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기의 발달, 어디에서나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 환경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연결이 되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디에 가든 와이파이부터 연결하는 것이 현대 사람들의 특징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6월 1일부터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전화도 없이 서신거래만 하던 시절, 경조사를 전보문으로 띄우고 물어물어 친척집을 찾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는 옛날 옛적 이야기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소통이 원활해진 반면에 사람들은 쓸데없는 정보에 시간을 빼앗기고 사적인 시간과 업무상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예로 현재 사람들은 소통이라는 취지하에 적게는 십여 개에서 많게는 몇 십 개 인터넷그룹에 소속되어있는데 그런 곳에는 꼭 눈치 없이 아주 사적인 사진이나 동영상을 버젓이 올려서 그룹의 취지를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공지사항이 떴나 싶어서 들어가 보면 손자손녀 재롱 피우는 모습의 동영상이 올라와있는가 하면 그룹과 아무런 상관없는 긴 글이나 사진들이 올라와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퇴근 이후 혹은 휴일 등 업무 시간 이외에 업무 연락을 받아서 곤혹을 겪는다. 그 시간은 오롯이 개인의 시간이지만 편리한 SNS 환경 때문에 지시를 하는 사람은 그냥 하나의 문자로만 인식하고 상대가 방해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가급적이면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주말에 가족들과 보낼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가끔 사람들은 관심과 간섭을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지나친 ‘관심’ 때문에 나는 이렇게 속으로 절규할 때도 있다. 
“그냥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돼?” 

나는 열흘 전에 목감기에 걸렸는데 코막힘, 두통, 기침, 재채기, 인후통증 이런 일반 감기 증상 외에도 오랫동안 사지가 나른하고 식은땀이 나서 계속 졸리곤 했다. 사람마다 신체조건이 다른데 나는 원래 감기에 취약한 체질이다. 한번 감기 걸리면 2-3주는 꼼짝 못하고 병치레를 한다. 그런데 주변에선 웬만하면, 이라는 전제 조건하에 여기저기 참석해달라고 강요에 가까운 부탁을 해온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아픈 몸을 끌고 한번 모임에 참석해서 두 세 시간 있다가 오면 나는 그날 하루를 꼬박 앓아누워야 한다. 병이 낫기는 고사하고 더 심해진다. 그런데도 “감기니까 괜찮아, 여름 감기는 원래 그래.” 이런 말로 나를 엄살 많은 사람 취급을 하는가 하면 매일 문자로 내 병문안을 체크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어떠냐, 그럼 일은 어떻게 하냐? 어디 간다던 건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분명히 말해두지만 감기몸살로 인해 내 일과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건 내가 제일 걱정하는 일이고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바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데 일일이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도 실은 피곤하다.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그러니 이건 관심이 아니라 방해라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다. 다정한 무관심이 진짜 배려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말 뜻은 재해석하면 “너희는 (타인은)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제발 가만히 내버려두라. 내가 툭툭 털고 일어나 “나 다 나았어요.” 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감기와 사투를 벌였는지에 대한 “투병스토리”를 신나서 떠들어댈 때까지. 

페이스북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대문에 “페북 메신저는 사양합니다”라는 글귀를 슬로건처럼 내걸고 있다. 내가 올리고 싶은 글을 포스팅하고 페북 친구들과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건 내 마음이고 내가 편한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메신저로 자꾸 문자가 오는 것은 내가 원하지도 않은 시간에 내 사생활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출된 환경에서 글을 올리고 그 글에 대해 평론하는 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하지만 메신저로 물어오는 문자들은 대부분 전화번호 포함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소통이다. 페북 친구는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5000명까지인데 그 사람들이 (물론 다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모두 열린 공간에서의 소통을 하지 않고 친구로 추가하기 바쁘게 메신저로 문자를 보내와 이것저것 묻는다면 그건 엄연한 개인생활 방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초에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메신저는 사양한다고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다. 

코로나가 퇴색하면서 모멘트에는 해외여행 상품을 소개하는 문구와 사진이 빈번하게 노출된다. 해외로 출장을 가는 지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생각에 몸이 근질거린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너무 오래 갇혀있었다. 드디어 이제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고민거리도 생겨났다. 중국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A국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로 온다며 만나자는 문자가 넘쳐난다. 다짜고짜 만나자고 한다. 그 바탕에는 몇 년 만에 만나게 된다는 반가움이 깔려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이나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만남을 요구한다면 그런 만남은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만남이 아니라 후회만 남기는 만남이 된다. 만남이란 모름지기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도시에선 무엇보다 효율을 중시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살고 있다. 한 번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진 많은 스케줄의 조율이 필요하고 만나기 전 준비시간, 왕복 이동거리,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 등등 적게 계산해도 여섯 시간은 할애해야 한다. 그만큼 한 번의 만남이 알차고 의미있기를 기대한다. 약속 같은 거 필요 없이 아무 때건 불쑥 옆집에 들어서도 반겨주는 시골에서의 후한 인심을 기대할 수 없이 삭막해진 것 같아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알싸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사전에 약속을 잡을 때 상대방의 여가시간을 충분히 고려하고 이동거리가 먼 대도시의 특성상 만나는 장소도 중간 지점 정도로 정하는 에티켓을 발휘해준다면 금세 사르르 풀리기도 한다. 결국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만나냐가 중요하다. 즐겁지 않은 만남은 상대에게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느낌만 들게 할 테니까. 

코로나가 한풀 꺾이면서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오프라인 만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학수고대해온 만남이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던 시간들을 용케 견뎌낸 뒤에 이루어지는 소중한 만남이다. 이 소중한 시간이 괜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오프라인에서 우리는 더욱 센스있게 처사해야 한다. 선을 넘는 순간 상대는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되며 다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누구나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다. 방해가 아닌 즐거운 소통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기꺼이 나와 시간을 공유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혜로운 만남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를.  

2023년 6월 30일 서울에서

곽미란 프로필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현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 출간.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연변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2019호미중국조선족문학상 등 수상 다수.
곽미란 프로필 :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현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 출간. 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연변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2019호미중국조선족문학상 등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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