가 끝나자 반주임은 전학 온 여학생을 불러 교무실에 따라오라 하였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야말로 교실에 폭탄이 터졌다. 머리를 푹 수그리고 머뭇거리며 반주임의 뒤를 따르고 있는 그 여학생을 향해 전반 남학생들이 ‘와~’하고 괴상한 함성을 터뜨린 것이다. 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반장의 찬 눈길을 피하며 나는  급급히 책가방을 메고 교실을 빠져 나왔다 어떻게 되어 본의 아니게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부터 학교 등교 시간이면 운동장엔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운동장 맞은편 대문에서 걸어 들어오는 그 여학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철딱서니 없는 몇몇 남학생들은 마침내 할 일이 생겼다는 듯이 대문 맞은편에 있는 우리교실 출입문을 쭉 막아서서 야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디 가시나요―  연변 가시나요―  연애 가시나요

당시 간나, 가시나는 동일하게 여자애들을 비하하는 말인데 어디 가느냐는 야유까지 섞인 셈이다. 그랬다. 그는 연변에서 전학 온, 모든 방면에서 월등히 우수한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연애편지라는 이 한번의  사춘기의 솔직한 표현의 탄로가 신변의 모든 것을 망가뜨려 놓았다. 

등교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오던 그 애는 맞은편 교실 앞에서 줄을 선 남자애들이 괴성을 지르며 노래처럼 불러대는 광경을 보곤 머리를 푹 수그리고 막 뛰어 교실에 들어와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슬프게 슬프게 훌쩍인다. 어떤 때는 운동장 중간쯤 왔는데도 그 남자애들이 교실 문을 비켜줄 생각 없이 더 괴성을 지르면 그는 할 수없이 다른 학년 교실 뒷벽으로 숨어 들어가 군 하였다. 그곳에서 또  얼마나 울었을까? 모든 것은 최악이었다. 나도 최악이었다. 반장도 미웠고 반주임도 미웠으며 나 자신은 더욱 용서가 안 되었다. 그때 나라도 그 편지를 없애버리고 없던 일로 했음 어떠했을까? 그러나 그렇게 성숙하게 처리하기엔 나는 너무 철부지었다. 학교 규칙과 선생님의 요구를 꼬박꼬박 따라주는 모범생이지 않던가? 

그 여자애는 급기야 학교에 나오다 말다 했다. 그 예쁘장하고 하얀 얼굴은 늘 퉁퉁 부어 있었다. 그리고 금방 물 오른 봄버들 가지처럼 청순하고 꿈에 부푼 아름다운 몸매는 잘 씻지도  않은 옷가지에 다 덮어버렸다.

또 얼마가 지났다.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예전처럼 한 이틀쯤 지나 다시 나오겠지 했지만 더는 그의 하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학교가 잠잠해 졌다. 이 잠잠해진 시간에 나의 학업성적은 급격히 추락하였다. 나는 반주임이 이번 일에 대해, 그 연변 소녀에 대해 얼마만한 따뜻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그 예쁜 연변 소녀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애의 부모님들은 이 일을 알게 되었을까? 왜 학교를 찾지 않았을까? 어디로 이사 갔을까?

지금은 유치원 애들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장난인지 진담인지 떳떳하게 선생님께, 엄마에게, 친구에게 “자랑”하고 있다. 비방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 누군가 동학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면 그건 경찰까지 개입해야 할 엄중상황으로 치닫는다.

이른 봄  누구먼저 피어나는 작은 까치꽃, 철 이르게 피어난 탓에 이른 새벽, 늦은 밤엔 맵짠  바람에 부대끼고 차디찬 이슬에 움츠러 질것이다. 그래도  검불을 뚫고 작고 여린 몸을 키 돋움하며 예쁜 보라색 꽃잎으로 피어나 이 세상에 별빛 같은 신비를 준다.

까치꽃같이 철 이르게 향을 품고 꽃을 피우려 했던 아름다운 연변 소녀여, 그대에게 덮쳤던 매혹했던 찬바람을 용서 할 수 있을까?

까치꽃을 볼 때마다 나는 잊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 기억의 지우개를 찾기에 고뇌에 빠진다.

류재순(柳才顺) 프로필  

중국 길림성 출생.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입시시 중국문화대혁명으로 대학입시가 취소 돼 수년 후 문화혁명 결속과 동시 연변대학 통신학 조문본과 수료.

중편소설  "송화호의 푸른 물"은 "도라지"문학대상과 동시 중국어로 번역돼 당시 상해시 문련주석이며 저명미술가이며 작가인 준청(俊青)의  절찬을 받으며 국가급 중국작가협회 회원이 되면서  서란시 문화관에서  공직으로 퇴직까지 조선족 문화창작 활동등을 조직, 발전시켜왔음.

현재 귀화 후, 재한동포문인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공무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예작가회 자문, 아태문화예술연합회 수석부회장 등으로 계속 활약 중.

동포문학 "설원컵" 소설대상, 도라지 해외 문학상 ,도꾜 세계조선족 문화축제에서 글짓기 응모에서 공로상, 한국문예 수필 문학대상, 한국예술 평론가 협의회 제42회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로 선정됐다. 

소설집으로 "여인들의 마음"(북경민족출판사), "홀리워 가는 처녀"(서울 과학과 사상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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