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시절

 

옛부터 청명때면 비가 내린다더니
옛부터 그래서 행인들은 괴롭다더니
과연 올해의 청명은 별다르게 흐리고
올해의 청명은 특별하게 답답하다
온세상이 비애에 잠겨
슬픈 기운이 온누리에 감돈다

인간들은 이런 재난을 피할길 없어
이렇게 처참한 현실을 직시할수 없어
얼굴을 가리고 변이된 악마와 싸워
초연이 없고
초연이 있는
전쟁이 치렬하게 벌어진다
지루한 겨룸에
시간은 멈추듯 초침이 움직이지 않고
령혼이 가히 부착할수 있는 육신을 
내내 찾지 못한다

그때 그 시인의 부르짖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여직 귀전에서 메아리친다
파아린 새싹들이 땅우에 돋아나고
소담한 산꽃들이 피여나고
조잘거리는 냇물도 
급급히 생기를 내뿜는다
소독수와
초연과
아우성으로 꽉 메운 공간은 
너무나 무거운 한숨을 저축한다

세월이 청명하면
수목이 청아하고
인간이 깨끗하고 점잖으면
청정한 기분과
청신한 경계가 이루어진다
부드러운 미풍은 애쓰지만
끝내 모든 눈물은 딱아주지 못한다

 

초봄

 

먹장구름은
몇줄기 필획이 호방한 서예를 날려내린다
혹여 이것은 마지막 눈이겠지
흐터러진 궤적은 
읽기 힘들어 점점 심오해진다

남풍은 과장수법으로
방금 엄동에서 해탈된 분위기를 분칠하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차거운 별을 어루만져
해님을
본능적으로 수줍은 미소를 짓게 한다

수림은 
아직 멋들어진 선률을 엮어내지 못하고
웅장한 본색은 침묵으로 대체되여
호탕한 기세는 늦가을부터 아연실색해서
이질화된 개성을 고통스레 경련 일으켜
소망이 움트는 새싹에서 복귀(複歸)를 예시한다

온 겨울 굳어졌던 기중기가
절주있게 힘있는 팔뚝을 내밀어
콩크리트로 립체의 선언을 조립한다
동아세아 지역의 어느 한 황막한 대지에서
울퉁불퉁 삐여나온 근육으로
현대의식은 이 계절에 
춥고 따스한 기온속에서
에어로빅을 열심히 련습하고있다

계절은 
늘 다사한 중생들때문에 기묘해지고
창조적인 사유와 참신한 령감은 
그리하여 맥주의 거품속에서
허리를 쭉 펴고
시원히 기지개를 켜고있다

 

 삼림풍경

 

이름모를 고독한 산새
피곤한 몸에 자지색의 황혼빛을 싣고
몇바퀴 빙빙 날아돌다가
갑자기 내려꼰져
나젊고 깨끗한 봇나무숲속에서 숙박한다

별찌가 고요한 호수에 떨어지듯
일장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밤별들은 잠기어린 눈을 반짝이며
낯설은 음부(音符)들을 파역(破譯)한다

민들레꽃은 적막에 달갑지 않아
환상에 잠겨 본분을 지키려 하지 않는데
마침 한오리 미풍은
살그머니 보수(保守)의 정을 훔쳐간다

나리꽃은 청춘의 소동에
시달리여 경련을 일으키며
정어린 눈으로 
시공의 외부를 목빼여 건너본다

산등에서 놀다 싫증이 난 초생달은 트림을 하며
싱글벙글 삼림속 수없는 나무의 말초를 누비여
엄연한 풍채로 
황홀한 야경을 흔상하다가
이쪽에 대고 되는대로 
알은체를 하며 마른 기침을 한다

 

벌거벗은 수림

 

겨울이다
활엽수의 나무잎은 홀랑 날려갔다

눈부신 옷단장을 몽땅 벗어버리고
수림은 한오리 걸치지 않은 라체로
백설을 배경으로 하는 산과 산사이에서
가장 유구한 비번을 건네 주며
시체멋이 두드러진 최고의 운치를 전시한다

깨끗하고 청신하고 초탈한 모습
그 예쁨이 너무도 간결하고 청아하다

신화속의 한대목 경치처럼
전설중의 한부분 정절(情節)처럼
냇물이 노래를 멈추고
바람이 소동을 멈추고
새들이 지저귐을 멈추고
청정한 공기속에서
약간이라도 몸을 가릴수있는 
상서러운 구름 한쪼각을 허리깨에 두른다

이만큼의 가리움이라도
비록 하늘의 뜻이였겠지만
이미 마음은 가두지 못한다

 

별다른 고독

 

방금 고향의 고독에서 헤쳐나와
금방 또다시 타향의 고독으로 말려든다

해녕(海甯)의 밤하늘에 떠있는 달님아
어이하여 서지마(徐志摩)의 시처럼 이슬이 맺혔느냐

와당탕 거센 진동 울리는 전당강(錢塘江)의 파도소리
이맘때면 
시공의 터널을 뚫고 나가는 광음(光陰)처럼
추석의 밤을 랑만과 허무로 현시한다

혹시는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을 재현시키는것이 아닐가
천군만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달리는
싸움터마냥 여직 승부를 가르지 못한다

야밤에는 파도소리 듣고
백주에는 조수가 구을러가는 장관(壯觀)을 지키면서
마음은 쪽배처럼
우주의 조용한 곳에서 기묘하게 대안(對岸)으로 건너간다

방불히 어디에서 본듯이
방불히 타향에서 고향의 친지를 만나듯이
모든것은 이처럼 례사롭고 탄연하고 자연스럽다

가슴이 오랜만에 심하게 들뛰더니
문득
디지털카메라가 의미 깊은 춘추를 렌즈에 담아넣는다

 

장마철의 외로움

 

길고
단조롭기가 
너의 걸음걸이 같다

끝없는 비소리에
꿈자리가 촉촉히 젖어들어
잘 삶긴 풋강냉이 향내음을 상기한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
울고 웃으며
낮과 밤은 질서를 모른다

점점 작아지는 이 세상은
너와 더불어
끈질기게 밀착해 온다

 

 기다림

 

6월
나는
레몬빛 황혼속에서 걸어온다
보슬비는 
나의 거치른 숨소리를 적시며
침묵의 발자국을 덮고있다
도도히 흐르는 물결은
그리움에 소용돌이치고
밤은 
긴긴 강뚝의 비밀을 감싸주고있다

하여
우리는 기약도 없이
최초의 기점을 향해
악수를 나누었다
단 한마디 
단 한마디 말이면 족하여
저 강물같은 말을
가슴속으로 흘렸다

다만
남은것과 바라는것은
기다림뿐
또 한번
이 기점에서 래일에로 가봤으면
그러면 또 
6월의 밤에 보슬비가 내리겠지

남은것과 바라는것은
기다림뿐
달력은 노처럼 저어만 가고
암장같이 이글거리는 정열은
한번 또 한번
래일을 위하여 저축된다

 

    송별

 

6월의 여름비에
대지는 상상을 파랗게 편다
나는 묵상의 파도에 실려
려명이 깃을 펴는 항구에서
떠나는 태양과 송별한다

날으는 갈매기처럼
마음은 파도치고
바람에 허연 안개가 걷히면
바다의 하늘엔
한폭의 생생한 그림이 걸린다
어제밤의 수축과
오늘 새벽의 팽창이

계명성도 바다에 잠들었건만
나만은 부두에서 나무처럼 섰다
배고동소리 나의 그리움을 길게 늘구며
아득한 물보라를 일군다
한점의 손수건만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점점 짙어가는 향기를
나의 눈앞에 날린다

륙지 한끝엔
들풀이 무성하고
파란 잔디우엔
조각상이 옥처럼 아름답다
해안선은 지도우에
굴곡이 뻗은 내 마음과
파도처럼 울부짓는 내 부름을
말없이 선언하고있다

 

      고독

 

네가 있는 나날은 초조하고
오래 지나서 또
네가 없는 나날은 초조하다

황혼무렵의 봄비에
날개 젖은 비둘기떼 둥지로 날아드는데
풍경은 재미없다

거리에는 버섯같은 우산들이 다채롭게 떠돌고
수많은 유혹은 우산에서 류창하게 미끄러 떨어져
조잡한 분위기를 충격한다

어느 한 골목에서
호화로운 택시 한대 살그머니 빠져나와
인행도를 점한다

마음의 침적이 길다란 우수를 끌어내여
눈물방울 비방울 한줄에 꿰여서 
성모의 눈부신 목걸이로 만든다

우연히
창구밖을 내다보니
해님이 구름뒤에서 몰래 웃고있다

 

    천년의 사념

 

당신이 없는 나날은 
무엇때문에 눈물이 흘러나옵니까
초봄의 랭기에 
라목의 흔들리는 가지를 바라보며
나는 어쩔수 없는 전률에 흐느낍니다

쓰라린 마음과
외로운 령혼은 손잡고
여직 없었던 나약함을 시인하며
돌연히 거울 같은 평온한 수면에서
여울지는 정서를 느껴봅니다

새 천년의 이 강산에
진달래는 미처 피여나지 못했는데
무정한 세월은 벌써
북국의 살벌한 계절과 더불어
무엇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드넓은 우주에
풀들은 아직 푸르르지 않았었고
꽃들은 아직 피여나지 않았었고
새들은 아직 노래하지 않았었고
심지어 해님마저
빈혈인듯 창백한 혈색을 보여줍니다

모든 사념은 가까스로 웃음을 지으며
옥처럼 청신하고
얼음처럼 랭철한 정적속에서
담담한 장미향을 뿌리며
평소의 당신마냥 사뿐사뿐 걸어와
유머로 나의 슬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중원에서의 해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던 기반(棋盤)
중원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거창한 초하(楚河)와 한계(漢界)를 사이두고
우리는 기약없이 만난다

당신은 대안(對岸)에 서있는데
바람결에 나붓기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형양(荥陽)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름대로 나들면서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의 사랑을 려과해 낸다

리상은(李商隱)의 너무나 많은 재간을 이어받았고
류우석(劉禹錫)의 천고에 전해지는 시구를 터득하였거늘
담담한 눈길에는 당송(唐宋)의 완약한 운치가 비껴있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경전적인 예쁨이 반짝인다

나는 오로지 묵묵히 그대를 지켜보면서
오랜 옛적의 순진함이 9월의 하늘로 탈바꿈하여
제멋대로
진주같이 령롱한 비방울을 뿌려준다고 생각해본다

맑은 렌즈는 서서히 초점을 맞추면서
경치의 깊은 배경에 따라 머나먼 창상을 그려보고
생긋이 웃는 한 찰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장면을 마음속 깊이 새겨넣는다

 

      세 사람의 산행

 

장백산의 복지(腹地)에서
울창한 수림의 한 모퉁이에서
락엽이 두툼히 깔려있는 오솔길에서
두 남자와 한 녀인은
발밑에서 률동하는 가을의 정치(情致)를 귀담아들으며
소슬한 계절에서 흩날리는 몽롱한 시구들을 음미한다

잎새들은 이렇게 깨끗이 떨어져
지어 공간에 아무런 궤적도 남기지 않는다
라체발레인양 나무가지들은 한껏 하늘로 솟구치며
무형의 속박에서 뛰쳐나려 시도하지만
어쩐지 자신의 그림자는 잘 숨겨지지 않는다

산새들의 지저귐은 들려오지 않고
미풍도 이미 숨을 죽이고 있어
더우기 찾기 힘든 계기가 되고
더우기 보기 어려운 경우가 되여
한차례의 자연과 령혼간의 어울림으로
주변의 옛적부터 고유한 정적을 계속 이루어간다

이렇게
한 한국인과 두 중국인은
심산속에서 산책하며 동일한 언어로 찌껄인다
산의 웅장함과 황혼의 부드러움을 감지하면서
해질무렵의 약수동에
석양의 몇오리 여광이 황홀하게 물들일제
얼마간 따스함을 마음으로 조용히 느껴본다

 

    단상

 

하나의 과정은
마냥 또 다른 하나의 과정에 융합되고
하나의 결말은
마냥 또 다른 하나의 시작에 장식된다

그리하여
지구 지어 우주는
흐린것을 맑게 려과해주고
옅은것을 심각하게 각인한다

동서남북풍
저마다 하나의 다른 바람이다

사계절의 판다른 숨결
감각과 정서
려명과 황혼
그리고 뉘 집의 비둘기떼가
종힁으로 교차된 바람속에서 날아옌다

해와 달은 만나적 없겠지만
추억은 질서가 정연하다
나는 교합(巧合)이라 단정하고 말하지 않는다

기실 나는 벌써 알았을 것이다
무엇때문에 한줄기의 강은
또 다른 한줄기의 강에 흘러들고
무엇때문에 모든 결말들은 
또 그후에
결말을 마무리지 못하는가를

그리고 천번 만번과 무한의 개념
그리고 자연과 사회를
이처럼 훌륭히 조화시켜놓은것이
누구의 신력(神力)인가를 

 

    해빙기

 

구름은 쫓기여 방랑하고 
이름모를 목자는 자신(自信)에 넘쳐 제멋대로
채찍으로 폭죽소리 터치며 하늘을 허허 휘가르는데
귀청을 울리는 소음은 세월을 헛대이 하며
애지중지 아끼던 자기의 그림자만 랑비한다
즐거움과 번뇌는 잇따라 다가오고
한동안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고체와 액체는 여태 겨루다가
진공이 방어로 전환되고
한걸음 물러서는것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변화 있기가 마련
어쩌면 가히 경우에 따라 안정되고
어쩌면 경우에 따라 편한잠 잘수있고
제멋대로 자주적인 갈길을 정할수 있다

반복적인 간단한 륜회는
싫증에서 두려움까지 초래하고
하느님에게서 버림 받는다
서로간의 소리와 빛과 모양새는
우리들이 어쩌면 알고 있을수도 있었다는것
그러나 준수할수 없는 궤도에서 
줄곧 사악과 선량을 혼돈한다

흔적과 경험은 하늘에 복사되고
부서진 그림자들은 임의로 붙여주는것을 거부하며
날뛰고 함성 지르는 충동에서
꿈결속으로 여전히 생동하게 조약한다
원래 부여했던 의미는 부가치가 파생되고
그럴듯하나 사실은 엉터리 화면에 랭대 받으며
갈팡질팡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각이 나간 형체는
고집스레 복원을 항거하고
허물어진 이미지는
내용물을 마구 채워넣는것을 완강하게 거절한다
별다르게 두드러진 개성은
갈기를 날리며 투레질하는 준마인양
곧바로 동경하는 먼곳으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백주와 야밤이여
아직도 무엇이 그렇게 리해 안가고
무엇이 도저히 참지 못할 일들로만 남았을까
이야기의 줄거리가 점차 명랗해지고
조용한 표면에 떠오르는 주름살은
세월의 늙음과
늙지 않는 야망을 선언한다

지평선 저쪽으로부터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
모든 생명들은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름못할 흥분과 초조함은 언덕을 넘어 다가오고
마음을 꿰뚫고 령혼을 꿰뜷고 울려오는 선률은
천뢰의 음질(音質)로 
세상을 깜짝놀랠 여기의 형편을 만천하에 알려준다 

 

      중원의 가을비

 

원래는 가물고 비가 적었던 중원의 9월이였건만
지금은 련이어 몇일간 찹찹한 보슬비가 내린다

누렇게 퇴색한 력사는 누런 땅과 함께
세차게 흘러가는 누런 황하의 숨결을 더듬어본다

파아랗게 되여있는 곳은 여전히 파아랗고
누렇게 된 이미지에는 그래도 마냥 푸른 시의 미가 맴돌고있다

당년의 우석(禹錫)형과 상은(商隱)형이 남긴 천고의 유풍은
오늘도 늘늘이 묵향을 풍겨준다

나는 룡만 있으면 령(靈)하다는 여기의 물가에서
그때 그 비속의 향수(鄉愁)를 음미해본다

몽롱한 비속에서 자세히 살피면서
불후의 세월의 오묘한 퀴즈를 열심히 풀어본다

 

    
金學泉 프로필
   

시인, 번역가. 중국작가협회 제5기와 제6기 전국위원, 중국작가협회소수민족문학윈원회 위원, 연변작가협회 주석, 연변사회과학계연합회 주석,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 역임. 시집《봇나무숲 情结》등 다부, 번역시집《은장도여 은장도》등 다부 출판. 《중국조선족문학작품정수》(5권6책)등 다부 주필.  제4기와 제7기 중국소수민족문학상, 제4회 한국한민족글마당문학상등 다수 수상. 
현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시가학회 이사, 중국신강사범대학특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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