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봉 프로필 : 중국흑룡강성조선족작가협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 시분과장. 한국문인협회회원. 2018년 계간 '문학의 강'에 시부문 신인상 수상. 한국과 중국 여러 문학지에 소설, 시, 수필 다수 발표.

 

매양 그러하듯 산행은 그 자체가 즐거운 만남이다.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과의 만남, 다정다감한 산객들과의 만남, 그 속에서 느끼는 희열...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가벼운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신선함과 매력을 느끼며 떠나는 발걸음, 따분한 삶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 속에 젖어 든다는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홀가분한 휴식이다. 그 스릴을 만끽하고저 충남 청양군에 위치한 칠갑산을 찾았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가수 주병선이 부른 노래 "칠갑산 "을 통해 익히 들어오던 칠갑산이지만 산행을 하기 위해 이번에 처음으로 직접 찾았다.

칠갑산 본래의 명칭은 칠악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정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일곱 군데로 뻗어 있고 또한 금강의 상류인 지천천과 잉화천을 보고 일곱 군데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하여 칠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해발 561m의 칠갑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충남의 알프스" 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산세가 거칠고 험준하다고 알려져 저으기 근심도 되었다.

산행코스를 장승공원 주차장--장곡사--칠갑산정상--출렁다리--천장호주차장으로 잡았다. 8.4km의 산행거리를 주행하려면 대략 4시간 남짓 소요된다.

산행 입구에서 마주 한 것은 통일신라 때에 세워진 고찰 장곡사다. 장곡사는 특이하게 보물162호 상대웅전과 보물 333호 하대웅전 2개의 대웅전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국보 제58호 철조약사여래좌상부 석조대좌는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꽃보다 아름다운 연초록 신록이 어우러지는 계절, 6월의 녹음 속에 둘러싸인 천년고찰 장곡사 앞에 우두커니 섰노라니 심신에 활력이 절로 솟는 느낌이다. 긴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찰을 지키고 선 아름드리 고목 느티나무, 그 거룩함과 초연함에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도시를 사는 사람치고 허전하고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어쩌면 사는 일 자체가 외롭고 허전한 게 아닌가! 그렇다할 때 그 허전함과 외로움을 가끔 장곡사와 같은 고찰을 찾아 나름 가셔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장곡사의 여운을 고이 간직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다그쳤다. 산행 초입부터 칠갑산은 거치른 모습을 드러냈다. 가파른 비탈길, 그것도 끝임 없이 이어지는 계단길이라 첫 시작부터 온 몸이 물자루로 변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덜후덜 떨리고 목이 까맣게 타 들어가고... "충남의 알프스" 란 별명을 갖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모를 산새들의 청아한 우짖음에 귀 기울이고 길섶의 작은 들꽃의 귀여운 인사에 화답하노라니 기분이 상쾌하였다. 특히 밥알보다 좀 더 큰 이름 알 수 없는 작은 들꽃, 작지만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여린 꽃을 바라보며 하찮은 풀 한 포기에도 뿌리가 있고 이름 모를 무명의 들꽃에도 분명 향기가 있음을 새삼스레 느꼈다.

뜨거운 태양아래 비바람에 흔들리며 소박하고 겸허하게 나름대로의 모습과 의미를 간직하고 드팀없이 한 여름을 버텨갈 작고 여린 들꽃을 바라보면서 힘든 세상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임을 다시 한 번 뉘우쳤다.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아서인지 굴참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소나무,느티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이룬 칠갑산, 산세는 가파로웠지만 산행 내내 녹색터널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산세가 장난이 아니고 연달아 이어지는 계단길로 말미암아 거의 그늘 속에서 산행이 진척되었지만 땀은 그칠 줄 모르고 흐르고 또 흘렀다. 물처럼 흐르는 동이 땀을 연신 훔치며 "칠갑산" 노래에 나오는 콩밭 메는 아낙네도 이처럼 땀을 흘리며 베적삼을 적셨을까 고 순간적으로 엉뚱한 추척도 해보았다.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정상과 멀지 않은 능선에 다달았다. 바위에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뜨거워진 몸을 잠시 식혔다. 무심중 바라본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높고 파랬다. 통통 살이 찐 해볕은 마치 씨앗처럼 빛이 익어 열매처럼 산자락에 탱글탱글 떨어져 내렸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그 어디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백만 불짜리 바람이었다. 그 바람결엔 싱그러움과 달콤함이 흠뻑 배어있었다. 여름이 익어가면서 나무들은 어느 새 연두빛에서 두터운 녹색으로 싱싱한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뜨거움, 그리고 매캐한 매연에 시달리던 나른한 세포들이 칠갑산 푸른 숲의 싱그러움에 팔딱이며 신이 나서 춤을 췄다. 시원한 산바람으로 온 몸을 헹구고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능선에서 다시 정상을 향해 산행을 다그쳤다.

힘겨움을 끝내는 이겨내고 곧 정상을 찍게 되었다는 격려와 축하의 메시지 라고나 할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우짖음이 유달리 따뜻하게 그리고 귀맛좋게 느껴졌다. 축복 받는 기분이었다.

입구에서 스타트를 떼어 우여곡절 끝에, 그것도 우거진 푸른 숲과 작은 들꽃, 그리고 산새들과 바위들의 묵묵한 격려와 부추김에 힘입어 드디어 3시간 30분만에 해발 561m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

정상석을 끌어 안고 바라본 높고 푸른 하늘,그리고 능선에 능선이 이어지며 면면히 부채살 마냥 사면팔방으로 펼쳐진 산발들을 바라보면서 홀로만의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쳤다.

푸른 나무가지에 앉은 산새의 우짖음을 들을 수가 있어서, 그윽한 꽃향기가 있어서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이 있어서, 청량함을 더해주는 계곡수가 있어서 나는 아니 우리 인간은 행복한 것 아닐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의 진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 ...

욕심 같아서는 그대로 산 정상에 눌러 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 해야만 하는 현실, 손짓으로,몸짓으로 송별인사를 고하는 수목화초들이 고마우면서도 부러웠다.

하산 끝무렵에 칠갑산은 또 한 번 희열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하였다. 다름아닌 천장호와 천장호를 가로 지른 출렁다리! 산중턱에서 바라본 푸르른 천장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하였으며 천장호 상공에 걸려 있는 출렁다리는 말 그대로 상상을 뛰어 넘는 신의 한 수였다.

2009년에 만들어진 총길이 207m ,높이 24m ,폭 1.5m의 출렁다리는 한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이며 특히 다리 한 가운데 청양의 특산물인 구기자와 고추를 형상화한 높이 16m의 추탑이 시선을 끌었다. 좌우로 30~40cm 흔들리게 설계됐는데 걷노라면 흔들흔들 은근히 스릴을 만끽 할 수 있다.

흔들거리는 출렁다리에 몸을 맡기면서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때론 출렁다리 마냥 흔들릴 수 밖에 없으며 그런 흔들림을 통해서 인생살이가 더더욱 실속있게 단단해지는 것은 아닐까 조용히 생각을 더듬어 봤다.

매 번 산행 때마다 거의 비슷하게 느끼는 감수, 그것은 바로 산행은 극기에 가까운 운동이라는 것, 그러나 마침표를 찍고 나면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 번 칠갑산 산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함께 한 산우들이 있어서 수목화초들의 격려의 박수가 있어서 완주할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견지해야 도착점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 다른 사람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나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것,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웠다.

칠갑산 푸른 숲에서 맡았던 그 싱그러움이 아직도 코끝에서 맴돈다.
칠갑산 산마루에서 들었던 산새의 그 청아한 우짖음이 여전히 귀전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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