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원화된 중국: 정글만리, 유정천리
2. 한국에서 "나"답게 산다는 것은 
3. 어게인 대림

 

1. 이원화된 중국: 정글만리, 유정천리 

 

요즘 장안의 종이값을 올린 베스트셀러 소설은 조정래의  『정글만리』이다. 좀 과대평가하면, 박근혜대통령의 중국방문보다 더 효과적으로, 더 넓게 중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증진 시킨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서안, 베이징, 상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을 머리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인문차이나가이드북이기에 외교부와 문화관광부는 조정래 작가한테 ‘민간외교가’란 큰 명분을 주어야 할 것 같다. 

『정글만리』에도 인용되었지만, 차이나 중국은 ‘차이가 나는 중국’인 것처럼 지역, 민족, 언어, 빈부, 삶의 질, 교육, 공기, 대우, 인프라…등 수천 개면에서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로 차이가 크다가 볼 수 있다.

조정래 작가가 다룬 서안, 베이징, 상하이는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표하는 ‘도시의 왕’이며, 작품속의 인물들은 포스코, 종합상사 상사원들은 굴지의 글로벌기업에 취직한 최고의 엘리트들이고, 기업들의 경쟁, 개인의 생존환경 역시 정글사회인 것이다. 베이징, 상하이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사람들은 ‘런타이둬(사람이 많다)’를 입에 담고 살며, 번쩍번쩍 빛나는 고층건물과 호화로운 호텔인테리, 권력자들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은 일상으로 보여주는 측면도 오늘날의 중국의 현주소로 소개하는 것도 수긍되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모두 ‘샹첸칸(미래를 보고 살다)’은 ‘돈’으로 변화되면서 ‘돈을 바라고 산다’는 의미로 변화되면서 원초적인 자본주의 정글로 빠져 들어가는 현실을 리얼리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도시 삶속에서 인간의 심장은 강철처럼 굳어지고, 머리는 컴퓨터처럼 프로그램화된 ‘정글정석’이 무엇인지를 ‘꽌씨’, ‘당원’ 등 중국화된 암호로 사회내부의 연결망과 그 행위를 잘 설명하기도 하였다.

조금 우려스러운 것은 이 책이 너무 영향력이 커짐으로서 ‘중국이해의 정석’으로 굳혀지면 ‘반쪽 중국’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중국의 중용철학은 항상 ‘좌’와 ‘우’의 균형을 요구하며, 도시가 있으면 농촌이 있고, 그늘이 있으면 빛을 받는 것도 있는 것이다. 

조정래작가가 서안, 베이징, 상하이 중심으로 만리기행을 했다는 저는 이번 방학에 중국의 곡창인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농촌을 돌면서 천리기행을 하였다. 조정래 작가가 본 것이 ‘정글만리’라면 저가 본 것은 ‘유정천리’이다.

흑룡강성의 농촌은 광활하며, 마을은 텅텅 비어 있기에 ‘런타이둬(사람이 많다)’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런타이소어(사람이 적다)’가 문제이다. 베이징의 거리에 차고 넘치는 것이 외국인지만, 농촌마을에서 10년을 넘어도 외국인 한사람 볼 수 없으며, 상하이는 고급호텔에 하루에 수십개의 결혼예식이 있지만, 농촌마을에 1년이 넘도록 결혼예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처럼 한국에서 교수직업을 가진 ‘외국에 사는 내국인’을 보았을 때, 농촌을 지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반가운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농촌의 이장은 감동되어 점심부터 술상을 준비하였고, 중국의 50도 넘는 고량주를 한국 소주술잔의 3배가 되는 컵에 철철 넘치도록 가득 채웠다. 연이어 석 잔을 권하였다. 베이징, 서울, 부산에서 15년 넘게 생활하면서 강철처럼 굳어진 나의 심장은 중국 농촌의 용광로에서 사르르 녹았다.

점심에 뻗어져서 저녁에 눈을 뜨니 나의 심장은 말랑말랑하여졌고, 별들이 깜박깜박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깨끗한 저녁 밤공기를 힘껏 빨아보면서 가슴 속 깊이 쌓인 베이징의 검은 매연을 토하는 것을 상상하니, 내 영혼의 찌꺼기들도 함께 날려보내듯 한결 시원하였다.

여기서 머리로 계산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감정이 가는대로 술을 마시면 되고, 저녁에 수박을 먹어면서 말랑말랑하게 탄력있는 심장에서 튕기는 소리로 대화하면 된다. 여기는 인간정글이 아니라, 천연의 힐링 캠프장이다. 나의 유정천리가 마무리되면서 다가오는 추석에 제군들에게 농촌으로, 고향으로 한번 달려가면서 심장이 튕겨나오도록 자연과 인간과 대화를 실컷 하여보기를 바란다.

 

2. 한국에서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사고한다.
불교는 상황(色), 느낌(受), 생각(想), 행동(行), 인식(識)의 오온(五蘊)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들어가면서(色)

결혼예식장이나 부모님들의 축하말씀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항상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라!” 우리는 항상 ‘남’을 인식하고, 비교하면서 살아간다. 돈도 많이 벌고, 아이도 많이 키우고, 여행도 자주 가면서 행복하기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한국사회에서 대부분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결혼, 출산, 양육 등은 행복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동시에 갈수록 더 큰 짐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은 최근 10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하여 13조의 예산을 투입하였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2019년 한국은 출산율이 앞자리수가 처음으로 “영”으로 들어가면서 “零시대”에 들어갔다. 그만큼 “아기 키우는 것”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럼 한국에 사는 조선족 젊은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나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더 큰 행복감을 가질 수 있을까?

조선족 80후 후배 전은주박사는 “소확행”의 시대, “개인의 탄생”시대, “디아스포라 집단”으로서 조선족 구성원은 자신의 “주체성”을 갖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의 박사논문, 칼럼에서 밝히고 있다. 저도 10년 전에 조선족은 “주체성”을 갖고 한국에서 “제3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가야 한다고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어쨌든 나답게 산다는 것에 “주체성”, “개인의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조선족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밝히고 동조하여 가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는 담론이자, 실천이라고 판단한다.

재한조선족 문학작품에서 ‘조선족 주체성’은 나타났는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나 다운’느낌이란?(受) - “큰 덩치”에 밀리지 않은 “당당함!”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단순히 인구비율로 나눠먹기로 투표하여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14억의 인구라고 하여 꼭 그에 대응하는 노벨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훌륭한 작품이 적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4대 고전명전을 포함하여, 아직 서구사회의 감성으로 읽히지 못한 글들이 매우 많다.

또한 200만의 인구라고 하여 역사가 짧다고 하여 훌륭한 문학작품을 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서유럽의 200만이하의 국가들에서 훌륭한 작품들이 넘치도록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구는 적지만 오래 동안 자신의 전통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남들이 모두 변했을 때 변하지 않고 지키는 것도 “재창조”이다. 여기서 “재창조”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힘과 경험을 축적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이란 국가는 압축적 성장을 거쳐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쉽게 말하면 제일 빠른 속도로, 서구화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황폐한 농촌과 2차공업화의 실패로 남아 있는 도시에 생활하는 이주민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조선족” 혹은 “교포”, “재외동포”로 불리고 있다.

조선족에 다양한 논의들은 그들의 생활사와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배재하고 단순히 국가-민족의 거대한 정치맥락에 집어서 넣어서 중국과 한국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또한 많은 문학작품들은 이런 담론구조에서 재생산되는 언어, 감정들을 소재로 글들을 만들고 있다. 차별, 민족, 국가, 등 정체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 구체적이고 생활적이고 미시적인 차이의 문화들은 왜 쑥 들어가고 있는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문학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더 “문학”답고, “창조적”이거나 “조선족”다운가?

우선 경계의 개척자로 새로운 확장된 문학공간에서 보편적 문학을 창작하는 선두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200만 조선족들이 모두 이쪽으로 가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애정 있고, 이상 있고, 능력 있는 몇몇 문학인들은 이런 “실험” 혹은 “실천”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조선족의 주체성”, 그리고 개인으로서 “나 다운 것”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답게 사는 “생각”(想)

“나”답게 산다고 하여 자기 고집대로 살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유스럽게 살라고 권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조차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살아남기 힘들다. 일본에서 일본인들도, 중국에서 중국인들도…이렇게 사는 것이 파멸, 혹은 고립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거대한 국가의 뒤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조선족의 구성원으로 나”를 고민할 때 국가는 항상 중요한 종속변수였다. 수많은 질문들이 중국-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다. 비록 개인시대, 소확행이 중요한 가치라고 하지만, 국가는 무시할 수 없는, 항상 삶을 바꿀 놓을 수 있는 우리가 바꾸지 못하는 “독립변수”일 때도 있다.

개인적 가치가 증대한다고 하여 국가적, 집단적 지향의 가치가 반비례관계로 후퇴하는 것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NO일본”운동이 대표적이다. 한국사회가 “소확행”의 개인가치가 중요하여 졌다고 하여,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더 강하여 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가치/집단적가치를 이원화, 대립화 시키는데 대립하는 측면도 많지만, 꼭 항상 대립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틈들이 있고, 숨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가끔 수면위로 올라와서 숨도 쉬야 한다. 이런 틈새공간들을 잘 발견하고, 그 틈새공간에서 새로운 “씨앗”을 심고 잘 가꾸면 “나”다운 것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17년 정도 한국에 살아보니, 조선족과 한국/한국인, 조선족/다문화집단, 조선족과 중국/중국인 등에 다양한 틈새들이 많다. 항상 대립만 되는 것도 아니도, 항상 깔끔하게 충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굉장히 길게 오래가고, 어떤 것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고, 어떤 것은 현재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미래에 불확실성을 줄 것으로 판단하니 불안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어느 국가나, 시대나 그렇게 충분한 자유를 국민 혹은 개인에게 무한대로 주지 않는다. 그래도 문학을, 학문을 하는 사람에 있어서 “자유”가 없는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 자유가 적어지고 있다는 것은 “나”답게 살 수 있는 생존공간이 대폭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더 큰 “자유”를 향유하게 한다. 비록 절대 자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고, 틈새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다운 “성찰”(行/省)-“대결(對決)”에서 “대작(對酌)”으로.

이제는 공이 “나”한테로 돌아왔다. 과연 “나”는 “나답게”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여기는 민족, 국민, 동아시아인, 세계인 등 다양한 차원의 “집단안의 나”와 특정한 공간에서 경험을 소유한 “나”가 있지만 이 글에서 “조선족과 나”, “내가 숨 쉬는 공간(한국) 나”에 제한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중국술과 한국술의 관계로 구체화하여 설명한다면 “대결”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서 함께 대작을 하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래도 중국술이 최고야!”, “중국술은 독해, 그래도 한국술!” 여러 가지 대결들의 모습들을 술 뿐 만아니라 일상에서 비슷한 패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조선족으로 ‘내’가 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밥상은 내가 차려 놓고, 손님을 초대하고 중국술도 올려놓고, 한국술도 올려놓아 “대작”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주체적 삶”의 실천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다 보면 중국술과 한국 술, 어떤 술이 좋은가?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리고 양쪽 술에 익숙한 나한테 어떤 술을 더 좋아하는가 묻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나” 느낌과 생각으로 어떤 술이 더 좋다고 결론을 내는 순간, 한쪽은 쉽게 “당신은 술맛을 몰라!”로 결론이 난다.

시간을 내여 밥상도 차리고 비싼 술도 한 병이 아닌 두병을 내놓았는데, “술맛을 몰라!”로 부정당할 수 있다. 문학창작도 그렇고, 사람 사귀는 것도 그렇고 “꼭 재어보아야 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느낀 것이 좋다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꼭 누가 좋고, 나쁘고, 누가 더 강하고 누가 약하고, 이원대립의 구조에서 우리는 “틈”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판을 뒤집어야 하는가? 바로 “대작(對酌)”이다. 대작은 소통이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느낌을 서로 깊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만큼 품위가 있어야 하고, 박식해야 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두 종류의 술을 맛보면서 모두 인정하고 깊이 있게 중국술은 어떤 음식과 더 어울리고 어떤 계절에 더 어울리고, 한국 술은 어떤 음식에 어떤 계절에, 함께 음미하면서 이 두 술을 어떻게 어떤 장소에서 마실지? 누가와 더 즐겁게 마실지 상상하면서 경험세계를 통해 상상의 세계를 확장하여 가는 것이다. 즉 나의 길을 찾는 것이다. 한국을 이기거나, 중국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작의 목적은 나의 느낌, 나의 감각을 더 정확하게 찾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을 함께 하나의 밥상”위에 놓고 생각하며, 자신이 그 술을 즐기는 주인으로,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첫째, “저항의 “나”를 초월하여 평범한 “나”를 찾아야 한다. 한국-중국이란 이원구조가 항상 순리롭게 평행선을 다니는 것은 아니다. 두 개가 충돌할 때, 나는 자주 하나를 하나의 “저항” 방패로 “나”를 보호한다. 한국이 “나”를 무시한다고 여길 때, 중국이 “나”를 섭섭하다고 느끼게 생각할 때 보이지 않게 “방패”를 찾는 것이다. “조그마한 나라”,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가벼운…”저항하면서 모름지기 다른 국가는 “대국”, “역사와 문화의 강국”으로 강하게 넘어간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자녀들조차 그런 “관점”과 “관념”을 갖게 하면서 “조선족과 그리고 그 안의 나”도 함께 뿌리 채 뽑히고 소각되고 연기처럼 소실된다.

나답게 살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해야 “평범”하여지고 “일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중국”과 “한국”을 하나의 대륙, 하나의 해양, 혹은 대륙과 해양을 포함한 하나의 지구로 생각하면서 그 안에 사는 것이 “나”로 자각할 때 나는 “평온”하여지고, 그 충돌에서 자유롭게, “나답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지니치게 역사적으로, 문화대국으로 신봉하는 순간 200만 인구의 조선족/ 그 작은 삶도 설사 5천만이란 한국도 함께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200만 인구를 14억 인구와, 또는 5천만의 인구와 동일한 비교집단으로 설정할 때 “조선족”은 너무 초라하여 진다는 것이다.

14억의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5천만의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200만은 하나의 국가도 아니고 단일한 독립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문화적 측면에서 14억 집단에 동화되어 가느냐? 또는 단순하게 5천만인구 집단으로 넘어가느냐의 문제는 우리 삶의 핵심아젠다로 설정하면 “조선족안의 나”는 나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1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서 첫 단계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족-나”의 삶의 통일체를 영위할 수 있는 지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에 양보하고, 많은 논쟁들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 가능한, 창조 가능한 긍정적 에너지”생산에 집중해야 한다.

어제 어떤 분이 “조선족 혐오”유트브를 올리면서 이런 콘서트/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는 반대시위에 참석해야 한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한국 극우들이 “조선족을 범죄”로 취급하면서 한국 좌파정권과 인권위를 공격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보기만 하도 화가 나서 만나면 절반쯤 밟아 죽여 놓을 것 같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나의 삶을 재료 하는 논쟁에 과다한 에너지를 넣을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시위를 하면, 그쪽은 더 좋아하고 유명세를 타고, 더욱더 공격할 것이다.

이런 “대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동영상을 신고하고 확산되지 못하게 하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야하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맞대면을 대결할 필요는 없다. 차분하게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 연애인을 통해 그들이 “혐오증”의 위험, 이것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더 위태롭게 만들어가게 하는가를 설득하는 “대작(對酌)”이 필요하다.

둘째, “구별 짓기: 나/너”를 잘해야 한다. 한국-중국을 하나의 통일체로 생각한다고 해서 이 두 개를 같은 분모속의 분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으로 여전히 다른 부분들이 많다. 중국의 다양성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단순하게 획일적인 14억분의 1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우리가 매우 매우 적고, 작은 문화덩어리지만, 이 울타리안에서 ‘나’와 ‘너’를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한국, 중국이란 전체를 고민하면서 “조화로운” 생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를 가정하여 보자. 한국에서 탈북자, 국제결혼이민자, 다문화가족, 전라도사람, 경상도사람의 다양한 집단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단순하게 조선족-한국사람 대결구조로 가는 것을 피해야 하지만, 한국을 더 열심히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더 세분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조선족을 이 구체적인 국가안의 하위집단들, 다양한 범주 속에서 “작은 이주민집단 덩어리”로 비교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나치게 편리하게 한국인/중국인/조선족의 비교는 너무나 위험스럽다. 극단적 대결, 분노의 대결, 극단적 종족주의로 “조선족”을 밀고 나갈 한국에서 조선족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구별은 짓되, ‘나’의 길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비교의 결과로 “나”가 너보다 낮다는 ‘결과’에만 집착하다면 다른 종류의 “종족우월주의”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잘못하면 “자민족 천재주의!”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될수록 타집단의 “우수성”, 타집단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이해를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타집단과 타민족에 관련한 지식과 정보가 많을수록, 이해가 깊어질수록, 자민족 자기 집단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더 사랑할 수 있다.

세 번째,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나는 항상 돈키호테처럼 도전한다. 무모하지만 항상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면서, 서울에 살면서, 부산에 살면서, 내가 살아보지 못하였지만, 내가 동참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편의 영화, 수백 곡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그 “시대적 감성”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어느 정도 이해해야 “얘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사”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지역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해야 하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의 독립적인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중국에서 17년 동안 빈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일 년에 수차례 출장, 사회조사를 하면서 중국사회의 변화를 함께 추이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열심히 귀담아 듣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고민하면서 글로, 그 고민꺼리를 함께 공유하면서 한국적 경험, 중국적 경험을 더 큰 사회적 경험을 가지고 있을 때 “조선족-나”다운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깊이 있게 논의하고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을 “한국-중국 대립을 넘어선” 큰 공동체사회의 문제에 집중할 때, 그 차원도 고상하여 진다.

나오면서((識)

모든 사람들은 경계인이다. 특히 외국을 나갈 때 그 차이를 다르게 느끼지만 경계인의 삶을 잠시 체험하게 한다. 조선족도 예외가 아니다. 10년 전만 하여도 유학생인 나에게 있어서 경계인(외국인)을 느끼게 하는 것은 출입국이다. 그리고 국제공항의 출입국심사대이다. “외국인”통로심사대를 지날 때 이다.

10년 전에는 항상 묻는 말이 있다. “한국은 왜 왔는가?”라고 시큰둥한 인상을 쓴다. 

당장 돌아가고 싶은 심정일 수도 있다. 배신을 느낄 수도 있다. 참을 수도 있다. 침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작(對酌)”의 말 걸기 연습을 해야 한다.

여기서 키도 작고 평상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나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영화 보러 왔습니다.” 그러다가 기막혀 하는 출입국 직원을 보고 대답을 잇는다. “저는 영화감독입니다.” 그러면 출입국 직원은 금방 곰상스러워진다. 

그가 바로 “나”답게 대답한 장율 영화감독이다.

 

3. 어게인 대림

 

친숙한 대림.

한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대림은 양꼬치와 마라탕처럼 한국화 되면서 친숙하게 지내는 동네가 되었다. 전춘화작가의 인기작 『야버즈』에 나오는 주인공 경희처럼 고독하게 오리목을 맛있게 씹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대림에 오면 자신이 조선족인지? 재중동포인지? 호명에 신경을 쓰지 않고 맛깔스럽게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솔직한 대림.

12번 입구에서 나오는 순간 대림은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노출하고 있다. 「김뚱보개고기집」이란 한자간판이 걸려 있다. 식당입구에 서너 개의 거대한 가마솥에서 소고기, 개고기가 끓고 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함경도, 경상도, 평안도의 조선말이 오가고 있으며 강한 향을 뿜는 중국술이 배열되어 있다. 벽에는 모택동의 사진그림이 있는데 그 눈길은 맞은 켠에 걸려 있는 TV화면에 나오는 유재석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모택동과 유재석, 시대를 넘는 초월의 눈길!

벅적한 대림.

주말이면 밀린 환갑잔치, 결혼잔치, 돌잔치, 생일잔치로 넘친다. 술잔 부딪치는 소리, 노래소리로 주말마다 축제가 벌어진다. 동창회, 동향회, 환영회, 환송회 다양한 모임들이 여기서 부딪치고 있다. 요즘은 춤바람까지 나서 멋쟁이로 변신되어 전문무도장에서 교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주말의 대림은 벅적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이 역동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딜레마 대림.

 대림도 변신하고 싶다. 옆동네가 가산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싶은 욕구로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데 수천명의 중국인들이 집중거주하면서 발전경로가 완전히 바꿔어 버렸다. 중국인의 상권과 한국인들의 거주권의 갈등양상이 심화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에스닉갈등으로 시선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림은 서울의 주변부이고,  대림은 거주중심의 토지공간은 핵심가치는 사용가치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집중화되면서 에스닉상권이 재생되면서 토지의 교환가치가 증대하면서 자본주의 공간장소의 충돌이 잦는 지역이 되었다.

빗나간 역습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 자본에 움직이는 도시공간이 갑자기 “조선족(중국인)-원주민”에스닉갈등에 집착하면서 문화충돌, 관습차이, 시민수준, 낙후 등 다양한 “낙인찍기”프레임 구성과 반프레임에 갇힌 대림이 되어 버렸다. 대안으로 “화합”, “자성”, “계몽”, “혁신”등 내부자치운동으로 벅적하고 있다. 우발적 사고가 터지면 곧 “범죄프레임”에 씌우거나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바득바득 애를 쓰고 있다.

어게인 대림

 대림 활동가, 정치인, 지역유지들이 대림의 화합을 위한 노력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시기 효과로 볼 때 역효과가 더 크다. 작은 선의의 ‘다문화주의’,‘민족주의’,‘탈계급주의’노력들은 “조선족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장기화시키며, 상권토지공간을 에스닉화 시킴으로써 교환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권분화와 에스닉상권의 집중화, 거주권의 분화를 더욱 강화하기에 결론적으로 ”지역공동체“ 분절화, 계층화, 분화로 초래하는 것이다.

 대림은 다양해야 한다. 거대한 숲처럼 다양한 종류의 동물, 식물들이 살아야 풍성한 숲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살림의 자연스러운 경계를 인간이 약한 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처에 철사슬로 울타리를 만들면 보호가 아니라 함께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대림칼럼 발표 100호를 기념하면서 大林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공간으로서 대림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예동근 (芮 東 根, Rui, Dong Gen) 약력

중국 길림성 영길현 출신, 현재 국립부경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학력 사항>2004.03 ~ 2009.08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사회학전공 문학박사2001.09 ~ 2003.06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민족학이론 법학석사1995.09 ~ 1999.06 중국 연변대학교 중문학부 문학학사〈경력 사항〉2019.03, 정교수 중국학과 학과장2015.02~2016.02 미국 UCSD 이민비교정책연구소 방문교수2010.03~ 2018.02 국립부경대학교,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2009.09 ~ 2010.02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2019년01월~현재 한국지역사회학회 회장2016년 01월 ~2019년 (현재) 한국사회학회 국제이사2011년 3월 ~2018년 현재 한국 공공사회학회 등기이사2018년-현재, 제18기 민주평통 자문위원(부산 남구)

<주요연구 업적 (2011~2019)>“Chivalrous idealist and pragmatic strategist: the influence of Mohist values on Ma Yun’s leadership in China” ASIA PACIFIC BUSINESS REVIEW(SSCI)저널을 대표로 한국, 중국, 일본, 영국 등 국가에 30편의 논문을 발표.『트랜스로컬리리티와 경계의 재해석』 『단둥, 단절과 이음의 해항도시』 (국경연구)비릇하여 14권의 저서(공저, 역저 포함)를 중국, 한국, 일본에서 출판.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