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詩 분과 [제47호]

 

성숙

장애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남긴 흔적들 
돌아 보니 운치로운 무늬
태양은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시작노트>

김춘자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동포문학' '이주와 통합'에 디카시 발표.
김춘자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동포문학' '이주와 통합'에 디카시 발표.

햇볕 좋은 어느 날, 숲속 산책길에 드리운 빼곡한 나무 그림자를 만났다. 제일 굵은 무늬는 내가 큰 수술을 받았을 때를 연상케 하고 기타 굵고 가는 무늬들은 내가 겪었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돌이켜 보게 하였다. 
 
그림자가 생겼다는 건 태양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길에서 조우하는 시련들을 이겨내고 삶을 더욱 정채롭게 가꿔나갈 수 있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운치로운 무늬를 앵글에 담았다.

 


 

 <평설>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학회 회원.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학회 회원.

비자나무로 다듬은 ‘가야방’이란 일본식 바둑판은 단면의 무늬가 고르고 부드러운 탄력성이 특질이다. 한두 판만 두어도 돌 자국으로 반면이 얽어버리는데 하룻밤 새 본디대로 다시 평평해진다. 그중에서 특급 품질의 바둑판은 1급 바둑판에 비해 그 가격이 10프로 정도 더 비싸다. 용재며 치수며 연륜의 무늬며 어느 점에도 1급품과 다른 데가 없으나 반면에 머리카락만 한 가느다란 흉터가 보이면 그게 바로 ‘특급품’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공들여 기른 나무가 바둑판으로 완성될 직전에 예측치 않은 사고로 금이 가버리는 수가 있다. 귀한 목재가 목침 감으로 전락할 순간이다. 근데 이게 최후가 아니다. 금 간 틈으로 먼지나 티가 들지 않도록 헝겊으로 고이 싸서 손이 가지 않는 곳에 1년, 이태 때로 3년까지 그냥 두어 둔다. 추위와 더위, 습기와 건조가 여러 차례 순환한다. 그새 상처 났던 바둑판은 제힘으로 제 상처를 고쳐서 본디대로 유착해 버리고, 금 갔던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만이 남는다. 언제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번 금 간 그 시련을 이겨내는 바둑판은 열에 하나가 어렵다. 
 
금이 간 흔적이 있는 바둑판이 특급품으로 품평 받는 이유이다.
 
김소운의 수필 <특급품>을 요약한 내용이다.
 
실패나 불행은 환영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좌절의 늪에서 다시 일어나 달리는 인생이 한결 풍성하고 값지다.
 
오랜 기간 예술은 창작자와 향유자로,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디카시는 그 구분의 벽을 허물고 일반인들도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하였다. 
 
로맹 가리는 ‘문학은 이 땅 위 어디에 끼어들지를 모르는 모든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다’라고 하였다. 문학이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능을 두고 한 말이다. 이상옥 교수는 디카시 평설을 시작할 때마다 ‘매일 디카시 한 편을 감상하면서 삶의 위안과 힐링을 얻기 바랍니다’라고 운을 떼곤 한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의 시 ‘약해지지 마’ 전문이다. 
 
그림자를 내려다보던 머리를 들어 보자, 어디선가 비껴드는 빛이 그대를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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