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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재한동포문인협회에서 주최한 문학기행은 오래오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단체 문학기행이기도 하지만, 한동안 보지 못한 문우들의 만남이 무척 설레이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쁨이 배가 된다.  우리 일행은 김유정 역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집행부는 혼잡 없이 잘 치러지기를 바랐다.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참가 인원수도 많아졌고 우려했던 일도 벌어졌다. 집행부 핵심 인원 한 분이 코로나로 참석하지 못하고, 또 한 분은 중국 출장으로 사무국 인원들로 집행해 나가야만 했다. 

당분간 양평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나는 오후에 휴가를 맡고 춘천 실레마을로 향했다. 

김유정(1908-1937) 소설가의 생가 방문이다. 최초의 사람 이름 들어간 김유정역, 양평에서 차로 50분 거리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한 나는 김유정 역을 지나 마을로 300여m 들어가니 아담한 한옥 건물 초가집 기붕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로 꽉차 있어서 한참 위로 올라가서 한적한 길 옆에 주차를 했다. 이미 많은 문우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그 속에 끼어 들었고 서로의 근황을 주고 받았다.  

문학촌에서 위로 200m 떨어진 잣나무밭 부근이 소설  ‘봄 봄’의 무대이고, 소설 속 배참봉 댁의 마름인 김봉필로 실레마을에서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김유정이 주막에서 술을 먹고 집으로 가던 중 점순이와 혼례를 시켜주지 않는다고 데릴사위와 봉필이가 싸우는 모습을 메모해 뒀다가 ‘봄 봄’을 썼다고 한다. 

문학촌 건너편, 조금 떨어진 곳에 소설 ‘동백꽃’의 배경이 있다. 김유정은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듯 노란 동백꽃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노란 동백꽃은 없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 한다. 우리 일행은 정해진 시간에 문학관 상주 작가의 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김유정은 춘천 실레마을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몰락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전석순 소설가님이 강의로 시작했다. 김유정 소설은 교과서에 실려서 잘 알려진 동백꽃이나 봄봄 처럼 농촌 소설도 있고 도시 소설도 있다. 소설 "아내"에 대한 해설, 얼굴도 그리 변변치 못하고 아이를 낳고 목소리가 크고 남편에게 대드는 모습, 남편에게 소리를 배우고 담배 피며 폼 잡는 법도 연습하는 아내의 모습을 생생하게 썼다고 한다. 또한 박녹주에게 스토킹했다는 이야기를 예리하고 재밌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 됐던 곳, 실레마을 주막에서 들은 이야기 산책하다가 목격한 광경 모두가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니 통찰력과 관찰력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노다지’‘안해’등등의 무대도 실레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전체가 기념관인 만큼 전국 문학관 가운데 유일하게 문학‘촌村’을 붙이는 이유라 한다.

김유정 소설은 우울함 속에서도 풍자를 해학적으로 풀고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고단하고 가난한 삶이 소설에 잘 표현됐다는 게 ‘산골나그네’ ‘소낙비’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문학촌은 물론 대한민국에 김유정의 유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김유정이 병마와 투쟁하다가 외롭게 숨을 거둔 후 친구인 안회남이 유고, 편지, 일기, 사진, 등 모든 유품을 보관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고 한다. 전석순 소설가의 문학 강의 후 회원님들의 시 낭송으로 화합을 도모했고 남은 시간으로 레일 바이크도 탔다.  김유정 레일바이크는 6km와 낭만열차 2.5km를 합친 편도 총 8.5km 이다. 4인승의 레일바이크를 밟으며 북한강 절경을 가로 지르며, 4개의 터널있다. 바람개비, 비눗방울, 은하수 조명, 클럽 조명, 각기 다른 테마로 지루할 틈 없는 시간을 선물했다.  다행히 사무국장과 임원들의 안내로 원만하게 마칠 수 있었고 회원님들의 성숙한 행동도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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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첫 장면에 한가위 날차레 성묘가 끝나고 서편으로 해가 기울면 타작마당에서 풍악놀이가 벌어지는데서 시작된다. 소설가 박경리는 한가위는 풍요하고 떠들썩하지만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라고 했다.

5월 5일은 고 박경리 작가의 15주기다. 통영에서는 15주기 추모제가 열렸으나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의 집을 찾아보았다. 박경리 문학의 집은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박하면서도 아늑해 보이는 정원이 딸린 박경리의 집필하던 집 단독주택이다.  박경리가 18년 동안 이곳에서 ‘토지’ 4-5부를 완성한 공간이다. 온갖 역경과 혼란 속에서도 작품을 완성했다는 게 대단하다는걸 느껴졌다.   

박경리의 본명은 박금이이다. 그는 대하소설 토지로 위대한 작가의 대열에 올라섰지만 그의 삶은 평탄지 않았다한다. 어느 문학행사에서 박경리는 “나의 삶이 평탄했더라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삶이 불행하고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나는 글을 썼던 것이다.”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그의 일대기를 모두가 알 수 있어 쓰지 않겠다.

4층까지 전시 관람하라는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2층에는 “박경리와 만나다”로 구성 되었는데 삶의 흐름에 따라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었다. 유독 바느질 그릇이며  소박한 모습을 그려낸 것 같다. 박경리는 글 쓰는 시간 외에는 바느질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바느질 / 박경리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자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박경리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행도 쇼핑도 재미없고  글쓰기에만 몰두 했다고 했다. 

3층에는 “토지”로 역사적 공간과 등장인물 관계도와  토지의 이해하기 쉽게 배치를 했다. 4층에는 박경리의 작품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는데 아쉽게도 개방을 하지 않아 관람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경리 작가의 글과 혼이 숨 쉰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발간된 작품들도 연도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정서가 바뀌다가도 작품을 읽으면 감정 이입이 되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문학기행은 배움의 길 이면서도 진리를 깨닫게 하고 때로는 한편의 글이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문학기행은 어디라도 마다않고 떠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배영춘 프로필 

중국 서란시 출생,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사무국 부국장. 
수필/수기 , 시 등 수 십 편 발표.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등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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