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동포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주관)에서는 본지와 협력하여 재한동포문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서 발표하는 '自選대표작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습니다. 매인, 시는 1-10수, 수필은 2-5편, 칼럼은 3편, 평론은 2ㅡ3편, 소설은 1-3편을 선정해 약력 및 사진과 함께 dong01118@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自選작품은 제일 잘 된 작품부터 차례로 선정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아래는 김단 시인의 自選시 대표 작품입니다.

방을 빼다

 

방을 빼 달라고 한다
무슨 서랍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 살면 방이고
어떤 사람이 살면 서랍일까

소망 아파트의
맨 동쪽 끝, 
위로 세 번째 창이 깊어진 것은
나의 서랍이 빠져나간 자리다
구멍은 먹이를 기다리는 야수처럼 웅크리고 있다
더욱 그럴싸한 주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흙에 발이 닿지 않아 
시름놓고 뿌리도 내리지 못했다
가벼워서 헐거운 서랍이 
순순히 따라나온다
잠깐 서랍을 뽑았을 뿐이다

 

겨울바다

 

석양을 마주하고 백사장을 걸어가는 사내
한쪽 발자국에 옅고 희미한 꼬리를 끌고 간다
그렇게 바다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여자와
강제로 건설 현장을 떠나게 되어서야 함께 온 사내
재활치료를 오기라도 한 듯
칼바람을 맞받아 묵묵히 걷기에만 열중한다
반듯하던 어깨가 기운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무얼 보고 시집갔냐는 소리에
믿음직한 어깨라고 대답하곤 했던 여자
여자의 바다가 기우뚱거린다
바다를 보러 온 여자는 
차거운 새알만 주워서 손안에 품는다
반질반질 동글동글 
남자의 고관절 사진 속의 하얀 인공관절도 
이렇게 차고 단단할까
차거운 바닷바람 속을
그래도 절뚝절뚝 꿋꿋이 걸어가는 남자의 뒤에서
바닷물보다 더 짠 것을 몽돌에 쏟았다
자르르 부옇던 새알에 빛이 난다
여자의 눈동자에도 생기가 돈다 
겨울바다가 두렵지 않았다

 

봄을 사러 가다


봄날 오일장에 갈 때는
잔돈을 준비한다

나란히 앉아있는 얼굴
또 하나의 봄을 지켜낸 떡잎을
봄볕이 안쓰럽게 쓰다듬는다

냉이 한 움큼
달래 한 줌
파릇파릇한 그 봄 앞에서는
잔돈이 제격이다

봄을 사러
오일장에 갈 때는
작은 손을 만나러 가는 거다

어릴 적 세뱃돈 쥐듯이
조금씩 조금씩 잔돈을 풀고
나물보다 향기가 더 많은
검은 봉지를 흔들며
햇살을 폭신폭신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거다

화성 발안 오일장
봄물 든 손마다 설렘이 출렁인다

 

오일장에 갈 때는
 
 
쪼그리고 앉기 편한 하의에
티 나지 않은 수수한 상의면 좋을 상 싶다
감자랑 무우랑 실랑이를 하다가
얼떨결에 따라온 흙덩이들이
푸성귀며 풋고추에 따라온 이슬이
놀라지 않게 
그들에게 너무 낯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수를 하고 분치장을 하고 
가슴에 명찰을 달고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애들 보다
산에서 들에서 뛰놀다 
그대로 덜컥 손목을 잡히어 온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맑은 눈망울이 올롱해진 애들에게
더 마음이 쓰일 줄 알고
흙냄새 바람 냄새에 
더 비싼 값을 매겨줄 줄 아는 
덤으로 받는 채소보다 
황토가 묻은 갈고리 손에 마음이 쓰이는
서글서글한 눈매면 제격이겠다
애호박 둬개 건너주고
상추 한 줌 베어 오던 이웃집 텃밭이 생각나고
평상에 마루턱에 아무 데나 걸터앉아
수박을 쪼개고 홍시를 호물거리며
가고오는 동네 사람들,
다 불러들이던 웃음소리
그 마당의 얼굴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그런 멋에 가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밥 먹는 시간
수저와 그릇들이 얌전합니다
작고 식은 그 시들한 소리들을
입안에 넣고 오래동안 우물거립니다
핸드폰이나 TV가 겸상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여러 개의 
그때그때를 갖고 삽니다
잠을 잘 때 사람을 만날 때 일을 할 때
그리고 밥 먹을 때 
혼자 밥을 먹는 건 그 누구와도
때를 맞추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맞추는 것입니다
깎아서 끼우고 돌리고 늘이고 줄여서
서로 맞추는 것입니다
맞춘다는 말은
또 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와도 맞추지 못한
한 끼를 내가 나에게 맞추고
심심하게 먹다 보면 외벌의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혼자 밥 먹고 나면 
먹은 만큼 더 비어지는 것 같습니다
빈자리와 마주 앉으면 또 다른
빈자리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스크


얼굴을 반쯤 가리고도 
서로는 서로를 잘만 알아본다
언제부터인가 반쪽의 얼굴은 인격이 되고
안심 얼굴이 되었다

복면의 날들이 계속되고 
너무 많은 일상들이 사라져 가는 사이
내 속의 수많은 낯선 냄새들과 
말의 뒤끝들과 
입 다문 질문들에 대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설명하고 생각할 시간이 찾아왔다

표정이 잘려나간 말들을 주고받으며
하얗고 까만 신종 언어에
귓바퀴는 지쳐가고 귓구멍은 한가해진다
뱉은 말은 메아리도 없이 되돌아온다
입속은 포화상태가 되어간다

숨이 막혀 온다
벗어 팽개치고 싶지만
눈뿐인 반쪽의 표정들이 두렵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너와 나의 복면의 뒤울안이 불안하다
찢으려던 손은 늘 허공에 매달린다

꽁꽁 여미는 무표정의 표정들은
어느새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흰말 검은 말 늘어나는 각양각색의 말들은 
편을 가르지 않고 그런대로 잘 섞이고 있다

 

 

봄까치꽃

 


까치

이름만 들어도 상큼하다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
어느 봄날 아침
창문을 활짝 열고
가슴도 한껏 열어 놓을 때
꽁지를 달싹이는 기분 좋은 저 몸짓
깍깍
살구나무 우둠지에서는 기쁨이 돋아나고
우체부의 자전거 방울 소리인 듯
새 아침은 설렌다

봄까치꽃아
가만히 네 이름 불러보았더니
깔깔 웃음소리 들려온다
소꿉친구가 뛰어나온다
달래를 캐던 바구니를 들고
진달래꽃 한 아름 안고
들판에서
산등성이에서
산까치의 지저귐 소리와 함께
구을러 온다

야단났다
봄까치꽃을 불렀는데
내 친구 송이가 답한다  

 

 낡은 꽃

 
 
꽃이 피는데
왜 내 몸이 설레는 거지

옷장을 다 뒤지어도
꽃만한 봄옷이 보이지 않았다
쭈글쭈글하지 않으면 색이 바랬다
다리미질하고 물을 뿌려도
퇴색한 주름은 살아날 줄 몰랐다

벚꽃 피던 지난해
목련 피던 지지난해
한때는 우쭐거렸던 
손을 흔드는 블라우스 팔을
한사코 발목을 잡는 치맛자락을
억지로 수거함에 구겨 넣고 돌아섰다 

곰팡이 꽃 얼룩무늬 꽃 낡은 꽃
구겨진 흔적들이 가득했고
웬 할아버지가 잽싸게 끄집어 내갔다

검버섯 꽃이 환해졌다

 

오월의 밥차

 

어여쁜 저 꽃나무에 이팝이라니
이팝나무 꽃이라고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딸아이는
촌스럽다고 깔깔거리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도 전화를 하면 
가는 귀 먹은 어머니가
어김없이 쏟아내는 그 한마디 말씀
밥 묵고 다니 제
밥 많이 묵어라

옛말이 되어버린 귀한 이팝
사치스러운 존재이었던 이팝을
초록으로 가는 길목에서 
맘껏 퍼주고 있었다
여전히 한 끼 밥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우연히 꽃그늘을 지나가다
덥석 받은 고봉밥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밥 묵고 다니 제
밥 많이 묵으라

밥차가 푹푹 인심을 퍼주고 있었다

김단 프로필 

중국 화룡시 출생.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오상시낭송회 회원, 넝쿨문학회 회원.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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