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결국은 너의 붉은 울음위에
별꽃을 올려 놓았구나

청아,
네 속치마 깨끗이
머리위까지 올려야 하는 
네 열개의 손톱이 반달을
허비며 허비며 
밤하늘 우러르는 우러르는 
그러한 너의 가슴 박힌 옹이를
저기 저 석양에 기대놓으면
피빛 저믄 물감이 
국화꽃 이쁜 주름살 속에
꼬깔처럼 벙글어 벙글어서
죽음 물고 날으는 쭉지새의
모가지에 
한낱 숨의 부활을 얹어나 볼까

결국은 저 넘이에 또 무슨
환생의 입술 있어
노을은 그리로 고개 기울이는가

 

절구(绝句)

 

어찌 할까나

입이 있어도 
부를 수 없는 님이여!

내 입에 고인 발음이
너의 고운 이름 하나
저 남산의 도라지 꽃잎위에 
얹어놓지 못하는 것은
내 혀가 굳었기 때문이라면
나는 차라리 벌레 먹은 
고목이나 되여라

새가 이발이 없는 것은
먹기를 위해서만 아닐 것이고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가지를 흔들어
소리를 내는 것이라 할 때

가슴을 닫은 하늘아, 들아,
내사 즈이 입을 저고리 없구나

어찌 하오 어찌 하리오
아직 땅은 있어도
푸른 보리밭 밟아 줄 
발목은 불러져 
애줄없는 비인 울대만 울어라 

 

두만강

 

오, 저기에 있던 노래는 
시방 어느 쯤에서 우는가

저 흐르는 물에
씨간장같은 음률을 넣어
검은 음표를 다시 찍어라

두루마기 고름에 매인
눈물 젖은 노래를
강물우에 풀어놓고
마르지 않게 푸욱 적셔라

그래 좋다

산이 목이 말라
젖은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저 강의 윤슬에 
누룩 몇덩이 쪼개넣어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막걸리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바가지만 푹 퍼서 
황토색 물 든  
열 두줄 가야금줄에나 먹여라

 

징검돌

 

고요한 개여울
꽃잎 떨어져
개울물 바짝 여물었다

저것 봐
여울 건너려는 소녀
치마 걸려
건너 뛰지 못하는구나

에헴,
소녀야, 신을 벗어라
그리고 
치마깃 살짝 들고
그 하얀 버선발로
너의 징검돌 된
내 등짝 딛고 건너라


 

형벌

 

남산의 허리띠를 
풀어내고
온 허벅지에 초경을 매질한
진달년들이 
시집을 못 가 안달이
났는지
아지랑이를 쫙쫙 찢으며
지랄 발광이다

이건 누가 봐도 
풍토물란이 틀림 없사매

게 누구 없느냐

저 년들 입에 
이슬을 물리구
햇살의 회초리로 볼때기를
매우 쳐라

 

방앗간

 

툭 끊어진 시간의 허리에
고독이 감겨있다

아낙네들 찰진 육담들이 
거미줄에 걸려
지나가는 남정네들 눈길
붙들어맨다

딸냄이 시집가는 날 잡은 
순이 엄마의 무거운 가슴은
근심 걱정을 가득 넣고
쿵쿵 가난을 찧는다 

낟알 몇 알 옷 벗고 간
방앗간 구멍확을
참새네들 들여다보다
고픈 세월 쪼아먹는다

골다골증 걸린 뼈구멍에
오랜 력사를 구겨넣은
백년된 버드나무는 가지끝에 
침 발라 촌록을 쓴다

 

나는 그 섬의 무엇에 이끌려 가는가

 

그 섬에는 
구름도 하얗다
목련도 하얗다

구름 하얀 하늘이 어디엔들 없으며
목련이 꽃피는 땅이 
어디엔들 없으랴만

내사 무슨 꽃물에 빠진 가슴이기에
이리도 허우적이고 싶은가

저 푸른 하늘과 
저 푸른 바다와

그리고 그 바람부는 언덕쯤에
민들레꽃으로
혹은 진달래꽃으로 있을
저녁이슬같은 너는
어쩌자고 나를 이 한겨울에도 
푸른 보리밭으로 이끄는가


연꽃

 

속살 부비는 꽃잎의 속삭임이 
결코 너를 불러들인 것은 아니련만
물새야, 부질없이 날아와 
저 꽃송이에 함부로 입질 하지 마라

꽃송이가 노을마냥 겹진 것은 
결코 벌레즙 묻은 너의 입술이나
닦으라는 수건이 아닐진대
그 경박한 주둥이로
소녀의 가슴같은 꽃잎을 
섣불리 헤집지를 말어라

그것은 저 하늘 별님의 그리움을 
꽁꽁 싸넣고 시집을 가야 하는 
샘물집 순이의 례단함이거늘, 

이제 별이 웃는 어느 달밤 되면
네가 아니여도 
순이는 그 고운 손으로 
빗장 열어 한잎 한잎 
소녀의 순정을 풀어헤쳐보일 것을


두만강

 

오, 저기에 있던 노래는 
시방 어느 쯤에서 우는가

저 흐르는 물에
씨간장같은 음률을 넣어
검은 음표를 다시 찍어라

두루마기 고름에 매인
눈물 젖은 노래를
강물우에 풀어놓고
마르지 않게 푸욱 적셔라

 

그래 좋다

 

산이 목이 말라
젖은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저 강의 윤슬에 
누룩 몇덩이 쪼개넣어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막걸리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바가지만 푹 퍼서 
황토색 물 든  
열 두줄 가야금줄에나 먹여라


늙은 황소의 눈

 

나는 늙은 황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노을 비낀 황소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속에서 흙을 닮은 
자라가 타박타박 걸어 나온다

기껏해야 십년도 못사는 소가 
백년도 못 사신 한 로인을 
눈에 넣고 길청령고개를 오른다

삐그덕- 찌그덕- 찌직지-익-찍-

쇠를 갉아먹는 수레바퀴 소리는
로농의 무릎뼈에 감겨 녹을 쓴다 

언제적 찍어둔 흑백사진 한장이
황소의 눈에서 저렇게 젖어나오는가

아주 오래된 카메라렌쯔같은 
여윈 황소의 저 눈망울, 
그 속에서 등 굽어 자라등 된 내 아버지,

사람들은 아버지를 곱추라 불렀다

우두둑 허리 펴지는 소리에 
겨우 밀려나오는 한마디 말,

-배 고프재냐?

 

달항아리

 

 

목련화 함박지게 피여있는
그 뒤란에 다곳히 앉아있는
저 달항아리를 보아라

드뷔시의 “달빛”에 젖어
꽃망울 고름 풀어 사뿐히 
항아리속으로 들어가 잠자는 
저 귀태를 보아라

달의 령혼을 가득 채워 
꽃잎을 입고 해오름처럼 솟아나오는
저 아르테미스의 넋을 보아라

나 또한 네안에 머물고싶은 
바람일 때
사루비아 향기되여 
저 은은한 달빛에
살며시 엎히여가면 너 받아주겠니

김정권 프로필

중국 연변 왕청현 출생, 연길시문예창작실 주임. 2007년 연길시문화관 창작원, 현재 국가1급 극작가.주요작품 중단편소설 등 20여 편장막극 3부소품 등 100여 편소품 '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에 실림김정권소품집 출판장편동화 소년아동 연재(2012), 출판,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연속방송극으로 각색국가급 4차 성급 20여차 주급 30여차길림성장백산문예상 1차진달래문예상 3차2014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수필상)2015년 연변문학 문학상(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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