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ㆍ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ㆍ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ㆍ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합종연횡(合縱連橫)'이라는 말이 있다. '史記(사기)' 소진장의열전(蘇秦張儀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는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인 한(韓)· 위(魏)· 조(趙) 세 성씨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BC 403년)한 이후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진(秦)나라를 포함한 7개의 나라(戰國七雄)가 패권을 다투는 시기였다. 당연히 국가의 생존을 위한 외교술이 필요했고, 소진과 장의는 합종연횡을 통해 전략적 균형을 이루는 외교술을 제시했던 것이다.

현재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보면 마치 전국시대가 다시 열린 듯한 느낌이 든다. 새로운 국제질서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국제관계는 계속 요동치고 변화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반도 국가이자 분단 국가인 한국에게는 중대한 생존의 도전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작금의 요동치는 국제 관계는 한국의 경제와 안보, 그리고 생존을 위협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외교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외교 정보단'을 외교부에 설치한 것도 국제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 조직이 대통령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지는 의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비슷한 이유로 청와대에 국정상황실을 만드는 일을 했던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외교 정보단이 아직 제 기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 한국 외교가 중국에서 패싱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8~19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은 물론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 등을 만났다. 미

중 양국은 고위급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에 대한 '충돌 방지'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미중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미중 관계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났고,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애플 CEO 팀쿡 등도 중국을 방문했다.

이같은 흐름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對)중국 정책을 부분적으로 조정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CNN 인터뷰 발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디커플링(decouplingㆍ탈동조화)’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ㆍ탈위험화)’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제 대중국 포위 압박에서 경쟁과 협력의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 것이다.

일본의 생각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프랑스와 독일이 중국 시장에서 이익을 챙기는 마당에 일본만 소외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조건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얘기했다. 한국이 북한과 대화의 문을 닫았는 데 정작 일본은 북한과 조건없이 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더 나아가 중일 정상회담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런 상황에 한국은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두고 대통령까지 나서 중국을 공격하고, 여당 대표는 중국 국적 영주권자의 투표권 제한을 얘기하고 있다. 다들 중국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마당에 한국만 갈등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과의 경제 교류와 인적 교류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외교는 이익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가치와 이념을 내세워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2300여년전 중국의 사상가들은 이익을 위한 합종연횡의 외교 개념을 만들어냈다. 지금 한국의 외교에는 역사의 교훈도 국가의 이익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외교가 중국의 무대에서 제 역할을 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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